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岳岩漢字屋

甲辰年 새해 하시는 일들이 日就月將하시고 乘勝長驅.하시고 萬事亨通 하세요!!!

반응형

인재가 부족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图片来源 : 百度

 

 

: 이권홍

()는 모이다, 집결하다 뜻이다. 많은 뛰어난 인물이 모이니 영웅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영재가 서로 모이면 반드시 하늘과 땅이 뒤집히듯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아름다운 미래가 창조된다.

 

인재가 부족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고상함과 고상함이 모인다. 아름다움과 희망이 모인다.

 

전국시기에 진()소왕(昭王, BC325~BC251)은 사람됨이 낙관적이었다. 기상이 넘쳐나 원대한 계획을 크게 펼쳐 천하통일을 바랐다. 그러나 천하통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기(單騎)로 창을 들고 적진에 뛰어들 듯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소왕은 천하의 현재를 끌어 모을 마음을 먹었다. 범저(範雎)는 원래 은사(隱士)였다. 시서와 병법을 두루 익혀 원대한 계략에 뛰어났다. 당시 유명한 현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범저는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다 진()나라에 이르렀다. 진 소왕이 듣고는 범저를 초빙해 부하로 삼고 자신을 위하여 일을 시킬 생각을 했다. 그래서 친히 범저를 찾아갔다.

 

소왕은 범저를 보자마자 주변에 사람을 물린 후 독대하였다. 소왕이 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고서 가르침을 청했다.

 

선생을 무엇을 가지고 내게 가르침을 주겠습니까?”

무릎을 굻은 것은 진심을 표현한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범저는 우물우물 무슨 말을 하려다가 멈췄다. 그러자 소왕은 다시 한 번 더 무릎을 꿇고 가르침을 청하며 말했다.

 

선생은 어떻게 내게 가르침을 주겠습니까?”

두 번째 무릎을 꿇으면서 더욱 공경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어떤 불만스런 표정도 없었다. 그래도 범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왕은 화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해낸다는 마음으로 다시 무릎을 꿇었다.

 

선생은 내게 가르침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말입니까?”

세 번째 무릎을 꿇자 범저의 마음이 움직였다. 실로 그렇지 않은가,

정성이 지극하면 쇠와 돌도 열리지”1) 않던가.

 

소왕의 정성어린 행동을 보고 범저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범저는 자신이 진언하고 싶지 않은 걱정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범저가 걱정거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소왕은 네 번째 무릎을 꿇고서 말했다.

 

선생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합니까? 진나라는 외지고 멀리 떨어진 지역에 있는 국가입니다. 나 또한 재능이 없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선생이 우리나라에 왔다는 것은 하늘이 내게 선생을 성가시게 굴어서라도 선왕이 남긴 고업을 중단하지 말라는 계시를 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는 선생의 가르침을 따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늘이 선생에게 선왕을 도와 나를 버리지 않게 한 것입니다. 선생이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후부터 일이 크든 작든, 위로는 태후부터 아래로는 대신까지 모든 것에 대하여 선생께서 내게 하나하나 가르침을 주세요. 나에 대해서는 어떤 의심도 가지지 않아도 됩니다.”

 

소왕의 뜻은 명확하다. 범저가 말을 하도록 모든 우려를 없애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범저는 마음속에 있는 말을 남김없이 하도록 만들었다. 결국은 자신이 천하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범저의 말을 한 마디로 놓치지 않았다.

 

범저는 줄곧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였다. 소왕이 특별히 허락했지만 여전히 쉬이 입을 열지 않았다. 먼저 실험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대왕의 계책도 실수하는 바가 있습니다.”

 

소왕은 그 질책을 듣고도 화내지 않았다. 범저가 진언하려는 전조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시기를 잡아야 했다. 범저의 우려를 철저히 없애야 했다. 소왕은 다섯 번째 무릎을 꿇고 말했다.

 

과인이 실수한 계책이 무엇인지 상세히 듣고 싶습니다!”

 

말은 더 정중하였고 태도는 더 공경스러웠다. 이때서야 범저도 시기가 도래했음을 알았다. 더 빼는 것은 타당치 않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소왕을 도와 육국을 통일하는 데에 보좌하겠노라고 답하고 자신의 계책을 알려주었다.

