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초(梁啓超)와 채악(蔡鍔)은 원세개(袁世凱)를 잠못이루게 한 사도(師徒)
양계초(梁啓超)와 채악(蔡鍔)은 원세개(袁世凱)를 잠못이루게 한 사도(師徒) 글: 고문기(高文麒) 2003년 4월, 천진의 마르코폴로광장의 북쪽에 두 동의 나란히 선 이탈리아식 서양건물이 정식으로 관광객에게 개방되었다. 북쪽으로 놓여진 건물은 중화민국초기의 대사상가 양계초의 주택이고, 남쪽으로 놓여진 건물은 그의 서재인 그 이름도 유명한 음빙실(飮氷室)이다. 1911년 10월 10일, 신해혁명은 청나라의 통치를 끝내버렸다. 그해 무술변법이 실패한 후 일본으로 도망가있던 양계초는 다시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양계초는 비록 장기간 일본에 망명하여 있었지만, 그는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었다. 와 를 차례로 창간하고, 개혁을 고취하며, 혁명에 반대했다(양계초와 그의 스승 강유위는 당시의 개혁파이고, 손중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