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 모로코 지진 사망자가 2800명을 넘어선 가운데 이웃 국가 리비아에 지난 주말 폭풍과 홍수가 덮쳐 수천 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리비아는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통합 정부를 수립하지 못해 정확한 피해 상황 파악조차 어려운 상태다.
<AP>, <로이터> 통신을 보면 11일(현지시각) 리비아 동부를 통제하는 정권의 오사마 하마드 총리는 현지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홍수 피해가 극심한 북동부 데르나 지역에서 2000명이 숨지고 수천 명이 실종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는 데르나의 "모든 가구가 주민들과 함께 물에 휩쓸려 사라졌다"며 이곳을 재난 지역으로 선포했다고 말했다.
동부에 주둔하는 리비아 국민군(LNA) 대변인 아흐메드 미스마리는 댐 두 곳이 무너져 "주민들이 바다로 떠내려갔다"며 5000~6000명 가량이 실종된 것으로 추정했다. 동부 정권의 잇삼 아부 제리바 내무장관도 데르나에서 5천 명 이상이 실종되고 상당수가 지중해로 떠내려 갔다며 "모든 지역 및 국제 단체의 도움"을 촉구했다.
리비아에선 지난 2011년 아랍의 봄 혁명 여파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붕괴한 뒤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는 서부 트리폴리 통합정부(GNU)와 리비아 국민군이 장악한 동부 정권이 대립하는 무정부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통합 정부 설립에 실패하며 도로 등 기반 시설 정비 및 건축 규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리비아 동부 벵가지에서 활동 중인 구호단체 적신월사의 카이스 파케리 대표는 <로이터>에 데르나 지역 사망자가 150~250명 가량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로이터>는 적신월사와 동부 정권 쪽 수치 모두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데르나 주민들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참상을 전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을 보면 한 데르나 주민은 소셜미디어에 "해가 뜨고 거리로 나가 보니 거리가 없었다"고 황망한 심경을 토로했다. 대피한 데르나 주민 모하메드 자달라가 "가족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집도 잃었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자달라는 10일 밤 집에 물이 들어차자 세 자녀를 데리고 급히 이 지역을 빠져 나왔다. 이후 데르나로 들어가는 길이 파괴되고 통신이 두절되며 형제자매들과의 연락이 끊긴 상태다. 그는 자신의 집이 떠내려가는 사진을 봤다며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홍수로 동부와 서부 정부 모두 3일 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언했다. 서부 정부는 이날 긴급 회의를 열고 피해 지역으로 구급차, 구조대, 의료진을 파견했다고 밝혔다.
외국 정부들도 지원 방침을 밝혔다. <AP>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UAE)는 리비아 동부에 인도주의적 지원과 수색 및 구조 인력을 보낼 예정이며 <로이터>는 카타르 또한 피해 지역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관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가장 필요한 곳에 빠르게 지원하기 위해 유엔(UN) 및 리비아 당국과 긴밀히 접촉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통합 정부가 없는 상태에서 재난 대응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리비아 전문가인 유럽 싱크탱크 유럽외교관계협의회(ECFR) 선임 연구원 타렉 메그리시는 "이번 재앙은 엘리트들이 권력을 놓고 경쟁하며 라이벌 정부를 구성했지만 실질적 정부 운영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리비아 현재 정치 체계의 문제를 보여준다"며 "이러한 재앙의 결과는 정부 통치 실패로 인해 몇 배로 불어난다"고 지적했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모로코 내무부가 11일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2862명으로 늘었다고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부상자 수도 2562명으로 늘었다.
<뉴욕타임스>는 11일엔 아틀라스 산맥 고지대에 위치한 아미즈미즈, 두아르 트니르 등 산간 마을에도 정부 구조의 손길이 닿았다고 보도했다. 지난 8일 밤 규모 6.8의 강진이 모로코를 덮친 뒤 생존자 구조의 골든 타임이라고 여겨지는 72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다. 두아르 트니르에 정부 구조대보다 먼저 도착해 취재를 이어오던 매체는 11일 오후 4시45분께 비로소 마을에 정부 인력과 스페인 수색구조팀이 국영 방송사 기자와 함께 도착했다고 설명했다. 매체는 3일 간 맨손과 삽 등으로 구조를 시도하며 지친 주민들이 "외국에서 상업용 비행기를 타고도 당신들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있다"며 당국의 늦은 대응에 분노를 표출했다고 덧붙였다.
긴박한 상황에서 모로코 쪽이 스페인, 카타르, 영국, 아랍에미리트 등 4개국의 지원만을 받아들인 데 대한 의문이 커지는 가운데 <워싱턴포스트>(WP) 등을 보면 카트린 콜로나 프랑스 외교장관은 프랑스 방송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지원 수용 여부는 "모로코의 주권적 결정"이라고 선을 그었다. 지원이 즉시 수락되지 않은 것이 서사하라 문제, 모로코 국민에 대한 비자 문제 등으로 모로코와의 관계가 최근 긴장된 탓이 아니라는 의미로 읽힌다. 독일 외무부도 "독일과 모로코 간 외교 관계는 좋다"며 지원이 수락되지 않은 것이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독일 구조팀 50명은 모로코의 정식 지원 요청을 받지 못하며 지난 10일 공항에서 해산하기도 했다.
북아프리카 전문가인 스탠포드대 역사학 연구원 사미아 에라주키는 <워싱턴포스트>에 모로코 정부가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외국 구호 요원들이 재난 지역을 조사하는 것 자체를 꺼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제기하고자 했던 방어 불가능한, 위태로운 문제들이 조명"돼 국가가 통제력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