 

범저는 기인이다. 자기 재능을 믿었고 청렴하였다. 속세를 경시하였다. 소왕은 인재를 사모할 정도였다. 인재를 얻고 인재를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제왕의 몸을 다섯 번이나 굽히면서 범저의 진언을 구했다. 결국 범저를 제단에서 내려오게 하여 기꺼이 자신을 위하여 힘을 다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자신이 세운 공명의 뜻을 이루게 만드는 것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 현인을 모집한다는 평가를 이루었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강산과 사직이 안정을 이루게 됐다는 점이다. 대업을 이루려는 원대한 계획이 실현됐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는 점은 말할 나위가 없다.

 

사실이 증명하고 있다. 소왕이 마음을 비우고 현인을 받아들인 조치는 옳았다. 범저는 진나라를 위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래서 채택(蔡澤)이 말했다.

 

제후를 제압하고 삼천(三川) 일대를 도모한 위세로 의양(宜陽)을 튼튼하게 했으며, 양의 창자 같은 험지를 끊어 태항산의 길을 막고……천하가 모두 진나라를 두려워하니 진나라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졌고, 그대의 공적은 극에 달했소.”(사기·범수채택열전(范睡蔡澤列傳))

 

이것은 소왕이 현인을 존중하고 능력 있는 자를 높여 받아들인 결과다. 현인을 존중했기에 많은 인재를 불러 모았다. 자신이 군웅을 웅시할 수 있는 자본이 됐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기틀이 됐다.

 

주해 : 1) 精誠所至,金石爲開.(후한서(後漢書광릉사왕형전(廣陵思王荊傳))

 

현대의 기업 경영자도 격렬한 경쟁 속에서 사업을 성공시키려면 현신양장(賢臣良將)’을 구해야 한다. 보좌해주는 야무진 부하가 있어야 한다. 경영자가 상현(尙賢)’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재능을 기준으로 쓸 만한 인재를 모아야 한다.

 

그러나 주역은 말한다.

사람이 모이면 어지럽고 사물이 모이면 싸우며 일이 모이면 문란하니, 대인이 다스리지 않으면 모임은 다투어 어지럽게 된다.”1)

 

그렇기에 그저 인재를 모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인새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충분하게 인재를 존중하여야 한다. 소순(蘇洵)도 말한 적이 있다.

 

인재를 고르고 예로써 대해야 한다.”2)

인재가 기업에서 일하려고 하는 까닭은 그저 수입이 많고 적음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하는 회사의 분위기이다. 높은 소양이 있는 인재는 더욱 서로 이해하고 화합적인 분위기를 창출하기를 원한다. 경영자는 그런 분위기의 창립자이다. 창립자의 가장 좋은 방식은 존중이다. 그렇기에 경영자는 먼저 존중하는 것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인재를 존중하고 존중하며 또 존중하여야 한다. 모토롤라 경영자가 말한 적이 있다.

 

모토롤라의 모든 것은 변할 수 있다. 단지 사람에 대한 존중과 고상한 도덕 정서를 견지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모토롤라의 영원히 변하지 않는 기업문화다.”

 

 

 

척도 짧을 때가 있고, 촌도 길 때가 있다.”3)

이 말은 중국인이 평상시에 듣는 말이다. 한 자의 길이가 때에 따라서는 짧아 걱정하는 수가 있는가 하면, 한 치의 길이도 때에 따라서는 길어서 곤란할 때가 있다는 뜻이다. 사람이나 물건은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 않던가.

 

당태종 이세민이 인재를 쓸 때 일찍이,

군자가 사람을 쓰는 일은 그릇을 쓰는 것과 같아 각기 그 장점만은 취한다.”4) 라는 명언을 남겼다. 많은 경영자가 늘 인재가 없다고 한탄한다. 사실이 그런가? 그렇게 말하는 경영자는 인재의 장점을 알아보는 식견이 없을 따름이다. 사람을 쓰는 데에 한황(韓滉, 723~787)처럼 한다면 버릴 인재는 하나도 없다.

 

한황은 당 덕종 때에 진해(鎭海)절도사를 지냈다. 사람을 쓰는 방면에 있어 재능에 따라 적재적소에 썼다. 친한 친구의 아들이 의탁했는데 어떤 장점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한황이 그를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정하게 앉아 옆자리 사람과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폐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한황은 그의 그런 모습에서 비범한 일면을 찾아내었다. 한황은 그를 창고 문을 지키도록 파견하였다. 그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곧 단정하게 앉아서 지켰다. 그러자 감히 마음대로 드나드는 사람이 없었다.

