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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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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周易)에서 자연 진리(眞理)와 인간의 도리(道理)를 탐구 

图片信息 御纂周易折中二十二卷

주역(周易)은 오경(五經)의 하나이다. 만상(萬象)을 음양 이원으로써 설명하여 그 으뜸을 태극(太極)이라 하였고 거기서 64괘를 만들었는데, 이에 맞추어 철학(哲學)ㆍ윤리(倫理)ㆍ정치상(政治上)의 해석(解釋)을 덧붙였다.  

두루 주(周)자는 형부인 입(口)과 보조형부인 ‘멀 경(冂)’ 및 ‘흙 토(土)’라는 의미들이 모여 ‘두루(周)’라는 뜻이 된 회의자(會意字)이다. 그러니 주(周)자는 멀리(冂) 있는 흙(土)밭에 씨앗을 뿌릴 수 있게 입구(口)가 열리면 나가서 ‘두루(周)’ 미치는 ‘주위, 둘레(周)’라는 뜻이다. 주(周)자는 본디 ‘田’ 꼴 안의 네 공간에 각각 하나씩 점(丶)을 찍었다. 그 후 밑에 빗장을 건 대문(大門)의 꼴인 ‘멀 경(冂)’자인 ‘H'꼴이 넓적하게 붙기도 하였다. 그러다 예서(隸書) 단계(段階)에서 점(點)들은 사라지고 ‘田’꼴은 마치 ‘用’의 꼴로 바뀌면서 입구(入口)를 나타내는 ‘口’ 꼴이 추가(追加)되었다. 그리고 지금(只今)의 해서(楷書)인 ‘주(周)’자는 ‘멀 경(冂)’자와 ‘흙 토(土)’ 및 ‘입 구(口)’로 된 글자가 되었다. 따라서 주(周)자는 꼴의 변화(變化)로부터 다음과 같은 의미(意味)를 연상(聯想)해볼 수 있다. 또한 주(周)자는 멀리(冂) 나가서 흙(土)에 구멍(口)을 파서 농사(農事)를 짓는 장면(場面)을 연상(聯想)시킨다. 밭에 구멍을 파고 씨앗을 심는 방법(方法)은 논농사까지 이어지고 있다. 설령 기계화(機械化)로 벼를 옮겨 심는 이앙법(移秧法)이 지금처럼 이앙기(移秧機)를 쓴다지만 아직도 팔다리를 걷어붙이고 못줄의 간격(間隔)에 맞춰 모를 심었던 농부(農夫)들의 정서(情緖)는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주(周)자는 생각한 일이나 계획(計劃)에 대해 입(口)을 잘 써서(用) 두루(周) 빈틈이 없도록 하는 화술(話術)의 시대(時代)를 반영(反影)한 글자로 변(變)한 감이 있다. 특히 삼갈 일은 계획(計劃)을 잘 세우고 빈틈이 없도록 찬찬히 추진(推進)해야 하는 주밀(周密)한 언행(言行)이 요구(要求)된다. 그런데 주(周)자는 나라 이름으로도 쓰였는데 그 배경(背景)은 무엇일까? 주(周)나라는 은(殷)나라에 이은 중국(中國)의 고대왕조(古代王朝)로 태평성대(太平聲代)를 누리던 요순(堯舜)의 시대(時代)를 이어받은 이상적(理想的)으로 백성(百姓)을 다스리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평화(平和)가 두루 미쳤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주(周)나라는 왕족(王族)이나 공신(功臣)을 요지(要地)에 두루(周) 보내어 다스리도록 하였으니 그들이 쌓은 성(城)의 외곽(外廓)에 입(口)이 벌어지듯이 입구(入口)가 열리면서 멀리(冂) 나가 흙(土)에 씨앗을 두루(周) 뿌렸으니 곡식(穀食)이 풍성(豊盛)하였을 것이다. 주(周)나라는 왕족(王族)이나 공신(功臣)들에게 토지(土地)를 봉(封)하고 성(城)을 세우며 성(城) 외곽(外廓)의 주위(周圍)나 주변(周邊)에 있는 토지(土地)에다 백성(百姓)들이 씨앗을 두루 뿌렸으니 봉건(封建)이란 말의 원래(原來) 뜻은 주(周)나라의 국가체제(國家體制)를 지칭(指稱)하는 것이라 한다. 주(周)나라는 왕족(王族)이나 공신(功臣)들이 보내진 성(城)을 중심(中心)으로 한 원(圓)의 둘레인 원주(圓周)를 한 바퀴 돌아 일주(一周)하려면 한참 걸렸을 것이다. 더욱이 토지(土地)를 봉(封)하여 세운 봉건체제(封建體制)인지라 보내진 왕족(王族)이나 공신(功臣) 간에 생각하는 주파수(周波數)가 잘 맞았을 것이다. 그러니 설령 주파수(周波數)가 어긋나서 분쟁(分爭)이 생기더라도 제 3의 공신이 두루 돌며 주선(周旋)하니 일이 잘되었으리라. 주(周)나라도 두루 번영(繁榮)을 누렸을지언정 명(命)이 영원(永遠)할 수는 없었다. 

