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제의 넷째 아들이며 효공인황후 우야씨의 소생인 청나라 제5대 황제 옹정제 청나라 제5대 황제이다. 강희제(康熙帝)의 넷째 아들로 청의 전성기(全盛期)를 이끌었다. 중국 역사에서 제갈량(諸葛亮)과 쌍벽을 이룰법한 지독한 일 중독자(中毒者)이다. 다만 성격은 상반되는 게 함정 강희제(康熙帝)의 치세가 워낙 길었기 때문에 1722년 즉위했을 때 이미 45세였으며 그 후 13년 동안 재위했다. 강희제 17년인 1678년 12월 13일, 강희제의 4남으로 후궁 우야씨(烏雅氏)가 자금성에서 그를 낳았다. 당시 우야씨는 서비(庶妃)로 옹정제를 기를 수 없었다. 이 시기에 황귀비이자 내궁을 관리하던 동가씨(佟佳氏)의 유일한 자녀가 요절했는데 강희제는 그녀에게 옹정제를 양자로 줘 버렸다. 동가씨는 옹정제(雍正帝)를 ..
EU 회원국 일제히 백신접종 시작해서 코로나19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희망 싹터 화이자·모더나 백신 접종 후 급성 쇼크? 부작용 정리 유례 없이 빠른 개발… “일반 백신과 비슷하지만 장기 관찰 필요” 영국·미국을 비롯해 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EU 회원국(會員國)이 일제히 백신 접종(接種)을 시작했다. 코로나19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희망이 싹 트고 있다. 그러나 유례없이 빨리 개발된 백신인 만큼 부작용(副作用)에 대한 우려도 크다. 통상 백신 개발(開發)까지는 10년이 걸리지만 코로나19 백신의 경우 바이러스 유전체(誘電體)의 실체가 공개되고 1년이 안된 시점(始點)에서 개발이 완료됐다.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박완범 교수는 “지금까지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 모두 다른 백신들과 비슷한 부작용을 유발..
겨울철 입술 트고 한파 속 분초 다투는 뇌졸중 상처가 잘 아무는 사람 상처가 유독 잘 아무는 사람 왜 그럴까? 염증과 수복 : 피부(皮膚) 상처가 잘 아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어떤 이유로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상처(傷處)가 잘 아물까? ‘흉터 형성 과정’과 그 과정을 ‘지연시키는 인자(因子)’들을 알면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결합조직 축적에 의한 흉터 형성 상처 회복(傷處回復)은 재생에 의해서만 완성되지 않는다. 흉터(scar)로 손상 부위가 대체되고 일부에서는 남아있던 세포의 재생이 함께 일어난다. 흉터는 혈관 형성(血管形成), 육아조직(肉芽組織)의 형성 그리고 결합조직의 재구성이라는 세 가지 과정을 거치면서 만들어진다. ‘혈관 형성(血管形成)’은 흉터가 생기는 시..
몸에 좋은 음식 재료 조리법과 건강효과가 달라지는 영양성분 높이는 조리법 브로콜리 식초물에 헹궈 영양소 높이는 채소 조리법 몸에 좋은 음식 재료라도 조리법에 따라 건강 효과(健康效果)가 달라진다. 채소에 함유된 영양성분 높이는 조리법(調理法)을 알아본다. 브로콜리 브로콜리는 자르기 전 식초물에 헹구면 비타민C를 지킬 수 있다. 브로콜리를 손질할 때 잘라서 씻으면 단면에서 비타민C나 미네랄이 흘러나와 최대 40% 영양소(營養素)가 손실된다. 브로콜리를 씻을 때는 그릇에 물을 담고 그 안에 브로콜리를 넣어 헹구는 방법을 권한다. 특히 물에 식초(食醋)를 넣어 헹구면 세균이나 불순물(不純物) 제거 효과가 생겨 도움이 된다. 당근 당근은 조리 전에 잘라두면 비타민C 효과가 오른다. 잎채소는 잘라서 그대로 두면 ..
