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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 岳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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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택향봉기에 성공한 후 진승(陳勝)은 왜 오광(吳廣)을 죽였을까?


글: 침묘(枕猫)
대택향(大澤鄕)에서의 봉기가 성공한 후, 진승(陳勝)은 왜 부하가 2인자인 오광(吳廣)을 살해하는 것을 묵인 혹은 종용했을까? 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에서 일찌감치 잔혹한 진상을 까발린 바 있다. 오늘은 이 주제를 보면서 그 배후의 인성의 어둠과 권력의 논리를 파헤쳐 보기로 한다.
먼저 최근의 현상을 얘기해보자. 요 몇년간 창업계에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많은 창업파트너들이 처음에는 동감공고(同甘共苦)하지만, 일단 상장에 성공하거나 혹은 거액의 자금조달을 받게 되면, 곧이어 '궁정투쟁드라마'가 펼쳐진다. CEO가 CTO를 쫓아내거나, 창업자끼리 원수가 된다. 지금 보기에 기이해 보이지만 기실 이 극본은 진승이 일찌감치 2천년전에 한 차례 사용했던 것이다.
대택향의거는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기원전209년, 진승, 오광이라는 두 명의 운나쁜 사람들이 900여명의 수졸(戍卒)을 데리고 갔는데, 큰 비로 정한 기일내에 도착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진나라의 법률에 따르면 목이 달아날 수 있는 상황이어서, 두 사람은 이왕 죽을 바에는이라는 심정으로 반란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 두 사람의 협력은 매우 잘 이루어졌다. 진승은 머리가 좋고, 전략적인 안목이 있었다; 오광은 인간관계가 좋아서 형제들 사이에서 명망이 높았다. 두 사람은 낡은 사원에서 '여우소리'를 흉내내어 "대초흥(大楚興), 진승왕(陳勝王)"이라는 말을 퍼트려 여론공작을 벌인다.
봉기 초기에는 파죽지세였다. 짧은 몇 달만에, 그들은 진현(陳縣)을 점령하고, "장초(張楚)"정권을 건립한다. 진승은 왕이 되고, 오광은 "가왕(假王, 대리왕)"이 되었다. 이때 두 사람의 관계는 아주 찰떡같아 보였다.
다만, 금이 가는 것은 왕왕 금상첨화일 때 발생한다.
진승은 왕을 칭한 후, 일찌기 "부귀해지더라도 서로 잊지 말자"던 가난한 청년은 마음이 바뀌었다. 그는 궁전에 거주하며, 허세를 부렸고, 스스로 진정한 "고가과인(孤家寡人)"이 된다. 오광은 어떠했을까? 그는 여전히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비극은 대군이 서진하는 과정에 발생한다. 오광은 2인자로서, 병력을 이끌고 전략요충지 형양(滎陽)을 포위공격하고 있었다. 이 전투는 매우 힘들었다. 진나라의 명장 이유(李由, 이사(李斯)의 아들)가 사수하고 있었다. 오광은 포위하여 공격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하고, 쌍방은 대치상태에 들어간다.
이때 진승쪽은 마음이 급해진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오광의 부하인 전장(田臧)도 마음이 급했다는 것이다. 전장은 오광은 안된다고 생각한다. "병법을 모른다"고 여긴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하다가는 모두 끝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전장은 진승의 명령을 위조하여, 오광을 죽여버린다. 그리고 오광의 수급을 진승에게 바친다.
가장 가슴아픈 일막이 벌어진다: 진승은 형제 오광의 수급을 보고서도 대노하지 않고, 전장을 처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순수추주(順水推舟)로 전장을 영윤(令尹, 승상에 상당함)과 상장군(上將軍)에 임명한다.
이건 아주 재미있는 일이다. 진승은 오광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는 왜 흉수에게 큰 상을 내렸을까? 이 칼은 직접 움직인 사람은 전장이지만, 그럴 마음을 가진 것은 아마도 궁전에 앉아 있던 진승이었을 것이다.
이 건 모살에 관하여, 사마천은 <사기진섭세가(史記陳涉世家)>에서 붓을 절제했다. 그러나 그가 털어놓은 정보의 양은 아주 크다. 오광의 죽음에 관하여, 태사공은 주로 두 가지 핵심포인트를 지적했는데, 우리가 자세히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포인트, 사마천은 전장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가왕은 교만하고, 병권을 모르니, 함께 도모할 수 없다(假王驕, 不知兵權, 不可與計)"
이 말은 너무 악독하다.