바꿀 역, 쉬울 이(易)에 대한 분분한 해석(解釋)은 네 가지로 압축(壓縮)할 수 있다. 첫째, 변화무쌍한 ‘도마뱀’을 상형(象形)한 것으로 ‘도마뱀 척(蜴)’의 본디 글자라는 주장(主張)이다. 둘째, 갑골문(甲骨文)의 자형에 따른 것으로 용액(溶液)을 의미(意味)하는 세 점(氵)과 주석덩어리를 나타낸 ‘주석 석(錫)’의 본자(本字)라는 설(說)이다. 셋째, 시간의 변화(變化)를 주도(主導)하는 해와 달의 상형설인데 갑골문(甲骨文)이나 금문(金文)과는 전혀 다르고 현재자형으로 확립(確立)된 소전(小篆)을 보고서 해석(解釋)한 것이다. 넷째는 초기 갑골문(甲骨文)의 자형을 보고서 두 손을 이용(利用)하여 그릇에 담긴 물을 다른 용기(容器)에 붓는 모양(模樣)으로 해석(解釋)하며, 그릇에서 다른 용기로 물을 붓는 모양(模樣)에서 ‘바꾸다’라는 뜻을 유추(類推)해기도 한다. 대체로 네 번째의 주장(主張)을 따르고 있으나, 글자 역시 사상(思想)의 변화(變化)를 반영(反映)하는 것이기에 현재자형을 무시(無視)할 수는 없다. 양기(日)와 음기(月)의 성쇠(盛衰)에 따라 계절(季節)이 바뀌므로 ‘변화(變化)’의 뜻을 잘 반영(反映)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解釋)해도 될 것 같다. 

여기서 역(易)이라 함은 “사서오경(四書五經)은 대학(大學), 중용(中庸), 논어(論語), 맹자(孟子).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 예기(禮記), 춘추(春秋)”가운데 하나인 역경(易經)을 말합니다. 즉 주역(周易)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주역(周易)에서 주(周)는 중국왕조의 명칭(名稱)이고 역은 역경(易經)을 말하는데 주(周)나라의 역(易)이라는 뜻입니다. 역(易)은 책이름이니 주역(周易)이라함은 그대로 주나라 때의 역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 말은 주나라 이전의 하(夏)나라와 은(殷)나라에도 역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주나라는 기원전 11세기에 들어선 나라인데, ‘사기’에 기록된 중국의 역사는 그보다 수천 년을 더 올라갑니다. 주(周)나라 바로 앞 왕조가 은(殷)나라이고, 은나라 앞이 하(夏)나라입니다. 하(夏)나라의 역을 '연산(連山)'이라 하고 은(殷)나라의 역을 '귀장(歸藏)'이라 하였습니다. 어쨌든 이두 역의 내용은 온전하게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분야의 연구가 필요하시다면 관랑역전(關郞易傳)이란 책을 참고하실 수 있지만 역시 상세히 기술(記述)되지는 않았습니다.  

