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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8.01 유교 사상가 맹자(孟子)
posted by 알짜 정보 岳岩 2016.08.01 11:11

인민망 제공

글자풀이: 맏 맹() 아들 자()

맏 맹()의 구성(構成)은 아들 자()와 그릇 명()으로 이루어졌다. 아들 자()는 팔을 벌리고 있는 아기의 모습(模襲)을 본 따 만든 글자이다. ()자를 180도 뒤집어 놓으면 올(兀)자가 된다. 즉 어머니 배속에서 나올 때, 머리를 아래로 하고 나오는 아기의 모습(模襲)을 본 따 만든 글자이다. 배속에 아기가 만삭(滿朔)이라는 의미(意味)의 가득 찰 충(), 나은 아이를 기른다는 의미(意味)의 기를 육(), 배속에서 양수(羊水)와 함께 흘러나오는 아기의 모습(模襲)에서 유래(由來)하는 흐를 류(), 죽은 아이를 키()에 담아 두 손으로 받들고 있는 모습의 버릴 기()자 등 아들이나 어린이와 관련(關聯) 있는 글자에 들어간다. 맏아들이므로, 아들 자()자가 들어간다. ()는 강보(襁褓)에 싸인 아기를 본뜬 상형글자(象形字)로 머리()와 두 팔() 그리고 하나의 다리()로 묘사(描寫)하고 있다. 다리()를 하나로 그린 것은 아직 서서 걷지 못하는 갓난아이임을 나타내려 한 것이다. ()은 음식(飮食)을 담을 수 있는 넓은 그릇을 본뜬 상형글자(象形字). 본디 제기용(祭器用) 그릇이었지만 일반적(一般的)그릇의 대표명사(代表名詞)가 되었다. 따라서 옛사람들의 이름자 중에 맹()이나 백()자 들어가면 맏아들임을 알 수 있다. ()씨는 중국과 한국의 성씨이다. 일설(一說)에 의하면 맹()은 그릇()에 아들()이 담겨 있는 모습(模襲)인데, 맏아들은 자기 자식(子息)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유(理由)로 잡아먹었다는 일부지방(一部地方)의 고대 중국인 풍습(風習)에서 유래(由來한 글자라고 한다. 맹자(孟子)는 중국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의 유학자(儒學者)이다. 맹모단기(孟母斷機)는 맹자(孟子)가 학업을 중도에 폐지(廢止)하고 돌아왔을 때 그 어머니가 짜던 베를 칼로 잘라서 훈계(訓戒)하여 학업을 완성하게 했다 한다. 맹모삼천(孟母三遷)은 맹자(孟子)의 어머니가 맹자(孟子)를 가르치기 위하여 세 번 이사(移徙)했다 한다. 처음에 공동묘지(共同墓地) 가까이 살았는데 맹자(孟子)가 장사(葬事) 지내는 흉내를 내서 시장(市場) 가까이 옮겼더니 물건(物件) 파는 흉내를 내므로, 다시 글방 있는 곳으로 옮겨서 공부(工夫)를 시켰다고 한다. 맹씨(孟氏)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統計廳) 인구조사(人口調査)에서 20,219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89위이다. 본관은 신창(新昌) 단본이다. ()씨는 중국 노()나라 계출(屆出)된 성씨로, 중국 평릉(平陵: 협서성 관중도)에 연원(淵源)을 둔다. 춘추시대(春秋時代) 노나라 15대 임금인 환공(桓公)의 아들 경보(慶父)의 호()가 맹손(孟孫) 이라서 맹() ()를 따서 성()으로 삼았다고 한다. 아성(亞聖) 맹자(孟子: 맹가(孟訶))로부터 세계(世系)가 이어진다. 

