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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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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 간에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이성(異性) 간에 친구(親舊)가 가능할까?’라는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가능하다와 불가능하다는 논란(論難)이 치열(熾烈))하다. 그럼 두 번째 코너(欄目)에서는 ‘이성(異性) 간에 친구(親舊)가 될 수 있을까?’는 논쟁(論爭)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설문조사결과(設問調查结果)에 의하면 남성(男性) 약 70% 이상이 위의 질문(質問)에 “친구(親舊)가 될 수 없다”라고 답변(答辯)했고, 여성(女性)은 약 60% 이상이 “친구(親舊)가 될 수 있다”라고 응답(應答)했다. 20~40대 남녀(男女) 각 100명 대상(對象)을 조사(調査)했다. 이러한 통계(統計)가 나오는 것은 남녀(男女)의 가치관(價値觀) 차이(差異)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사랑하는 연인(戀人)은 곧잘 이 문제(問題)로 다투곤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동성(同性)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점(點)이다. 동성(同性)이면서도 당신(當身)을 이해(理解)해주지 않는 친구(親舊)도 많다.

여기서 개개인(個個人)이 가지고 있는 친구(親舊)라는 정의(定義) 기준(基準)를 알아볼 필요(必要)가 있다. 그 기준(基準)에 따라 개인(個人)의 이성(異性) 간 우정(友情)의 가능여부(可能與否)가 결정(決定) 된다. 하지만 앞서 말한 통계자료(統計資料)를 보았을 때 결코 이성(異性) 간에 우정(友情)이 존재(存在)할 수 있다, 없다를 결정(決定)하기에는 어려(困難)운 문제(問題)일 것이다. 여성(女性)과 남성(男性)의 의견(意見)이 너무도 대조적(對照的)으로 나타나있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앞서 말한 통계자료(統計資料)를 보아 명확(明確)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남성(男性)의 "될 수 없다"라는 대상(對象)의 답변(答辯) 통계(統計)의 대상(對象)이 "될 수 있다"라는 긍정(肯定)의 의미(意味)가 높다하여도 여성(女性)의 "될 수 있다"라는 대상(對象)들의 답변(答辯) 통계(統計)가 부정(否定)의 의미(意味)가 포함(包含)되기 때문에 "긍정(肯定) 될 수 있다"의 의미(意味)로 결론(結論)내리기는 힘들다. 오히려 "될 수 없다"라는 답(答)에 힘(力)이 실리는 것이 사실(事實)인 것이다.

긍정(肯定)이 되고자 하는 조건(條件)에 부정(否定)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부정(否定)이 되고자하는 것에는 긍정(肯定)이 존재(存在)할 수 있다. 위 내용(內容)은 남녀(男女)의 설문조사(設問調査)의 통계자료(統計資料)를 기초(基礎)로 도출(導出)해본 결과(結果)이다.

그럼 이제 현실(現實)에서의 접근(接近)을 해보도록 하자. 친구(親舊)라는 단어(短語)의 의미(意味)로 보면 친구(親舊)란 참 좋은 존재(存在)인거 같다. 결과적(結果的)으로 친구(親舊)의 정의(定義)는 자신(自身)을 버려 상대방(相對方) 친구(親舊)을 취(取)할 수 있을 정도(程度)가 되어야 친구(親舊)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친구(親舊)란 하늘(天)이 준 선물(膳物)"이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또 한 가지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部分)은 사랑(愛情)과 우정(友情)의 차이점(差異點)이다. 특히 이성(異性) 간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여기서 동성(同性) 간의 친구(親舊)의 정의(定義)는 언급(言及)하지 않겠다. 흔히들 우정(友情)이 사랑(愛情)으로 변(變)할 수 있지만, 사랑(愛情)은 우정(友情)으로 변(變)할 수 없다고들 한다. 즉 이성(異性) 간에는 어느 정도(程度) 상호(相互) 좋은 감정(感情)이 있어야만 친구(親舊)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상대방(相對方)에게 호감(好感)을 느끼고 이성적(理性的)인 감정(感情)이 어느 정도(程度) 바탕(基礎)이 되어야 친구(親舊)가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남성(男性)의 경우(境遇)는 더더욱 위의 내용(內容)에 부합(符合)되어야만 한다. 물론(勿論) 예외(例外)도 있을 수 있다. 한 이성친구(異性親舊)가 뚱뚱하고 못생겼지만 남자(男子) 못지않은 의리(義理)를 보여준다면 동성(同性) 못지 않은 편(便)한 친구(親舊)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연애감정(戀愛感情) 안 생기는 속 깊은 이성친구(異性親舊)과 같이 이성적(理性的)인 감정(感情)이 생(生)기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외모(外貌)도 뛰어나고 이성적(理性的)인 감정(感情)이 드는 경우(境遇)라면 친구(親舊)로서 접근(接近)을 시도(試圖) 할 것이다. 시간(時間)이 지나 친구(親舊), 우정(友情)이라는 껍데기(外殼) 속에 '사랑'이 자리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내릴 수 있는 결론(結論)은 대부분(大部分)의 남성(男性)의 경우(境遇) 좋은 느낌 감정(感情)이 없으면 이성(異性)과의 친구(親舊)는 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勿論) 친구(親舊)라는 개개인(個個人)의 주관적(主觀的)인 기준(基準)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대부분(大部分)이 이러하다.

