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7일 3일간 앤절라 레이너 영국 신임 부총리가 선보인 출근길 옷차림. 3일 내내 'ME+EM'이라는 영국 브랜드의 옷을 입었다. 왼쪽은 모델들이 레이너 총리가 입었던 것과 같은 옷을 입고 찍은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ME+EM X(옛 트위터)
지난 4일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한 뒤 내각 구성원들은 이튿날부터 곧바로 출근을 시작했다. 14년 만에 정권을 되찾은 노동당의 신임 장관들이 총리 공관 ‘다우닝가(街) 10번지’로 출근하는 모습이 며칠간 생중계됐다. 그 가운데 사흘 만에 독특한 ‘출근 룩’으로 영국인들의 주목을 끈 내각 멤버가 있다. 바로 앤절라 레이너 부총리다.
레이너 부총리는 3일 내내 ‘형광펜’을 연상시키는 색깔의 의상을 선택해 시선을 끌었다. 첫날인 5일은 밝은 녹색의 정장, 둘째 날은 어깨에 패드가 봉긋 솟은 주황색 드레스, 셋째 날은 캡 슬리브(어깨 끝이 겨우 가려질 정도로 극히 짧은 소매) 형태의 붉은색 원피스를 골랐다. 모두 ‘ME+EM’이라는 영국 브랜드 의상이었다. 가격은 227~550파운드(약 40만~100만원)로 알려졌다.
부총리가 화려한 단색의 코디를 선보이자 엇갈린 평가가 나왔다. ‘흙수저 여성 노동자’ 출신이라는 입지전적 배경을 가진 라이너 부총리가 강인한 기질을 의상으로 표현했다는 긍정적인 분석이 있다. 몸에 딱 붙는 명품 브랜드 의상을 좋아하던 리시 수낙 전 총리와 비교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품이 넉넉하고 활동하기 좋은 실용적 디자인에 합리적인 가격의 의상을 잘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몸집이 작은 편이 아닌데 의상마저 크게 입어 잘 어울리지 않는다” “텔레토비 같다”는 부정적 평가도 많았다.
2009년 설립된 ‘ME+EM’ 브랜드의 CEO 클레어 혼비가 친(親)노동당 성향이라는 점에 주목한 의견도 있었다. 클레어 혼비의 남편 조니 혼비는 2001년 마케팅 회사 TBWA의 전무이사로 재직하며 노동당 토니 블레어 전 총리(1997~2007년 재임)의 재선 캠페인을 총괄한 인물이다. 이 부부가 노동당 핵심 인사들과 깊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의상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키어 스타머 신임 영국 총리의 아내 빅토리아 여사가 총선 당일(4일)과 이튿날 선택한 옷차림. 모두 영국 브랜드 'ME+EM'의 옷이다./AFP EPA 연합뉴스
공교롭게도 키어 스타머 신임 총리의 부인 빅토리아 여사 역시 최근 공식 석상에서 이 브랜드를 자주 고른다. 선거 개표가 있었던 4일 밤에는 크림색 반팔 재킷(295파운드)을, 금요일 총리 취임 기자회견에선 빨간색 드레스(275파운드)를 입었다. 일간 텔레그래프는 “ME+EM 측은 홈페이지에서 빅토리아 여사가 입었던 붉은색 드레스에 대한 클릭 수가 300% 이상 늘어나는 등 지난 며칠 동안 착용한 모든 의상에 대해 인터넷 접속이 증가했다고 밝혔다”라고 보도했다.
이미 이 브랜드가 영국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에 CEO의 정치적 성향과는 무관하다는 반대 의견도 있다. 일간 더타임스는 “오피스 룩과 캐주얼 룩을 절묘하게 절충한 이 브랜드는 매출의 약 90%가 온라인에서 발생하는 등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크게 성장했다”며 “2022년 브랜드 가치가 1억3000만 파운드(약 2300억원)에 달했고, 올봄에 이미 미국에 진출해 뉴욕에 매장 3곳을 열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보도했다. 커밀라 왕비와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 등 왕실 여성들과 배우 헬렌 미렌, 케이티 홈스 등 영국의 유명 인사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유행 브랜드일 뿐이라는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