일명 석두기라 불리는 홍루몽 작자는 누구이며 홍루몽은 왜 겨우 80회뿐인가? 홍루몽(紅樓夢)의 작자는 누구인가? 2,3백 년 동안 여러 가지 설이 많이 나와서 하나로 모여지지 못했다. 청나라 때의 유서(裕瑞)는 ‘조창한필(棗窓閑筆)’에서 이렇게 말했다. 듣기로 ‘풍월보감(風月寶鑑)’이라는 책은 ‘석두기(石頭記)’라고도 하는데 "누가 썼는지 모른다." 조설근이 그것을 삭제하고 고치고 윤색(潤色)했으며 그의 숙부인 지연재(脂硯齋)가 비주(批注)를 달았으며 이름을 ‘홍루몽’으로 고쳤다. 그는 초본(抄本)을 본 바 있다. 정위원(程偉元)은 소주 사람으로 출판상(出版商)이다. 일찌기 세 번 ‘홍루몽’을 인쇄 출판한다. 그가 출판한 ‘홍루몽’ 정갑본(程甲本), 정을본(程乙本)의 각본의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홍루몽 소저들 중 임대옥이 가장 아름답고 아환들 중에서는 청문이 가장 아름답다 홍루몽의 여자들 중에서 누가 가장 예쁠까? 홍루몽에는 많은 여자들이 나오고 재모(才貌)가 출중하다. 다만 작자는 미모를 묘사하면서 공필(工筆)과 사의(寫意)를 서로 결합시켜서 자주 구상을 추상화(抽象化)하고 형체를 영동화(靈動化)히며 환경을 의상화(意象化)하여 독자들에게 상상의 공간을 충분히 남겨주었다. 임대옥(林黛玉)의 용모는 당연히 아주 뛰어날 것이다. 그러나 책을 다 뒤져보아도 대옥의 용모가 어떤지 구체적(具體的)인 묘사를 찾아볼 수가 없다. 심지어 얼굴이 긴 편인지 둥근 편인지 눈이 큰 편인지 작은 편인지 키가 큰 편인지 작은 편인지 피부가 흰 편인지 검은 편인지도 언급(言及)이 없다. 그저 제3회에서 가부(賈府)로 들..
홍루몽에 나오는 EQ가 높은 여인들 모두 말 예쁘게 하는 특징 갖췄다고 평가 홍루몽(紅樓夢)의 EQ가 높은 여인은 모두 이런 특징(特徵)이 있다. 홍루몽에 이런 유명한 대련(對聯)이 있다. "세사동명개학문(世事洞明皆學問), 인정연달즉문장(人情練達卽文章)" 뛰어난 홍루몽의 여자들 중에는 생활의 지혜(智慧)가 뛰어난 여자들이 많다. 어떤 사람은 설보채(薛寶釵)의 팔면영롱(八面玲瓏)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봉저(鳳姐, 王熙鳳)의 풍풍화화(風風火火)를 좋아한다.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평아(平兒)를 책에서의 "EQ 제일인"으로 꼽는다. 확실히 평아(平兒)에게는 EQ가 높은 여인에게서 볼 수 있는 특징들이 있다. 우리가 그 중 한두 개를 배운다면 평생(平生)을 잘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말을 예쁘게 잘 하..
번역자나 필사 연대 등은 책 속에 밝혀져 있지 않은 홍루몽 고전산문작품 구성 및 형식 : 120권 117책(권24, 54, 71 유실)의 필사본이다. 중국 청(淸)나라 건륭(乾隆) 때의 소설 ‘홍루몽(紅樓夢)’ 120회(前 80회는 曹雪芹 작, 後 40회는 高鶚의 續作이라고 전함)를 완역한 것이다. 현재는 그 중 3권이 없어지고 117책이 남아 있다. 책의 크기는 28.3㎝×18.2cm이다. 표지(表紙)에 ‘홍루몽’이란 제목과 회목(回目)을 쓴 별지를 붙이고 본문 상단에 주필(主筆)로 원문을 싣고 옆에 한글로 중국어 발음을 표기(表記)했으며 하단에는 우리말 번역을 수록(蒐錄)했다. 1면은 8행이며 1행은 18자 내외로 가지런하다. 회목과 시사(詩詞)의 경우에는 두 칸을 내려썼다. 원문(原文)도 8행이지만..
