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희생 - 미인계로 잔혹한 폭정을 끝낸 초선과 왕소군 이야기 때는 2000년 전. 한때 찬란했던 한나라가 기울어 갈 무렵 동탁(董卓)이라는 장수가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어린 황제로부터 권력을 빼앗고 무고한 관리들을 모함하여 여기저기서 잔인하게 도륙했습니다. 심지어 큰 연회에서 재미 삼아 사람들을 죽이곤 했습니다. 참석객들이 보는 앞에서 산채로 사지를 하나하나 잘라 유골은 끓는 기름에 넣었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참석객들에게 한때 그들의 동료였던 이들의 피로 끓인 국을 강제로 먹이기도 했습니다. 거의 붕괴될 지경에 이른 제국을 보며 충신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폭군을 몰아내게 될 유일한 희망이 남아있었으니. 바로 중국 역사상 가장 빼어난 미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초선(貂蟬)입니다. 초..
국적을 죽인 공 인정 받아 마땅하지만 '삼성가노(三姓家奴)의 오점을 쓴 정사(正史)로 본 여포(呂布) 글: 역사춘추망(歷史春秋網) '삼성가노(三姓家奴)'는 여포에게 덧씌워진 최대의 오점이다. 여기에 반복무상(反復無常, 이랬다 저랬다 변덕스럽다), 배신기의(背信棄義, 신의를 지키지 않는다), 유리시시(唯利是視, 이익만 쳐다본다), 용이무모(勇而無謀, 용맹하나 지모가 없다), 애제장부(愛諸將婦, 다른 장수의 처를 좋아했다)등등. 거의 모든 나쁜 말들은 모두 그에게 붙여졌다. 그러나, 정사를 분석해보면, 이 모든 것은 '낙정하석(落井下石, 함정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진다)'의 혐의가 짙다. 여포의 일생을 되돌아보면, 그는 계속 여러 사람들에게 계속 이용당하다가, 결국 다른 사람에게 짓밟혀 죽었는데, 죽고 난..
촉한(蜀漢) 오호상장(五虎上將)의 부인은...? 글: 천애간점역사호(天涯看點歷史號) 에 이런 문구가 있다: "자룡일신도시담(子龍一身都是膽), 갱유인심병의간(更有仁心幷義肝)" 조운의 자는 자룡이고, 오호상장중 하나이다. 유비에 대하여 충성심을 가졌고, 유비가 조조의 오천 호표기(虎豹騎)에 쫓기느라 처자식을 돌볼 겨를이 없어, 처자식을 전진에 놔두고 혼자서 도망쳤다. 유비는 자신의 처자식을 버린 것이다. 그러나, 조운은 부하로서의 직책을 잊지 않고 장판파에서 한편으로 싸우면서 한편으로 유비가 버리고간 미부인(糜夫人)과 유선(劉禪)을 찾아다녔다. 조운은 이처럼 협의로운 인물이다. 여자들은 모두 그에게 시집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에 그의 처에 대한 내용은 없다. 그렇다면 조운의 처는 도대체 누구일까? 오호상장..
중국 4대 미인이며 삼국지 작품세계 중 최고의 미녀인 초선의 신세내력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양귀비(楊貴妃)와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초선(貂蟬)은 그 미모와 함께 혼란(混亂)한 세상에서 계략의 희생양(犧牲羊)으로 살게 된 비극적(悲劇的)인 운명으로 인해 삼국지(三國志)에 등장하는 여성 중 가장 유명(有名)한 인물이다. 미모를 이용해 동탁(董卓)과 여포(呂布) 사이를 이간질시켜 동탁(董卓) 세력을 몰락시킨 일화(逸話)는 삼국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한번쯤 들어는 봤을 이야기일 것이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초선이 등장하는 부분은 조정의 실권을 잡고 폭정(暴政)을 휘두르던 동탁(董卓)이 반동탁연합전선(反董卓聯合戰線)과의 전투로 인해 낙양(洛陽)에서 장안(長安)으로 천도하였을 ..
