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가자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전쟁이라 표현했지만, 실체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주민 집단학살'이다.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현재까지 약 4만 명 이상 사람들이 숨졌고, 부상자도 9만 명이 넘어선 상황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 궤멸을 군사 행동의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축출'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를 제노사이드 범죄로 이해해야 한다(☞관련 문헌 : 제노사이드 이론으로 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국제 사회가 이스라엘을 규탄하며 휴전을 촉구하고 있음에도 이런 반인도적 범죄가 계속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허용한 안보 실패 책임과 사법 리스크로 궁지에 몰린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전쟁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선택이 가능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이스라엘 사회 내 극우 민족주의 세력의 발흥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미국 등 주요 서구 강대국들이 군수품 공급을 비롯해 여러 형태로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있는 것도 학살이 장기화되는 중요한 원인일 테다. 이 국가들이 이스라엘 정권을 비호하는 까닭은 역사적, 종교적 요인과 더불어 현재 자신들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 또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즉, 자국의 이익을 좇아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패권 다툼에 (비)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제 레바논 국경을 넘어 확전을 꾀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동맹' 관계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관련기사 바로가기).
국제 인권 규범보다 힘과 자본의 논리가 우세한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전쟁의 포화로 속절없이 사람들이 죽어가는 와중에 국제 유가 급등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이 경제(주식시장)에 미칠 영향을 더 크게 우려하는 일부 언론과 시민들의 행태는 더욱 참담하다. 국내 안보와 경제에 미칠 여파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제3자가 관망하듯이 이 사태를 다루는 것은 매우 적절치 않다. 이스라엘도 한국의 무기 수출국이라는 점에서 우리 역시 이 전쟁 범죄로부터 무관하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이들이 팔레스타인 평화를 외치며 연대 활동을 펼쳐왔다. 지난 논평에서도 밝혔듯이, 집단학살을 종식하고 제국주의적 억압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해방하기 위해서는 세계 시민사회의 규범적 힘을 강화함으로써 이스라엘과 패권 국가들을 강하게 압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이러한 힘은 자신의 유불리를 떠나 어떤 형태의 폭력이든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는 시민들이 더 많아질 때만이 강화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 사회 내 반전평화 운동이 지금보다 더 활발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잘 알다시피 한국은 장기화된 분단 체제 속에서 '군사주의(militarism)'가 압도적 영향력을 발휘해 온 사회다. 이런 상황은 사회 전반의 영역에서 군사적 가치와 논리가 우위를 차지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 실천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적지 않은 시민들이 알게 모르게 군사주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채 '힘에 의한 평화론'에 동조하고 있는 현실이다.
만약 이와 달리 반(反)군사주의로서 평화주의가 지배 가치와 담론으로 통용되는 사회였다면 지금처럼 한국 정부가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에 대해 일관되게 침묵을 고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는 이 땅에 굳건한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과제와 팔레스타인 해방이 무관하지 않음을 뜻한다. 한국 정부가 러시아나 이스라엘 등 침략국을 규탄하는 입장으로 돌아서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그동안 위축되어 온 반전평화 운동을 강화하는 일에 적극 동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이러한 필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미국 헤게모니가 쇠퇴하면서 국제 질서가 새롭게 재편되는 가운데 진영 간 대립과 갈등이 격화되고 그 결과로 전세계 군비 증강 추세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한데 윤석열 정부는 '힘에 의한 평화' 기조를 내세우며 위기의 흐름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K-방산', 즉 무기산업을 경제성장동력으로 강조하며 전쟁 위기를 무기 개발과 수출의 기회로 삼으려 하고 있다. 지난 국군의날에 40년만에 처음으로 2년 연속 서울 도심에서 열린 대규모 열병식과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된 국제방위산업전시회(KADEX)가 그러한 징후를 여실히 보여준다. 기존 군사주의 경향을 강화하는 이러한 퇴행적 흐름에 맞서지 않는 한 평화 체제 구축은 더욱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한편 우리는 시민 한 사람으로서 평화 운동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건강권 운동의 차원에서도 평화 운동과의 연대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전쟁은 건강권의 전제가 되는 생존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보건학적 위기라는 점에서 보편적 건강권 보장은 안정적인 평화 체제의 토대 위에서만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운동이 어떻게 연결되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앞으로 많은 논의와 모색이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두 운동의 연계 필요성에 주목하고 구체적인 운동 목표와 전략의 교차점을 찾으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의미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우선 연구의 측면에서 볼 때 서로의 운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지식과 근거를 생산하는 노력이 필요할테다. 비폭력과 사회적 평화가 건강에 유익하다는 사실은 상식이지만, 지금 사회적 맥락 속에서 시민들의 더 큰 공감과 실천을 끌어낼 수 있는, 구체적 연관성과 감춰진 인과기제를 밝히는 연구가 필요하다. 그동안은 주로 전쟁이나 분쟁이 피해집단의 건강에 (사후적으로) 미친 복합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에 대한 조사와 분석이 이뤄졌다. 반면 그 이전 단계에서 사회의 군사화와 무기 산업의 폐해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상대적으로 부족하였다. 예컨대 무기 생산 공장이 지역 주민의 건강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나, 또는 군사주의적 정책기조와 담론이 정신 건강에 일으키는 문제 등을 규명함으로써 평화 운동의 정당성 강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반전평화 운동은 건강권 운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국가 간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운동 목표의 특성상 세계 체제 차원의 문제를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평화 운동을 잘 보고 배운다면, 건강권 운동 역시 국경선에 갇힌 국가중심시각에서 벗어나 세계 건강불평등 문제로 운동의 범위와 전망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평화 운동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민족주의, 인종주의 등이 낳는 착취와 억압, 지배 구조의 문제에 천착한다는 점에서 건강권 운동이 기존의 주류 국제보건 접근의 한계를 넘어, 건강불평등을 양산하는 보다 거시 차원의 문제에 주목하도록 이끌 수 있다.
이렇듯 운동 간 연대가 꼭 구체적인 공동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닐테다. 하지만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으로서의 운동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전체 운동을 구성하는지 이해하려는 태도는 사회운동의 주체들이 운동을 통해서 구현하고자 하는 대안적 체제를 파악하고 공유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총체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모든 사회운동은 결국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모순에 저항하고 도전하고 있는 셈 아닐까. 폭력과 살상마저 자본 축적의 기회로 삼는 무기 산업과 군사주의 국가체제를 보더라도 말이다. 공통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더 큰 사회운동의 흐름을 바라보면서 우리 안에 자라나는 냉소와 무력감에 맞서자. 그리고 각자 자리에서 팔레스타인 해방과 평화 체제 구축, 건강불평등 극복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성찰하고 소통하고 연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