치열한 논쟁 속에서 '홍루몽'의 작자가 누구인지를 고증한 중국의 문학자 호적 모든 책에는 작자(作者)가 있다. 그러나 어떤 작자는 실명(實名)을 드러내기 실어서 가명(假名)을 쓴다. 그리하여 어떤 책은 작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쟁(論爭)이 끊이지 않는다. '금병매(金甁梅)'의 작자는 '난릉소소생(蘭陵笑笑生)'이다. 이 이름은 보기에도 가명인 것을 알 수 있다. 작자가 도대체 누구일까에 대하여는 지금까지도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홍루몽(紅樓夢)’에서는 "조설근(曹雪芹)"이라는 사람이 증산자(增刪者)로 되어 있다. 이 '조설근'은 우리가 평상시에 짓는 이름과 방식(方式)이 같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조설근'을 실명이라고 본다. 신홍학(新紅學)의 기초를 닦은 인물인 호적(胡適)은 바로 그렇게 생각했다...
'코로나 백신 괴담'의 생존법으로 본 코로나19 백신은 과연 안전할까? 전문가들 “예방효과·안전성에 문제없다” 전 세계를 공포(恐怖)에 빠뜨린 코로나19에 대항하기 위한 백신이 드디어 나왔다. 지난 8일 영국을 시작으로 접종(接種)도 시작됐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에이피(AP)통신과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가 미국에서 실시한 여론조사(輿論調査)에서 ‘백신을 맞겠다’는 응답은 47%에 그쳤다. 영국에서도 55%가 코로나19 백신 부작용(副作用)에 우려를 하고 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이런 반응(反應)은 고작 1년 만에 만들어진 백신이 안전할까 하는 의문에서부터 시작된다. 코로나19 백신 안전성(安定性)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이 많은데, 전문가의 도움말로 정리해봤다. 초스피드로 만든 ..
조설근은 조인의 손자라는 홍루몽작가에 대한 수수께끼 의문설의 문제점 '홍루몽(紅樓夢)'의 원작자가 누구일까? 현재 갈수록 많은 연구자들은 호적(胡適)이 고증한 "홍루몽의 작자는 조설근(曹雪芹)이다"라는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호적의 ‘홍루몽고증’에서는 홍루몽의 작자가 조인(曹寅)의 손자인 조설근(曹雪芹)이라고 본다. 현재의 홍학가(紅學家)들은 보편적으로 조설근이 조옹(曹顒)의 유복자로 약 1715년경에 태어났다고 본다. 그런 조씨 족보(族譜)에는 조옹의 아들을 조천우(曹天佑)라고 적었고 조설근이라고 적지 않았다. 그는 관직이 주동(州同)에 이르러 '모연봉유(茅椽蓬牖), 와조승상(瓦竈繩床)", "거가식죽주상사(擧家食粥酒常賒)"할 정도로 가난하지 않았다. 비록 이 '조설근(曹雪芹)'은 일부 청나라사람들의 ..
매사가 고증하기를 홍루몽 전반은 효렴공 썼고 후반은 조설근 완성했다고 주장 호문빈(胡文彬) 선생의 '부상담홍류유고(扶桑談紅榴遺稿) - 황준헌(黃遵憲)과 일본우인의 홍루몽필담(紅樓夢筆談)'이라는 글에서 청나라 광서4년 무인년(1878년) 중국근대의 저명한 학자이자 대시인이며 당시 일본대사관 참찬으로 있던 황준헌(黃遵憲)이 대사관직원인 매사(梅史), 칠원(漆園), 추선(樞仙) 등을 데리고 일본우인과 홍루몽(紅樓夢) 및 그 작자에 관하여 필담(筆談)을 나누었다. 일본의 '대하내문서'에 기록(記錄)되어 있는데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 문: '홍루몽(紅樓夢)'이라는 책의 작자(作者)는 누구인가? 그가 쓴 것은 어느 시대(時代)를 가리키는가? 매사(梅史)가 답하다: 전반은 효렴공(孝廉公)이 썼고 후반은 조설근(曹..
