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사고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사고는 뜻밖의 일이고 개인의 탓인가. 왜 사고 원인을 말하지 않고 덮으려고만 하는가.
'불의'의 사고는 없다
책 <사고는 없다>(김승진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저자 제시 싱어는 '사고란 없다'고 말한다. 생각하지 못한 '뜻밖'의, '불의'의 사고는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불의의 사고로 불리는 일 대부분은 예측과 예방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미끄러지는 것은 사람의 과실이지만 물이 흥건하게 고여있는 바닥은 위험한 조건이다. 제한속도를 위반하는 것은 사람의 과실이지만 과속하기 좋게 설계된 도로는 위험한 조건이다.
"교통공학자들이 길에서 제거한 구불구불한 커브, 가로수, 벤치 등은 사실 운전자가 그 위험 요소들의 위험성을 피하기 위해 속도를 늦추게 해주는 요인들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없어지니 운전자는 위험을 덜 느꼈고 차를 더 빠르게 몰면서도 자신이 더 잘 통제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차를 빨리 몰았고, 사고로 죽었다. 도로 설계가 사람의 과실을 유도한 것이다."(146쪽)
사람의 과실이 관여되지 않은 사고는 거의 없지만, 위험한 조건이 사람의 과실을 유발한다. 따라서 사고 예방법은 그런 환경, 즉 사고 유발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다. 사람의 과실을 예상해 위험한 조건에 놓이더라도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게….
"먹으면 사고가 안 나게 해주거나 사고가 확산되지 않게 해주는 약은 없지만, 그런 약이 없도 우리는 사고를 막을 수 있다. 그렇게 하기로 선택만 한다면 말이다. 어떤 사고든 거기에 이르기까지 켜켜이 쌓여있었던 위험의 조건들의 폭과 깊이를 보면, 고쳐야 할 것은 한두 개가 아닐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생명을 살리기 위해 무엇을 포기할 의향이 있는가의 문제다. 어떤 사고인지에 따라, 돈, 시간, 편리함, 그리고 사람들의 생명에 사회가 가치를 매기는 순서, 이 모두가 테이블에 올라올 수 있다."(296~297쪽)
사고에 관심을 줄인다고 한들…
저자는 무엇보다 권력자들이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환경을 고치기보다 사람의 과실을 강조하는 서사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 든다고 지적했다. 무언가를 사람의 과실로 설명하면 책임을 벗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1910년 미국 최초로 노동자배상법이 통과되자 고용주들은 '사고 유발 경향성이 있는 노동자'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자동차 사업가들은 잇단 교통 사고에 제동력이 높은 브레이크를 만들기보다 '무단 횡단자' '난폭 운전자'를 비난하는 화법을 구사했다.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권력자들은 세월호 참사는 '교통 사고'라는 말로, 이태원 참사는 '놀러가서 죽었다'는 막말로, 참사의 규모를 축소하고 희생자를 탓하며 책임에서 빠져나가려고만 했다.
"경영자들이 으레 사고를 유발 경향성이 있는 노동자 타령을 하듯이 대규모 사고가 나면 정치인과 기업인은 으레 별일 아니라는 후렴구를 읊는다. 대중을 동요시키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공포를 흩어 없애는 것은 우리가 재난에 관심을 덜 가지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의 공감 피로가 관문이라면, 권력자들은 바로 그 문을 유유히 통과한다. 정치인과 기업인이 재앙적 사고가 사실은 별일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 또 정화작업에 발 벗고 나선 자원봉사자들을 볼 때, 우리는 재난에 대해 불안하고 분노한 마음을 덜게 된다. 그 결과 사고가 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줄어든다."(126쪽)
권력자들은 끊임없이 사고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줄이려고 애썼지만, 사람들의 인식을 크게 바꾸지는 못한 것 같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 즈음 발생한 이태원 참사로 사람들의 불안감은 다시 증폭됐다.
동아대학교 긴급대응기술정책연구센터가 지난 4월 발표한 '세월호 10주기 재난안전인식 조사 분석'에 따르면, 한국 사회가 '대형 사회재난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답변은 60.32%였으며, 이 비중은 2020년(48.8%)보다 11.5%p 늘었다.
자신이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참사를 겪을 것으로 걱정한다'는 응답은 68.7%였으며, 중앙 정부가 재난 대비를 위한 인적자원을 잘 확보하지 못한다는 응답도 62.6%였다. 해당 조사는 센터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만 18살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같은 달 5~8일 나흘간 진행했다.
사고에 공감하고 문제를 고치자
사고 소식을 접하면 사람은 순간적으로 위협을 느낀다.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일종의 공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곤 외면한다.
저자는 노스이스턴대학 심리학 교수 데이비드 디스테노의 말을 인용해 "대규모 사고가 유발하는 충격과 공포의 규모 자체가 그것에 대한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억누르게 만든다"며 "이것을 '공감 피로'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어 "비극의 크기에 압도된다고 느끼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그것을 외면하고 싶어"하며 없는 셈 치고 싶어 한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그러나 사고를 막고 예방하려면 "어떤 사고든 거기에 이르기까지 켜켜이 쌓여있었던 위험의 조건들의 폭과 깊이를" 마주해야 한다. 권력자가 어떤 감언이설로 책임을 돌리든, '공감 피로'의 장벽 너머를 볼 필요가 있다.
"사고 이후에 조치를 제안할 때는 두 가지가 핵심이다. 첫째, 공감이 지침이 되어야 한다. 둘째, 우리의 목표는 위해를 고치는 것이다. 책무성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이 두 요소는 분리될 수 없다. 우리는 공감을 하고, 그 결과로 무언가를 배운다."(330쪽)
공감했다면, 다음은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저자는 "해결책은 간단하다"고 말한다. "개인이 다 알아서 할 수 있다는 자립의 우화를 버리고, 사람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도구와 자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회가 그것들을 제공해야 한다고 요구하면 된다"는 것.
"사업장, 도로, 집뿐 아니라 법률과 정책까지 모든 시스템을 사고의 피해를 저감하고 모든 타격의 충격을 완화하며 어떤 비용이 들어라도 생명, 건강, 존엄을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어 지으면 된다. 사고로 가장 많이 죽는 사람들은 가장 나이 많은 사람들, 가장 차별받는 사람들, 가장 가난한 사람들처럼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거기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취약성에 대한 고려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3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