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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 岳岩

乙巳年 새해 하시는 일들이 日就月將하시고 乘勝長驅.하시고 萬事亨通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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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을 왜 闕(궁궐 궐, 빠질 궐)이라 하는가?

브런치궁(宮)'과 '궐(闕)'의 의미


작성자法故創新
󰡔설문해자󰡕는 月에 대해 ‘闕, 太陰之精(궐이라 태음의 정화)’라 정의하고 있다. 해(日)를 가득차다란 의미의 ‘實’과 ‘양(陽)의 정화’라 하고는, 달(月)에 대해서는 陰의 정화라고 하되, 實에 대비되는 虛라 하지 않고 궐(闕:빠질 궐)이라 하였다. 달을 중심으로 밤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낮의 해를 기준으로 해가 빠져나가 없는 상태를 밤으로 본 것이다.
천지자연에 음양의 이치가 작용한다고 보되 양을 기준으로 사물을 인식하였다. 동양철학에서는 음양의 작용을 하늘의 섭리로 보고는 天理 또는 天道라 하였다. 나아가 천도를 주관하는 천제(天帝)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인간은 천도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자문화권에서 왕을 天子라 부르고, 天子가 사는 궁궐에 하늘의 별자리 이름을 붙인 이유이다. 하늘에 天帝가 사는 궁궐이 있다면 해와 달은 하늘을 밤낮으로 비쳐줌으로써 궁궐을 지키는 수호신같은 존재이다. 지상의 궁궐에서 해와 달에 비견되는 존재는 궁궐의 높은 담과 호위병이다. 그런데 해와 달이 사방을 모두 비출 수 있는데 반해, 지상의 궁궐에서는 호위병이 가장 높은 곳에서 궁궐 전체를 감시한다 해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곳이 있다. 궁궐담의 모서리이다. 이에 네 모서리에는 별도의 문루(십자각)를 설치하고 호위병을 둔다.
궁궐의 모서리는 시야에서 빠져 있기에 이를 해가 빠진 달(月)에 비유한데서 闕의 ‘빠지다’란 뜻이 나왔다. 아울러 문루를 두고 방위를 하는 곳은 궁궐 밖에 없는데서 ‘궁궐’의 뜻까지 지니게 되었다. 이렇듯 ‘闕’이란 글자의 뜻은 달(月)이나 하늘의 궁궐에 비유하여 나왔다. 즉 한자가 天文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천문의 象을 나타낸 周易의 卦象에서 漢字라는 뜻글자가 만들어졌다는 의미이다. l 출처 : 종요의 대서사시 천자문 易解

閏(윤달 윤)과 천문과 정치
閏은 王이 궁궐의 門안에 거처하여 밖으로 출입하지 않는다는 뜻이 있다. 주역 지천태(泰: )괘에 세상을 다스리는 임금은 천지(天地)의 도(道)를 마름질하여 이루고(財成天地之道), 천지운행의 마땅함을 도움으로써(輔相天地之宜) 백성을 좌우에서 돕는(以左右民) 존재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윤달은 천지의 道인 일월운행에서 시차가 어긋나 메꾼 것을 뜻한다. 옛 사람들은 이를 임금이 때를 잘 살피지 못한 결과로 보았다. 이에 윤달에는 임금이 궁궐 안에 거처하며 제례와 조회를 열지 않고 근신(謹愼)하는 달로 삼았다. l <출처 : 「종요의 대서사시 천자문 易解」 2008년 발간>

걸작(傑作) / 폭군(暴君)의 재발견
뛰어난 작품, 훌륭한 작품을 뜻하는 걸작 (傑作)이란 말이 본래는 폭군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진 걸임금과 관계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夏)나라 말기의 걸이라고 하면 은 (殷)나라 말기의 주 (紂)와 함께 폭군의 대명사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들의 방탕한 생활은 주지육림 (酒池肉林)으로 대표되고, 극도의 호화사치한 생활은 걸 (桀)이 지은 고대궁실(高大宮室)의 기와집(瓦室, 와실)과 주 (紂)가 지은 상아로 만든 복도 (象郞=象廊, 상랑)라는 뜻의 와실상랑 (瓦室象郞)으로 대표된다 .그런데 폭군을 난폭한 군주라는 호오 (好惡)시각으로만 보지 말고 생활의 발전과 관련지어 사실적인 측면에서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옛날 역사책을 살펴보면 고대 국가인 하 (夏)나라 때 곤오 (昆吾)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기와(瓦를 만들었다(古史考, 夏時昆吾氏作瓦)고 한다.
사마천(司 馬遷)은 이 기와를 활용하여 집을 지은 것은 걸 (桀)이라고 말한다 (桀爲瓦室, 『史記』 龜策列傳에서) .
갈대나 집, 나무껍질 등으로 지붕을 만들었던 시절에 기와를 구워 집을 지었다는 것은 가히 집의 혁명이라고 할 만하다. 매년 지붕을 헤이는 번거로움도 없을뿐더러, 새가 지붕에 둥지를 틀 일도 없어 현대적인 눈으로 보자면 그만큼 위생적이고 실용적인 집이다. 하지만 그 많은  기와를 굽기 위해서는 노동력과 시간 투자가 만만치가 않았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무거운 지붕을 지탱하기 위해 기둥 등의 구조물이 그만큼 튼튼해야 하기 때문에 이전보다 훨씬 고도의 기술을 요했을 것이다.
이엉을 엮어 며칠 일이면 될 것을 몇 달에 걸쳐 집을 지어야 했으니 그 원망이 오죽했을까?
“이 날은 언제나 망할고, 내 너와 더불어 함께 망하리라! (時日은 害喪고 予及女로 偕亡이라 )”하며 백성들이 원수같이 여기던 왕이었기에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곱게 보일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하니 서진 (西晉) 때의 학자인 장화 (張華, 232~300)가 쓴 「박물기 (博物記)」에 “걸이 기와집을 지었으니 결국 이것은 곤오가 걸을 위하여 만든 것이 되었다 (桀作瓦,蓋是昆吾爲桀作也)”고 편치 못한 마음을 담아 냈다. 여기에서 ‘桀作’이란 말이 나왔는데 폭군 桀을 그대로 쓸 수 없어 앞에 人 하나를 더 붙여 ‘傑作’이란 말로 보편화 시켰다고 볼 수 있다. 桀이나 傑이나 ‘뛰어나다, 탁월하다’는 뜻은 같다. 다만 ‘사람 인
(人)’자가 없는 桀의 본래 뜻은 닭장에 쳐놓은 횃대를 가리킨다.
닭장 속의 횃대는 도드라진 물건이기에 여기에서 전화 (轉化)하여 ‘뛰어나다’ 는 뜻이 파생되었고, 人을 붙여서 ‘뛰어난 사람’이란 뜻으로 쓰인다.
사실 폭군은 아무나 폭군이 될 수가 없다. 반드시 그만한 공 (功)과 업적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그런 뒤에 오만방자해지면 그것이 폭군이 된다. 다시 말해 능력이 없으면 폭군 될 자질도 없는 것이다. 한갓 ‘개망나니’일 뿐이다. 다시 돌아가, 만약 桀이 탕임금과 같이 성인이었다면 傑作이 그대로 ‘桀作’으로 쓰여졌을 것이고, 궁실공사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을 텐데 덕 (德)없는 인물이 시대를 앞서서 행하다가 그만 패망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아무튼 그 집은 걸작 중의 걸작이었기에 이후로 어떤 왕이든 고대광실 (高臺廣室)의 기와집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꿩이 나는 것 같이(如翬斯飛, 여휘사비, 『시경』 小雅, 祈父之什 중 斯干편에서)’ 집을 지어야 왕의 권위를 드러내는 것처럼 여겼다.
걸주(桀紂)의 주지육림은 오늘날 각종의 파티 상차림으로 널리 보편화되었음을 볼 수 있는데 각종 안주를 매달아놓은 나무 장식 요리가 바로 이것이다. l <출처 : 「왜 주역이고 공자인가」 2010년 발간>