주역(周易)의 자의적(字意的) 해석으로 다음과 같은 의미가 내포(內包)되어 있다고도 합니다. 다만 그것은 후세의 사람들의 해학적(諧謔的)인 의미가 더 깊다고 하겠습니다. 즉 주(周)는 두루 주, 나라 주이므로 천지사방(天地四方)을 포함한다는 공간적인 의미와 주(周)나라 때라는 시간적 의미(時間的意味)로 볼 수 있다는 것  입니다. 한마디로 시공(時空)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易)은 바꿀 역, 쉬울 이의 뜻이 있으므로, 때에 따라서 변화(變化)한다는 시간적 의미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는 보편적(普遍的)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주역은 시공(時空)을 포괄하는 우주진리(宇宙眞理)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주역이 철학서(哲學書)임과 동시에 미래예지를 주는 매개체로서의 점술서(占術書)이니 양면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음양조화(陰陽調和)라는 주역의 기본과 상통합니다. 음양의 대립상승(代立相勝)과 보완상함(補完相含)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음양에 관한 더 깊은 내용은 제의 다른 강의로 만들어진 음양오행(陰陽五行)과 건강이라는 책을 참조(參照)하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주역은 세상을 관계론적으로 인지하는 범주(範疇)이기도 합니다.  가만히 보면 주역의 수(數)에는 의리(義理)가 있고, 상(象)에는 성리(性理)가 있기에 인간의 '부귀와 행복 추구권'과 아울러 '자연의 진리와 인간의 도리(道理) 탐구'라는 두 축의 음양조화를 이루어야 옳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문제점(問題點)은 주역이 본래 의도한 의문의 결단을 넘어서 일신의 영달로 치닫는 탐욕(貪慾)이 주역을 이상하게 변질(變質)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또한 주역의 본질인 순환(循環)의 원리를 모르는 소치(所致)에 있는 것이니 주역을 배우시는 입장에서는 경계에 경계를 하시기 바랍니다.  

주역을 접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천하의 대법(大法)을 확립하여 자신이 스스로가 떳떳하게 사람의 도리(道理)를 다하면 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주역은 기울지 않게 음양의 두 눈으로 봐야 하고, 또 음으로 양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즉 음지(陰地)의 입장에서와 양지(陽地)의 입장에서의 양쪽을 겸해야 함입니다. 자사의 중용지도(中庸之道)도 주역의 이러한 의미를 이해한데서 나왔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정상적인 사람은 왼팔. 오른팔 다 사용함이 온전함을 다들 아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역을 배우면서 의리와 상수(象數)의 공부를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어서 그런 주역을 굳이 체계를 분류한다면 크게 경문(經文)과 역전(易傳)의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경문(經文)은 본문에 해당하며 역전은 경문에 대한 해설인 셈이지요.  

일반적으로 팔괘(八卦)는 전설의 복희씨(伏羲氏)가 처음 그었고, 괘사(卦辭)는 문왕(文王)이 유리에 유폐되었을 때 지었고, 효사(爻辭)는 주공(周公)이 지은 것으로 전해 오고 있습니다. 이 정도는 다들 알고 계시지만 처음 주역을 학습하는 분들이 상당수(相當數)라는 점을 생각해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역전(易傳)은 10개의 편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십익(十翼)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경문의 내용을 보조하는 '열개의 날개'라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전통적(傳統的)으로 십익은 공자가 지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확실치는 않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것이 공자(孔子)가 지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특히 십익 가운데 가장 철학적 내용이 담긴 계사전(繫辭傳)은 공자의 저작으로 인정되고 있기도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주역(周易)을 배우시려면 공자의 이 계사전은 꼭 읽어야 합니다. 

