봄의 단상
집 밖을 나서니 봄바람이 살랑살랑 볼을 간질이며 장난 칩니다. 햇살은 이미 봄이지만 찬 기운은 여태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봄이 오는 길목을 쉽사리 내주지 않겠다는 동장군의 마지막 심술인 것 같습니다. 길 옆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모든 것을 감내하듯 느긋한 자세로 나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줍니다. 천지 간에 조화롭게 살아가는 순차적 질서를 통한 올바른 가르침입니다. 화창한 봄은 새싹들이 흙을 뚫고 뾰족뾰족 나오게끔 재촉합니다. 그러자 겨우내 움츠렸던 만물이 기지개를 켜고, 삼동 추위를 이겨낸 자연 식구들이 서로를 보살피며 봄 채비에 한창입니다. 키 큰 나무들은 키 작은 나무들이 먼저 싹 키우라고 움 틔우지 않고 내심히 기다립니다. 그래서 키 작은 나무들은 먼저 연록색 꽃망울을 피워냅니다. 또 키 작은 나무들 사이로 풀들이 새싹을 낸지 꽤 오래 됩니다. 이렇게 키 큰 나무들은 봄 햇살 속에 움이 돋을 기회를 다투지 않고 작은 풀에게 먼저 양보하면서 자연적 균형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서식지를 옮겨 다니는 동물이나, 심신이 오염된 인간과 비해 볼 때 대조적으로 질서가 정연합니다. 봄이 올 때는 땅이 먼저 온기를 냅니다. 즉, 땅이 먼저 풀려야 봄이 옵니다. 한 번 생래(生來) 후, 두번 다시 자리를 옮기지 않고 평생을 살아가는 식물들은 욕심을 버리고 다만 자기 종족을 위해 생식합니다. 그리고 바위틈이 건, 비옥한 땅이 건, 황폐한 곳이 건 생명의 본질을 망각하지 않고 자신이 처한 조건에 순응합니다. 가뭄에 수분이 부족해도 하늘을 원망하거나, 땅을 불평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몸 줄여 평형을 유지합니다. 분수를 저버리지 않는 저 나무들이 욕심으로 가득 찬 사람보다 훨씬 지혜롭습니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봄을, 천지가 교통하고 음양이 교접하는 계절로 여깁니다. 특히 음력 2월에 결혼하면 천시와 지리에 부합된다 하여 혼월(婚月)이라고 불렀습니다. 하긴 음양의 원리인지는 몰라도 아주 재미나는 것은, 봄이 되면 여자가 양기를 느껴 남자를 그린다고 합니다. 반대로 남자는 가을에 음기를 느껴 여자를 그린다고 합니다. 이래저래 봄은 남녀 간의 관계를 뜻하게 되어 봄철에 느끼는 심회를 춘심이라 하고, 이른 봄에 온갖 것이 피어나는 기분을 춘의라 하며, 봄의 정취를 춘정이라 합니다. 바야흐로 춘색이 무르익는 계절에는 마음이 약간 부풀고, 기분이 좀 들떠도 좋습니다. 꽃구경을 핑계 삼아 산책도 해보고, 날따라 변해가는 계절을 사진에 담으면서 즐겁게 봄을 마중하는 것이 심신 건강에도 아주 유익합니다. 더욱이 계절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배낭을 둘러메고 한 번쯤 혼자서 산행을 다녀오는 것도 무방합니다. 岳岩 整理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