아들 자()자는 어린 아이의 머리()와 몸통과 발(및 손(꼴을 본뜬 상형자(象形字)로 동작이 미숙(未熟)한 '아들()'이라는 뜻의 글자이다그런데 자()자는 본디 꼴에서 덩그런 머리에손만 놀리지 몸통이나 발이 아직 미숙한 상태(狀態)’라는 의미(意味)가 드러난다이러한 의미를 딱히 뭐라 표현(表現)하기 곤란(困難)해서 그런지 자()자가 부수(部首)로 쓰인 글자는 주로 회의자(會意字)들이 많다한편 자()자는 모양(模樣)이 바뀌는 경우(境遇)도 있는데, ''자를 거꾸로 뒤집으면 '기를 육()'자처럼 되어 부수 역할(役割)을 하지 않고 의미가 통하는 정도(程度)의 역할을 하게 된다즉 의미가 통()하는 예들을 보면 '흐를 류()'자는 강물에(아이처럼 생긴 물체()가 떠내려 오는(모습을 그렸다또한 '기를 육()'자는 몸()에서 아이()가 머리부터 나온 꼴을 나타낸 글자이다이와는 상대적(相對的)으로 자()자가 바르게 놓여 있지만 '의심할 의()'자에서는 사람이 길에서 지팡이 짚고 뒤돌아보는 모습잃어버린 소를 찾으러 다니는 모습아이가 칼()과 화살()을 들고 걸으며(주위를 의심스럽게 살피는(모습으로 바뀌면서 자()자가 자부(字部)로 쓰이기도 한다따라서 아들 자()는 강보(襁褓)에 싸인 아기를 본뜬 상형글자(象形字)로 머리와 두 팔 그리고 하나의 다리로 묘사(描寫)한다다리를 하나로 그린 것은 아직 서서 걷지 못하는 갓난아이임을 나타냈다본뜻은 그러하였지만보통 장성(長成)하지 않은 아이들을 총칭(總稱)한다또한 후대로 오면서 남자의 경칭(敬稱)으로 쓰이기도 하고스승()이나 작위(爵位)의 이름으로까지 그 의미가 확대(擴大)된다.

◎설명: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유교 사상가인 맹자(孟子)는 그 이름이 맹가(孟軻)이고 자는 자여(子輿) 또는 자거(子車)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맹자(孟子)는 공자(孔子)의 유교사상을 공자(孔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문하생(門下生)에게서 배웠다. 어릴 때 현모(賢母)의 손에서 자라났으며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유명한 이야기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이야기에 의하면 맹자(孟子) 집 근처에 묘지가 있어 그는 무의식중에 장 의식(葬儀式)에 관한 많은 지식을 배웠다. 맹모(孟子)는 이런 가정환경이 맹자(孟子)의 성장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큰 거리 옆으로 이사했다. 새로 잡은 집 부근에는 도살장(屠殺場)이 있었다. 그래서 맹자(孟子)는 또 장사와 도살에 관한 지식을 배웠다. 맹모(孟母)는 하는 수 없이 또 집을 한 학교부근으로 옮겼다. 맹자(孟子)는 여기에서 유학에 관한 지식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때로부터 맹모(孟母)는 시름 놓았다고 한다.

◎해설: 제후가 유능한 인재들을 찾는 전국시대(戰國時代)에 배출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한 사람으로서 맹자(孟子)도 약 15년 동안 각국을 유세하고 돌아다녔으나, 자기의 주장이 채택(採擇)되지 않자 고향에 은거(隱居)하였다. 제후가 찾는 것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이나 외교적 책모(策謀)였으나, 맹자(孟子)가 내세우는 것은 도덕정치인 왕도(王道)였으며, 따라서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지나치게 이상적인 주장으로 치부(置簿)되었다. 맹자(孟子)는 만년에는 제자 교육에 전념(專念)하였고, 저술도 하였다고 한다. 맹자(孟子) 7편은 맹자(孟子)의 말을 모은 후세의 편찬물이지만, 내용은 맹자의 사상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주자학(朱子學) 이후로 맹자(孟子)는 논어(論語), 대학(大學), 중용(中庸)과 더불어 사서'(四書)' 하나로서 유교의 주요한 경전(經典)이 되었다. 이 경전은 맹자(孟子)의 사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책이며, 또 전국시대의 양상(樣相)을 전하는 흥미 있는 내용(內容)으로 가득 차 있다.

맹자의 사상

맹자(孟子)는 공자(孔子)덕치사상(德治思想)’을 계승하고 그것을 인정학설(認定學說)로 발전시켰다. 이것은 그의 정치사상의 핵심(核心)이다. 한편으로 맹자(孟子)는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계급적 지위를 엄격히 구분하고 노심자(勞心者) 치인(治人), 노력자(勞力者) 치우인(治于人)’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또한 군왕으로부터 서민에 이르는 등급(等級) 제도를 작성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또 통치자(統治者)와 피통치자의 관계를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에 비유(比喩)하고 통치자가 부모처럼 인민을 관심하여야 하며 인민들은 부모를 대하듯이 통치자와 친근하고 통치자들의 시중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맹자(孟子)는 인지초(人之初), 성본선(性本善)의 사상을 제기하면서 여러 사회성원들 사이에 분공(分功)이 다르고 계급적인 차이가 있지만 그들의 인간성은 같으며 선량을 지향하고 사악(邪惡)을 피한다고 인정했다.

