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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 성폭력 사건은 "정말 '개인의 문제'인가?"

▲인하대 캠퍼스 내에서 또래 여학생을 성폭행한 뒤 건물에서 추락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1학년 남학생 A(20)씨가 22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미추홀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글 : 한예섭 기자

"악마 한 명의 일탈 아니다 … 근본 원인은 성폭력 유발하는 문화"

"이건 그냥 개인의 문제."

지난 15일 인하대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신주호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피해자의 비극적 죽음 앞에 우리는 모두 공범"이라는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의 16일 소셜미디어 포스팅에 반박하며 나온 말이다.

같은 당 박민영 대변인 또한 박 전 위원장의 발언을 두고 "갈등산업", "혐오에 편승하는 정치"라고 몰아붙였다. 즉 '개인의 비극'을 '구조적 문제'라 호명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를 지닌 "갈라치기"라는 지적이다. 이는 지난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으로 촉발된 페미니즘 대중 운동을 겨냥한 말로 들리기도 한다.

실제로 이번 인하대 사건을 둘러싼 사회의 반응은, 지난 강남역 사건 이후의 그것과 결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 전 위원장과 신·박 대변인의 포스팅 이후 정치권에서는 해당 사건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가 없다. 여성단체와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여성 피해자를 성적 대상화하는 언론보도, 온라인 2차 가해 등 여성혐오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전문가나 언론 등 사회의 스피커들은 해당 이슈에 다소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21일 기독교방송(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온라인 커뮤니티 내의 성희롱성 게시물 등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문제"에 대해 묻는 앵커의 질문에 "젠더 갈라치기 하는 양측이 모두 문제"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같은 방송에서 김현정 앵커는 "유가족들이 이게 남녀, 성별 문제로 가는 것, 성대결로 가는 것을 지금 극히 꺼리고 있다"며 이 교수 주장의 당위를 설명했다. 

 

여성들은 묻는다. "정말 개인의 문제일 뿐인가?"

이소희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장은 지난 21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이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전했다. 이 소장은 "사건의 사회적 쟁점화로 유가족이 오히려 고통 받을 수 있다. 때문에 사건을 다루는 모든 이들이 그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그러나 '유가족의 입장이 이렇다'는 이유로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사건의 사회적 맥락을 부정하는 것은 (유가족 스스로가 고통을 호소하는 것과는) 다른 얘기다"라고 꼬집었다. 

사건의 쟁점을 짚는 과정에서 유가족이 겪을 수 있는 정신적 고통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사건이 보여주는 '구조적 문제' 자체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 소장은 그러한 행위가 "사건의 근본 원인을 분석해서 재발을 최대한 방지하는 일", 즉 "사회적 과제를 내팽개치는 꼴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극단적인 여성 폭력 사건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앞서 신·박 대변인은 가해자 "개인의 문제"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반면 박 전 위원장은 여성폭력 사건에 대해 "선정적인 단어들을 남발"하는 언론,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사법부, 혹은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하는 정치권 등을 여성 폭력 사건의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했다. 성폭력 피해 현장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사건의 경향성을 파악해온 이 소장은 후자의 손을 들었다. 성폭력 범죄, 그 중에서도 이번 인하대 사건과 같은 극단적인 범죄는 "절대 어느 날 툭하고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대학 내 성폭력' 사건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악마 같은 가해자 한 명'이 일으키는 일도 아니다. 지난 2020년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대학 내 성폭력 신고 건수는 346건으로, 당해까지 5년 간 총 1206건의 성폭력 신고가 접수됐다. 비대면 캠퍼스 전 마지막 해인 2019년은 2016년(182건) 대비 2배 높은 신고 건수가 접수됐다. 신고율이 낮은 범죄로 지목되는 성범죄의 특성을 고려하면 실제 발생 건수는 해당 수치를 최소치로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성폭력이 만연하고, 또 만연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경향성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사회학계에선 '강간문화'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비난', '성적 대상화 문화', '성폭력 범죄가 빈번히 발생한다는 사실에 대한 부정' 등은 강간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요소로 꼽힌다. 

이 소장은 그러한 문화들을 "이번 인하대 사건에 관한 반응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고 꼬집었다. '가해자와 늦은 밤까지 술을 마셨다'는 것을 빌미로 피해자의 행실을 꼬집는 온라인 상의 2차 가해, 피해자의 최초 상태를 선정적인 언어로 보도하는 기사, 혹은 해당 사건을 전체 성폭력 범죄와 연결해 생각해선 안 된다는 '개별화'론 등을 지적한 말이다.

