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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李白)의 정야사(靜夜思) 예술적 탐구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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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hakgeun choe 입니다. 중국 당나라 시대의 위대한 시인 중 하나인 이백(李白)의 시 작품 "정야사(靜夜思)" 에 대한 예술적 탐구를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이 시는 간결하면서도 깊은 의미를 담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그의 시 세계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백(李白)과 그의 시세계 소개

이백(李白, 701-762)은 중국 당나라 시대의 위대한 시인 중 하나로, 시선(詩仙)이라고도 불리며 후대에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시는 자연과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풍부한 상상력을 담고 있으며, 자유로운 형식과 독창적인 표현으로 유명하다.

특히, 이백의 대표작 중 하나인 '정야사(靜夜思)'는 고요한 밤에 느끼는 그리움과 외로움을 노래한 작품으로,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는 당시(唐詩)의 정수로 평가되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의 시 세계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지만, 주로 자연과 인간의 삶을 중심으로 한다. 자연을 소재로 한 시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노래하며, 인간의 삶을 다룬 시에서는 인생의 희노애락과 철학적인 고민을 담고 있다. 이러한 시들은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더 나아가, 이백의 시는 중국 문학사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시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며, 문학 연구와 교육 분야에서도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백의 정야사는 당시(唐詩)중 가장 유명한 것 중의 하나

 

상전간월광 (床前看月光) 평상 앞에서 달빛을 보니

의시지상상 (疑是地上霜) 마치 땅 위의 서리와 같도다

거두망산월 (擧頭望山月) 고개들어 산위의 달을 쳐다보고

저두사고향 (低頭思故鄕) 고개숙여 고향을 생각하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알려지고 있는 당시가 중국에서는 약간은 변모되어 전해지고 있다. 위의 내용은 송나라때의 <<이태백문집>>, 송나라 곽무천이 편집한 <<악부시집>>, 홍매가 편집한 <<만수당인절구>>, 원나라때의 소사빈의 <<분류보주이태백집>>, 명나라의 고목평의 <<당시품회>>는 모두 이렇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명나라때 조광등이 만력년간에 간행한 <<당인만수절구>>에는 제3구의 "山月"이 "明月"로 바뀌게 된다.

 

상전간월광 (床前看月光) 평상 앞에서 달빛을 보니

의시지상상 (疑是地上霜) 마치 땅 위의 서리와 같도다

거두망명월 (擧頭望明月) 고개들어 밝은 달을 쳐다보고

저두사고향 (低頭思故鄕) 고개숙여 고향을 생각하네.

 

이후 청나라 때의 왕사신의 <<당인만수절구선>>과 심덕잠의 <<당시별재>>는 또 약간 바뀌게 되는데, 제1구의 '간월(看月)'을 '명월(明月)'로 바꾸었다.

 

상전명월광 (床前明月光) 평상 앞의 밝은 달빛은

의시지상상 (疑是地上霜) 마치 땅 위의 서리와 같도다

거두망산월 (擧頭望山月) 고개들어 산위의 달을 쳐다보고

저두사고향 (低頭思故鄕) 고개숙여 고향을 생각하네.

 

그리고, 최후로 청나라 건륭년간에 형당퇴사가 편집한 <<당시삼백수>>안에는 제1구와 제3구가 모두 명월로 바뀌어 수록된다. 이 판본이 현재 중국에서 널리 퍼져있고, 일반적으로 중국인들은 정야사는 아래의 싯구로 외우고 있다.

 

상전명월광 (床前明月光) 평상 앞의 밝은 달빛은

의시지상상 (疑是地上霜) 마치 땅 위의 서리와 같도다

거두망명월 (擧頭望明月) 고개들어 밝은 달을 쳐다보고

저두사고향 (低頭思故鄕) 고개숙여 고향을 생각하네.

