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심한 비행기 공포증이 있습니다. 비행기만 타면 식은땀이 흐르고 가슴이 쿵쿵거리고 죽을 것 같은 느낌에 휩싸입니다. 비행기가 무섭기보다 내가 컨트롤 하지 못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비행기 공포증 증상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탈 때마다 나의 죽음을 상상하게 되고, 이 비행기만 무사히 도착한다면 새로 태어난 것처럼 살겠다고 속으로 기도까지 합니다. 비행기 덕에 죽음에 대한 철학적 사색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자기 위안도 하면서요.
제가 왕진을 아직 시작하지 않은 몇 년 전 이야기입니다. 말기암으로 오래 투병하셨던 어르신이 집에서 돌아가실 것 같으니 와서 사망 선고를 해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당시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몰라 당황해하며 병원 응급실로 모시고 가도록 안내를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도착 시 사망(DOA : Death On Arrival)이라고 해서 응급실에서 환자의 상태를 살펴보고 사망할만한 질병이 있는지 확인한 후에 사망진단서를 발급하게 됩니다. 이후 장례절차도 밟게 되죠.
그런데, 왕진과 방문 진료를 시작하게 되면서, 집에서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기 원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미 질병의 말기 상태에서 집에서 돌아가시는 경우 당연히 집에서 사망진단을 받고, 장례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에 닿게 되었습니다.
제가 종종 왕진을 나가는 70대 남자 어르신이 계십니다. 원래 당뇨와 심근경색이 있었고, 지난해 음식물이 폐로 넘어가 생기는 흡인성 폐렴으로 입원 치료를 했던 분입니다. 입원 후 팔다리 근력 저하가 발생하여 이런저런 검사를 했으나 원인을 찾을 수 없었고, 재활 치료라도 해보려고 재활병원으로 옮겼는데, 슈퍼박테리아인 반코마이신 내성 장구균(VRE : vancomycin resistant enterococcus)에 감염되어 재활은커녕 꼼작 못하는 일인실 생활을 두 달 넘게 했다고 합니다. 이후로 집으로 오신 뒤에도 거동이 힘들어 연로한 배우자가 생계를 책임지고 있고, 손녀가 어르신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오랜 입원 생활 이후 근쇠약으로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누워만 계셨는데, 그런 생활을 유지하다 보니 다시 근육이 쇠약해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었습니다. 저와 가정간호사, 작업치료사가 방문을 나가 이분을 일으키기 위해 운동도 시키고, 이웃에 사는 자원활동가를 건강 리더로 연결하여 같이 오목도 두고,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앉은 자세를 유지하여 활동하면 허리 근육을 키우고, 우울감도 해소하며 인지기능을 유지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어르신은 방문 의료 덕에 몇 번 다시 입원할 뻔한 고비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지난 몇 개월 사이 요로감염도 있었고, 욕창이 생기기도 했지만 왕진과 가정간호를 통해 적절한 치료를 집에서 받으셨고 회복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열이 나고 환자가 까라진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왕진을 나갔습니다. 환자는 이름을 부를 때만 겨우 눈을 뜨는 정도로 반응을 하고, 말씀도 겨우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폐소리를 들으니 가래가 그렁거리는데, 뱉어 낼 힘이 없었습니다. 가정용 석션기로 자주 가래를 뽑아 주도록 말씀드리고, 혈액검사를 진행하고 수액과 항생제를 처방하였습니다.
보호자에게 약이 듣지 않으면 입원을 다시 하셔야 할 것 같다고 설명을 드리고 환자분에게 다시 상황 설명을 드리니, 그 기운 없는 상황에서도 고개를 세차게 저으십니다.
"입원 안 해요. 나 입원 안 해. 죽어도 여기서 죽을 거야. 병원 가면 다시는 집에 못 와요."
폐렴 가능성이 커 입원 치료를 해야 하는데 어르신이 완강히 거부하시니 순간 당황이 됩니다.
"어르신~ 갔다가 좋아지면 다시 나오시면 되죠, 걱정 말고 입원했다가 나오세요."
"아니에요. 나 보내지 마, 병원 보내지 마세요."
죽더라도 병원에는 안 가겠다며 버티는 이분에게 그래도 입원을 권하고, 보호자를 설득하는 내심에는 의사로서의 책임감만 있었던 것은 아님을 고백합니다. 이분이 제가 돌보는 상황에서 돌아가시는 것을 피하고 싶은 마음, 혹시 법적으로 문제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의사의 최고 사명이라고 배워 왔던 경험들 때문에 느끼는 죄책감이 뒤섞여 있었죠.
"코로나 때문에 가면 못 나와요, 내가 입원해봐서 알아~ 죽어도 집에서 죽을 거에요."
몇 차례나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어르신의 목소리에 강한 의지가 실려 있습니다. 한편으로 코로나 19가 확산되면서 요양병원 내 집단감염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는 뉴스들이 머리 속에 떠오릅니다. 확진자가 나오면 코호트 격리라는 이름으로 누군가가 죽어 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갇혀 지내야 하는 요양병원에 대한 기사, 서울 병원 나들이가 코로나19 확진으로 이어져 영원히 헤어지게 된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도 뇌리를 스칩니다.
그러니 '코로나19 확산으로 병원 입원이 삶의 마지막이 되어버리지는 않을까'하는 염려, 다시는 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공포,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못 만날까 두려운 그 절절한 마음이 어떻게 와닿지 않겠습니까.
저도 비행기를 탈 때마다 죽음을 상상하며 '가능하다면 내가 받아드릴 수 있는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항상 머물던 공간에서 죽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차가운 병실에서 온갖 삐삐거리는 기계들을 달고, 가족 얼굴도 보지 못한 채 환한 형광등이 나의 마지막 기억이 되는 죽음은 싫습니다. 그렇게 죽고 난 뒤 그 병원 근처 어딘가의 장례식장으로 옮겨져 차갑게 식어갈 것도 두렵습니다.
이 어르신에 대한 의학적 결정에 갈등이 생깁니다. 본인이 완강히 거부하는 입원을 억지로 강요해야 할 것인지 고민이 됩니다. 지금이 코로나 19 상황이 아니라면 좀 더 적극적으로 입원을 권할 것 같긴 하지만, 어르신의 위치에 저희 부모님이 선다면, 아니 혹시 제가 그런 상황이라면 어떨까 생각해보니 결정이 쉽지가 않습니다.
다행히 어르신의 상태가 좋아지고 있지만, 만약 이런 상황에 반복되고, 상태가 좋아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도 고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