왜곡을 넘어 무지에 가까운 언론인 한문실력(3)
說難(세난)과 舌禍(설화)
우리사회가 해방이후 격동과 파란의 세월을 겪다 보니 혼돈과 혼미 속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사이비(似而非)가 올바른 것인 양 판을 치거나, 거짓된 말이나 위세를 등에 업고는 사람들을 농단(壟斷 또는 龍斷)하거나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사건들이 많다.
사건 자체도 문제지만 여기에는 정론직필(正論直筆)로 시시비비를 가려 주어야 할 지식인이나 언론인이 곡학아세(曲學阿世)하여 바로 잡지 못한 책임도 크다.
2007년 정해(丁亥)년이 ‘황금돼지 해’라며 온 사회가 떠들썩한 경우나(편집자주:2012년 壬辰년은 흑룡의 해라고 야단법석이다), 2007년 1월 󰡔문화일보󰡕 ‘오후여담’의 ‘설난(說難:세난)’이란 제목의 칼럼도 그러한 사례에 해당한다.
“어느 왕이 특정 정책을 선호한다고 하자. 만일 한 신하가 그 정책을 비판한다면 그 신하는 당장 미운털이 박힐 수밖에 없다. 왕이 그런 정책을 싫어하고 신하가 비판한 경우는 어떨까?
..... 중국 법가사상가인 한비(韓非)는 이처럼 말하기의 어려움을 주목해 ‘난언(難言)’이나 ‘설난(說難)’이라는 글을 남겼다. ....... 최근 몇년간 한국 경제가 부진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누구 탓인가.
..... 노 대통령은 과거와 달리 요즘 공무원들이 무능하다고 비난을 퍼부었던 셈이다.
..... 이용훈 대법원장도 얼마전 변호사 시절의 세금 탈루가 언론에 보도되자 이에 대해 ‘신앙인으로서 돈을 어떻게 관리해 왔는지 이해해 달라. 속인 일 없다’고 주장했다.
..... 아니면 신앙인의 탈을 쓴 채 안심하고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거나...... ”
여기서 ‘說難’의 발음은 ‘설난’이 아니라 ‘세난’이다. ‘설난’이라 읽은 것도 잘못이지만 필자의 원래 의도로 보면 제목은 ‘舌禍(설화)’이어야 한다.
‘說’이란 글자는 ‘말씀 설’ ‘달랠 세’ ‘기쁠 열’ ‘벗을 탈’로 읽히고 쓰이는 한자이다. 2,200년전 한비자가 살았던 전국(戰國)시대에는 대표적 지식인층인 유세객(遊說客)들이 제후들을 찾아가 유세(遊說)를 통해 벼슬자리를 얻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여기에서 연유하여 선거철에 후보들이 표를 얻기 위해 유권자를 상대로 연설하는 것을 ‘유세’라고 한다. 전국시대에는 유세를 통해 벼슬자리도 얻지만 잘못하면 목숨의 위협도 감수하여야 하기 때문에 한비자는 ‘說難(세난)’이란 글을 통해 당시 지식인 유세객들이 제후들을 설득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우쳐 주고자 했다.
신문 칼럼의 필자는 입만 열었다 하면 구설수에 오르는 대통령의 발언이나 문제의 대법원장의 발언을 비판하고자 한비자의 ‘세난’이란 단어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즉 필자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내용을 나타내려 했던 것 같다.
《말이란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이해시켜 설득하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상대방의 입장은 고려치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해서는 곤란하다.
심하면 상대방의 반발을 넘어 舌禍(설화)’에 휩쓸리게 된다. 또한 ‘구설수(口舌數)’에 오른다.
의도치 않더라도 설화나 구설수에 휩쓸리면 양치기 소년이 되고 만다. 이로 인한 불신 풍토는 우리사회에 혼란과 혼돈만 일으킬 뿐이다. 이는 서로에게 불행이다.》
문제는 위 필자의 글이 내용상 한비자의 ‘遊說(유세)’라는 단어와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한자의 정확한 뜻도 모르고 있다. 다만 필자는 ‘說難(세난)’이란 뜻 그대로 ‘말로 설득하기의 어려움’을 유식한 한자로 표현한 것이다.
필자는 유명한 사상가인 한비자를 인용하여 자신이 현학적임을 자랑하고자 하다가 글의 본 뜻마저 훼손하고 정당성도 잃고 말았다.
「교수신문」이 2006년 말에 한 해를 규정짓는 단어로 선정한 ‘密雲不雨(밀운불우)’란 사자성어의 쓰임도 왜곡 사례이다. 원 출처인 주역에 나오는 역사와 배경을 고려치 않고는 단순히 낱글자의 뜻만을 차용해 뜻을 전달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유교문화 전통으로 인해 정치권이나 언론 지식인들이 고사성어나 유학 경전을 즐겨 인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함부로 또는 자의적으로 사용하다보니 뜻을 풍부하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혼란과 혼선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유학경전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고 여기 저기서 번역본으로 습득한 쪼가리 지식이거나 전공자라 하더라도 엉터리로 공부하였기 때문이다. l <출처 : 「왜 한자이고 유학경전인가」 2012년 발간>

청문(聽聞)과 청정(聽政) 
우리가 살아가면서 남의 얘기를 잘 듣는 경청(敬聽)의 자세가 중요하다. 그 소리가 왜 나왔는지,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판단하려면 우선 잘 들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듣지 않는다. 듣는 훈련도 되어 있지 않고, 잘 들을 소양도 갖추고 있지 않다. 물론 시끄러워도 잘 들을 수 없다. 너무 시끄러우면 아예 귀를 닫는다.
청문회(聽聞會)가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온통 시끄럽기 때문에 사람들이 정치권을 외면하게 된다.‘청문(聽聞)’의 각 글자가 ‘듣는다’는 뜻이지만 의미는 각각 다르다. 聽은 ‘耳(귀 이) +壬(아홉 번째 천간 ‘임’으로 어두운 북쪽을 뜻함) +㥁(덕:德의 옛 글자로 삼가고 조심하는 마음을 뜻함)‘으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즉 위정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먼저 내세우지 않고 삼가 잘 듣는다는 뜻이다. 공자가 󰡔주역󰡕에서 말한 ‘정치를 한다’는 뜻의 청정(聽政)과 같은 의미이다.
聞은 門과 耳로 된 글자로 문 안팎에서 귀에 들리는 소리인 소문(所聞)을 뜻한다. 곧 민심 또는 여론에 해당한다. 따라서 聽聞은 정치를 하기 위해 민심과 여론을 청취(聽取) 한다는 뜻이다.
聽聞 두 글자에 모두 耳가 들어 있는데, 귀를 뜻하는 '주역'의 괘상(卦象)은 물(水)의 형상을 본뜬 ☵이다. 태극기에 있는 괘인데 괘명을 감(坎)괘라 한다. 물은 패인 곳으로 흐르고 빠지게 되므로 괘명인 감(坎)에는 ‘빠지다, 웅덩이’란 뜻이 있고 험난함을 상징한다. 또한 물괘(☵)의 형상은 깊숙한 구멍이 있는 귀를 상징하기도 하는데, 이에는 조용히 잘 들어야 하는데 잘못 듣거나 자의적으로 듣게 되면 험난함에 빠진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물괘(☵)가 아래위로 거듭 있는 괘가 중수감(重水坎 )괘이다. 공자는 이 괘에 대해 “군자가 항상 덕행으로써 가르치는 일을 거듭한다(君子以常德行習敎事)”고 하였다.
곧 위정자는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스스로를 낮추어 말을 내기 전에 먼저 여론을 잘 듣고 민심을 잘 살펴서 백성을 가르치고 교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자의 덕치와 위민(爲民)정치가 사라진 요즘, 정치에서 본래의 聽政은 사라지고 聽聞의 장(場)은 설전(舌戰)의 장으로 바뀌었으니, 아무도 정치권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정치인에 대한 불신만 날로 깊어진다. l <출처 : 「왜 한자이고 유학경전인가」 2012년 발간>

