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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연정 안 돼'…스페인 총선서 우파 과반 실패

 

▲알베르토 누녜스 페이호 스페인 중도 우파 국민당(PP) 대표가 23일(현지시각) 총선 결과 발표 전 수도 마드리드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2023.07.24

 

프랑코 악몽 떠오르며 막판 좌파 결집한 듯…유럽 극우 돌풍 '일단 멈춤'

김효진 기자  |  기사입력 2023.07.24. 19:01:41

스페인 조기 총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됐던 우파가 극우 연정에 대한 불안감 탓에 과반 획득에 실패했다.

스페인 내무부에 따르면 23일(현지시각) 치러진 총선 개표가 완료된 상황에서 중도 우파 국민당(PP)이 33.05%를 득표하며 가장 많은 표를 얻어 하원 350석 중 136석을 차지할 것으로 집계됐다.

 

현 집권당인 페드로 산체스 총리의 중도 좌파 사회노동당(PSOE)은 두 번째로 많은 31.7%를 득표해 122석을 얻을 것으로 집계됐다. 극우 정당 복스(VOX)가 12.39%(33석), 욜란다 디아즈 노동장관이 이끄는 15개 좌파 정당 연합 연합 수마르(SUMAR)가 12.31%(31석)를 얻으며 뒤를 이었다. 

 

국민당은 지난 총선에 비해 의석을 47석이나 늘리며 집권당을 제쳤지만 단독 과반(176석)은 물론이고 극우와 연정을 꾸린다 해도 과반 의석에서 7석이 모자라게 돼 고민에 빠졌다. 과반을 확보하기 위해선 소수 정당들의 지지가 필요한데 극우와 대립하는 바스크와 카탈루냐 민족주의 정당을 비롯해 다른 어떤 정당도 극우와의 협력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개표 윤곽이 드러난 뒤 알베르토 누녜스 페이호 국민당 대표는 마드리드 당사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정당의 후보로서 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며 1당 대표가 총리직을 맡을 수 있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스페인에서 총리로 선출되기 위해선 하원 재적 의원 과반의 찬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투표가 부결될 경우 하원은 48시간 안에 2차 투표를 실시해야 하는데 이 때는 기권을 제외한 출석 의원 중 과반 찬성으로 총리 선출이 가능하다. 2차 투표가 부결되면 새 후보를 지명한다. 총리 선출을 위한 첫 신임 투표 뒤 2개월 내 새 총리를 선출하지 못하면 총선을 다시 치러야 한다. 

 

우파가 예상보다 적은 표를 얻었고 협력이 예상되는 수마르가 선방함에 따라 재집권 가능성이 생긴 사회당은 축하 분위기다. 산체스 총리는 23일 저녁 당사 앞에서 "스페인과 스페인 국민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난 4년 간 우리가 이룬 진보를 완전히 폐기하자고 제안한 퇴행적 연합은 패배했다"고 말했다. 

 

산체스 총리는 5월 말 지방선거에서 사회당이 참패하자 이 결과를 발판 삼아 지지층 결집이 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12월로 예정됐던 총선을 오히려 7월로 앞당기는 승부수를 뒀다. 사회당은 지난 총선에 비해 의석을 2석 늘렸다.

 

사회당 또한 과반 구성이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수마르와 사회당의 의석을 합쳐도 153석으로 과반에 훨신 못 미친다. 다만 소수당인 바스크 및 카탈루냐 민족주의 정당 등이 좌파 연합을 지원할 가능성이 있어 확장성 면에선 좌파 연합이 더 유리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양쪽 모두 정부 구성에 실패해 다시 한 번 선거를 치러야 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 경우 정국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스페인은 정부 구성에 어려움을 겪으며 2015년부터 5번이나 총선을 치렀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무난히 과반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던 우파와 극우의 잠재적 연합이 막상 기대만큼 득표하지 못한 것은 1970년대 프랑코 독재가 끝난 뒤 처음으로 극우가 정부 구성에 참여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스페인 시민들을 흔들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복스와 국민당은 총선 승리 땐 지난해 승인된 프랑코 독재 희생자 유해 식별을 돕는 것을 포함한 과거사 청산법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스페인 언론 <엘파이스>는 "복스가 중앙 정부에 진입할 수 있고 복스 대표인 산티아고 아바스칼이 스페인 부총리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생각이 막판에 좌파를 결집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매체의 선거 3일 전 분석에서 높은 확률로 142석을 차지할 것으로 보였던 국민당은 136석에 그쳤고 2019년 총선에서 52석을 가져갔던 복스는 이번 선거에서 의석이 19석이나 줄었다. 

 

선거 막판에 더 부각된 복스의 극단적 주장이 중도표를 이탈시켰다는 평가도 나온다. 반페미니즘 기치를 내건 복스는 성평등을 주관하는 부처인 평등부에 부정적이고 명시적 동의가 없는 성관계를 성폭력으로 규정하는 비동의 강간죄와 임신중지에 반대한다. 성소수자 권리를 축소하고자 하며 이민자에 적대적이고 인간에 의한 기후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

 

페이호 대표는 유세 과정에서 복스와의 연정 가능성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거리를 두려 애썼지만 이미 5월 지방선거에서 국민당과 복스가 연합한 전력이 있기에 신뢰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의 기억이 생생한 시점에서 치러진 조기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연정 가능성을 더 높게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달 초 관련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60%가 극우와 국민당의 연정을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렌시아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호세 프란시스코 시몬(40)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사회당에 투표하기로 한 이유 중 하나가 극우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는 매체에 국민당은 "극우와 연합에 들어갈 것"이라며 "(프랑코 독재 시절인) 1960년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로 유럽 곳곳에서 세를 불리고 있는 극우의 약진에 일단 제동이 걸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탈리아에서 지난해 10월 극우 정당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취임했고 지난해 9월 스웨덴 총선에서 극우 정당이 단일 정당으로 2번째로 높은 지지율을 얻었으며 최근 독일 극우 정당이 연이어 지역 단체장을 배출하는 등 극우와 극우의 메시지가 유럽 정치를 뒤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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