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5일, 미국에서는 연방 하원의원 보궐선거가 유타와 로드아일랜드에서 치러졌다. 각 당의 본선 후보를 정하기 위한 경선이자, 현 회기에서 절반의 임기만을 채울 자리임에도 전국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두 지역구 모두 전직 의원과 같은 당 소속 후보 당선이 유력하다. 특히 로드아일랜드의 경우 대선과 총선을 1년여 앞둔 지금, 민주당 지지층의 민심을 엿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되었다.
로드아일랜드 1 지역구는 민주당 데이빗 시실리니 (David Cicilline) 의원의 자진 사퇴에 따라 공석이 되었다. 7선의 중진인 그는 임기 중 하원 성소수자 코커스 공동의장, 의회 진보 코커스 공동부의장, 하원 민주당 정책 및 소통 위원회 의장 등 중책을 맡았다. 또 하원 법제사법위원회 반독점 소위원회 위원장으로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등 빅테크 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와 규제 법안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는 로드아일랜드 재단의 대표 및 최고경영자직을 맡기 위해 공직을 떠났다.
지난 100년간 로드아일랜드에서 당선된 연방 하원의원은 평균 10.7년 동안 자리를 지켰고, 1993년 이후에는 민주당 후보만 줄곧 당선됐다. 이렇게 민주당에 우호적인 환경 속에서 급작스럽게 생긴 공석에는 많은 후보가 몰렸다.
민주당 경선에 출마한 후보는 총 12명으로 이들은 당내 다양한 계파를 나타내기도 한다. 주 전역을 대표하는 직책에 로드아일랜드 역사상 최초로 도미니카계로 당선된 사비나 마토스 (Sabina Matos) 부지사는 라틴계 연방하원의원들의 공개 지지를 받았다. 또 다른 라틴계 여성 후보인 샌드라 카노 (Sandra Cano)는 주의회에서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의 가장 많은 지지를 끌어냈다. 40세인 그는 현재 3선의 주상원의원이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 앞섰던 후보는 33세의 애런 레이건버그 (Aaron Regunberg)였다. 전직 주하원의원인 그는 버니 샌더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AOC) 등 연방의회 내 다수의 진보성향 의원과 전국의 진보 시민단체의 공개 지지를 받았다.
샌더스 지지를 받은 레이건버그 VS 바이든 지지를 받은 아모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레이건버그 후보를 돕고자, 선거 9일 전 지역구를 방문에 지원유세에 나섰다. 이때 공표된 여론조사 결과, 레이건버그 후보는 지지율 28%로 선두를 기록했다. 게이브 아모 (Gabe Amo) 후보가 19%로 2위였다. 후원금 모금 규모도 레이건버그 후보는 63만 달러로 가장 많았고, 아모 후보는 60만 달러로 그 뒤를 이었다. 레이건버그 후보는 지난 2018년 부지사 선거에서 고배를 마시기도 했는데, 당시 표 차는 단 2000여 표였기에 이번 선거에서는 그의 당선이 유력해 보였다.
하지만 투표가 끝나고 발표된 개표 결과는 예측에 빗나갔다. 아모 후보가 32.4%의 득표율로, 레이건버그를 3000여 표 차이로 따돌리고 당선되었다. 순위도 득표수 차이도 예상을 뒤집는 결과였다.
35세의 아모 후보는 라이베리아와 가나 출신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지나 라이몬도 (Gina Raimondo) 전 로드아일랜드 주지사 행정부의 시민참여 국장을 지냈고, 이후 바이든 백악관의 지역정부 담당 보좌관을 지냈다. 그의 출마 선언 이후, 바이든 대통령의 첫 비서실장인 론 클레인 (Ron Klain)과 연방의회 흑인 코커스는 공개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11월 본선거에서 당선이 유력한 아모 후보는, 곧 소수인종으로서 로드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최초의 연방 의원이 될 전망이다.
바이든 재선 가도에 희소식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레이건버그 지원 유세 전날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가장 먼저 경선이 치러지는 뉴햄프셔에서 긴 연설을 했다. "미국인들이 필요로 하는 아젠다"라는 제목으로,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하는 명목이었지만, 사실상 바이든 재선 캠프 및 민주당 주류에게 전하는 진보 진영의 요구사항 요약이었다. 연방정부 주도 단일 건강보험 제도 시행, 최저시급 인상, 소득 최상위 계층 대상 세금 인상, 사회경제적 취약계층 대상 복지 강화 등의 주요 메시지는 레이건버그 후보 또한 정치 인생 내내 강조해온 내용이었다.
하지만 샌더스와 AOC를 비롯한 총 8명의 연방하원의원, 제인 폰다 등 높은 인지도를 가진 진보 활동가, 그리고 아우어 레볼루션(Our Revolution), 350.org, 워킹 패밀리스 파티(Working Families Party) 등 진보 진영 대표 시민단체의 전폭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레이건버그 후보는 당선에 실패했다. 진보진영의 레버리지도 큰 타격을 입었다.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바이든 선거 캠프와 민주당 주류에서 수용할 이유가 그만큼 줄어들었다.
쉽지만은 않은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는 희소식이다. CNN에서 8월 말에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과 지지율 상위 7명의 공화당 후보간 일대일 가상 대결 중 바이든이 당선되는 경우는 단 한가지였다. 이마저도 득표율 차이는 근소하게 나타났다. 또한 월스트릿 저널에서 최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40%로 나타난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51%로 나타났다. 인물에 대한 긍정 평가에서는 바이든이 트럼프에 비해 앞서지만, 지지층의 충성도 (loyalty)와 열성 (enthusiasm)에 있어서는 뒤쳐지는 모양새다.