청말문인 홍학계(紅學界)는 설보채보다 임대옥을 왜 좋게 보는가? 청말문인의 "채대지쟁(釵黛之爭)" 홍학계(紅學界)의 임대옥(林黛玉)과 설보채(薛寶釵)에 관한 평가문제를 되돌아보면 혹은 높이고 혹은 낮춘다. 기실 이것은 서로 다른 시대의 사회문화심리(社會文化心理)와 관련이 있다. 청나라 때 "채대지쟁(釵黛之爭)"이 일어난다. 처음에는 설보채를 높이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나중에는 임대옥의 지지율(支持率)이 점점 올라가서 청말 민초가 되면 임대옥이 압도적(壓倒的)인 우세를 보인다. 그 동안 문인의 논쟁(論爭)은 상당히 격렬(激烈)했다. 심지어 추도(鄒弢)와 허백겸(許伯謙)은 '채대지쟁(釵黛之爭)'으로 인하여 주먹질까지 하는 일이 벌어진다. 추도(鄒弢)와 허백겸은 모두 촉의 홍학연구자(紅學硏究者)이고 원래는 아..
중국 고전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홍루몽’의 새로운 비밀이 중국 대륙을 발칵 홍루몽(紅樓夢)고전산문작품 구성 및 형식 : 120권 117책(권24, 54, 71 유실). 필사본(筆寫本). 중국 청(淸)나라 건륭(乾隆) 때의 소설 ‘홍루몽(紅樓夢)’ 120회(前 80회는 조설근(曹雪芹) 작, 後 40회는 高鶚의 續作이라고 전함)를 완역(完譯)한 것이다. 현재는 그 중 3권이 없어지고 117책이 남아 있다. 책의 크기는 28.3㎝×18.2cm이다. 표지에 ‘홍루몽(紅樓夢)’이란 제목과 회목(回目)을 쓴 별지를 붙이고 본문 상단(本文上段)에 주필로 원문을 싣고 옆에 한글로 중국어 발음을 표기(表記)했으며 하단에는 우리말 번역을수록(蒐錄)했다. 1면은 8행이며, 1행은 18자 내외로 가지런하다. 회목(回目)과 시..
홍루몽 작가 조설근에 대한 홍학 고증연구와 홍루몽연구의 변천 조설근(曹雪芹)은 중국의 4대 명저 중의 하나로 불리우는 "홍루몽(紅樓夢)"의 위대한 작가이다. 이는 어린아이들도 다 알고 있는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 홍학(紅學) 고증파(考證派)의 시조격인 후스(胡適)의 이 결론에 대하여 학술계에는 이견(異見)이 계속하여 존재하여왔다. 고증파인 홍학가(紅學家)들이 계속하여 이러한 전제하에 고증을 계속하는 외에 많은 독자와 학자들은 홍루몽의 작가가 조설근인지에 대하여 회의적(懷疑的)인 입장을 보이고 있었다. 유평백(兪平伯) 선생은 홍루몽의 작가가 조설근이라는 설의 지지자(支持者)에서 회의자로 변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 "홍루몽(紅樓夢)"의 책에 쓰여 있는 이야기와 조설근(曹雪芹)이라는 이름 및 고증파들이 고증하..