서양은 시대에 따라 주위 환경을 이해하는 관점이 달라져왔습니다. 합리주의적 정신에 의해서 물질적 진실(眞實)을 추구하던 서양에서는 물리학적 진리가 시대적 관점을 주도해왔고 다른 학문은 이를 응용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뉴톤 시대의 고전역학(古典力學)에서는 주위에서 흔히 보이는 몇 가지 물리 법칙(法則)으로 모든 현상을 이해하려고 하였고 그 법칙으로 유추(類推)한 실제 상황이 진실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서 파생(派生)된 이론들이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우리 생활에 적용되었고 사람들은 과학의 정확성과 위대함에 감탄을 했습니다. 같은 시대의 동양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서양의 물리학적관점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관점의 신빙성(信憑性)을 점점 잃어 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당시동양에서는 너무 주역(周易)의 상수(象數)에 고집(固執)하고 또 관념론적인 학문에 매달리고 형이상학적인 것을 추구했던 결과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양의 제국주의가 동양을 침범(侵犯)하면서 물질문명에 기가 죽은 동양인들은 자기의 관점을 버리고 물질문명(物質文明)의 기본이 되는 고전역학이 주도하는 과학적 관점을 수용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동양에서 주위 환경을 이해하던 관점인 역학(易學; 음양오행론)은 교육에서 제외되고 서양과학만 교육을 받게 되었던 것이지요. 제가 어릴 때에도 주역에 대해서는 듣고 보지도 못했습니다. 대학에서야 비로소 주역에 관련된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였습니다. 한국이나 일본등지에서는 동양학(東洋學)을 다루는 전문대학에서는 잠깐 뜻풀이 정도 교육을 받지만 대학 갈 때까지 과외수업을 받으면서 무수한 연습문제(演習問題)를 풀어보는 수학이나 물리 교육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과학이 더욱 발전하여 우리의 관심이 양자와 같은 미시의 세계와 은하계 밖의 거시의 세계에도 미치기 시작하면서 뉴톤의 고전역학(古典力學)이 틀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확정성의 원리로 고전 역학이 옳지 않다는 것도 증명되었지요. 새로운 양자역학(量子力學)이 등장하면서 양자역학적 관점이 동양의 역학적 관점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금세기 최고의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교수는 양자역학이 지금까지 해놓은 것은 동양철학(東洋哲學)의 기본개념(基本槪念)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보다 많은 과학적인 연구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쉽게 우리가 말하는 음양, 태극, 색즉시공(色卽是空) 등등도 같은 의미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이 패러다임이 양자역학으로 바뀌면서 세계의 학문을 주도하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고전 역학적 관점에서 정립되어 있는 자기의 학문을 양자역학적 관점으로 정립하기 시작하였고 동양철학의 진수(眞髓)인 역경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기초과학(基礎科學)인 물리, 화학, 생물 등은 빠르게 새로운 관점에서 학문 정립이 시도되고 있고 응용과학인공정학(應用科學人工程学), 의학에서도 이제 양자역학적인 관점이 도입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가 미국에서는 동양학 붐을 일으켰고 미국 국립보건원은 중(한)의학을 비롯한 대체의학을 수용(受容)하기 시작했고 이 연구에2001년에는 1200만 불의 연구비를 책정하여 매년 큰 폭의 연구비(硏究費) 증가를 기록했다는 뉴스를 언젠가 본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볼 때 물리학자들과 동양 수도사(修道寺)들의 관심이 어떻게 보면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주 만물의 공통적인 패턴을 찾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물리학자들은 이것을 찾기 위하여 식음 전폐(食飮全廢)할 때도 있고 동양의 수도사들은 이것을 화두로 삼고 수도에 정진합니다. 다른 것은 그들이 발견한 패턴을 수식으로 표현하는가에 따른 음양오행이라는 부호로 표현하는가 하는 차이일 뿐입니다. 역경은 득도(得度)한 수도사들이 도의 패턴을 디지털 코드로서 도시한 책인데 같은 화두(話頭)를 들고 진리를 찾아 헤매고 있던 서양의 물리학자나 수학자들 눈에 띠지 않을 리 없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지요. 쉽게 말씀드리면 송곳은 주머니에 넣어도 바지를 뚫고 나오듯이 훌륭한 학문은 동서양(東西洋)을 막론하고 널리 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진법을 발표하여 지금의 디지털 혁명을 일으킨 라이프니츠는 18세기에 역경을 보고 5000년 전에 동양에서 이진법(二進法)적 디지털이론으로 쓰여진 역경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양자역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닐스 보어는 역경을 보고 양성자(+), 전자(-), 그리고 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모델을 발표했습니다. 역경(易經)을 숭상한 나머지 귀족의 작위를 받는 식장에 태극휘장을 붙인 예복을 입고 나타나기도 했답니다. 아인슈타인은 절대적인 법칙만을 찾던 고전역학적 관점에서 탈피하여 역경의 음양적, 상대적 관점으로 물질을 이해한 이론인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습니다. 물질(음)은 언제든지 에너지(양)로 변하고 에너지는 언제든지 집약(集約)되어 물질화 할 수 있다는 음양법칙을 E=MC²이라는 수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 이론으로  원자폭탄(原子爆彈)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역경은 아이디어의 광산과 같은 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고민(苦悶)하면 고민한 만큼 많은 아이디어를 역경에서 캘 수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진 학자들이 역경을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인터넷을 뒤져서 알아본데 의하면 일단 서양도 이제는  영어 역경 연구서가 120여권이상이 넘는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과학자들이 역경 속에서 프랙탈 구조, 유전자(遺傳子) 코드 등 첨단과학(尖端科學)을 발견하고 감탄해서 많은 책을 내고 있다고 합니다. 