나관중과 일부 작가들 호기심과 허구로 만들어낸 초선의 최후에 대한 7가지 판본 초선(貂蟬)에 대하여 많은 페이지를 할애(割愛)했던 나관중(羅貫中)은 장안병변(長安兵變)후의 초선의 행방(行方)에 대하여는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았다. 그녀의 존재가치(存在價値)가 없어졌으므로 다시 버림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일부 작가들은 여전히 그녀의 최후에 대하여 호기심(好奇心)을 놓치지 않았고 허구(虛構)의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결말(結末)에 있어서는 "참사(慘死)"와 "선종(善終)"의 두 계열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참사계열(慘死系列)을 보자. 여기는 최소한 4개의 버전이 있다. 첫째 버전: 곤극(昆劇) '참초(斬貂)'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여포(呂布)가 백문루(白門樓)에서 조조(曹操)에게 참수된 후 그의 ..
정사 삼국지와 역사상 초선(貂蟬)은 실재하지 않고 소설가들이 꾸며낸 이름 초선(貂蟬)은 서시, 왕소군, 양귀비와 함께 중국의 4대 미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왕윤의 수양딸로 등장해 동탁(董卓)과 여포(呂布) 사이를 이간질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여포가 동탁의 이름 없는 시녀와 염문(艷聞)을 가졌다는 정사의 기록과 왕윤(王允)이 여포를 부추겨 동탁을 죽이게 했다는 사실을 연의에서 각색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초선(貂蟬)이라고 하면 남녀노소 모르는 사람이 없다. 고전소설 '삼국연의(三國志演義)'에 상세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녀는 삼국시대의 미녀로서, 사도(司徒) 왕윤(王允)의 집안에 있는 가기(歌妓)였는데 왕윤을 도와 동탁을 제거하기 위하여 ‘연환계(連環計)..
삼국지 인물사전 - 허저(許褚) 허저(許褚)는 후한 ~ 위나라의 무장(武將)으로 자는 중강(仲康)이며 예주 초국(譙國) 초현(譙縣) 사람이다. 호치(虎癡)란 별명이 있다. 우월한 완력(腕力)과 우직한 성품으로 조조의 신임(信任)을 받아 그 경호(警護)를 맡았으며 용맹을 떨쳤다. 생애 괴력의 사내 : 후한 말 수천 명으로 자경단(自警團)을 조직해 도적을 방비(防備)했다. 여남군(汝南郡) 갈피(葛陂)의 도적 1만여 명이 쳐들어오니 비록 수는 적었지만 극한(極限)에 다다를 때까지 사력을 다해 싸웠다. 화살이 떨어졌어도 돌을 던지며 저항(抵抗)하니 도적이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식량마저 동나자 일단 강화(强化)하고 소를 주는 대신 먹을 것을 받기로 했다. 도적(盜賊)이 와서 소를 몰고 가려 했는데 자꾸 도망치는..
삼국지 인물사전 - 장료(張遼) 장료(張遼, 169년? 170년? 171년? ~ 222년)는 중국 후한 말 ~ 삼국시대(三國時代) 위(魏)나라의 장수로 자는 문원(文遠)이며 병주(幷州) 안문군(雁門郡) 마읍현(馬邑縣) 사람이다. 생애 장료의 선조(先祖)는 전한의 섭일(聶壹)로 섭일이 흉노(匈奴)를 해치려 했던 일 때문에 원수(怨讎)를 피하여 성씨를 고쳤다. 젊어서 군리가 되었으며 병주자사 정원(丁原)이 종사로 삼아 군을 이끌고 수도로 가게 했다. 대장군 하진(何進)은 장료를 하북으로 보내 병사 천 명을 모았다. 그러나 돌아왔을 때에는 하진이 십상시에게 암살(暗殺)당하고 정국이 혼미한 틈을 타 동탁(董卓)이 조정과 중앙군을 장악한 상태여서 장료도 동탁(董卓)에게 속했다. 동탁이 패망한 후 여포(呂布)를 좇..
