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과 중국문명을 만든 여덟 권의 책 _ 이동철 1. 이 바보야, 문제는 여전히 중국이야! 현재 한국은 중대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대통령의 탄핵과 그에 따른 조기 대선이 주요 과제이다. 국제적으로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출범이 압력으로 작용하며, 아베 정권의 일본과 커지는 갈등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급한 문제는 사드 즉 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의 한반도 배치에 의한 한중 갈등의 고조이다. 당장 영향이 클 뿐만 아니라, 그 해결책이 쉽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실상 우리에게 닥친 위기는 이외에도 적지 않다. 남북분단, 인구문제, 고령사회, 기후변화, 4차 산업혁명 등 어느 하나 간과하거나 경시할 수 없는 쟁점들이다. 그럼에도 문제는 여전히 중국이라고 논자는 생각한다. 첫째 나..
중국의 역사인물 - 귀곡자(鬼谷子)의 수수께끼 글: 고건중국(古建中國) "귀곡자(鬼谷子)"는 신비하고 변화막측(變化莫測)하다. 명, 청의 소설에서 귀곡자는 신선 같은 인물로 묘사된다. 실제로 역사상 귀곡자는 맹자(孟子), 순자(荀子)와 마찬가지로 한 명의 학자이다. 그는 무리를 모아서 학문을 가르쳤고, 책을 써서 자신의 주장을 남겼다. 그리고 라는 책이 후세에 전해지고 있다. 1. 귀국자의 실제 성명은? "귀곡자(鬼谷子)"라는 칭호가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서한(西漢) 말기 유향(劉向)이 편집하여 정리한 이다. , 등 책에서는 그를 "귀곡선생(鬼谷先生)이라고 불렀다. 이 두 가지 칭호는 원래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당송이후, 일부 사람들은 "귀곡"이 사람의 성(姓)같지 않다고 생각하여 귀곡자의 '실..
공자의 제자들은 왜 공자의 스캔들을 기록으로 남겼는가? 글: 정계진(丁啓陣) 일반적으로 라는 책은 공자가 죽은 후에, 공자의 제자들이 편집, 정리하여 책으로 만든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책은 전체적으로 공자를 미화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그런데, 이뿐아니라, 편에 남아 있는 한가지 기록은 약간은 돌연하다는 느낌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공자가 관련된 스캔들사건을 직접적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견남자(子見南子), 자로불열(子路不說) 부자시지왈(夫子矢之曰): "여소부자(予所否者), 천염지(天厭之), 천염지(天厭之)" 공자가 남자를 만났다. 자로가 얹짢아 했다. 공자는 맹세하며 말했다: "내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 하늘이 미워할 것이다. 하늘이 미워할 것이다 남자(南子)는 위나라의 군주인 위령공(衛靈公, 기..
"초수삼호(楚雖三戶), 망진필초(亡秦必楚)"의 뜻은 글: 하동노경(河東老景) 에는 이런 기재가 있다: "무릇 진이 육국을 멸할 때, 초나라가 가장 죄가 없었다. 초회왕이 진에 들어간 이래 반기를 들지 않았기 때문에, 초나라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초회왕을 가련하게 여긴다. 그래서 초남공은 "초수삼소, 망질필초"라고 하였다." (남공은 전국시대 초나라 사람으로 음양가이며 31편을 지었다.) 족보에는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 초나라는 세자로 대표되는 왕족(적장자 혹은 왕장자)이외에, 나머지는 갈라져 나가서 많은 "씨(氏)"를 가진다. 초왕의 나머지 아들들은 "씨"를 가진다는것이다. 그 중에서도 소(昭), 굴(屈), 경(景)의 세 씨가 가장 강대해서 초나라의 지주였다. 삼족의 자제들은 초나라의 고위관직을 세습하여 맡..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선양을 생각한 적 있었고 분서갱유 사건은 천고일제의 일생에서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오점이다. 진시황, ‘선양’ 생각한 적 있다? ‘분서갱유’ 다른 내막 있다 천 년에 한 번 나옴직한 황제라는 뜻의 ‘천고일제(千古一帝)’ 호칭을 얻은 진시황(秦始皇)은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상 최초의 황제이자 가장 논쟁거리가 많은 황제 중 한 명이다. 그를 칭송하는 사람들은 그가 천하를 통일하고 문자, 수레바퀴 폭, 도량형을 통일했다는 등 공적이 과실보다 많다고 변호한다. 반면 폄훼하는 이들은 그가 음험하고 잔혹하고 포악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잔인한 품성을 가진 군주의 전제통치에서 벌어졌던 잔학하고 피비린내 나는 일들은 신기할 것이 못 된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은 진시황의 ..