"교(驕)"라는 것은 교만하고 자만한다는 것이다. 오광이 왜 '교만'한가? 생각해보라. 봉기를 할 때 비록 진승이 앞장섰지만, 구체적인 집행이나 인심을 회유하는 것에는 오광이 기여한 바가 진승보다 적지 않다. 병사들의 마음 속에 오광은 심지어 진승보다 더욱 친근하다. <사기>의 말에 따르면, "오광은 평소에 사람을 좋아하여, 병졸들이 그를 받드는 자들이 많았다."
이건 원래 그의 장점이다. 그러나 권력의 저울대에서 그것은 '죽을 죄'가 될 수 있다.
진승이 이미 최고의 자리인 '왕'의 자리에 앉았는데, 오광이 만일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스스로를 '공동창업자'로 여기고 있으며, 심지어 군대내에서의 명망이 진승보다 높다면, 그것은 바로 "공고개주(功高蓋主)"이다. 이런 '교'는 진승의 눈에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두번째 포인트는 "병권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건 아마도 사실일 수도 있고, 그저 핑계일 수도 있다. 오광은 어쨌든 농민출신으로, 군사교육을 받은 바 없다.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가는 전투는 괜찮겠지만, 형양성같은 골치아픈 전투에 부닥치면 확실히 제대로 지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능력이 안되면 그의 직위를 박탈하면 되는 것이고, 다른 자리로 옮기면 되는 것이지, 왜 그것을 이유로 죽인단 말인가?
확실히 오광을 죽인 것은 군사적인 실패때문이 아니라, 정치적인 필요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승은 당시에 거대한 곤경에 처해 있었다: 반란군이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가면서, 각지의 부하장수들이 속속 독립했다. 무신(武臣)은 조(趙)의 땅에서 왕을 칭했고, 한광(韓廣)은 연(燕)의 땅에서 왕을 칭했다. 진승이라는 "장초왕(張楚王)"의 지방장악력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었다. 그는 위신을 시급히 세워야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군권을 자신의 손아귀에 장악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이때, 군대를 장악하고, 명망이 매우 높았던 '2인자' 오광이 그의 마음 속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되어버린다. 만일 오광이 전선에서 병력을 이끌고 독립하거나, 혹은 다른 독립한 장수들과 연합하게 되면, 진승이라는 '회장'은 허수아비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전장이 오광의 수급을 가져왔을 때, 진승의 내심 깊은 곳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을 것이다. 차도살인(借刀殺人), 심복대환을 제거했을 뿐아니라, '동생을 죽였다'는 오명도 뒤집어 쓰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말잘듣는 전장을 발탁할 수 있었다. 이는 일석삼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025년의 시각으로 볼 때, 진승이 오광을 죽인 것은 전형적인 '풀뿌리집단'의 전환기에 직면하는 관리위기이다.
진승이라는 사람은 뼛속부터 소농의식(小農意識)이 농후하다. 그는 폭력적인 수단으로 구질서를 파괴했지만, 그의 머리 속에는 새로운 질서의 청사진이 없다. 그의 머리에 들어 있는 것은 진시황의 그 유아독존의 구사상뿐이다.
그는 왕을 칭한 후, 신속히 스스로를 폐쇄한다. 그리고 두텁게 "생식격리(生殖隔離)"를 집행한다.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진승의 고향친구가 진승이 성공했다는 말을 듣고, 천리 먼 길을 달려와서 그에게 의탁한다. 그 친구는 입궁하여 진승을 만날 때, 진승과의 어릴 때 겪었던 일들을 마구잡이로 얘기했다.
진승이 어떻게 했을까? 그는 주변사람의 말을 듣고, 이 고향친구가 '위엄을 손상시킨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 그 고향친구를 죽여버렸다.
진승은 자신의 과거와 단절하고 싶었다. 그는 살륙을 통하여, 자신이 이전에 비천한 신분이었다는 것을 세탁하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의 신화를 만들고 싶었다. 오광도 옛날 고향친구와 마찬가지이다. 모두 그의 과거 '비천한 세월'의 목격자들이다. 오광이 살아있는 한, 진승은 영원히 그 큰 비를 맞으면서 벌벌떨던 수졸이었지,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왕이 아니었다.
