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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甲辰年 새해 하시는 일들이 日就月將하시고 乘勝長驅.하시고 萬事亨通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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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은 표현능력 미달인 천분(天分) 없는 사람인가?

우리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현실 환경에 순응(順應)하고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것이 인생 지혜의 근본(根本)입니다.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데서 불행과 실패가 생깁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데서 행복과 성공이 시작됩니다. 이 두 가지는 밀접한 상관관계(相關關係)를 가지고 있습니다. 

진정 사람은 자기 생명의 존엄성(尊嚴性)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목숨은 유일하며 인간의 생애는 일회적(一回的)입니다. 일생일사는 생명의 철칙입니다. 천상천하에 한번 밖에 없는 생명을 낭비(浪費)하거나 생애를 무책임하게 살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생명의 고귀(高貴)함을 아는 사람만이 인생에 대해서 성실한 태도를 취하고 자기 하는 일에 대해서 책임(責任) 있는 행동을 취합니다.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나의 실력(實力)과 밑천을 안다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는 분수(分數)가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의 분(分)을 알고 자기의 수(數)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자기의 분수를 모르고 제 분수를 어기고 제 분수에 겨운 행동과 생활을 할 때에 무리가 생기고 파탄(破綻)이 일어나며 비극이 찾아옵니다. 분수란 바로 자기 몫이라는 뜻입니다. 

한문에 천분(天分)이란 말이 있습니다. 즉 하늘이 우리에게 나누어 준 몫이란 이야기입니다. 천분을 많이 타고 나는 사람도 있고 적게 타고 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크든 작든 간에 세상 모든 사람들은 천분을 가집니다. 때문에 우리는 자기의 천분을 바로 알고 자기 분수에 맞게 무리하지 말고 살아야합니다. 인생은 자아실현(自我實現)의 노력이요. 자아의 실현은 곧 자기의 천분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나의 분수를 아는 것입니다. 또한 나의 밑천을 아는 것이며 나의 실력을 알고 나의 천분을 아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자각(自覺)하는 것입니다. 즉 나의 직분(職分)이 무엇인가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가 맡은 자리가 있고 자기가 해야 할 구실이 있습니다. 

제자리와 제구실을 바로 아는 것이 나 자신을 아는 근본입니다. 인생은 먹고 마시고 놀고 춤추는 흥겨운 향락(享樂)의 놀이터가 아닙니다. 공부하고 일하고 정진(精進)하고 창조하는 성실한 건설의 일터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사명의 자각입니다. 일생동안 몸 바쳐 일할 수 있는 자기의 사명(使命)을 깨닫는 자가 인생의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나는 무엇에 나의 생애(生涯)를 바치려고 하는가? 인생의 보람을 나는 어디에서 찾으려고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확고(確固)한 대답을 갖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사람입니다. 내 생명의 존귀(尊貴)함을 알고 나의 분수를 알고 그리고 나의 사명을 아는 것이 곧 나 자신을 아는 근본입니다. 

세사에 정통(正統)함은 학문의 덕이고 인정에 숙달(熟達)함은 지식의 힘입니다. 나의 소원은 오직 하나인데 바로 글 쓰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이 소원(所願)을 위해 살아왔고 현재에도 이 소원 때문에 살고 있고 미래에도 이 소원을 이루려고 살 겁니다. 물론 글쓰기란 나의 가치를 아는 것입니다. 나의 가치를 알면 나의 정도를 알고 나의 수준을 알며 나의 실력(實力)을 알고 나의 분수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해 나를 안다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사명(使命)을 자각하고 목적을 향해 부단히 경쟁(競爭)하고 도전하는 겁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가 맡은 직분(職分)이 있고 자기가 해야 할 구실이 있습니다. 