조조 팔호기와 오자양장, 원소 하북사정주, 유비 오호상장, 손권 강표십이호신 조조(曹操)에게는 "팔호기(八虎騎)"와 "오자양장(五子良將)"이 있고 원소(袁紹)에게는 "하북사정주(河北四庭柱)"가 있으며 유비(劉備)에게는 "오호상장(五虎上將)"이 있다. 그렇다면 손권(孫權)에게는 무엇이 있을까? 원래 손권에게도 "강표십이호신(江表十二虎臣)"이 있다. 강동십이호신(江東十二虎臣) 또는 동오십이호신(東吳十二虎臣), 혹은 강표지호신(江表之虎臣)은 오에서 활약(活躍)이 뛰어났던 열두 명의 장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진수(陳遂)가 지은 정사 “삼국지(三國志)”의 오서 '정황한장주진동감능서반정전(程黃韓蔣周陳董甘陵徐潘丁傳)'에서 비롯한 말로 촉한(蜀漢)의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조위(曹魏)의 오자양장(五子良將)과 같..
삼국지 인물사전 - 정봉(丁奉) 정봉(丁奉, ? ~ 271년)은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의 장수(將帥)이며 자는 승연(承淵)이다. 양주 여강군(廬江郡) 안풍현(安豊縣) 사람이다. 생애 젊어서부터 용맹으로 이름을 떨쳤다고 하나 자세한 활약(活躍)은 전하지 않는다. 손량(孫亮)이 즉위한 후 관동장군(冠東將軍)이 되었다. 정봉(丁奉)의 자는 승연(承淵)이고 여강(廬江)군 안풍(安豊)현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용감하여 소장(小將)이 되어 감녕(甘寧), 육손(陸遜), 반장(潘璋) 등에게 속했다. 수차례 정벌에 따라가 싸움마다 항상 군대의 으뜸이 되었다. 매번 적 장수를 베고 적의 깃발을 뽑았고 자신도 상처(傷處)를 입었다. 점차 승진하여 편장군(偏將軍)이 되었다. 234년 제갈량(諸葛亮)이 마지막 북벌을 위해 출정(出..
삼국지 인물사전 - 반장(潘璋) 반장(潘璋, ? ~ 234년)은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의 장수(將帥)로 자는 문규(文珪)이며 연주(兗州) 동군(東郡) 발간현(發干縣) 사람이다. 생애 손권(孫權)이 양선현의 장이 되었을 때 비로소 나가 손권을 따랐다. 손권은 그를 기이하게 여겨 아꼈고 그에게 병사를 모집(募集)하도록 하여 백여 명을 얻게 되자 부장으로 삼았다. 산월의 적을 토벌(討伐)하여 공로를 세웠으므로 별부사마(別部司馬)에 임명됐다. 이후에 오군의 큰 저자에서 침입자(侵入者)를 죽이자 이로부터 도적은 단절(斷切)되었다. 그는 이 일로 인해 이름이 났으며 예장군 서안현의 장으로 승진했다. 유표(劉表)가 형주에 있을 때 백성들은 여러 차례 그들의 침략을 당했다. 반장(潘璋)이 일을 맡은 이후부터 침략자들은 ..
삼국지 인물사전 - 서성(徐盛) 서성(徐盛)은 중국 후한 말 ~ 동오의 무장(武將)으로 자는 문향(文響)이며 서주(徐州) 낭야국(琅邪國) 거현(莒縣) 사람이다. 생애 전란(戰亂)을 피해 강동으로 이주했는데 손권(孫權)에게 등용되어 별부사마(別部司馬)가 된 후 병사 5백을 받고 시상장(柴桑長)으로서 황역(黃射)이 이끄는 수천 군사의 공격(攻擊)을 물리쳤다. 손권은 그의 공을 인정하여 교위(校尉), 무호령(蕪湖令)으로 임명했다. 또 임성 남쪽의 산월을 친 공로로 중랑장(中郞將)으로 임명되었다. 213년 1월 조조(曹操)가 유수구(濡須口)에 쳐들어왔을 때 폭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적군을 향해 돌격하여 손권(孫權)의 칭찬을 받았으며 221년 7월 유비(劉備)가 형주를 공격해 왔을 때 육의(陸議)의 지휘를 받으며..