국새(國璽)와 도장(圖章)

 

노무현 정권때 새로 만들어진 국새(國璽)가 정확한 고증없이 만들어진데다, 그를 둘러싸고 벌어진 정치권 도장 로비로 인해 세간이 떠들썩했다.
국새란 옛날에 천자와 제후가 쓰던 도장으로 오늘날에도 국가 주요 문서의 공신력(公信力)을 높이는데 쓰인다.
우리나라 제도와 법이 서구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장 제도만은 수결(手決)인 싸인(signature) 대신에 여전히 인감(印鑑)이 쓰이고 있다.
도장 문화의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도장은 믿음의 상징이 되었고, 믿음이 강해지다보니 거의 종교적 색채까지 띄어, 도장이 호신용이나 부와 권력을 가져다주는 부적(符籍) 역할까지 한다.
부귀공명을 누리려는 사람들은 거액의 돈을 들여 만든 ‘영험한’ 도장 몇 개씩은 갖고 있다. 정치권 국새도장 로비 사건이 벌어진 배경이다.
예로부터 도장은 누가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중요시 여겼다. 주역 64괘 2만여 글자중 도장과 관련된 글자는 딱 한 글자이다. 42번째 괘인 풍뢰익(風雷益, )괘의 “흉한 일에 유익하게 씀이라. 허물이 없으니 믿음을 두고 중도로 행하되 도장으로써 공에게 보고한다(益之用凶事 无咎 有孚中行 告公用圭)”에 나오는 규(圭)이다. 즉 위정자가 정사를 행하면서 자기 직위를 넘어선 예기치 못한 일에 부딪쳤을 때, 공정하게 직권으로 처리한 뒤에, 임금에게 보고하는데 이 때 임금으로부터 위임받은 도장인 규(圭)를 쓴다는 뜻이다.
국새(國璽)는 조선의 임금들이 문서에 도장을 찍는데 사용하는 한편 국가의 권리와 정통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왕위 계승 또는 국가 권력 이양의 징표로서 사용됐다. 옥새(玉璽), 국인(國印), 새보(璽寶), 대보(大寶), 어새(御璽) 등 다양한 별칭을 가지고 있다.
규(圭)는 오행(五行)에서 믿음(信)을 상징하는 토(土)가 아래 위로 쌓여 있는 글자로 돈독한 믿음을 나타낸다.
예전에 중앙에서 지방으로 관리를 파견할 경우, 임금이 옥(玉)으로 만든 규(圭)를 하사하는데 이를 부절(符節)이라 하여 왕의 권한을 위임받았음을 보증하는 신표(信標)로 쓰였다.
오늘날의 신임장(信任狀)과 같다. 신표를 위조하거나 잘못 사용하면 이는 중대 범죄이며 직권남용에 해당한다. 온통 허물(咎)투성이인 국새와 도장 사건을 보면서 이런 도장으로 찍은 문서에 무슨 믿음이 있을까 싶다. 국가 신인도(信認度) 추락에 한 몫 한다. l <출처 : 「왜 한자이고 유학경전인가」 2012년 발간>

여름 복 (伏)날의 의미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는 전통적 가치관과 철학을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버려두고, 먹는 음식에 대해서는 ‘신토불이 (身土不二)’이라 하여 전통을 고수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서구 열강이 동양사회를 침탈하는 시기에 궁여지책으로 나온 동도서기론 (東道西器論)도 아닌 서도동기론 (西道東器論)이라 더욱 쓴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뜨거운 여름 복날에 먹는다는 개장국은 동물 애호론자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매우 인기를 끌고 있다. 그것도 허해진 몸의 기운을 보충한다는 의미로 보신탕 (補身湯)이라고 하면서 비싼 값으로 팔리고 있다.
복날때 쯤이면 개도 지쳐 별 영양가가 없을 것 같은데, 옛날부터 정말 복날이면 개를 잡아먹었을까?
조선 헌종 때 나온 ‘농가월령가’에서 여름철의 노래를 아무리 뒤져봐도 개고기 먹는다는 구절은 없다. 오히려 팔월령의 노래 가운데에 추석명절을 쇤 뒤, “며느리 말미 받아 친정집에 근친 갈 때 개 잡아 삶아 건져 떡 고리와 술병이라, 초록 장옷 남빛 치마 차려 입고 다시 보니, 여름 동안 지친 얼굴 회복 되었느냐, 중추야 밝은 달에 마음 놓고 놀고 오소.” 하였듯이 개고기는 오히려 친정 가는 며느리에게 보내는 사돈 집의 선물로 쓰였음을 볼 수 있다.
반면에 유월령에서, “삼복은 속절이요, 유두는 좋은 날이라. 원두밭에 참외 따고 밀 갈아 국수하여 집안 사당에 천신 (薦新)하고 한때 음식 즐겨 보세.” 라고 하였다.
곧 삼복에는 속절 (俗節), 곧 민간에서는 제삿날 이외에 철이 바뀔 때마다 사당이나 조상의 묘에 차례를 지내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상고시대부터 농경사회 문화가 정착되면서 전해져오던 풍습이다. 이렇듯 복날과 개고기는 별 관계가 없고, 다만 복날을 뜻하는 伏자에 ‘개 견 (犬)’자가 들어있어 오늘날 복날의 본래 의미는 사라진 채 애꿎은 개들만 몽둥이 세례(?)를 받고 있다 . 복(伏)자는 ‘사람 인 (人)’자에 ‘개 견 (犬)’자를 하하여 개가 사람 앞에 ‘엎드려 있다’는 모습으로 ‘복종하다, 숨다’의 뜻으로 쓰인다. 
절기상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골목에 初伏(초복) ·中伏(중복) ·末伏(말복)을 두고 있는데 이때 伏의 뜻은 ‘숨길 복’이다. 오행상 가을의 단단한 金이 나오기 위해서는 한여름 땅 속에 金을 감춰둔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
오행에서 金에 속하는 천간 (天干)으로는 경 (庚)과 신 (辛)이 있는데 庚은 일곱 번째(홀수)이기에 陽金, 辛은 여덟 번째(짝수)이기에 陰金에 속한다.
복날의 伏에는 뜨거운 여름날에 가을의 陽金 기운이 녹지 않도록 땅 속에 잘 감춰 두었다가 단단하게 나오도록 한 것인데, 이것은 가을날 곡식이 잘 영글기를 소망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음력상 끝 여름인 6월 중순부터 가을이 시작하는 7월초에 걸쳐 간지 (干支)상 3개의 庚日에 복날을 두고 있는 것이다.
앞서의 다른 글들에서 살펴보았듯이 황하문명권에서는 책력상으로 매 계절 사이마다 토왕지절(土旺之節)을 두어 과불급 (過不及)을 조절한다. 특히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토왕지절은 완성되어 생산된다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매우 중요하기에 특별히 삼세판으로 세 번의 복날을 두고, 사당에 제사를 지내면서 가을에 곡식이 잘 영글기를 조상님께 기원하였던 것이다.   l <출처 : 「왜 주역이고 공자인가」 2010년 발간>