맹자(孟子)의 사상은 인의설(仁義說)과 그 기초가 되는 성선설(性善說), 그리고 이에 입각(立脚)한 왕도정치론(王道政治論)으로 나누어진다. 공자의 인()의 사상은 육친 사이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친애(親愛)의 정을 널리 사회에 미치게 하려는 것이며, 이 경우, 소원(溯源)한 쪽보다 친근한 쪽으로 정이 더 간다는 것은 당연시되었다. 가족제(家族制)에 입각한 차별애(差別愛)인 것이다. 맹자(孟子)는 이를 받아들여, 한편으로는 보편적인 인애(仁愛)의 덕()을 주장하고, 한편으로는 그 인애(仁愛)의 실천에 있어서 현실적 차별상(差別相)에 따라 그에 적합한 태도를 결정하는 의()의 덕을 주장하였다. 맹자(孟子)의 주장에 따라 인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는 사람의 길로서’, 의는 인의 실천에서 지켜야 할 덕으로 간주(看做)되고, 유교사상은 이로부터 도덕사상으로서의 준엄성(峻嚴性)을 가지게 되었다.

성선설(性善說)은 그러한 인심(仁心)이 누구에게나 갖추어져 있음을 강조(强調)한 사상이다. 인간의 본성으로서는 악()에 이르는 욕망도 사실은 존재하지만, 맹자(孟子)는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도덕적인 면에서 본성이 선()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왕도정치(王道政治)는 그러한 인심에 입각한 정치이다. 왕도정치는 군주는 민중(民衆)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한 다음 도덕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왕도정치에는 불인(不仁)한 군주는 쫓아내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때문에 당시의 제후(諸侯)가 맹자(孟子)의 왕도정치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유교는 맹자(孟子)에 의하여 비로소 도덕학(道德學)으로서 확립되고, 정치론으로서 정비(整備)되었다. 그 후 유교의 정통사상(正統思想)으로서 계승되어 유교를 공맹지교'(孔孟之敎)라고' 부를 정도로 중시되었다.

맹자의 성선설(性善說)

맹자(孟子)의 시대에 오면 인간 심성(心性)의 선악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이 중 맹자(孟子)는 인간은 자연적인 본성 외에 일종의 사회의식 말하자면 옳고 그른 것을 판별(判別)할 수 있는 능력을 선천적(先天的)으로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가 "맹자(孟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양지 즉, 사람이 생각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는 것과 양능(良能), 말하자면 사람이 배우지 않아도 잘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의 일단(一端)이다. 맹자(孟子)는 그 외의 것은 동물과 다를 바 없으므로 오직 양지(良志)와 양능을 통해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편 이것과 함께 사회생활을 통하여 형성(形成)된 도덕관념이 인격의 기초를 이루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 맹자(孟子)가 양지와 양능을 선() 전부라 본 것은 아니다. 이것은 출발(出發)에 지나지 않는다. 본성에 내재(內在)한 이것을 확충(擴充)시킬 때 선을 이룰 수 있다고 맹자(孟子)가 성선을 주장하였던 것은 사람들이 착한 일을 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그러한 것이 권선하여 선을 이룩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남의 어려움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도우려는 마음인 측은지심(惻隱之心)과 불의를 보면 부끄러워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 겸손하며 양보하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 옳고 그런 것을 가리고자 하는 마음인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인의예지의 사단(事端)의 단서가 된다. 이러한 것은 불인지심(不忍之心)에 해당하는데 인간에게 내재한 본성이 이 불인지심을 장황히 설명하면서 이러한 마음이 외재한 것이 아니라 내재한 것임을 밝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에 있는 선한 마음을 확충(擴充)하기를 강조하고 있다.

결코 자포자기(自暴自棄)해서는 안 되고 자신을 소중히 여겨 사단을 잘 보존(保存)하여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욕망(慾望)에 가려 선에 나아가는 것이 훼방(毁謗)되어서도 안 되니, 본성을 잃도록 조장(助長)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도록 강조(强調)하고 있다. 과욕(過慾)을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것과 맥락(脈絡)을 같이한다. 이야기라는 것은 욕망의 최저의 상태(狀態)에 이른 것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자신의 양심(良心)을 재발견하여 선에 나아가도록 힘쓰라고 말하고 있다.

맹자(孟子)는 인간은 선천적(先天的)으로 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태어났으므로 인간은 선할 수 있는 가능성(可能性)을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다고 보고 있다.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은 그의 주요한 사상으로 되었다. 인물


자료 제공 : (중국국제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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