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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이후, 생존자의 삶은 어떻게 복구되는가?

▲ 폭우에 침수 피해를 당한 서울의 한 반지하 주택. ⓒ연합뉴스

[서리풀 연구通] "재난복구 대책은 공동체를 복구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글 : 박주영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집중호우 피해자들

정부는 지난 8월 22일 집중호우 피해를 본 서울 관악구, 경기 양평군, 충남 부여군 등 10개 시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였다. 지난 8일, 폭우로 인해 관악구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일가족 3명이 사망한 참사가 일어난 지 14일만이다. 이번 참사는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해의 심각성, 재난은 약한 사람들을 먼저 덮친다는 불평등한 현실, 10년 전과 동일한 재해가 반복되고 있다는 재난 대책의 문제점 등 여러 논의거리를 남겼다.

재해를 겪은 생존자의 삶과 건강은 어떻게 회복되고 있을까? 이 역시, 생각하고 주목해야 할 문제 중 하나다. 재난 이후 삶이 회복되기까지는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미국 하버드대학교 시바 고이치로 교수 연구팀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집이 부서진 재난 생존자들이 재난 이후 9년이 지난 시점에 삶과 건강이 어떠한지 살펴보았다.(☞ 바로 가기 : 노인 재난생존자의 주택 손실과 건강, 삶의 질과의 장기간 연관성: 2011 동일본대지진과 쓰나미 이후 9년) 

재난은 무작위로 발생하지 않는다 

동일본대지진(이하 대지진)은 2011년 3월 11일, 일본 미야기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규모 9.0의 강진으로, 지진 직후, 높이 10미터가 넘는 쓰나미가 발생했다. 미야기현 중부에 있는 '이와누마시'는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가 가장 큰 지역 중 하나다. 이와누마시의 사망자 수만 180명, 가옥은 5,542채가 피해를 입었고 지역 면적의 48%가 침수되었다.

연구팀은 이와누마시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거주자들이 참여한 일본 노인의학 평가조사 자료를 살펴보았다. 2010년부터 수집된 이 자료는 대지진이 발생하기 7개월 전에 처음 수집되어 2013년, 2016년, 2020년에 후속조사가 실시되었다. 특히 대지진 이전인 2010년 자료와, 대지진 이후 2013년, 2020년 응답자료를 이용하면서, 연구팀은 재난생존자 중에서도 집이 모두 부서져 살 곳을 잃어버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일부 또는 적게 파손되거나 파손되지 않은)을 구분하여 비교하였다. 예상할 수 있듯이, 집이 완전히 부서진 경우는 가구소득이 낮은 이들, 교육기간이 더 짧은 이들, 일상생활에서 거동이 불편한 이들이 더 많았다.  

9년이 지나도 나빠지는 건강, 사회적 고립  

집이 부서지고 머물 곳을 잃은 사람들은 대지진 이후 9년간 지속적인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었다. 적어도 집이 남아있는 사람들에 비해, 집을 잃은 사람들은 외상후스트레스증상(Post Traumatic Stress Symptoms, PTSS)이 더 많이 나타났고(2.54배) 일상적으로 졸리는 문제도 더 많이 나타났다(2.17배). 우울증상이나 절망감을 느낄 위험 또한 각각 1.61배, 2.40배 더 컸다. 재난 이후에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PTSS와 우울증상, 절망감이 지속되거나 더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재난 이후 집을 잃은 것이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이유가 장기간 지속되는 심리적 고충 때문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와누마에서 집을 잃은 사람들의 경우, 대지진 후 대규모 이동을 2번 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사회적 관계가 끊어지거나 고립되면서 정신건강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당시 생존자들은 대지진 발생 후 비상대피소(지역학교 체육관 등)로 이동해야 했다. 이때 집단으로 움직인 사람들은 집단 전체가 모두 트레일러 파크와 비슷한 곳으로 입주했다. 개인으로 움직인 사람의 경우, 무작위 추첨을 통해 공공임시주택마을로 이사하거나 민간임대시장의 보조금을 받는 아파트로 이사하거나 아니면 직접 집을 지었다. 집단으로 이사한 경우, 지역사회에서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고 네트워크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개인으로 이동한 사람들은 사회참여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대규모 이동은 대지진 발생 5년 후, 시에서 트레일러 마을을 폐쇄하면서 일어났다. 이때, 임시트레일러 마을에 거주하던 이들은 영구공공주택이 있는 지역으로 이사하거나, 영구공공주택 바깥에서 개별적으로 집을 임대했다. 개별적으로 이사 간 생존자의 경우 그나마 있던 사회적 관계마저 한 번 더 무너졌을 수 있다. 집을 잃은 이들이 대지진 9년이 지난 시점에서 지역사회에 대한 신뢰, 지역사회 내에서 서로 돕고 산다는 인식이나 지역사회에 대한 애착이 더 적은 것은 앞서 말한 맥락에서 비롯된 결과로 해석된다. 

더 크게 피해 입은 이들을 더 고려해야 

연구결과,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은 사람들은 집이 재난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거나 부실하게 지어져 부서질 경향이 더 높았다. 집을 잃은 후에 건강에 미치는 영향 역시 마찬가지다. 집을 잃은 후, 생존자가 스트레스 요인에 대처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소득이나 사회적 네트워크 등)이 더 적을수록 건강을 회복하기는 어렵다. 재난 복구 대책과 재난 이후 대응 정책을 계획할 때, 더 크게 영향 받는 취약집단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재난 관련 외상사건을 경험한 생존자에게 물질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중요하지만, 연구결과는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말한다. 물리적 환경과 시설을 복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존자의 생활과 삶을 회복하고 심리적 안정을 위한 지역공동체를 회복하는 프로그램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난복구 대책은 공동체를 복구하는 정책이어야 

집을 잃거나 이사를 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은 허리케인이나, 홍수 같은 재난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연구팀은 재난으로 이사해야 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와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정책이 마련될 때, 이들의 삶과 일상이 더 빨리 복구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논문에서 2011년 대지진 이후 노인과 자원활동가들이 관리하는 지역사회 카페나, 채소농장, 시장, 라멘식당, 어린이집, 지역사회 문화교육센터 등을 사례로 언급하는 이유다. 이들 장소를 거점으로 지역사회를 재건하려는 노인과 지역주민이 주축이 되어 지역행사를 개최하고 서로를 지원하는 다세대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확장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을 모으고 관계를 회복하는 마을 재건이 조금씩 이루어졌다. 지역사회에서 구성원 간 신뢰, 유대감, 서로 돕는 규범 등을 키우는 것이 재난 피해를 회복하고 건강문제를 예방하는데 핵심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사회적 이슈로 반짝 관심이 집중되었지만, 뉴스나 정부의 선언 너머 피해자-생존자들의 삶은 부서진 채로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 앞으로 재난 대책은 생존자들이 다시 안정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사회적 관계를 복원하고 공동체를 복구하는 기반 위에서 수립되어야 한다. 재난 생존자의 삶에서 사회에 대한 신뢰를 다시 세우는 정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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