글자는 겨우 읽되 문장은 이해 못해
[글과 담 쌓은 영상물 세대]
요즘 세상은 온통 영상물 시대이다. 인터넷에 밀려 활자를 점점 더 멀리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터넷과 TV, 게임과 휴대전화에 익숙해진 ‘활자이탈(活字離脫) 세대’의 학습ㆍ의사소통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이 밝혀졌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글과 책에서 멀어지면서 자기 생각을 전달하는 작문은 물론, 남이 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독해 능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창의력과 사고능력이 떨어지는 한편 정서와 심성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초등생 독해력 평가 및 쓰기 실력 형편없어
일선 학교 교사들이 하나같이 ”학생들이 제대로 읽지 못하고 더듬거려 수업시간에 교과서를 소리 내서 읽히지 못할 정도”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2010년 서울 지역 5개 초등학교 4학년 학생 1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독해ㆍ작문 및 읽기ㆍ쓰기 능력 평가 조사결과는 충격적이다. 또한 조선일보가 한국교총에 의뢰하여 초ㆍ중ㆍ고 교사 44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66.6%의 교사가 ‘과거에 비해 글을 읽고 이해하는 학생들의 능력이 떨어졌다’고 응답했다.
‘학생들의 독서량과 독서의 질이 떨어졌다’는 응답은 59.8%, ‘글짓기, 문장 이해력, 언어 구사력이 신체ㆍ정신 발달보다 낮다’는 응답은 76.5%였다.
전문가 연구에 따르면, 독해력이 떨어지면 국어 뿐만 아니라 사회ㆍ영어ㆍ과학ㆍ수학의 학업성취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글 읽기에 소홀하면 어느 과목에서든 좋은 성적을 거두기 어렵다는 뜻이다.
조선일보가 2011년 한국연구재단에 의뢰해 한국 대학에서 연구ㆍ강의하는 해외 석학(碩學) 87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한국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질문을 자주 한다”고 답한 비율은 6.9%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은 하나같이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주입하고는 점수 위주로 실력을 평가하는 한국식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그러한 교육방식은 산업화 시대의 인력을 키울 수는 있을지 몰라도 지적(知的) 수준과 창의력을 높여 주지 못해 혁신과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은 키워 주지 못한다고 경고하였다.
성균관대 이명학 교수가 ‘교양국어’를 듣는 올해 신입생 384명의 漢字 능력을 시험했더니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쓰지 못하는 학생이 78명이나 됐다.
아버지와 어머니 銜字(함자:이름)를 한자로 적지 못하는 학생은 각각 77%, 83%였다. 열 명 가운데 두 명은 제 이름도 못 쓰고, 열 명 중 여덟 명은 자기 부모 이름자도 못 쓴다는 이야기다. 다른 대학도 비슷할 것이다.
이런 지경이니 ‘抱負(포부)’는 7%, ‘榮譽(영예)’는 4%, ‘折衷(절충)’은 1%만 올바로 읽었다는 것은 화제도 되지 않는다. 한자 쓰기에선 ‘신입생(新入生)’은 71%, ‘경제(經濟)’는 96%, ‘백과사전(百科事典)’은 98%가 못 썼다. ‘대학교(大學校)’를 ‘大字利’, ‘지하도(地下道)’를 ‘土下○’라고 써낸 학생도 있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학교에서 한자를 제대로 배우지 않는다. 국어 교과서에서도 한자는 거의 사라졌다. 초ㆍ중학교는 학교장 재량으로 일부 학교에서 가르칠 뿐이다.
고등학교 2, 3학년 선택과목에 한문이 있지만 수능에서 한문을 택하는 학생은 거의 없고 언어 영역은 한자를 출제하지 않는다.
우리말 전체 어휘의 70%가 한자어이고 개념이나 抽象(추상)명사는 대부분 한자가 포함돼 있다. 인문ㆍ사회ㆍ자연과학의 학문 용어도 거의 모두 한자어다. 어휘를 구성하는 한자의 뜻을 모른 채 音(음)만 갖고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回歸(회귀)’ ‘歸還(귀환)’ ‘歸巢(귀소)’ 같은 단어들은 ‘歸(귀)’라는 한자가 ‘돌아간다’는 의미라는 것을 알면 각 단어의 뜻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歸(귀)’의 뜻을 모르면 기계적으로 따로따로 뜻을 외워야 한다.
동아시아의 공통 표기수단인 한자는 국제 경제활동에서도 중요한 의사 소통 수단이다. 한자를 배우는 것과 한글을 발전시키는 것은 볏단처럼 서로 기대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 옛말을 가꾸고 다듬으려면 2000년 가까이 한국인이 생각하고 공부하고 그 결과를 축적하고 전달하는 수단이었던 한자를 깨치지 않으면 안 된다. l <출처 : 「왜 한자이고 유학경전인가」 2012년 발간>