역경이 동양의 학문이라고 하지만 역경에서 표현하고자하는 뜻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는 동양 사람은 매우 적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역경교육(易經敎育)을 받을 기회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역경의 큰 뜻을 찾아내려는 시도를 주나라 때 한문 해석에만 매달려 있는 교조주의적인 태도 때문입니다. 역경은 역경(易經)이라 하여 경전으로서 권위(權威)가 있는 책입니다. 역경의 가치가 다른 경전과 다른 것은 글이 아니라 부호로 써 있다는 점입니다. 역경은 지구상의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이나 현상의 변화 패턴만을 도시(圖示)한 책이 아니라고 저의 많은 강의에서 누차 말씀드렸었습니다. 우리가 육안(肉眼)으로 볼 수 없는 소립자(素粒子)의 세계나 은하계 밖의 몇 억 광년이나 떨어진 별에 사는 미물에게도 적용되는 공통 패턴을 도시하고 있습니다. 이 공통 패턴을 가리켜 도(道)라 하는데 역경은 음양이라는 디지털 부호로 그 도를 도시한 책이기도 합니다. 

글이란 우리 주위의 흔한 사물이나 현상을  연상 할 수 있는 부호이기는 하지만 우주 만물의 공통 패턴을 표현하는 데는 적당하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글은 보는 사람의 시대와, 지역과, 본인의사고 경향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의미를 연상(聯想)합니다. 그래서 노자는 이름이라 부르는 것은 이미 진정한 의미의 이름이 아니고 도라 부르면 이미 진정한 의미의 도가 아니라 했던 것입니다. 도를 정확히 전하기 위해서는 부적합(不適合)한 글로는 쓰지 않고 서로 상대적인 음양이라는 코드로 도시한 것이 역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후에 주나라 문왕이나 공자가 이 괘들에 글로서 설명을 붙여 유교적 경전(經典)화 하였습니다. 그 옛날에는 역경의 난해한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읽지를 못했습니다. 유교적 글귀 해석에 많은 시간을 낭비(浪費)하니 역경의 도를 찾아내는데 소홀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고대 글귀에 매달리지 않고 진리를 찾기 위한 끝없는 노력과 많은 고민을 한 서양의 과학자들이 보다 많은 것을 찾아낼 수 있었던 이유(理由)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경을 잘 파악하고 있지 않더라도 조상들이 역경에서 발견한 창조 패턴으로 만들어놓은 건축물(建築物), 음악과 미술, 풍습(風習)과 놀이와 많은 접촉을 가지면서 역경의 패턴이 그냥 몸에 배어 있기도 합니다. 역경의 가치를 인식하고 기본적인 유형을 익히고 주위의 전통적인 문화유산들을 살펴보면 역경의 패턴을 서양인들 보다 쉽게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습니다. 역경을 연구한 과학자들이 과학을 주도(主導)해나갔듯이 동양인들이 역경의 관점으로 이루어진 현대과학을 주도할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역경을 연구하던 동양 삼국 중에 한국은 유난히 역경의 패턴을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한 듯 싶습니다. 특히 태극이 유난히 많이 그려져 있습니다. 사서오경 중에 가장 높은 단계인 역경을 교육하기 위하여 향교의 정문마다 태극(太極)이 그려져 있었고 선왕을 신으로 모시는 종묘의 홍살문에는 신과 우주의상징인 태극이 있고, 역경의 패턴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일종의 동양 파동학인 율려 (律呂)에서 인체에 가장 가까운 파동 생성의 악기인 북에 태극을 그려 넣었습니다. 역경은 우리가 가장 존중(尊重)하던 학문으로 역경의 상징인 괘와 태극이 한민족의 상징으로 결국 국기에 그려지게까지 됐던 것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역경의 괘는 전설시대(傳說時代)의 황제인 복희씨(伏羲氏)가 하늘에서 전해진 하도와 낙서라는 두 장의 그림을 보고 그린 것으로 전해집니다. 

