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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甲辰年 새해 하시는 일들이 日就月將하시고 乘勝長驅.하시고 萬事亨通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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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가는 대로 쓰는 글




흔히 수필(隨筆)을 일러 임의 (任意)의 글이라 합니다 언감()히 이 견해는 수필에  대한 농락(籠絡)입니다.  결코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 아닙니다. 수필 역시 다른 장르(genre)와 마찬가지로 시대와 인생에 대한 냉정한 사유와 예리한 통찰력, 그리고 포용(包容) 관조(觀照) 인간성이 충만 글입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보면 때론 명색이 수필이라고 되는대로 끄적거린 글을 종종 보게 됩니다.  글을 읽고난 뒤 뭔가 개운치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일부 용어 선택이 부적절하거나 내용이 거칠어서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단언컨대 이런 글은 수필을 심히 욕 보이고, 더 나아가  수필의 존엄(尊嚴)마저 말살하게 됩니다. 진정 품격 높은 수필은 정통 문필의 실력을 갖춘 사람의 책임감 있는 붓끝에서 우러나옵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글을 쓰지만 대부분 실패를 할까요? 그 진단은 인생을 근시안적으로 보고, 문장 수준을 높이지 못하고, 날마다 꾸준히 실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근시안적 삶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눈앞의 성공에 급급해, 독자층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왕왕 실패하게 됩니다.


때문에 글을 잘 쓰려면 장기적인 목표가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방향성과 인내 두 가지입니다. 성공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방향을 잡고 일관하게 글쓰기를 추진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이 과정이 결코 순탄할 수는 없습니다. 고난이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런 고난이 짧은 시일이 아닙니다. 


이 부분에서 꼭 언급해야 할 개념 하나가 있습니다. 즉 의지입니다. 장기적인 목표는 그 어떤 고난에도 불구하고 일관하게 추진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것이 덕목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개념입니다.


여기서 말한 근시안적 삶의 문제는 결국 의식 수준이 낮은 데서 온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수준 탓일까요?  절반은 맞는 말입니다. 천성적인 재주가 없어도, 지능이 뛰어나지 않아도, 의지가 강하면 성공할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의식 수준이 낮은 사람이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성공할 수 있는가입니다. 이 부분이 참 어려운 대목입니다. 성공한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겠지만 실패한 사람에게는 엄중한 타격입니다. 그러나 글쓰기에서 실패한 사람들은 너무 자책하지 말고 너무 괴로워하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실제로 성공을 개념화한, 성공의 향상방법에 대해서 딱히 제시하는 게 없습니다. 그렇다고 의식 수준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타고난 능력이 전체 인구의 하위 3%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꾸준히 실천해 가는 것이 현명한 상책입니다.


그러자면 우선 먼저 주변에 살아 숨쉬는 사물에 대해 애정 어린 관심을 두고 세심히 관찰해야 합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이 다 수필로 형상화될 수 있습니다. 이런 바탕 위에서 좋은 수필을 많이 읽으면서 훌륭한 수필가의 내면을 꼼꼼히 살펴봐야 합니다. 그 다음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체계적인 글짓기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러한 자세야말로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감정을 오롯이 표현할 수 있을까요. 합당(合當)한 언어를 적소(適所) 타당히 배치(配置)해야 합니다. 그렇더라도 그 글이 사람들에게 의사를 적확(的確)하게 전달해질지는 실로 묘연합니다. 사실이 증명하다싶이 협소한 지식 체계 안에서 직조(織造)되는 한계적 글은 번번히 실패를 초래하게 합니다. 간혹 운이 좋은 성공자에게는 눈부신 성과겠지만 실패자에게는 쓰디쓴 고배입니다. 

 

오래 동안 글을 쓰면서 나는 가끔은 절망하기도, 가끔은 밤새도록 고민도 했습니다. 전 여태껏 한 번도 문장을 발표한 적이 없습니다. 문제는 내가 저 자신의 글에 신심도 없고 또 독자들 앞에 내보이는 자신감이 없어서입니다. 설사 영원한 실패자로 낙인 받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양심 파는 글이나 성숙되지 못한 글을 발표할 마음은 꼬물만치도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글 쓰는 일에 더 신중히 궁구(窮究)하고 천착(穿鑿)합니다. 왜냐면 글쓰기란 자기 쓴 문장에 책임지는 신성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태껏 줄곧 우리말을 공부했고, 짬 나면 관련 서적을 숙독했습니다. 물론 수준 높은 글은 고차원의 필력과 필치가 긴절(緊切)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한 어절(語節) 한 어절의 준령(峻嶺)을 톺습다. 내게 있어서 글쓰기는 의식 수준을 뛰어 넘는 운명적인 대결입니다. 그 운명이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 천야만야(千耶萬耶 할지라도, 나는 아직 묘연하지만 기어코 이 길을 걷고 또 걸어 가렵니다. 

 岳岩 執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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