한자·한글 반응하는 뇌 부위 달라!, 한자는 뇌구조 활성화시켜
(1) 사람들이 한글과 한자를 읽을 때 뇌의 각기 다른 영역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한글보다 한자를 더 오래 기억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한글과 한자 교육을 병행하면 뇌의 다양한 부위를 활성화 할 수 있을 전망이다.
16일 가천대 뇌과학연구소 연구팀에 따르면 실험을 통해 한글과 한자를 읽을 때 반응하는 뇌 부위와 인지력에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대한의학회의 국제학술지(JKMS) 최근호를 통해 이를 밝혔다.
실험은 한자를 읽을 줄 아는 평균 28세의 성인 남녀 12명을 대상으로 뇌에 라디오파를 전사해 되돌아오는 전자기파를 측정해 진단하는 기능자기공명영상(fMRI) 이용 방식으로 이뤄졌다.
연구팀은 앞서 자주 접하는 한글단어 150개와 한자교육진흥원 기준 5급 수준의 2음절 한자 단어 150개를 선정했고, 이들에게 한 단어당 1초씩 30개 단어를 30초 동안 발성 없이 읽게 한 뒤 30초간 쉬도록 했다.
그 결과 한글과 한자를 읽을 때 모두 뇌의 좌반구를 이용하지만 각기 다른 부위가 활성화됐다. 한글은 좌반구의 각이랑과 하전전두엽, 한자는 좌반구의 브로카영역과 전운동영역, 상두정엽, 방추상화를 포함한 2차 시각피질 부위의 움직임이 증가했다.
연구팀은 한자와 한글에 대한 기억력 차이도 실험했다. 평균 27세의 남녀성인 12명을 대상으로 ‘美玉(미옥)’, ‘貞玉(정옥)’, 현자, 동은 등 한자와 한글이름 40개를 무작위로 보여준 뒤 1분, 10분, 120분 간격으로 이를 다시 섞어 보여주고 기억나는 이름을 찾도록 했다.
실험 결과 한자이름은 한글이름보다 인지 기억이 오래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자는 1분, 10분, 120분 후 인지기억의 정확도가 0.96, 0.88, 0.79로 나왔지만 한글은 모두 그보다 낮은 0.52, 0.28, 0.12로 측정됐다.
연구팀은 인간의 인지 기능이 시각 위주로 진화됐고, 한자는 한글보다 시각적 측면이 강조된 상형문자이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연구 책임자인 김영보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는 한자와 한글의 뇌 활성화 영역이 서로 다른 만큼 학생들에게 한자와 한글을 병행 교육한다면 더 많은 뇌 영역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일보 2014.11.17, 연합뉴스 2014.11.16.)
한자 사용하면 뇌 활동 활발, 암기력과 이해력 높아져(중앙일보  중앙선데이 2011.3 .27-211호)
(2) ‘뇌 박사’ 조장희(74) 가천의과학대 뇌과학연구소장의 요즘 화두는 ‘한자’다. 한문학자들이 주장해 온 ‘한자를 많이 알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가설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최근 2년간 자기공명영상촬영(MRI) 판독결과와 씨름하고 있다. 이유는 “한자 공부가 참 필요한데, 이를 과학적으로 사람들에게 설득하고 알리기 위해서”다.
- 왜 한자를 연구주제로 다뤘나.
“해외 생활을 청산하고 가천의과학대에서 교편을 잡고서 충격을 받았다(조 소장은 2005년 가천의과학대에 부임했다). ‘공부 잘하는’ 의대 학생들조차도 한자에 대한 소양이 부족하다는 점에서다. 신문을 펼치니 지면에서 한자가 사라졌다. 기사에 나온 단어의 정확한 뜻을 알기 어려웠다. 그래서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 연구는 얼마나 진행됐나.
“약 2년 전부터 3명의 연구원과 함께 MRI로 촬영한 뇌 사진을 판독하면서 뇌와 한자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한자를 인식할 때 뇌의 모습을 MRI로 촬영해 이미지를 분석하고 있다. 올해 1~2월 한자를 잘 아는 4명과 그렇지 못한 4명 등 총 8명의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임상시험도 진행했다.
 MRI 판독 결과 한자에 대해 식견이 높은 층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단어의 뜻 풀이를 더 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문을 잘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공부’ ‘공해’ 같은 단어를 한문으로 보여주면 80%의 정답률을 보였지만, 한글로 보여주니 40%밖에 맞히지 못했다. 단어 40개를 순서대로 주고 암기를 시험한 결과에서도 한글보다 한자의 암기력이 더 좋았다.
- 한자를 사용하면 암기력과 이해력이 높아진다는 얘긴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3) “뇌 안에 있는 ‘연결고리’ 격인 시냅스의 활동이 더 활발해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자를 사용하면 언어ㆍ시각과 관련한 뇌의 부분을 더 사용하게 돼 머리가 좋아지는 것이다.”
"漢字 암기와 성조 구분 대뇌발달에 좋은 영향”
중국어를 배우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중국인의 대뇌 구조가 서구인보다 더 발달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으며 이는 중국어와 관련이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독일 괴팅겐 대학과 상하이 화둥(華東)사범대학은,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중국 학생과 유럽 학생 200명을 대상으로 연속된 숫자와 문자, 색깔 등에 대한 기억력을 측정한 결과, 중국 학생이 월등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대뇌의 정보처리 능력에서 중국인들이 훨씬 우수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왜 그럴까? 연구진은 한자가 알파벳을 사용하는 서구어보다 빠른 인식작용과 발음을 가능케 한다고 분석했다. 빠른 발음은 빠른 정보처리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연구진은 또 수많은 한자를 익히는 것 자체가 이미 고도의 지적 능력을 요하는 훈련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홍콩 대학과 미국 리치먼드 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중국인들이 어렸을 때부터 상형문자인 한자를 익힘으로써 좌뇌와 우뇌를 고루 발달시키고 대뇌의 광범위한 구역을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적인 뇌(腦)과학자로 알려진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 조장희(趙長熙) 소장(사진)은 “40년 넘게 해외에 있다가 들어왔더니 사람들이 한자를 안 써 한국인이 문맹(文盲)이 되어 있더라”는 말부터 했다.
“서로 얘기들은 하지만 뜻을 전혀 몰라요. 뜻을 모르니 응용을 못해요. 왜 한자를 안 쓸까요. 아마 일본 식민지였다는 콤플렉스가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한자는 라틴어처럼 중국의 글자가 아니라 동양의 글자입니다. 과학기술 서적은 한문을 안 쓰면 이해를 못해요.”
조 소장은 한자교육과 뇌의 활성화에 대한 연구를 수년간 진행하고 있다. “뇌 영상으로 찍어 보니, 한글로 읽을 때보다 한자로 읽을 때가 뇌의 많은 부분에서 활성화가 이뤄졌다는 뜻입니다. 단어를 한문으로 기억했을 때는 뇌의 여러 군데에서 활성화가 이뤄졌지만, 한글로만 기억할 때는 뇌의 한군데만 활성화되었어요.”
“ (한자를 모르면) 중국과의 국제경쟁에서 우리가 지는 겁니다. 그러니 한자를 배우는 것이 국가 존폐와도 관련이 있어요. 비록 뇌과학자이지만 일부 쇄국적(鎖國的)인 언어학자들이 한글전용을 만든 것 같아요.”(월간조선 2013년 10월호 「‘한자공부하지 말자’는 한국의 知的수준」에서 발췌)
참고 : 세계의 교육현장(EBS) : 2011년 5월3일 방영
이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영어 조기교육을 시킬 일이 아니라 한자 조기교육을 시켜야 함이 입증되었다.
 (4)영국의 종합일간지 The Times는 중국인의 대뇌 구조가 서구인보다 더 발달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으며 이는 한자와 관련이 있다고 보도했다.
 <도표 설명 : 북아일랜드 얼스터 대학의 리처드 린 교수와 핀란드 헬싱키 대학의 타투 반하넨 교수의 공동 발표(2002년 발간 「IQ와 국부」)에 의하면, 국가별 평균 지능지수에서 1~5위권의 나라가 모두 한자문화권이다.>
독일 괴팅겐 대학과 상하이 화둥(華東)사범대학은,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중국 학생과 유럽 학생 200명을 대상으로 연속된 숫자와 문자, 색깔 등에 대한 기억력을 측정한 결과, 중국 학생이 월등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대뇌의 정보처리 능력에서 중국인들이 훨씬 우수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왜 그럴까? 연구진은 한자가 알파벳을 사용하는 서구어보다 빠른 인식작용과 발음을 가능케 한다고 분석했다. 빠른 발음은 빠른 정보처리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연구진은 또 수많은 한자를 익히는 것 자체가 이미 고도의 지적 능력을 요하는 훈련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도표 설명 : 세계 주요 대학을 대상으로 영국의 대학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가 실시한 대학 종합 평가에서 상위 5위권이 모두 한자문화권의 나라들이다. >
또한 홍콩 대학과 미국 리치먼드 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중국인들이 어렸을 때부터 상형문자인 한자를 익힘으로써 좌뇌와 우뇌를 고루 발달시키고 대뇌의 광범위한 구역을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 2007.03.16.)
또한 중고등부 국제 올림피아드 수학 경시대회를 비롯하여 각종 과학 경시대회에서 동북아 한자문화권 국가들(韓,中,日)이 1, 2, 3위를 차지하고 있다.
(5) EBS(교육방송)에서 방영된(2011.05.03.) 다큐멘타리 「세계의 교육현장」 일본편에서 다룬 ‘어릴수록 쉬운 한자교육’ (위 동영상 참고)에 의하면,
5세 유치원생들 대상으로 특정 단어의 한자(燕, 兎, 鼠, 狐)와 같은 뜻의 단어인 히라가나(つばめ,うさぎ, ねずみ,きつね)와 영어(swallow, rabbit, rat, fox) 중 어느 것을 더 잘 기억하는지에 대한 실험이 나온다.
실험결과는 16(한자) : 5(히라가나) : 5(영어)이다.
또한 자동차 운전자(성인)를 대상으로 한 고속도로 도로표지판 단어
(注意 :ちゅうい : caution)인식 실험에서도 한자인식이 훨씬 빠르다는 결과가 나왔다.
운전자가 주행하면서 ‘注意’라는 한자 표지판를 인식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0.06초에 불과하였으나 히라가나인 ‘ちゅうい’를 인식하는데는 0.7초 걸렸다. 반면 영어인 ‘caution’ 표지판을 인식하는데는 1.5초가 걸렸다. 이 실험결과를 토대로 일본 교통성은 3개 문자로 된 도로표지판 중 한자로 된 표지판이 눈에 가장 잘 띄도록 크게 만들어 설치하였다고 한다.