 

예부터 지금까지 뛰어난 인재를 잘 쓰는 사람은 많고도 많았다. 정관정요(貞觀政要)에는 당태종 이세민의 용인술을 기록하고 있다. 이세민은 말했다.

 

영명한 군주는 인재를 임용함에 있어 재주가 있는 목장이 목기를 만드는 것과 같다. 똑바른 것으로는 끌채로 삼고 굽는 것으로는 바퀴를 삼으며 긴 것은 동량으로 삼고 짧은 것은 두공으로 삼는다. 굽든 곧든 길든 짧든 상관없이 각기 쓸모가 있다. 영명한 군주가 사람을 씀도 이와 같다. 총명한 사람은 책략을 취하고 우둔한 사람은 힘을 쓰며 용감한 사람은 위무를 쓰고 겁이 많은 사람은 그 신중함을 쓴다. 총명하든 우둔하든 용감하든 겁이 많든 모두 쓸 데가 있다. 그렇기에 뛰어난 장인은 재료를 버리지 않고 영명한 군주는 인재를 버리지 않는다.”5)

 

사마광(司馬光)도 말한 적이 있다.

무릇 사람의 재질(재능才能과 품성禀性)은 각기 능력이 있다. 덕에 뛰어나기도 하고 재능이 강하기도 하며 이것이 장점이기도 하고 저것이 단점일 때도 있다. 사람을 쓰는 것은 그릇을 쓰는 것과 같다. 각기 그 장점을 취하면 된다.”

 

사람을 깊이 이해하기만 하면 진정으로 맞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사람을 잘 쓸 수 있으며 사람을 훈육할 수 있으며 사람을 머물게 할 수 있다.

 

항상 듣는 이야기가 있지 않는가.

 

사람의 단점만 보면 세상에 쓸 만한 사람이 없고 ; 장점만 보면 세상에 쓰지 못할 사람이 없다.”

 

성격이나 유형은 좋고 나쁨이 없다. 그저 다를 뿐이다. 모든 성격 특징은 각기 가치가 있고 장점이 있다. 물론 단점도 있고 주의하여야 할 점도 있기 마련이다. 자기 성격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이해하면 자신의 장점을 더 뛰어나게 발휘할 수 있다. 사람됨이나 일을 맡아 처리할 때나 자기 성격 중의 단점을 피할 수 있게 된다. 타인과 스스럼없이 교류할 수 있게 된다.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

 

타인의 성격 특징을 명확하게 이해하면 충돌을 피할 수 있고 효과적으로 단합하고 협력할 수 있다.

 

萃卦 ䷬ : 택지췌(澤地萃) 태괘(兌卦: )상 곤괘(坤卦: )

 

()는 왕이 사당을 두게 되었으니, 대인을 봄이 이로운 것은 형통하기 때문이니 바름이 이롭다. 큰 제물을 써서 길하니, 가는 것이 이롭다./ ()는 왕이 사당에 가니, 대인을 봄이 이로운 것은 형통하기 때문이지만 바름이 이롭다. 큰 제물을 써서 길하니, 가는 것이 이롭다.(,亨王假有廟,利見大人,,利貞.用大牲,,利有攸往.)

 

[]

췌괘(萃卦䷬)서괘전에서 ()는 만나는 것이다. 사물이 서로 만난 이후에 모이기 때문에 취괘로 받았으니, 췌괘는 모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물이 서로 만나면 무리를 이루기 때문에 췌괘가 구괘 다음에 온다. 괘의 모양은 태괘(兌卦)가 상괘 곤괘(坤卦)가 하괘이다. 못이 땅보다 올라가 있는 것은 물이 모인 것이기 때문에 췌괘이다. 못이 땅위에 있다고 하지 않고 못이 땅보다 올라가 있다고 하였으니, 땅보다 올라가 있다고 하면 바야흐로 모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주해:

1) 人聚則亂,物聚則爭,事聚則紊,非大人治之,則萃所以致爭亂也.(췌과(萃卦())

2) 擇之以才,待之以禮.(소순(蘇洵)광사(廣士))

3) 尺有所短,寸有所長.(초사(楚辭복거편(卜居篇))

4) 君子用人如器,各取所長.(자치통감(資治通鑑당태종정관원년(唐太宗貞觀元年))

5) 李世民, 帝范』「審官第四[출처] 제이누리

반응형
반응형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