삼국지 인물사전 - 능통(淩統) 능통(淩統, 189년 ~ 237년)은 후한 말, 중국 삼국시대 동오의 장군(將軍)이다. 자는 공적(公績)이다. 능조(淩操)의 아들이며 양주 오군 여항현 사람이다. 일생 아버지 능조(淩操)는 오나라의 손책(孫策)과 손권(孫權)을 2대에 걸쳐 섬겼다. 그런데 203년 능조가 황조(黃祖)를 공격하다가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죽었다("삼국지"에서는 누구에게 죽었는지를 밝히지 않았으나, 위요의 "오서"에는 능조를 죽게 한 것이 감녕(甘寧)이라 했다). 당시 능통(淩統)은 15세였으나 주변 사람들이 능통을 칭찬했고 능조가 국사(國事)를 위해 죽었으므로 손권은 능통을 별부사마에 제수하고 파적도위를 겸임하여 아버지의 병사를 거느리게 했다. 손권(孫權)이 보둔과 마둔을 공격할 때 따라갔는데..
삼국지 인물사전 - 감녕(甘寧) 감녕(甘寧)은 중국 후한 말 ~ 삼국시대 오(吳)나라의 무장(武將)으로 자는 흥패(興覇)이며 익주(益州) 파군(巴郡) 임강현(臨江縣) 사람이다. 임강현은 오늘날 충칭시(重慶市) 중 현 지역이다. 생애 익주의 토호 : 선조는 원래 남양군 사람인데 파군(巴郡)으로 이주해 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계연, 군승을 지냈으나 곧 관직(官職)을 버렸다. 젊은 시절부터 호협하여 동네 무뢰한(無賴漢)들을 이끌고 지역 자경단(自警團)과 같은 행동을 해 범죄사건 등이 일어나면 범인 체포(犯人逮捕)와 처벌을 행했다. 또한 조정의 관리라도 자신들을 존중(尊重)하고 후하게 대접하는 자와는 함께 즐기고 그렇지 않는 자에게는 부하들을 시켜 혼내주는 등 방약무인(傍若無人)으로 날뛰었다. 이런 행위를 20..
삼국지 인물사전 - 동습(董襲) 동습(董襲,? ~ 215년)은 중국 후한 말기의 무장(武將)으로 자는 원대(元代)이며 회계군(會稽郡) 여요현(餘姚縣) 사람이다. 생애 손책(孫策)이 원술의 허락을 받고 강동(江東)으로 진격하여 회계에 이르렀을 때 고천정(高遷亭)에서 손책을 맞이했고 손책의 눈에 들어 문하적조(門下賊曹)가 되었다. 손책이 산음(山陰)의 오래된 도둑 황룡라(黃龍羅)와 주발(周勃)을 쳤고 동습(董襲)은 손수 황룡라와 주발을 베어 별부사마(別部司馬)가 되어 병사 수천 명을 받았다. 동습은 오나라의 장수로 손책과 손권(孫權)을 섬겼으며 황조를 토벌하는 선봉(先鋒)에 섰다. 동습은 회계군 여요현 사람이다. 키는 8척이며 완력(腕力)이 다른 사람들을 능가했다. 동습(董襲)은 지조와 절개가 강개하고 굳세..
삼국지 인물사전 - 진무(陳武) 진무(陳武, ? ~ 215년)는 중국 후한 말의 무장(武將)으로 자는 자열(子烈)이며 양주 여강군(廬江郡) 송자현(松滋縣) 사람이다. 진수(陳脩)와 진표(陳表)의 아버지이다. 생애 손책(孫策)이 수춘에 있을 시절에 손책은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는 양주 여강군 서현에 살다가 아버지를 장사(葬事)하고 흥평 원년(194년)에 비로소 원술(袁術)을 섬겼으며 또 흥평 원년에 원술의 명령을 받고 양쯔강(揚子江)을 동쪽으로 건너 양주자사 유요 등 원술을 따르지 않는 세력(勢力)들을 쳤고 이후 다시 수춘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이때는 194년으로 추측(推測)된다. 손책을 찾아가 스스로 그 가신(家臣)이 되었는데 당시 18세였으며 신장(身長)이 7척 7촌에 달했다. 이후 손책을 따라 양쯔강..