東西와 京을 통해서 본 한자의 기원
서울(京:서울 경)이 북한산 쪽의 높은 지대가 아닌 평지에 자리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시골(지방)에서 서울로 갈 경우, 시골사람의 입장에선 ‘올라 간다’라고 하고 서울사람 역시 시골에서 아무개가 올라 온다’라고 말한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갈 경우, 서울사람은 ‘내려 간다’라 하고 시골사람 역시 서울에서 아무개가 내려 온다라고 한다. 지리적으로 서울을 가장 높은 곳으로 보는 기준에서 나오는 표현이다.
또한 기차역에 가면 아예 서울 방향의 기차이면 ‘상행선(上行線)’으로, 서울에서 내려가는 기차이면 ‘하행선(下行線)’으로 나눠 도착시각, 출발시각을 적어놓고 있다. 서울은 항상 상경(上京)하는 곳이고, 지방은 항상 내려가고 낙향(落鄕)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는 뜻글자인 京(높을 경, 서울 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서 京과 邑에서 살펴보았듯이 옛날에는 마을이 높은 곳에 형성되었고, 통치자 또는 최고 우두머리 역시 높은 곳에 성(城)을 짓고 살았다. 이에 京은 언덕 위에 지어진 성문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진 글자이다.
이런 곳에 마을을 조성하고 글자에도 그대로 반영시킨 先人들은 누구였을까?
주역의 이치에 입각하여 뜻글자인 한자를 공부하다보면 한자(漢字)가 과연 중국 화하족의 글자였을까하는 의문이 많이 든다. 한자 속에 담긴 문화가 화하(華夏)족보다는 동이족의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을 여행해 본 사람들은 보아서 알겠지만 화하족이 주로 살았던 땅은 드넓은 평야지대이다. 화하족은 광활한 천지(天地)라는 자연환경으로 인해 도교가 흥성하거나 음양개념이 주로 발달하였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태극기, 윷놀이, 일월화수목금토의 명칭, 한글창제 등에서 보듯이 음양과 오행 문화가 다 같이 발달했다. 단군조선과 동이족의 문화를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중국 땅이라도 동이족이 살았던 지리적 환경은 화하족과는 다르다. 동이족은 황하강 주변과 그 위쪽으로 오늘날의 산동성 일대와 한반도와 그 위쪽 지역 모두를 아우르는 지역에서 생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동이족은 화화족과 같이 농경문화를 기초로 하면서도 화하족과는 달리 산과 들판, 바다와 강이 적절히 어우러진 자연환경을 생활무대로 삼았다는 뜻이다.
이에 동이족은 천지자연의 이치인 음양오행의 이치에 매우 밝았다. 동이족인 복희씨가 음양의 이치에 따라 괘(卦)를 지은 것이나, 오행의 이치를 최초로 담고 있는 문헌인 홍범구주는 모두 동이족으로부터 나왔다. 동이족 출신인 순임금은 역산(歷山) 아래서 밭을 갈고 바닷가 쪽으로 가서 그릇도 굽고 물고기도 잡았다고 한다.
하(夏)ㆍ은(殷)ㆍ주(周) 3국 중 은(殷)나라는 동이족이 세웠다. 은나라 유적지에서 발굴된 갑골문자가 한자의 어원이라는 사실은 중국 학계에서도 공인된 바이다.
해가 뜨는 동쪽은 산이 많은 지역이기에 동산에 떠오르는 해 모양을 담아 東으로 표현하고 아침을 旦자로도 표현할 수 있으며 저녁의 모습은 광막한 서쪽 들판으로 지는 西의 모양으로 나타냈고 ‘저물 모(暮)’ 또한 광막한 초원으로 지는 빛을 본 뜬 글자이다.
또한 황해를 하나의 큰 호수로 나타낸 大澤(대택)이란 말도 산동성 일대를 생활무대로 한 동이족이 아니면 표현하기 어려운 단어이다.
한편 지리적 환경으로 산동성 일대와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 발달한 것이 도읍지의 성곽이다. 특히 고구려인들은 도읍지 외에도 곳곳에 산성을 쌓을 정도로 산성이 발달한 나라였다.
국가명칭에 있어 고구려(高句麗)는 엄밀히 말하면 高丘麗(고구리)로 보아야 한다. 앞서 邑 글자에서 四邑爲丘라고 하였듯이 高丘는 높은 곳에 있는 도읍지이고 麗는 ‘걸릴 리, 붙을 리’의 뜻이기 때문이다. 곧 도읍지가 높은 구릉에 붙어 있는 나라라는 뜻이다.
고구려인들의 선조는 부여인들이고 부여인들의 선조는 동이족이다. 단군은 태백산 신단수(神檀樹) 아래에서 신시(神市)를 열은 환웅(桓雄)과 웅녀(熊女)의 자손이다. 단군은 조선을 건국하고 평양성에 도읍지를 정하였다가 백악산 아사달로 옮겼다고 한다. 모두 高丘이고 京이다.

반면에 화하족으로 대표되는 周나라는 京이 들어가는 동경(낙양)과 서경(장안)을 도읍지로 하였으나, 동경과 서경이 실제로는 언덕이 아니라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는 화하족이 언덕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는 京이라는 글자를 만든 것이 아니란 뜻이다.
애초에 동이족이 언덕이란 뜻을 지닌 글자인 京을 비롯해 대부분의 한자를 만들었고, 화하족은 동이족이 만든 한자를 같이 사용했다고 본다. 다른 많은 한자 속에도 옛날 동이족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점으로 보아, 동이족이 한자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l <출처 : 「종요의 대서사시 천자문 易解」 2008년 발간>