여성(女性)의 경우(境遇) 솔직(率直)히 내가 여성(女性)의 입장(立場)이 아니다보니 그들의 속내(心里)와 습성(習性)을 잘 모른다. 하지만 대다수(大多數)의 여성(女性)들이 친구(親舊)라 생각하면 자신(自身)의 생각 속에 선(線)을 확실(確實)히 긋는다고 한다. 즉 친구이상(親舊以上)으로의 발전(發展)되는 가능성(可能性)을 초기(初期)에 명확(明確)히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간(人間)의 생각(思維)은 마음(心里)을 절대(絶對) 이기지 못한다.

어떠한 이가 생각(思考)으로 숨을 5분간 참아 보려한다고 가정(假定)하자. 생각으로 5분을 참고자 하여도 어느 순간 마음에서 1분을 못 버티고 숨을 내쉬게 된다. 또 다른 예로 계단(階段)을 오른다 생각해보자. 생각으로 계단(階段)은 높이 (90cm, 50cm...)를 재면서 몸(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즉 무의식중(無意識中)에 반복학습(反復學習)을 통(通)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마음(心里)이라 표현(表現)한다. 이렇게 보았을 때 자신(自身)의 생각 속에 제아무리 선(線)을 확실(確實)히 했다하여도 생각이 마음을 지배(支配)하지 못하듯 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정(友情)이 사랑(愛情)으로 변(變)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어느 정도(程度) 외모(外貌)를 지닌 여성(女性)의 공통점(共通點)은 이성친구(異性親舊)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勿論) 성격(性格)이 좋은 여성(女性)도 많을 수 있다. 하지만 극히 드물다. 아는 선배(先輩), 후배(後輩), 친구(親舊) 등등 수도 없이 전화(電話)가 걸려오고 스케줄(日程表) 관리(管利)하기 바쁘다. 왜일까? 이는 앞서 말한 남성(男性)의 경우(境遇)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大部分)의 여성(女性)들은 이를 잘 이해(理解)하지 못한다. 여기서 남성(男性)의 경우(境遇)를 부연설명(敷衍說明) 해보자. 남성(男性)의 경우(境遇) 본능(本能)에 많이 치우치는 동물(動物)이다. 흔히들 남성(男性)에 대해 "늑대(色狼)"라는 표현(表現)을 한다. 그럼 이러한 남성(男性)을 구분(區分)할 수 있는 기준(基準)이 무엇일까?

바로 "자제력(自制力)"이다.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는 말이 있듯이 남녀(男女)가 7살 이상(以上)이 되었을 때는 한 공간(空間)에 잠을 재우지 않는다는 말이다. 현재(現在) 대다수(大多數)의 성범죄(性犯罪)가 남성(男性)에게서 부터 비롯된다. 즉 다시 말하면 남성(男性)의 경우(境遇)는 "본능(本能)"에 충실(忠實)한 존재(存在)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앞서 말 했듯이 남성(男性)과 여성(女性)의 가치관(價値觀)의 차이(差異)가 있기 때문에 친구(親舊)가 되기에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 이성친구(異性親舊)가 결혼(結婚)을 하였다 가정(假定)해보자. 둘의 사이는 계속(繼續) 관계유지(關係維持)가 가능(可能)할 것인가? 친구(親舊)라 하면 앞서 말한 단어(短語)의 정의(定義)에서 보았듯이 아주 편(便)하고 고귀(高貴)한 존재(存在)이다. 결혼(結婚) 전 영화(映畵)도 보고, 여행(旅行)도 다니고 했던 친구(親舊)사이가 과연(果然) 결혼(結婚) 후에도 교제(交際)가 계속 진행(進行)이 될지 의문(疑問)이다. 대한민국(大韓民國) 어느 남자(男子)가 자기(自己) 여자(女子)와 영화(映畵)를 보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또한 어느 남자(男子)가 여행(旅行)을 같이 가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아마 이는 가정파탄(家庭破綻)으로 이어질 가능성(可能性)도 매우 높을 것이다.