이어 이 소장은 이러한 폭력적 문화(강간문화)가 "특정한 이슈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평소 대학 내에서도 쉽게 접하게 되는 현상"이라는 점이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실제로 이 소장이 접하는 대학생 피해자들의 성폭력 상담 건 중엔 '에브리타임' 등 학내 커뮤니티 등지에서 일어나는 사이버 성폭력이나 2차 가해 사건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이 소장은 "결국 이런 문화 속에서 성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하게 되고, 그 빈번한 폭력의 와중에 이번 사건과 같은 극단적인 수준의 사건까지 발발하는 것"이라며 "사건의 실체를 파악해 가해자의 죄를 엄밀하게 묻되, 성폭력 문제를 '악마같은 가해자 한 명'만의 문제로 생각해선 안 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18일 인천시 미추홀구 인하대학교 캠퍼스 안에 '인하대생 성폭행 추락사' 피해자를 위한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다. ⓒ연합뉴스

대학은 지금 '백레시' 진행 중 … "폐쇄회로(CC)TV 늘린다고 성폭력 해결되겠나"

대학 내 성폭력이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문제에서 기인된다는 점은, 인하대 사건 이후 교육부와 대학 측이 수립한 '폐쇄회로(CC)TV' 확대나 '야간 통행 금지' 등의 대안이 "근본적으로 유효하지 못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21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성폭력이 가능했던 것은 CCTV 부재, 밤늦게 노는 사람들, 음주때문이 아니"라며 "대학 내 공동체 문화는 어떠했는지, 학생 커뮤니티 안에서 무엇이 용인되어왔고, 학교 측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왔는지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 또한 "결국 중요한 것은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 '구조의 심각성'을 감각하고, 그 구조를 바꿔 이러한 사건을 막아내겠다고 약속해나가는 과정"이라며 "학교의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예방교육이나 학생사회의 자체적인 반 성폭력 문화 조성을 통해 학교 내의 문화 자체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만 최근 대학가의 상황은 이 소장의 바람과 정반대의 양상을 보인다. 대학 내 여성주의 활동이나 성평등 기구를 대상으로 한 대학 내 '백레시'가 "지난 몇 년 간 대학가를 지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소재 4년제 대학교 졸업생 여성 A 씨는 "졸업하기 2년 전 즈음부터 학내 여성주의 강의, 여성주의 모임 등에 대한 '사이버 테러'가 심각해졌었다"며 "다른 대학들에서도 총여학생회가 폐지되는 등 여성주의에 대한 백레시가 거셌다"고 회상했다. 연세대학교(2019), 경희대학교(2021)의 총여학생회 폐지 등에서 볼 수 있듯 학내에 '안티 페미니즘 기류'가 강해졌고, 그로 인해 "여성을 대변할 수 있는 대의기구가 오히려 부족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6월 <프레시안>과 인터뷰를 진행한 권소원 권력형 성폭력·인권침해 문제 해결을 위한 서울대인 공동행동 대표도 "서울대학교 내에선 여성주의 강의에 대한 보이콧이나 사이버 테러 등이 일어나 결국 강의가 폐강되는 등 집단적인 백레시 행동이 일어나기도 했다"며 "이러한 흐름은 결국 (성폭력 피해에 대해) 이야기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를 만든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여성 기구, 혹은 여성주의적 활동에 대한 대학 내 백레시는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지난 6일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선 학내 여성주의 교집편집위원회 <녹지>에 대한 오프라인 테러가 일어났다. 교내 가판대에 놓여있던 <녹지> 간행물에 누군가 압정을 박아 놓았고, 이를 수거하던 한 편집위원이 그 압정에 의해 부상을 당했다. 

▲지난 6일 압정이 꽂힌 채 발견된 <녹지> 간행물 ⓒ중앙대학교 여성주의 교지편집위원회 <녹지> 제공

<녹지>는 "녹지를 향한 혐오는 중앙대학교 내에 만연"해 있기 때문에 해당 사건이 "우연의 일치가 아닌 백레시의 연장선"이라고 주장한다. <녹지> 편집위원들은 22일 <프레시안>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번 압정 사건에 대해서도) 에브리타임 등에선 '정의는 살아있다'는 등의 조롱성 반응이 올라왔다"며 이러한 일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중앙대에선 2017년 녹지 간행물 40여 권이 (학생에 의해) 폐기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고, 바로 지난해에도 간행물 훼손 사건이 발생했다. <녹지> 측은 "(녹지 사건 외에도) 2017년엔 정치국제학과 여성주의 소모임 '참페미'의 대자보를 훼손하는 테러가 일어났고, 지난해엔 서울캠퍼스 성평등 위원회가 졸속 폐지되었다"며 "결국 이 모든 사건들은 학내 백래시의 흐름 속에 있다"고 강조했다. 

'여성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지속되는 사이, 여성들의 의견을 대의하여 그 환경을 바꾸어나갈 수 있는 활동은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 이는 일종의 악순환이다. 폐쇄회로(CC)TV를 확대 설치하고 출입가능 시간대를 조절하는 등의 ‘대안’이 나옴에도 많은 여성들이 불안과 분노를 멈추지 않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녹지> 편집위원들은 "애초에 (대학이) 여성에게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대학 내 여성주의와 공식적인 기구가 필요해진 것"이라며 "여성이 안전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학내 여성주의 단체가 하나둘 폐지되며 그 존속이 과제가 된" 대학 속에서 여성들은 "이미 직접적인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학내 여성폭력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선, 대학이 "여성에게 안전한가"부터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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