나는 프로필이 평범한 사람입니다. 어려서부터 자주 앓다보니 고등교육을 겨우 받았고 거기다 가문의 유명세(有名稅)를 탄 것도 아닙니다. 나는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저 나름 소원이 있기에 다소나마 위안을 느낍니다. 이 소원(所願)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 소원을 이루려고 일 년을 하루 같이 고심 분투(苦心奮鬪)합니다. 공휴일엔 하루 12~16시간 이상으로 컴퓨터에 마주앉아 필요한 자료들을 찾아봅니다. 또 쓸모 있는 정보(情報)들을 차곡차곡 저장하면서 배우고 익혀갑니다. 사람은 평생 동안 공부해야 한다는 말에 크게 공감(共感)합니다. 

시간이란 스승은 나에게 차근차근 가르칩니다. 오늘 배우지 아니하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 올해 배우지 아니하고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한사람 위해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니 금싸라기 같은 시간을 소중(所重)히 아끼라고 특별히 강조합니다. 

또 고심분투(苦心奮鬪)란 스승은 나를 간곡히 타이릅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내일 아무리 애써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 만약 저산 너머 희망(希望)이 있을 때 후회해도 이미 쏟아진 물이고 진작 흘려버린 낟알이니 내일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努力)하는 것만이 바람직하다고 타이릅니다. 

그래서 나는 용기(勇氣)와 신심을 가져봅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자는 의지 하나로 살아갑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자신감(自信感)을 가져봅니다. 한 가지 일에 열중하는 노력가(努力家)가 되고자 합니다. 세상에 이런 일에 나오는 주인공은 물론, "생활의 달인" 주인공을 생각하면서 하면 된다는 신념(信念)으로 살아갑니다. 

나는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을 되새겨 봅니다. 특히 요즘 정보화 시대(情報化時代)에서는 많이 알면 알수록 삶이 편해집니다. 그만큼 지식(知識)이 수요 됩니다. 그러나 앎을 겸손으로 만들고 앎을 지혜로 바꾸는 일이 더 큰 힘입니다. 힘의 파워는 능력(能力)입니다. 알아 간다는 것은 자신이 점점 강해지고 능력이 많아지고 그리고 지식이 늘어나는 겁니다. 말 그대로 현명(賢明)해지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지만 아는 것 역시 즐거움이라 생각됩니다. 혹 내가 능력이 모자라서 지식을 써먹지 못하더라도, 또 기회를 놓쳐 실천(實踐)하지 못하더라도 실망은 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 하면 하나하나 알아가는 즐거움이 너무 좋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이 아닌 '하는 것'이 힘이 되는 오늘입니다. 부지런한 사람에게 족한 세 마디 말이 있습니다. '배우라, 좀 더 배우라, 끝까지 열심히 배우라'고... 

모든 것을 죄다 알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입니다. 지금은 말하고 있는 것이 다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함부로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사회에 대한 책임적 입장입니다. 자기 판단(判斷)만이 옳다고 절대 생각하지 말 것이며 더욱이 언론이 부여(附與)된 권한이 자기 것인 줄 알고 경솔히 오해(誤解)하지 말아야 합니다.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습관적(習慣的)으로 하는 거짓말을 본인은 진실인 듯 받아들이는 성격장애(性格障礙)입니다. 이런 것도 치료를 받아야 하는 망상증(妄想症)의 일종이라고 합니다. 정상인들은 필요에 따라 거짓말을 합니다. 근데 성격장애는 습관적으로 필요한 사항인지 불필요한 사항인지 구분(區分)하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일종의 병 종류(種類)로 구분됩니다. 듣다가 웃긴 건 그렇게 따지고 보면 병 아닌 게 없다는 생각에 저절로 허구픈 웃음이 나옵니다. 