삼국지 인물사전 - 주태(周泰) 주태(周泰, ? ~ 229년)는 중국 후한 말의 무장(武將)으로 자는 유평(幼平)이며 양주(揚州) 구강군(九江郡) 하채현(下蔡縣) 사람이다. 손권(孫權)이 나중에 주태의 공을 치하하며 한 말에 따르면 출신이 한미(寒微)했다. 생애 처음에 장흠(蔣欽)과 함께 손책(孫策)의 측근이 되었다. 손책이 회계태수 왕랑을 무찌르고 회계군을 점유(占有)하면서 별부사마가 되어 병사를 받았다. 손권(孫權)과 주태가 처음 조우했는데 손권이 주태(周泰)의 풍채를 마음에 들어하여 형에게 주태를 달라고 요청(要請)했다. 손책이 육현(六縣)의 반란을 토벌하러 간 차에 주태는 손권과 함께 천 명이 되지 않는 병사를 이끌고 선성(宣城)을 지키다가 방어 태세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산월 수천 명의 갑작..
삼국지 인물사전 - 장흠(蔣欽) 장흠(蔣欽, ? ~ 219년)은 중국 후한 말의 무장(武將)으로 자(字)는 공혁(公奕)이며 양주(揚州) 구강군(九江郡) 수춘현(壽春縣) 사람이다. 생애 흥평(興平) 원년(194년), 손책(孫策)이 원술(袁術)에게 의탁하고 있을 무렵에 손책(孫策)의 측근이 되었고 흥평 2년(195년), 손책이 강동(江東)으로 진출할 때 별부사마(別部司馬)로 임명되어 병사를 받았고 손책의 측근이였던 주태(周泰)와 함께 손책을 따라 단양, 오, 회계 3군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예장 공격에도 참가했다. 갈양위(葛陽尉)가 된 뒤로 세 현의 장을 역임(歷任)하여 도둑을 잡았고 서부도위로 승진(昇進)했다. 동야에서 여합(呂合)과 진랑(秦狼) 등이 손씨에 복종하지 않고 반란을 일으키자 이들을 토..
삼국지 인물사전 - 한당(韓當) 한당(韓當, ? ~ 227년)은 중국 후한 말 ~ 삼국시대 오(吳)나라의 장수로, 자는 의공(義公)이며 유주(幽州) 요서군(遼西郡) 영지현(令支縣) 사람이다. 생애 활쏘기와 말 타기에 뛰어나고 체력(體力)도 있는데다가 병사들을 유난히 아끼고 사랑해서 손견에게 총애(寵愛)를 받고 부하들 역시 한당(韓當)을 믿고 따랐다. 그는 손견(孫堅)을 수행하여 정벌 나가 각지를 다녔다. 자주 위험하고 어려운 곳에 임하여 적을 격파시키고 포로(捕虜)를 잡아 별부사마(別府司馬)로 임명되었다. 손책(孫策)이 강동을 건넜을 때 세군을 토벌하는 데 참가하여 선등교위(先登校尉)로 승진하고 병사 2천명과 기마 50필을 받았다. 그는 유훈을 정벌하는데도 참가했으며 황조를 격파하고 돌아올 때 파양(鄱陽..