井田’은 농경문화의 토대를 담아낸 글자.
상고시대부터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井田法 혹은 井田制를 통해 토지(경작지)제도를 비롯한 각종의 사회제도를 정립하였다.
이후 정전제와 그 속에 담긴 원리는 국가운영의 기초가 되었다. (앞의 글에서도 살펴 보았듯이) 뜻글자인 한자는 글자 그 자체에 철학적인 의미와 역사적 배경이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정전제의 井과 田의 뜻이 내포되어 있는 耕(밭갈 경) 思(생각 사) 佃(사냥할 전) 里(마을 리) 異(다를 이) 共 (같을 공) 界(경계 계) 甘(달 감) 丹(붉을 단)의 어원이 되는 井이나 田은 단순히 ‘우물’이나 ‘밭’만을 뜻하지 않는다.
인류가 농경생활을 하면서 문명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우물과 토지경작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물을 통해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받지 못하거나, 토지경작이 원만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고을(邑 )자체가 형성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농경사회에서는 샘물이 잘 나오는 우물과 농사짓기 좋은 토지를 중심으로 읍이 형성되었다. 그런 점에서 ‘井’은 상형문자이면서 농경사회의 특성을 잘 담고 있는 글자이다.
井의 原字인 ‘丼’의 가운데에 있는 ‘ ․ ’은 샘물이 용솟음치는 깊숙한 물구멍을 뜻하며, 丼의 바깥 글자인 井은 우물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우물 안에 엇갈려 쌓은 침목(枕木)의 모습을 본뜬 글자이다.
농경사회에서 식생활의 근본은 곡물을 생산하는 토지경작에 있다. 이에 곡물을 생산하는 논밭을 마을 사람들에게 적절히 잘 배분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이때 실시된 토지분배제도가 井田法이며 이에 井田制가 농경생활의 초기부터 이루어진 제도임을 알 수 있다.
정전도 그림에서 보듯이 정전제는 가운데(田)를 중심으로 총 아홉 구역의 경작지를 조성하여 여덟 집을 한 단위로 하여 경작케하는 제도를 말한다.
< 그림의 정전도본은 也山 李達(1889~1958)선생이 정전법과 관련된 문헌을 두루 살펴 만든 것이며 현재 (사)동방문화진흥회의 로고로 사용한다>
여덟 구역의 경작지는 각 집이 농사짓는 사전(私田)에 해당하며, 가운데(田) 한 구역은 여덟 집이 공동으로 경작하는 공전(公田)이다.
‘公’자가 八+厶(사사로울 사)로 이뤄진 것 역시 정전법의 이치를 담고 있다. 사전과 공전을 경작하는 여덟 집은 우물을 공동으로 사용하면서 한 단위의 읍을 이루기도 한다.
따라서 田에는 정전도에서 보듯이 밭의 개념뿐만 아니라 ‘한 가운데’ 즉 ‘중심’이라는 의미가 들어가 있다. 가령 ‘理’는 나라 가운데(田)에 있는 임금(王:王자 또한 田자에서 왔다)이 땅(土)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이에 정전제 원리는 국가 운영과 토지제도에 널리 적용되었다.
『천자문』의 ‘九州禹跡(구주우적) 百郡秦幷(백군진병)’은 정전법에 의거해 전국의 행정단위를 나누고 토지를 분배하여 조세수입을 거두어 국가를 운영했음을 나타낸 구절이다.
맹자는 등문공이 나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묻자 하ㆍ은ㆍ주의 토지ㆍ조세제도를 거론하며 정전법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나라 한 가운데에 수도 한양을 두고 전국을 팔도(八道)로 나눈 것이나 궁궐을 구중(九重) 궁궐이라고 칭하는 것 또한 정전법에 의거한 것이다.
「世宗御製訓民正音(세종어제훈민정음)」에 나오듯이 한글의 자.ㆍ모음 또한 모두 정전도에서 따왔다. 井田圖에서 한자의 어원이 유래하고 있는 사례도 많다.
‘一’부터 ‘十’까지의 글자는 물론 앞에서 예시한 글자를 포함하여 기본이 되는 한문의 여러 글자들이 모두 井田의 이치에 근거하여 만들어졌다. l <출처 : 「종요의 대서사시 천자문 易解」 2008년 발간>

문화 유산에 담긴 우리 용어 : 주춧돌 (礎石)
작성자法故創新
역사와 전통의 문화유산 속에 담긴 '주춧돌'의 의미를 잘 계승해야
아이들이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표현하는 상징적 언어 가운데 지난 번에 얘기한 ‘동량이 되라’는 말 외에도 ‘주춧돌이 되라’는 말이 있다.
주춧돌 역시 동량(棟樑, 기둥과 대들보}과 마찬가지로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부재 가운데 하나이다.
예전에는 집터를 닦을 때 땅바닥을 반석처럼 단단하고 평평하게 잘 고른다. 이것을 지경을 다진다고 하는데, 커다란 돌을 동아줄로 매고 여러 사람이 들었다놓았다 하며 지반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기둥을 세우게 되는데, 이때 기둥을 그냥 땅 바닥 위에 세우면 습기로 인해 쉽게 썩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기둥을 받칠 넓적한 돌을 놓게 된다.이것을 주춧돌이라고 하는데 한자어로는 주초석(柱礎石) 혹은 그냥 초석(礎石)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주춧돌은 집을 오랫동안 튼튼하게 지탱시켜주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부재가 된다. 나라를 하나의 커다란 집에 비유할 때 어린이들에게 ‘나라의 초석이 되라’는 말은 곧 나라를 받쳐줄 훌륭한 인재가 되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궁궐이나 절집 혹은 서원이나 전통 한옥들을 답사하다보면 다양한 모습의 주춧돌을 만날 수 있다. 흔히는 집의 아름다움에 반해 주로 지붕과 문에 시선을 많이 주고 오는데 잠깐 눈길을 내려 기둥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을 살펴보면 그 다양함과 조선인들의 섬세한 예술적 감각에 다시 한번 고개가 숙여진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상에 따라 기둥을 둥글게 깎으면 주춧돌은 네모 모양이다. 또한 기둥이 네모지면 주춧돌은 둥글게 접맥시킨다. 또는 주춧돌 자체가 네모지면 위는 둥근 모양으로 다듬는다. 그외 팔방을 의미하는 팔각 모양, 불교의 정토세계를 상징하는 연꽃 문양 등 다양한 모습의 주춧돌을 접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다. 물가에 세운 정자나 위용을 자랑하려는 누각의 주춧돌은 마치 기둥처럼 높게 다듬어 올린 뒤 나무 기둥을 세우기도 한다. 뭐니뭐니해도 주춧돌의 으뜸은 평평한 자연석을 있는 그대로 혹은 대강 다듬어 갖다 쓴 것이다.  거기에 맞춰 나무 기둥을 울퉁불퉁하게 깍아 세웠다. 그러나 우리 옛 선인들의 자연관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는 주춧돌 그 모양이 매우 촌스럽고 납득이 잘 안 되었다. 저깟 주춧돌 하나를 가지고 저렇게 어설프게 썼는가 하는 심정이었다. 심지어 문화의 열등적인 모습으로 비쳤었다. 그러나 자연을 닮으려는 선인들의 마음을 알고 난 뒤, 그리고 거기에 맞춰 그렝이 공법(그렝이 공법의 최고는 불국사 축대의 자연석과 그 위를 마감지은 장대석으로 내진성이 뛰어나다고 한다.)을 발전시켜온 문화가 지금은 자랑스럽고,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주춧돌에 더욱 정감이 간다.
(요즈음) 교육개혁이란 말이 나올 때마다 기초학문의 부실화를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나라의 기반 산업인 농업은 이미 피폐 일로를 걷고 있다고 한다.
기초학문의 부실화와 농촌 사회의 피폐는 곧 국가 경쟁력의 부실화를 초래할뿐더러 궁극적으로는 선진 자본국의 예속화로 치닫는 길이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지원책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나라의 앞날이 심히 우려스러울 뿐이다. 여기서 ‘기반’이니 ‘기초’라는 말도 터를 다지고 주춧돌을 놓는 일이다. 어린이들에게 나라의 주춧돌이 되라고 해놓고, 후에 농업이나 기초학문에 종사하는 일이 배곯는 직업이 된다면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l [출처 :  「노원우리신문」 104호, 2001년 7월7일자]