보지 않았거나 보지 못했는데 보았다고 우기지 말고 듣지 못했거나 듣지 못했는데 들었다고 함부로 고집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릇된 선입견(先入見)이 나의 눈을 멀게 하고 요망(妖妄)한 세치 혀가 나의 입을 갉습니다. 겉이 화려(華麗)하다고 그 사람 생활까지 요란한 게 아니며 차림새가 남루(襤褸)하다고 그 사람 지갑까지 빈곤한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과 말 한 마디 섞어보지 않았다면 나의 협소(狹小)한 눈으로 그의 점수를 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 또한 그리고 당신 또한 완벽(完璧)하지 않은 인간입니다. ‘남의 얘기 함부로 하지 말라. 세치 혀가 당신의 인격을 가늠하기에.’ 이 말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돈은 모으는 사람 따로 쓰는 사람 따로 있다고 합니다. 돈을 모으는 사람과 쓰는 사람을 살펴보면 돈의 주인(主人)은 '쓰는 사람'이다. 돈을 모으는 사람과 돈을 지키는 사람 중에 '지키는 사람'이 주인인 것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돈은 '잘 쓰는 사람'이 임자입니다. 그러나 돈을 아무 생각 없이 쓰는 사람은 주인이 아니라 '건달'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정신적(精神的), 물질적 에너지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참 주인이지 정신적 물질적(物質的) 에너지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은 주인이 아닙니다. 사람도 사람을 이끌고 잘 쓸 줄 아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사람들이 착각(錯覺)하는 것 중 하나가 자신이 열심히 노예처럼 행동하면서도 자신은 '노예(奴隸)'인줄 모른다는 점입니다. 요즘은 돈의 노예들이 많습니다. 이 지구는 '힘의 원리'에 의해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평등사상(平等思想)'은 이론상 안 맞는 논리입니다.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합니다. 나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반드시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본능들이 추구(追求)하는 수많은 욕망들을 억제하면서 살아야만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어릴 때부터 내 맘에 드는 여자보다는 대중의 환영을 받을 수 있는 여자를 이상형으로 정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내 감정(感情)보다는 타인의 시선이나 인정과 평가 이런 것들이 더 중요했고, 이것들은 소유할 수 있다면 내 감정 따위는 얼마든지 희생(犧牲)시킬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이루려는 바를 위해서라면 결혼(結婚) 같은 건 안 해도 괜찮은 나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아는 한 선배는 여자들이 바라는 두 조건을 동시에 만족(滿足)시키는 남자입니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뛰는 남자였고 대중의 환영(歡迎)을 받을 수 있는 조건들을 속속들이 갖추고 있는 남자였고 그래서 무엇보다도 나는 그 선배를 좋아했습니다. 그때는 어려서 잘 몰랐지만 사랑이었고 선배라면 한평생이라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퍼펙트한 남자가 나를 스치고 지나갔는데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관건적으로 선배는 아직도 여자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 추측(推測)이기는 하지만 선배는 결혼이나 여자보다는 사업의 성공과 자신의 꿈을 성취하는데 관심이 더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함부로 다가갈 수 없고 더욱더 매력적(魅力的)인 존재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미치도록 좋아해본 사람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인간의 자기가 소유(所有)하지 못한 것에 더 매력을 느끼는 욕심 때문에 선배가 더 빛나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우연히 어딘가에서 선배를 만나는 상상을 하군 합니다. 