삼국지 인물사전 - 관우(關羽) 관우(關羽, 162년? ~ 219년 음력 12월)는 중국 후한 말의 무장으로, 자(字)는 운장(雲長)이며 본래의 자는 장생(長生)이다. 사례(司隷) 하동군(河東郡) 해현(解縣) 사람이다. 동생 장비(張飛)와 더불어 유비(劉備)를 오랫동안 섬기며 촉한(蜀漢) 건국에 지대한 공로를 세웠다. 충성심(忠誠心)과 의리, 당당한 성품으로 인해 동아시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장수(將帥)로 손꼽히며 한대(漢代) 이후로 남송(南宋)의 악비(岳飛)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각 중국사서(中國史書)에 등장하는 후세사람들은 ‘용맹한 자’ 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드시’ 관우(關羽), 장비(張飛)의 경우를 들어 말하였다고 한다. 의리(義理)의 화신(化身)으로 중국의 민담(民譚)이나 민간전승(民間傳承), ..
삼국지 인물사전 - 여포 (呂布) 여포(呂布)는 중국 후한 말의 무장으로 자는 봉선(奉先)이며 병주(幷州) 오원군(五原郡) 구원현(九原縣) 사람이다. ‘마중적토 인중여포(馬中赤兎 人中呂布)’라는 말로 표상되듯 신기에 가까운 무예로 천하의 명성(名聲)을 얻었다. 동탁(董卓)의 부하였으나 왕윤(王允)과 공모하고 동탁을 죽여 왕윤 정권의 군사적 중추(中樞)에 있었으며 이각(李傕) · 곽사(郭汜) · 장제(張濟) · 번조(樊稠)와 싸워 져 왕윤 정권을 몰락(沒落)시켰다. 이후 각지를 떠돌다 서주(徐州)를 근거지로 조조(曹操)와 맞섰으나 패망(敗亡)하고 처형되었다. 여포의 생애 힘이 세고 궁마술(弓馬術)에 능숙하여 전한 무제 때의 명장(名將)인 이광(李廣)에 비유되며 비장(飛將)이라 일컬어졌다. 병주자사(幷州刺史..
삼국지 인물사전 - 동탁 (董卓) 동탁(董卓)은 중국 후한 말의 정치가이며 자는 중영(仲穎)이다. 자는 중영(仲穎)이며 양주(凉州) 농서군 임조현(臨洮縣) 사람이다. 변방에서 무공을 쌓았다. 영제(靈帝) 사후 십상시의 난 등 정치적 혼란(混亂)을 틈타 정권을 잡았다. 소제(少帝)를 폐하고 부패·살인·약탈·도굴·방화·축재 등 온갖 폭정(暴政)을 휘둘렀다. 관리들의 대규모 무장 항명사태인 반동탁 연합군과 각종 암살(暗殺) 시도가 있었고 결국 왕윤(王允)·여포(呂布)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이후 대표적인 악인으로 두루 회자(膾炙)되었다. 생애 동탁(董卓)은 완력이 뛰어나 두 개의 궁대(弓袋)를 몸에 차고 말을 몰면서 어느 손으로도 활을 맘대로 쏠 수가 있었다고 한다. 젊어서부터 의협적(義俠的)인 무리와 함께 강..
삼국지 인물사전 - 조조(曹操) 조위 태조 무황제 조조(曹魏 太祖 武皇帝 曹操, 155년 음력 6월 3일 ~ 220년 음력 1월 23일)는 중국 후한(後漢) 말기의 정치가이자, 군인이며 시인이다. 자는 맹덕(孟德)이며 훗날 위가 건국된 이후 추증(追贈)된 묘호는 태조(太祖), 시호는 무황제(武皇帝)이다. 후한이 그 힘을 잃어가던 시기에 비상하고 탁월(卓越)한 재능으로 두각을 드러내 여러 제후(諸侯)들을 연달아 격파(擊破)하고 중국대륙의 대부분을 통일하여 위(魏)나라가 세워질 수 있는 기틀을 닦았다. 조조(曹操)는 삼국지의 영웅들 가운데 패자(覇者)로 우뚝 솟은 초세지걸(超世之傑)이라는 평가와 후한을 멸망시킨 난세의 간웅(奸雄)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당태종 이세민(李世民)과 시인 두보(杜甫) 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