로드아일랜드 보궐선거에서 당내 주류와 같은 결의 아모 후보가 당선됨에 따라, 공화당과 민주당 내 진보 진영을 상대로 두 개의 전선을 마주하는 바이든의 입장에서는 당분간 한 곳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스타파워, 후원금, 그리고 여론조사에서의 우위마저도 민주당 지지층에게 있어서는 당내 주류라는 프리미엄을 쉽게 이길 수 없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지율과 진보 성향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로드아일랜드 1 지역구에서 지난 2020년, 공화당을 상대로 바이든 대통령은 29.1퍼센트 포인트 차이로, 전직 하원의원 시실리니 의원은 28.2퍼센트 포인트 차이로 당선되었다. 오랜 기간 민주당 우세지역이었기에, <쿡 정치 보고서>는 현재 이 지역구의 정당 투표 지수를 민주당 측 12포인트로 산출한다. 이런 전력은 모두 이곳이 민주당 강세 지역임을 확실히 방증하지만, 이는 지역구 내 유권자들이 그만큼 더 진보 성향임을 뜻하지 않는다. 민주당 지지율과 진보 성향이 비례한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번 선거에서 지역 언론의 대다수는 이례적으로 공개 지지 후보를 밝히지 않았으며, 선거운동 기간도 9주 남짓으로 평소에 비해 짧았다. 이 기간 공표된 여론조사 결과는 아모 후보 캠프 측에서 공개한 내부 조사 결과 단 한 건이었다. 여기서 9퍼센트 포인트 차이로 2위를 기록한 아모 후보는 오히려 7.5 퍼센트포인트 차이로 당선되었다. 독립적인 주체가 의뢰한 여론조사가 없었기 때문에 이마저도 그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됐고, 결국 투표 결과와 큰 차이를 보였다. 캠페인에서 직접 의뢰하고 대중에 공개하는 여론조사 결과는 비판적으로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
'MZ세대' 연방의원 13.1%로 역대 최고치, 청년 정치인 당선 비결은?
현 118회기 연방의회에서 40대 미만의 의원은 총 40명으로, 이 중 38명이 하원의원이다. 아모 후보가 임기를 시작하게 되면, 연방 하원 내 40대 미만은 약 9% 그리고 42세 이하의 소위 “MZ세대”의 비율은 13.1%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게 된다. 이 중 31명이 민주당 소속, 27명이 공화당 소속으로 소속 정당 비율은 비슷하다. 반면 상원에는 지난 10년간 42세 이하의 나이로 당선된 후보는 7명에 불과하며, 현직 의원은 단 3명이다.
회기를 거듭할수록 상원의 평균 연령은 높아지지만, 하원의 평균연령은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 특히 2016년 이후 AOC 등 20대와 30대 초선의원의 유입이 시작 늘어나고 있고, 이번 회기에는 최초로 Z세대의 후보도 당선되었다. 전국 주의회와 대도시 시의회에서도 이런 젊은 후보들의 당선이 주목받고 있다.
당선에 성공하는 청년 정치인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본인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며 오랜 시간을 보낸 지역구에 출마한다. 둘째, 그들은 출마 전부터 스스로의 신념과 아젠다를 가지고 시민운동에 참여해 왔다. 40대 미만 연방의원들과 로드아일랜드의 아모 후보도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주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레이건버그 후보 또한 지역구에 위치한 브라운 대학 재학 시절부터 청소년과 청년들의 시민참여 지원, 소득 최하위 계층 지원, 그리고 환경 보호 등 활동을 이어왔으며, 선거 결과 발표 이튿날 시민단체 "퍼블릭 시티즌(Public Citizen)"에서 기후 위기 정책 활동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이들에게는 공직 진출이 자신의 비전을 실현할 수단이자 기존 활동의 연장선일 뿐, 목표가 아닌 것이다.
직접 후보로 출마하지 않더라도 젊은 층의 목소리를 강화하고 정치 활동 참여를 돕는 청년들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2018년 플로리다의 파크랜드 고등학교 총격 사건 생존자인 데이빗 호그 (David Hogg)는 사건 이후 총기 규제 강화 정책의 실현을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며, 이를 위해 청소년들의 선거 참여율을 끌어올리는 활동을 전국적으로 펼쳤다. 지난 8월에는 성장기에 같은 위기를 겪어온 젊은 후보들의 출마를 지원하고자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들(Leaders We Deserve)"이라는 이름의 정치활동위원회 (political action committee)를 설립했다. 이 단체에서는 비전을 공유하는 후보 중, 연방하원 출마를 목표로 하는 경우 35세 미만, 주의회 출마자 희망자는 30세 미만인 경우에만 지지할 것임을 밝혔다.
지방정부 전문 매체 <거버닝>의 분석에 의하면, 2024년의 유권자 인구의 48.5%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로 구성된다. 지난 2월에는 25세의 앤더슨 클레이튼 (Anderson Clayton)이 노스캐롤라이나 민주당 위원회의 위원장으로 당선되었다. 주 단위 정당 위원회 대표 중 최연소 당선자이며, 대선 경합지역인 노스캐롤라이나라는 점에서 모두에게 충격을 줬다. 그는 특히 "본인의 고향과 같은 시골 지역과 소규모 지자체는 민주당이 포기했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에 대해 불만이 커서 출마를 결심했다고 전한다. 그는 최근 NPR과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 동네 같은 곳에도 희망이 있다고 말한 내 인생 최초의 대통령"이라며, 바이든의 재선을 위해 스윙 스테이트인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돕겠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모든 청년과 청소년이 진보적이지는 않으며, 진보 성향의 유권자는 청년층에만 있는 것 또한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지지를 확보하고 또 확고히 유지하는 것이 2024년 대선의 향방을 좌우할 만큼, 그들의 영향력은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