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어젯밤에도 오물풍선 또 날려 정부 "경고 필요" 9·19 군사합의 이후 서북도서 첫 포사격
군(軍)이 26일 백령도·연평도 등 서북도서에서 K-9 자주포 사격 훈련을 실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5일 “정부의 거듭된 경고에도 북한이 대남 오물 풍선을 계속 날리고 있다”며 “서북도서 일대에서 그동안 중단됐던 포 사격 훈련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했다. 2018년 9·19 남북 군사합의 체결 이후 중단됐던 서북도서 실사격 훈련이 5년 9개월 만에 재개되는 것이다.
군은 그동안 북한 오물 풍선 살포에 맞서 서북도서 포 사격 훈련 재개를 경고해왔다. 그러나 실제 재개하는 데엔 신중을 기했다. 서해 최전방인 서북도서에서 실사격 훈련을 재개할 경우 군사적 여파가 큰 만큼 북한의 오물 풍선 도발 중단을 유도하기 위해 인내심을 발휘해온 것이다. 그런데도 북한이 지난달 28일 처음으로 오물 풍선 살포에 나선 이후 25일 밤 6차 살포까지 감행하자 군사적 행동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북한이 전날 5차 살포 때 띄운 350여 개 오물 풍선 가운데 100여 개가 경기 북부와 서울 등지에 낙하했다.
군은 이날 충남 보령에서 국산 다연장 로켓 ‘천무’ 실사격 훈련도 했다. 천무는 북한 장사정포 위협에 대응한 한국군의 핵심 화력 무기다. 최대 사거리 80㎞로 고폭유도탄과 분산유도탄 발사가 가능하다. 분산유도탄은 300개의 자탄(子彈)을 쏟아내 축구장 3배 면적을 초토화할 수 있다.
군이 서북도서 실사격 훈련을 5년 9개월 만에 재개하는 것은 북한의 오물 풍선 도발이 선을 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 오물 풍선 도발에 맞서 정부가 9·19 군사합의 파기를 천명했지만 북한은 오히려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며 “강력한 대북 경고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해병대는 9·19 합의에서 서북도서 등이 포함된 서해 완충 수역에서 포 사격 훈련을 금지한 이후 연평도·백령도에 배치된 K-9 자주포를 수백㎞ 떨어진 육지로 옮겨와 사격 훈련을 해왔었다.
군은 북한이 지난달 28일 오물 풍선 살포를 시작한 이후 대응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이면서도 북한 대응을 살펴가며 탄력적으로 대응해왔다. 지난 9일 접경지에서 확성기를 통해 두 시간 동안 대북 방송을 틀었지만 북한의 후속 행동을 가늠하며 방송 재개를 자제해왔다. 하지만 북한이 전날에 이어 이날도 6차 살포에 나선 만큼 접경 지역에서 확성기를 이용한 대북 심리전 방송을 본격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지난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마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보낸 감사 전문을 이날 자 노동신문 1면에 실었다. 푸틴은 전문에서 “이번 국빈 방문은 모스크바와 평양 사이의 관계를 전례 없이 높은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특별한 의의를 가진다”며 방북 기간 김정은의 환대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푸틴은 북한·베트남 순방을 마치고 러시아 매체를 상대로 한 기자회견에서 방북 때 김정은과 단둘이 시간을 보낸 ‘친교 프로그램’을 언급하면서 “북한 특유의 의전 방식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번처럼 웅장한 규모(grand scale)는 기대하지 못했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푸틴은 전문에서 김정은을 향해 “당신은 러시아 땅에서 언제나 기다리는 귀빈”이라며 거듭 모스크바 초청 의사를 내비쳤다. 이와 관련,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부 차관은 김정은의 러시아 답방이 “모든 필요한 조건이 충족돼 문서에 서명할 기반이 마련됐을 때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북·러 정상회담 직전 김정은을 ‘동지’라고 불렀던 푸틴은 이날 ‘존경하는 김정은 동지’라며 호칭의 격을 높였다. ‘동지’를 뜻하는 러시아어 ‘토바리시치’는 옛 소련 시절 공산당원들끼리 사용한 호칭으로 소련 붕괴 이후엔 러시아에서도 공식적으로는 잘 쓰지 않는 표현이라고 한다. 푸틴이 김정은을 ‘동지’라고 부른 의도에 대해 현승수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과의 관계를 과거 소련 시대 혈맹 수준까지 복원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