복희씨를 중국인들은 그를 비하하여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복희씨(伏羲氏)라고 하대하는 표현을 씁니다. 역경에 복희씨는 진방(震方) 출신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진은 팔괘 중의 하나로서 중국의 황하유역(黃河流域) 동쪽을 말합니다. 회남자라는 중국의 유명한 책에 복희씨는 동방의 신으로 갈석산(碣石山)과 그 동쪽을 다스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복희씨는 상체는 인간이고 하체는 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역경의 과학성으로 미루어 볼 때 외계인(外界人)일 가능성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역경의 괘는 복희씨가 만들었지만 그 괘들을 달리 배열(排列)하고 설명을 붙여 연산역(連山易), 귀장역(歸藏易) 등의 다른 역경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시대의 사조(思潮)와 환경에 따라 역경의 해석을 달리하여 실생활에 응용하기 쉽게 하는 것이 역경의 변화입니다. 지금의 역경이 주나라 때의 역경이니 너무 오래돼서 이해하기도  어렵고 응용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역경을 현대의 과학용어(科學用語)로 해석하고 응용할 수 있는 과학역(科學易)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한지 오래 되였습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우리 조상의 문화유산(文化遺産)인 역경을  연구하여 현대과학(現代科學)을 주도할 수 있고 우리 조상들의 뜻을 기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주역을 공부하는 분들은 주역의 부호학적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문자는 어떤 뜻을 전달(傳達)하는데 창백(蒼白)합니다. 주역의 건괘그림 하나 놓고도 우리는 수십 권 분량의 문장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의 작은 부호가 큰 뜻,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즉 주역은 과학의 원형(原形)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주역(周易)은 과학(科學)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과학으로서 풀 수 없는 많은 문제를 그리고 베일에 가려진 세상의 이치(理致)를 주역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베일을 벗길 수 있는 신묘(神妙)함을 갖고 있기에 그 차원이 과학보다 우위(優位)를 차지한다고 많은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주역(周易)을 학문적으로 볼 때 형식적인 구분으로는 인문학(철학)에 속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상 주역에는 철학(哲學). 도학(道學). 수학(數學). 천문학(天文學). 지질학(地質學). 종교학(宗敎學). 물리학(物理學). 생물학(生物學). 사회학(社會學). 정치학(政治學). 심리학(心理學) 등의 모든 학문요소(學問要所)가 담겨있어 학문의 원형(原型)을 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주역이 과학의 원형임을 입증하는 예로는 헤겔의 정(正). 반(反). 합(合)의 삼 단계 변증법 원리는 주역의 음양소장(陰陽消長)에서 도출되었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주역의 태극도(太極圖)의 상대론에서 그 발상서로 상통하는 것입니다. 또 주역 괘상과 컴퓨터의 기본원리인 이진법의 관계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즉 주역은 음양론을 바탕으로 하여 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모든 정보와 변화 이치(理致)가 담겨있는 보편적 과학(普遍的科學)입니다. 또 주역은 통시성(通時性)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즉 어느 시대에나 어느 장소에나 두루 적용(適用)되는 것도 과학성과 상통(相通)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역에 대한  공부를 하려면 길고도 긴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앉아 계시는 여러분들께서 인내심(忍耐心)과 초심(初心)을 버리지 마시고 마지막까지 끝까지 견지(堅持)해 주십사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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