이런 심리를 심리학에서는 "지위불안(Status Anxiety)"이라고 부른다. 하층출신일수록, 돌연 졸부가 되거나 귀인이 된 사람은 더더욱 옛날에 알던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존재는 그에게 수시로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너는 기실 그다지 신성하지 않다. 너도 오곡잡량을 먹으면서 크지 않았던가?
다만, 진승은 가장 중요한 점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의 합법성은 바로 이들 '하층민'의 지지에서 온다는 것을.
고향사람을 죽이자, 그의 옛친구들은 실망하고 그를 떠나버린다; 오광을 죽이자, 장수들이 실망하고 모두 불안해 한다.
그들은 원래 진승과 함께 하면서,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느냐'라는 생각을 하면서 공정을 꿈꾸었다. 그런데 진승이 왕에 오르자마자 진이세(秦二世)보다 악독하게 형제에게까지 손을 쓴다. 그러면 우리가 왜 목숨을 바쳐 너를 위해 일해야 하는가?
그래서, 오광이 죽은 후, 장초정권의 붕괴는 너무나 신속하여 깜짝 놀랄 정도였다. 전장은 비록 상장군에 올랐지만, 금방 진나라의 명장 장한(章邯)에게 형편없이 패배당한다. 다른 장수들도 투항하거나 도망쳤다. 결국 진승은 모두에게 버림받고, 자신의 차부(車夫)인 장가(莊賈)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 결말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그는 형제를 죽이면서까지 배반을 막으려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의 신변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인물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진승이 오광을 죽인 일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줄 것인가?
이처럼 "함께 환난을 겪는 것은 쉽지만, 함께 부귀를 누리는 것은 어렵다(同患難易, 同부富貴難)"는 것은 사업, 직장, 심지어 가정에서까지도 속속 상연되고 있다.
많은 팀들이 창업초기에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외부의 압력에 직면하여(예를 들어, 진나라군대, 예를 들어 시장경쟁) 함께 등을 맞대도 싸운다. 이때 생존이 제1모순이어서, 내부모순은 가려진다.
일단 단계적인 승리를 거두면(진현을 점령하거나, 회사를 상장시키면) 외부압력이 감소하고, 내부이익분배가 제1모순으로 등장한다.
이때 만일 성숙된 제도로 권력을 구속하고, 이익을 분배하지 않고, 완전히 '형제간의 의리' 혹은 '오너의 양심'에 따라 처리한다면, 붕괴는 시간문제가 된다.
진승과 오광의 비극은 바로 그들이 강호의 의리로 국가기구를 운용하려 했다는 점이다.
오광은 자신이 여전히 진승의 큰형님이라고 여겼고, 그래서 교만했다; 진승은 오광을 죽임으로써 위엄을 세울 수 있다고 여겼다. 그들은 모두 잘못 알았다. 그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용기가 아니라, 정치지혜와 계약정신이었다.
만일 당시 진승이 나중의 유방처럼, 비록 깡패기질이 있기는 하지만, 타협할 줄 알고, '파이를 나눌 줄 알고' 오광같은 원로를 적합한 위치에 배치할 줄 알았다면(예를 들어 실권이 없는 허직), 역사의 흐름은 아마도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아쉽게도, 역사에 가정은 없다. 진승은 그저 진승이고, 그의 안목이 그의 상한을 제약했다. 그는 반진의 불을 질렀지만, 결국 그 불은 스스로의 몸까지 태워버리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솔직한 마음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우리의 교과서에는 항상 진승과 오광은 나란히 언급한다. 마치 그들이 완벽한 파트너인 것처럼. 다만 진실된 역사는 왕왕 옛날이야기보다 더욱 잔혹하고, 더욱 거칠다.
진승이 오광을 죽인 것은 단순히 "악인이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이 아니다. 당시의 극단적인 환경하에서 권력이 인성(人性)을 갉아먹은 것이다.
인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아무런 쓸모도 없는 폭도로 그리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진실되고, 논쟁적이고, 가련하면서도, 한탄스러운 진승을 보여주었다.
그는 우리에게 말해준다: 폭정을 무너뜨린 사람이 만일 자신의 내심의 어둠을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또 다른 폭정으로 바뀌게 된다.
대택향의 그 비는 2천여년전에 내렸지만, 여전히 우리를 적시고 있다. 우리가 이익을 위하여, 권력을 위하여, 체면을 위하여, 곁에 있는 '형제'에게 손을 쓰려할 때, 목이 잘린 오광과 길거리에 시신이 되어 널부러진 진승을 생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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