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선까지 진행됐던 튀르키예(터키) 대통령 선거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 대통령이 승리하면서 5년 임기 연장에 성공했다.
28일(이하 현지시각) 결선 투표가 진행된 가운데 투표 개표가 99.85% 이뤄진 29일 현재 에르도안 현 대통령은 52.16%를 득표해 47.84%의 지지를 얻은 공화인민당(CHP) 대표인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후보를 약 4% 차이로 제치며 당선을 확정지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당선이 확실시된 이후 대통령궁에서 가진 연설을 통해 "우리는 튀르키예에 유리한 결정을 내렸다. 오늘은 아무도 지지 않았다. 8500만 명이 모두 이긴 날"이라며 "우리는 계속해서 튀르키예의 세기를 함께 만들고 부흥시킬 것"이라고 말했다고 튀르키예 일간지 <휴리옛>이 보도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14일 치러진 1차 대통령 선거에서 49.4%의 득표율을 기록, 과반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2위를 기록한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와 결선 투표를 치르게 됐다. 20년 장기 집권의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었지만 22일 1차 투표에서 5.17%를 득표한 극우 민족주의 성향 시난 오안이 에르도안 지지를 선언하면서 재집권 가능성이 높아졌고, 결국 결선 투표에서 승리하면서 대통령 5년 임기를 이어가게 됐다.
당초 에르도안 대통령이 1차 투표에서 당선을 확정짓지 못하면서 장기집권이 막을 내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2018년 대선어세는 2위 후보를 20%가 넘는 격차로 승리한 바 있기 때문이다.
선거 전 분위기도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 물가 상승률이 높아지는 와중에 튀르키예 역시 소비자물가지수(CPU) 상승률이 올해 4월 43.68%를 기록했으나 에르도안 대통령은 물가를 잡기 위한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지 않았고, 이에 따라 튀르키예 화폐인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됐다.
여기에 지난 2월에는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강한 지진이 발생해 튀르키예에서만 약 5만 명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졌는데, 미숙한 정부의 초기 대응으로 인해 엄청난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2위를 기록한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물가를 잡겠다면서 에르도안 대통령과는 다른 전략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특히 헌법을 바꾸면서 장기집권을 한 에르도안 대통령과 달리 당선 시 5년 단임을 약속한 점도 눈길을 끌었다. 이에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을 근소하게 앞서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의 높은 득표율과 선거 과정에서의 인기를 의식한 듯 이날 선거 승리 연설에서 그가 테러리스트 편을 들었다면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휴리엣>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의 측근들이 "테러리스트 조직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며 "석유가 나온 가바르 지역에서 이전에는 케말 대표가 접촉한 테러리스트들이 콘크리트를 주입해 석유를 추출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어 시리아 난민 100만 명을 튀르키예가 관할하는 안전 지역으로 보낼 것이라면서 카타르와 함께 진행하는 난민 재정착 프로젝트를 가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 29일(현지시각)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 2차 결선투표 승리를 확정지은 뒤 대통령궁에서 연설하고 있다. ⓒ타스통신=연합뉴스
러시아 웃고 미국은 '표정관리'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선에 러시아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중재자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또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지만 나토 확장의 시발점이 되는 스웨덴의 가입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다.
이처럼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당선 연설에서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제안한 가스 허브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개발의 기본 인프라인 운송과 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려 허브로서의 튀르키예의 입지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은 축전에서 트라제 지역의 허브 구축을 언급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친애하는 친구여'라고 그를 호칭하며 당선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푸틴은 에르도안의 당선에 대해 "주권을 강화하고 독립적으로 외교 정책을 실시하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양국관계를 우호적으로 강화하고 호혜적 협력을 위한 기여를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반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본인의 트위터 계정에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선을 축하한다. 나토 동맹국으로서 양자 이슈 및 국제적 도전에 앞으로도 협력하기를 기대한다"는 짧은 메시지만을 남겼다.
바이든 대통령은 내심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의 당선을 바랐을 수 있다. 그는 러시아와 경제적 관계는 유지하지만 서방의 제재에 따를 의향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으며, 스웨덴의 나토 가입 등에 대해서도 열려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해 튀르키예의 외교 노선이 일정 부분 변동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오기도 했다.
한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본인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에르도안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한다며 "유럽의 안보와 안정을 위한 협력 강화뿐만 아니라 양국 이익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튀르키예는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상황 안정에 힘을 쓰기도 했다. 실제 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의 수출길을 여는 흑해곡물협정을 중재해 성과를 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