예술에는 국경(國境)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말은 남한말, 북한말로 갈라 쪽을 내는가? 물론 지방마다 방언(方言)이 서로 다른 건 환경에 따른 생활습관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언어를 통일해야 할 시급한 과제가 우리의 의식을 개변(改變)시키고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민족은 좁은 시야와 협소한 안광(眼光)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곧잘 텃세합니다. 마치 뒷사람을 업신여기는 특권(特權)이 없다면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의 기강(紀綱)이 크게 흔들리듯이 말입니다. 소위 '다문화가족'들 흔히 그 화풀이 대상 되어 온갖 스트레스를 다 감수(感受)해야 합니다. 심지어 정상적으로 출근할 수 없게 합니다. 하여 스스로 회사를 사퇴(辭退)하는 일들이 비일비재로 일어납니다. 물론 이것은 한국사회의 보편적 현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군대, 대학, 학원, 심지어 일반 초중고학교에서까지 물젖어 있으니 말입니다. 참으로 이런 것을 일컬어 갑질이라고 합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어릴 때 기억이 천 년 간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내가 반백이 넘었어도 어찌 그날의 일들이 떠올리지 않을 수 있으며 그다지 쉽게 그날의 일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농담이 진담(眞談)으로 되지 말아야 했는데 부질없이 던진 농담(弄談)이 후에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녀의 눈에는 추파라든가 강파라든가 라는 것이 알른거리며 꼬물만치 수줍음이라도 없습니다. 달변(達辯)인 아내와 달리 나는 쉬운 말로 어렵게 표현합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을 무척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재주 아닌 재주가 있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표달 능력미달(能力未達)이라고 합니다. 

마음을 꽁꽁 닫고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무정(無情)해 보이지만 마음을 활짝 열고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유정(有情)해 보입니다. 요즘은 남이 잘 되면 배 아파 죽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趨勢)입니다. 하긴 남이 잘 되면 제일처럼 좋아서 신나게 춤을 출 사람이 몇이나 될가마는 인심이 점점 식어서 차갑고 점점 가물어 메마르는 현상(現象)을 여실히 알려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옛날이야기가 나오면 당장 잡아먹을 상을 합니다. 물론 케케묵은 진부(陳腐)한 것들도 많지만 지금도 간직(看直)되어야 할 좋은 점도 많습니다. 특히 미량풍속이나 예의범절(禮儀凡節)은 앞으로도 계속 지켜나가야 할 과제입니다. 

암 말기에 걸려 더는 목숨을 지탱(支撑)할 수 없는 사람이 어찌 우연히 감기에 걸려 재채기를 하는 사람을 비웃을 수 있으랴마는 암 말기에 걸린 사람이 우연히 감기(感氣)에 걸려 재채기를 하는 사람을 비웃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그저 웃고 넘어 갈 유머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가느냐 하는 심각(深刻)한 문제인 것입니다. 

우에 정책(政策)이 있으면 아래에 대책(對策)이 있습니다. 이는 처세에 대한 말이지만 세상에 만만한 것 하나도 없으니 상대를 얕잡아 보지 말라는 경종(警鐘)이기도 합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간(分揀)하는 것이 사람의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그런데 남의 가슴에 대 못질을 박고 지탄(指彈)에 직면해 국민과 언론을 중심으로 비판과 지적이 확산(擴散)되고 있습니다.  

과연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은 표현능력 미달인 천분(天分) 없는 사람인가요? 글쓰기 기초능력으로서 의사소통능력(意思疏通能力)이란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거나 문서를 통해 의견을 교환(交換)할 때 상대방이 뜻한 바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신의 의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또한 글로벌 시대에 필요한 글쓰기와 문서이해능력(文書理解能力) 및 의사표현능력(意思表現能力)도 포함합니다. 의사소통능력은 문서이해능력, 문서작성능력(文書作成能力), 경청능력, 의사표현능력 및 기초외국어능력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좌우간 의사소통(意思疏通)이란 사람들 간에 생각이나 감정 등을 교환하는 총체적인 행위입니다. 의사소통은 구어(口語)나 문어(文語)를 통한 언어적 요소는 물론 몸짓이나 자세, 얼굴표정, 눈 맞춤, 목소리, 억양 등과 같은 비언어적 요소를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최근 글쓰기교육에서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는 사람을 위하여 대체 의사소통과 보완(補完) 의사소통에 대한 연구와 기기의 보급이 확대(擴大)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글쓰기 역시 표현능력과 의사소통이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선천적(先天的)으로 표현능력이나 의사소통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이런 기능을 연마(練磨)하여 장악(掌握)합니다. 그러니 나 역시 후천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글쓰기능력을 키우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 사람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글을 짓기 위해 힘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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