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혁명 후 남경임시정부 법제원 원장 송교인 암살사건의 진상
신해혁명 후 남경임시정부 법제원 원장 송교인 암살사건의 진상 글: 대중일보 1913년 3월 20일 밤, 후닝(滬寧)기차역은 평소처럼 사람들로 붐볐고, 인파는 끊이지 않았다. 기차가 내는 기적소리와 함께, 송교인은 배웅나온 황흥, 우우임 그리고 요중개등과 손을 흔들어 작별하고, 검표소로 들어갔다. 바로 이 때,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검표소에서 돌연 세 발의 총성이 들리더니 송교인이 핏물 속으로 쓰러진 것이다. 기차역은 졸지에 혼란에 빠지고, 여행객은 사방으로 흩어졌으며, 암살범도 그 틈을 타서 사라져서 행방이 묘연해진다. 송교인은 자가 둔초(遁初)이고 호는 어부(漁父)이다. 호남 도원사람으로, 1905년 일본에서 동맹회에 참가하고, 1910년에서 1911년 의 주필을 지낸다. 신해혁명후,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