삼국지 인물사전 - 황개(黃蓋) 황개(黃蓋)는 중국 후한 말의 무장(武將)으로 자는 공복(公覆)이며 영릉군 천릉현 사람이다. 생애 처음에는 영릉군의 군리로 있었다. 이후 자신을 초빙(招聘)하려는 지방관에게 찾아가려고 했으나 난을 일으킨 도적패들에게 막혀서 못가고 있었다. 그 난을 일으킨 무리를 손견(孫堅)이 격파하자 그 때 손견을 처음 만나게 되었으며 이후 손견이 의병(義兵)을 일으키자 이를 따라갔다. 손견이 죽은 후 손책(孫策)과 손권(孫權)을 따랐다. 당시 산월이 복종하지 않고 도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현이 있었으므로 황개(黃蓋)는 그 곳의 수장이 되었다. 석성현에 현리 둘을 임명했는데 부정부패가 심하였으므로 둘을 주살(誅殺)했고 춘곡현장, 심양현령으로 전임되었다. 모두 아홉 현을 지켰는데 가는 곳마다..
삼국지 인물사전 - 정보(程普) 정보(程普)는 중국 후한 말의 무장(武將)으로 자는 덕모(德謨)이며 유주(幽州) 우북평군(右北平郡) 토은현(土垠縣) 사람이다. 행적 본래는 지방의 하급 관리로 손견(孫堅)이 하비승일 때 그의 부하로 처음 들어왔으며 그것을 계기(契機)로 평생 손씨 일족을 섬겼다. 손견을 따라 황건적(黃巾賊)의 난을 진압했고 양인 전투에 참전해 동탁(董卓)을 격파하고 부상을 입었다. 정보(程普)는 “여정 장수들 중 가장 먼저 나와서 정보의 나이가 제일 많았기에 당시 사람들을 모두 정공(程公)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므로 황개, 한당, 조무보다도 나이가 많았을 것이다. 손견이 죽은 후 손책(孫策)을 따랐다. 손책이 원술(袁術)의 명령을 받아 여강(廬江)을 함락하는 데에 종군했으며 손책이 장..
삼국지 인물사전 - 등애(鄧艾) 등애(鄧艾, ? ~ 264년)는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장군(將軍)이며 자는 사재(士載)로 의양군(義陽郡) 극양현(棘陽縣) 사람이다. 생애 생애 전반기 : 등애(鄧艾)는 부모를 일찍 잃고 여남(汝南)에서 송아지를 길렀다. 지형을 살피고 그림을 그리면서 군사작전에 적합(適合)한지를 연구하기를 좋아했으나 말더듬이여서 주위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았다. 이후 상계리(上計吏)를 지낼 때 사마의(司馬懿)를 만나 상서령(尙書令)이 되었다. 이후 수춘(壽春)을 시찰하던 등애(鄧艾)는 운하를 통해 물을 끌어들일 구상(構想)을 하고 '제하론(濟河論)'을 지어 사마의에게 바쳤다. 이것이 받아들여져 운하가 완성된 후 수해(水害)가 줄고 군사들과 식량을 보내기가 편리해졌다. 조모(曹髦)가 등극한 ..
삼국지 인물사전 - 하후돈(夏侯惇) 하후돈(夏侯惇, ? ~ 220년)은 중국 후한 말 ~ 삼국시대 위나라의 무장(武將)으로 자는 원양(元讓)이다. 조조(曹操)의 거병에 참여하여 수많은 전투를 치렀으며 전투 도중 한쪽 눈에 화살이 박히자 그 화살을 뽑아 눈알을 삼켰다는 일화(逸話)로 유명하다. 초한지((楚漢志))에 등장하는 유방(劉邦)의 부하 하후영(夏侯嬰)의 후손이다. 생애 패국(沛國) 초현(譙縣)에서 태어났으며 전한 명장 하후영의 후예로, 조조(曹操)의 신하 하후연의 동고조(同高祖) 팔촌 형이며 조조에게는 이종사촌 동생이 된다. 그러나 일설(一說)에는 조조의 아버지 조숭(曹嵩)의 친조카, 즉 조조의 친가 사촌 형제라는 설도 있다. 조숭의 집안은 본래 하후씨로 환관인 조등의 양자가 되었다. 등용 14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