입장(立場) 바꾸어 여성(女性)의 경우(境遇)도 자신(自身)의 남편(男便)이 다른 이성친구(異性親舊)와 영화(映畵), 여행(旅行) 등등을 함께 한다면 그리 기분(氣分)이 유쾌(愉快)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동성친구(同性親舊)의 경우(境遇)는 위와 같은 문제(問題)가 있을 수 없다. 동성친구(同性親舊)를 많이 사귀라는 말도 영원(永遠)히 관계유지(關係維持)가 가능(可能)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결혼(結婚)이라는 것을 언급(言及)한 이유(理由)는 "결혼(結婚)"은 일생(人生)에 있어 개인(個人)의 가장 크고 중요(重要)한 이벤트(活動)이기 때문이다. 결혼(結婚) 전에는 할 수 있었던 일들이 결혼(結婚) 후에는 이어질 수 없다는 말은 곧 이성(異性) 간에 친구(親舊)는 영원(永遠)하지 않다고 말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남성(男性)들의 인식(認識)이 바뀌지 않는 한 이성(異性) 간의 친구(親舊)는 존재(存在)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 남성(男性)의 경우(境遇) 친(親)하다고 생각하는 이성 친구(親舊)에 대한 생각이 아닌 마음이 어떠한가? 좋은 감정(感情)이 느껴지는가? 어떠한 계기(契機)로 친구(親舊)가 되었는가? 어렸을 때부터 함께한 친구(親舊)인가? 소위(所謂) 남성(男性)들은 '소꿉친구(靑梅竹馬)'라는 표현(表現)을 한다.

그렇다면 여성(女性)의 경우(境遇) 친(親)하다고 생각하는 이성친구(異性親舊)중 결혼(結婚) 후 계속(繼續) 관계유지(關係維持)가 가능(可能)한 친구(親舊)가 몇이나 되는가? 혹시 이성적(理性的)으로 고백(告白)을 받아본 친구(親舊)도 있는가? 주변(周邊)에 선배(先輩), 후배(後輩), 친구(親舊) 몇이나 되는가? 그들이 진정(眞正)한 당신(當身)의 친구(親舊)라 말 할 수 있는가?

이런 명언(名言)이 있다. 많은 벗(友)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의 진실(眞實)한 벗(友)을 가질 수 없다(아리스토텔레스). 선물(膳物)이 늘어나면 친구(親舊)는 줄어든다(칼릴 지브란). 즉 학교(學校) 선배(先輩), 후배(後輩) 그들도 모두 친구(親舊)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自身)의 속마음 깊은 곳까지 편(便)하게 말할 수 있는 친구(親舊)는 드물 것이다. 요즘은 하루를 만나 술 한 잔 기울이면 바로 친구(親舊)가 되는 것이 사실(事實)이다.

술이 빚은 우정(友情)은 술처럼 하룻밤밖에 가지 못한다. 이처럼 친구(親舊)를 사귀는 계기도 중요하다. 이성간의 친구(親舊)란 참 어렵고 힘든 것이다. 진정(眞正)한 친구(親舊)란 자신을 희생(犧牲)하면서까지 친구(親舊)를 위할 수 있어야 한다.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親舊)만이 인생(人生)의 역경(逆境)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제공(提供)한다(그라시안).

이성(異性) 간에 위와 같은 경우(境遇)는 우정(友情)보다는 사랑(愛情)에 가깝다고 해야 한다. 남성(男性)은 자신(自身)의 여인(女人)을 위해 목숨(生命)을 바친다고 한다. 하지만 여성(女性)은 자신(自身)의 아이를 위해 목숨(生命)을 바친다. 이성(異性) 간의 사고방식(思考方式), 가치관(價値觀)의 차이(差異)를 확연(確然)하게 보여주는 말이다.

이성(異性) 간의 친구(親舊)가 될 수 있는 문제(問題)는 상호(相互) 가치관(價値觀)의 차이(差異)이며, 이는 남성(男性)들의 인식(認識)이 바뀌지 않는 한 영원(永遠)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여성(女性)들의 친구(親舊)에 대한 명확(明確)한 기준(基準)이 없는 한 불가능(不可能)한 일이다. 현재(現在)로서는 여성(女性)들에게의 이성친구(異性親舊)는 단 한명만 존재(存在)할 뿐이다. 바로 당신(當身)의 애인(愛人) 혹은 남편(男便)이며, 그는 당신(當身)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각오(覺悟)가 되어 있는 진정(眞正)한 친구(親舊)이다. '친구(親舊)'란 '내 슬픔(悲痛)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는 뜻이다(데미안).

결론(結論)을 말하면 개인적(個人的)으로 나는 이성(異性) 간에 친구(親舊)는 존재(存在)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내가 생각하는 친구(親舊)의 기준(基準)은 모든 것을 함께하고 기쁨(喜)도 슬픔(悲)도 아픔(痛)도 함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과연(果然) 우정(友情)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희생(犧牲)하는 친구(親舊)가 이 세상에 정말 존재(存在)할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악암(岳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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