문화 유산에 담긴 우리 용어 : 추기(樞機 : 지도리, 돌쩌귀, 문틀)
작성자法故創新‘추기(樞機)’를 통해서 본 문(門)의 상징성
가톨릭에서 교황 다음의 성직자로 추기경(樞機卿)을 두고 있는데, 이때 쓰이는 추기경의 정확한 말뜻을 알고 있는 이는 드문 것 같다. 교황이나 주교, 신부, 수녀 등의 직책명은 글자 그대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데, 지도리 추(樞)에 기틀 기(機), 벼슬 경(卿)을 쓰는 추기경은 얼른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명칭이다.
직책으로야 교황 선출권과 피선거권이 있는 교황 다음의 최고 성직자인줄이야 알지만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카디날(cardinal)을 추기경으로 번역한데는 필시 아주 중요한 뜻을 담고 있을 것이다. 경은 존칭의 의미로 붙였다지만 ‘추기(樞機)’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동양 사상의 가장 근본을 이루면서도 일반인들에게 편향되게 알려진 [주역]의 계사전에서 공자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있다.
言行君子之樞機 樞機之發 榮辱之主也  言行 君子之所以動天地也 可不愼乎
(언행은 군자의 추기니, 추기의 발함이 영화와 욕됨의 주됨이 되느니라, 언행은 군자가 이로써 천지를 움직이는 바니 어찌 감히 삼가지 아니하랴)
바로 주역에서 추기(樞機)란 말이 언급되고 있는데 언행을 군자의 추기에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다. 추기경은 서양식의 君子라고 할 수 있다. 추기경은 말과 행동으로 세상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천지를 감동시키는 힘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그를 통해서 가톨릭의 하나님과 만날 수 있고 천당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자님은 왜 언행을 추기(樞機)에 비유했을까. 추기의 명칭을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그 뜻을 새겨보자.
‘추(樞)’는 돌쩌귀나 문장부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순우리말로는 지도리라고 한다. 우리 문화가 급격히 서구화되면서 점차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가는 말들이자 전통 가옥에서라면 쉽게 볼 수 있는 문과 관련된 구조물 명칭이다.
돌쩌귀는 방문이나 창문을 여닫기 위해 문설주와 문짝에 달아 놓은 쇠붙이로, 암짝은 고정된 문설주에, 수짝은 동적인 문짝에 붙인다. 그래야만이 햇볕 쨍쨍한 추석 전에 창호지를 바르기 위해 문짝을 떼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에야 서양식 구조물이기 때문에 돌쩌귀 대신 경첩을 단다. 현장에서 일하시는 목수분들은 돌쩌귀를 조선경첩이라고 한다.
문장부란 대문이나 광문(요즈음의 창고문에 해당)의 문짝처럼 굳이 떼었다붙였다 할 필요가 없는 큰 문을 여닫기 위해 널문짝의 축 아래 위로 상투같이 다소 길게 깎아 문둔테 구멍에 끼울 수 있게 만든 부분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 ‘추(樞)’ 곧 지도리란 문을 여닫기 위한 장치들을 말하는데, 여기에도 어김없이 陰陽이 조화를 이뤄 하나의 장치를 완성시킨다. 돌쩌귀의 암수 구분이 그렇고, 문둔테와 문장부가 그러하다. 암 곧 陰이 정(靜)적인 장치이고, 수 곧 陽은 동(動)적인 작용을 한다.
기틀을 뜻하는 ‘기(機)’는 사전적 의미로는 ‘일의 가장 중요한 고동’이란 뜻이다. ‘고동’은 기적 소리 혹은 기계 따위를 움직여 활동시키는 장치 등 여러 가지 뜻이 있는 순우리말이다. 하지만 이런 사전적 의미 말고도 집을 지을 때 기틀이란 바로 문을 달기 위한 틀을 말한다. 즉 문인방⋅문지방⋅문설주를 통틀어 기틀이라고 한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추기(樞機)는 문(門)틀 전체를 의미한다. 즉 문(門)이라고 하면 보통은 주변의 장치를 모두 뺀 네모난 문짝만을 연상하지만 ‘추기(樞機)‘라 할 때는 여닫는 기능과 문이 문답기 위한 기틀까지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門‘틀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추상적 의미로는 세상과 통하는 門이기도 하다. 나의 문(門)을 닫아둔다는 것은 아무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나의 문(門)을 연다는 것은 말하고 행위하는 것이다. 나의 門을 어떻게 열고 닫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가 결정이 되는 것이다.
공자가 言行을 군자의 추기(樞機)에 비유한 이유이다. 門은 안과 밖, 나의 영역과 남의 영역, 이쪽과 저쪽을 확연히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곧 門은 닫기 위해서도 만들었지만 열기 위해서도 만들었다. 그러나 아무나 함부로 열 수 있는 門은 아니다. 남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은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만 열고 들어갈 수 있지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도둑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성경에도 보면 ‘…문(門)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나는 양의 문(門)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한복음 10장 중에서)‘고 했다. 바로 이 대목과 주역 계사전의 ‘언행(言行)은 군자의 추기(樞機)이며 추기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영욕이 교차된다‘는 구절에서 ‘카디날’이 ‘추기경’으로 번역된 것 같다. 동양과 서양을 대표하는 최고 경전의 멋진 만남이다.
문(門)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우리 나라처럼 다양한 형태의 문(門)이 발달한 문화도 드물 것이다. 앞서 말한 영역 구분과 출입 기능 뿐만 아니라 환기 역할도 하고, 누가 왔는지, 바깥 날씨가 어떤지 내다보는 기능도 있다. 또한 부와 권위에 따라 그 형태도 다양하다.
성역을 표시하는 홍살문, 대원군이 쇄국 의지를 담아 강화도 바닷가에 세운 해문(海門防守他國船愼勿過, ‘해무방수타국선신물과‘라고 쓰인 비로 열강들의 개항 압력과 함께 침략이 한창일 때 덕진진 앞에 세워 두고 다른 나라 배가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경고하고 있다.) 등은 판문(板門, 널짝문이라고도 한다)이 없는 상징적인 의미의 문(門)이다.
사찰에는 일주문을 세우고 부처님의 신성한 영역임을 표시하고 있다.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며, 외부 세력의 침입을 감시할 수 있게 만든 문으로는 성곽의 문(門)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조선시대 한양의 4대문(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 숙정문)과 수원 화성의 4대문이 볼 만하다. 4대문 사이사이에는 小門을 두었다. 특히 궁궐의 문(門)은 상하신분 질서에 따라 출입하는 문(門)도 다 다르게 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예로 들자면 가운데는 왕만이, 동쪽 문은 文人이, 서쪽 문은 武人이 출입할 수 있게 삼문의 형태를 두었다. 
세력가들의 저택이나 서원 등에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솟을대문을 만들어 부와 권위를 상징하려 했고, 가난한 백성들은 초가집에 싸릿가지나 나뭇가지, 대나무 등을 엮어서 삽짝문을 달았다. 이 삽짝문은 높이도 나지막하여 굳이 문을 열지 않더라도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살가운 맛이 있다. 집의 규모에 따라 門이 결정되는 것이지 고래등 같은 집에 삽짝문이나 삼칸 초가에 솟을 대문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큰집의 경우는 정문인 대문을 통과하고도 한두 개의 門을 더 지나야만이 방에 이르는데 방문도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꽃문, 살문, 외짝문, 분합문, 삼분합문, 사분합문 등 집 주인의 의지에 따라 다채로운 형태들이 구현되어 답사 다니는 이들의 눈맛을 즐겁게 해준다.
문(門)이란 저절로 열리는 것이 아니라 열려는 의지를 갖고 열 때만이 열린다는 데서 다양한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일례로 “입은 재앙을 초래하는 문(門)이요, 혀는 몸을 죽이는 도끼이다.”라며 자신의 폭정을 간하는 신하들을 죽인 연산군의 행위에서도 문(門)은 의지에 따라 열린다는 사실을 악용한 사례이다. 어쨌거나 입은 함부로 놀려서는 안되며 말은 가려서 할 줄 알아야 한다. 어린 아이들부터 만인의 모범이 되어야 할 정치인들에 이르기까지 살벌한 단어를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공자님이 말씀하신 ‘言行은 군자의 추기(樞機)‘라는 말을 곰곰 씹어보아야 할 것이다. l <출처 : [왜 주역이고 공자인가 ]  2010 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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