중국 3천여년의 역사를 기록한 사마천(司馬遷)과 명문 선비집안으로 이름을 떨친 반고(班固)는 중국 역사학을 성립하였다 글: 역사대학사 사마천(司馬遷)의 『史記(사기)』와 반고(班固)의 『漢書(한서)』야말로 중국고대사를 명쾌하게 정리해주는 탁월한 역사서일 뿐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언제나 신선한 충격을 느끼게 하는 고전이다. 사마천(司馬遷)은 BC 145년 경, 士官(사관)인 太史令(태사령)을 역임했던 司馬談(사마담)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사마담은 역사서와 문서를 정리하는 직책을 수행했기 때문에 아들 사마천은 자연스럽게 역사학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기원전 110년 사망하자, 그의 뒤를 이어 사마천은 태사령의 직책을 승계했다. 역사서술에 몰두하던 사마천에게 ..
아방궁이 보존된 주요원인은 무엇일까? 글: 진경원(陳景元) 아방궁 문제를 연구하면서 실제가치가 있는 성과를 얻어내려면, 반고의 를 돌아가서 기타 사료를 가지고 하는 것은 안된다. 왜냐하면 에 명확히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방궁은 아성이라고도 부르고, 진혜문왕이 건축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육방이 만일 이것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아방궁에 대하여 부정한 것은 일종의 편견,허구의 기초 위에서 세운 견해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반고가 사마천만큼 권위와 명망이 없다고 하여, 처음부터 를 중시하고, 를 경시하는 식으로 처리해서는 안된다. 만일 사마천이 지하에서 이를 안다면, 아마도 일어나서 상황을 설명했을 것이다: 나의 에서 말한 것은 그저 아방전전의 속건(續建)공사 및 증보(增補)공사..
"홍학(紅學)"은 본질상 정도(正道)에 어그러진 학문(學問)인 "위학(僞學)"인가 청나라 강희-옹정-건륭 삼대에 걸쳐 한 귀족 가문의 성쇠를 다룬 ‘홍루몽(紅樓夢)’은 전 세계에 이를 연구하는 학자가 수천 명에 이를 정도로 대단한 소설이다. ‘홍학(紅學)’이라는 별도의 학문 분야가 형성될 정도다. 마오쩌둥(毛泽东)은 이 작품은 최소한 다섯 번은 읽어야 하며 ‘홍루몽(紅樓夢)’을 읽지 않으면 중국 봉건문화(封建文化)를 이해할 수 없다고 단정했고 중국인들은 ‘홍루몽’을 만리장성과도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작품성이나 보편성의 잣대로 보자면 ‘서유기(西遊記)’ ‘삼국연의(三國演義)’ ‘수호전(水滸傳)’ ‘금병매(金甁梅)’ 등 중국 사대기서보다 훨씬 윗길에 오른 작품이 바로 ‘홍루몽(紅樓夢)’이다. 최근 홍학에 ..
남녀 간 진정한 사랑 따진다면 홍루몽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 한 쌍 누구일까 홍루몽(紅樓夢)에 진정한 사랑이 있는가? 있다. 그러나 아주 드물다. 만일 남녀 간에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으로 따진다면 사람 수는 더욱 적어진다. 주인공인 가보옥(賈寶玉), 임대옥(林黛玉), 설보채(薛寶釵)도 아니다. 그들 간에는 최소한 삼각관계(三角關係)이고 더구나 가보옥은 일찌기 진가경(秦可卿)과 꿈속에 관계를 가지기도 하고 화습인(花襲人)과 함께 자기도 한며 금천(金釧), 오아(五兒)를 희롱한 바도 있으며 시녀인 청문(晴雯)에게 애틋한 연민(憐愍)의 정을 느낀 적도 있다. 그러므로 그의 임대옥(林黛玉)과 설보채(薛寶釵)에 대한 사랑이 순수(純粹)하다고 할 수만은 없다. 우삼저(尤三姐)의 유상련(柳湘蓮)에 대한 사랑은 ..
눈뜨고 사기당할 수 있는 이메일 보안 위협 심각성과 주요 유형 소유주 사칭 양도신청(讓渡申請) 확인메일 안 봐서 곤욕(困辱)을 당했습니다. “전자우편(電子郵便) 한통에 날아갈 뻔한 도메인” 눈뜨고 떼일 뻔했습니다. 그 사연(事緣)은 다음과 같습니다. 직장인(職場人) 전씨는 이달 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소유(自己所有) 인터넷 도메인이 전혀 모르는 미국인(美國人)에게로 넘어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도메인 양도에 동의(同意)한 적도 없고 등록비용(登錄費用)도 꼬박꼬박 낸 그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조사(調査)해본 결과 지난 1월, 누군가 전씨를 사칭(詐稱)해 한국 회사에 등록돼 있던 전씨의 도메인을 미국 회사(美國會社)로 옮기겠다고 신청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소유주(所有主) 이름을 바꿔놨던 ..
몽염(蒙恬)이 진시황제(秦始皇帝)에게 충성한 대가는 결국 사약(死藥)인가? 몽염(蒙恬)은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의 관료이자 장군이다. 몽무(蒙武)의 장남이자 몽의(蒙毅)의 형으로, 전국통일 이후에 오르도스 일대의 흉노(匈奴)를 몰아내고 만리장성의 건축 및 북방의 수비를 감독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진시황제(秦始皇帝)의 신임을 얻고 그의 측근이 되어 권세를 누렸으나, 진시황제(秦始皇帝) 사후에 조고(趙高) 등에게 모함을 당하여 태자 부소(扶蘇)와 함께 자살(自殺)하였다. 몽씨 가문은 본래 제나라(齊)에 거주하였으나, 몽염(蒙恬)의 할아버지인 몽오가 진 소양왕(昭襄王)을 섬겨 장군이 되면서 진나라(秦)에 거주하게 되었다. 몽염(蒙恬)의 아버지인 몽무 또한 각기 진시황제시기(秦始皇帝時期)에 장군이 되어 왕전과 ..
노자(老子)에 대하여 图片信息: 学老子做人,心中有道;学孙子做事,胸中有术 ●해설: 노자는 초(楚)나라 고현(苦縣) 여향 곡인리(曲仁里) 사람이다. 성은 이(李)씨, 이름은 이(耳), 자(字)는 백양(白陽),시호는 담(聃)이니, 주(周)나라 수장실(守藏室)의 사관(史官)이다.공자(孔子)가 주나라에 가서 삼가 예에 관해 노자(老子)에게 물어보자, 노자(老子)는 이렇게 말하였다."그대가 말하는 것은, 그 사람과 뼈는 이미 다 썩었는데 오직 그 말만이 남았을 뿐이다. 또 군자(君子)는 때를 만나면 벼슬하는 몸이 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 속의 쑥대처럼 굴러다닌다고 한다. 내 들으니, 장사를 잘하는 상인은 물화(物貨)를 깊이 간직함을 없는 것처럼 하고, 군자는 성덕(盛德)이 있으나 그 용모는 우매(愚昧)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