 

여기에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백의 정야사와 같은 유명한 당시가 왜 명, 청 시대를 겪으면서 싯구의 글자가 변경되게 되는 걸까? 명나라 이전까지는 아무런 의문없이 동일하게 기재되었던 시가 왜 명, 청 시대를 겪으면서 변모된 것일까.

 

여기에는 크게 두가지의 해석이 존재하는 듯하다.

첫째는 명, 청시대의 고루한 학자들이 시의 의미를 곡해하여 싯구를 고쳤다는 것이다. 즉, 이 시를 읽으면서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는 것은 (1) 이백이 달을 서서 봤는가? 아니면 앉아서 봤는가? (2) 실내에서 봤는가? 아니면 실외에서 봤는가? (3) 왜 하필 상전(床前)인가? 창전(窓前)도 아니고, 문전(門前)도 아니고...

 

'상전간월광, 의시지상상'을 해석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침상 앞으로 비치는 달빛은 창문을 통할 수밖에 없는데, 당시의 창문은 매우 작았기 때문에 방안으로 달빛이 비쳐야 그다지 넓게 비치지는 않았을텐데, 땅위가 온통 이슬이다라고 표현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로 인하여 어떤 사람은 이백이 당시 시골에 가서 지붕도 없는 집에서 잠을 잤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도 한다. 즉, 지붕이 없으니 방바닥이 온통 달빛이어서 마치 바닥에 서리가 내린 것처럼 보였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나, 지붕이 없는 집에서 잤다는 것은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어떤 사람은 상을 집둘레의 난간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상을 일본의 다다미와 같은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거두망산월'이라는 싯구도 약간 모순된다. 달은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움직이는데, 당나라시절의 침실의 창은 현재와 비슷하게 대부분 남북방향에 둔다. '산월'이라는 것은 달이 막 산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때를 의미한다고 봐야 할 것인데, 시각적인 각도에서 본다면 실내의 침상앞에서 고개를 들더라도 산위에 뜬 달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혹시 몸을 숙이거나 하여 겨우겨우 볼 수 있다고는 하더라도, 그 달빛이 온 방안에 침상앞에 서리처럼 비친다고 하기는 더욱 힘들 것이다.

 

이런 점에서 '명월광', '망명월'로 수정한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즉, 단순히 밝은 달빛이 비친다고 하고, 단순히 밝은 달을 본다고만 한다면, 실내의 침상 앞에서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최근에는 '상(床)'이라는 것은 이백의 시에도 여러번 나오는 호상(胡床)으로 보아야 하고, 호상이라는 것은 접을 수 있는 현대의 의자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백의 시에도 호상은 여러번 나오는데, "동쪽벽에는 호상을 걸어뒀네"라는 문구도 있고 "유공은 가을 달을 좋아하여, 흥이 나면 호상에 앉았다"라는 문구도 있다. 이하의 시에도 "단정히 호상에 앉아..."라는 문구가 나오고, 송나라의 소동파도 "한가롭게 호상에 의지하여..."라는 문구를 육유는 "그림다리 남쪽 물가의 호상에 의지하여..."라는 문구도 있다. 그러므로, 이백이 앉아있던 상이라는 것은 호상을 의미하는 것이고, 결국 실외의 정원에서 호상을 놓고 앉아서 그 아래 비치는 달빛을 서리같다고 하고, 다시 고개를 들어 산 위의 달을 보고, 다시 고개를 숙여 고향을 생각하였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백의 시에 담긴 동양 철학과 사상

이백의 시는 동양 철학과 사상을 깊이 있게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의 시에서는 도가사상과 불교철학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도가사상은 자연과의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며, 인간의 인위적인 욕망과 집착을 경계한다. 이백의 시에서도 이러한 도가사상이 반영되어 있는데, 자연을 소재로 한 시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노래하며, 인간의 삶을 다룬 시에서는 인생의 무상함과 초월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불교철학은 인간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탐구하며, 깨달음과 구원을 추구한다. 이백의 시에서도 불교철학의 영향이 나타나는데, 인간의 삶을 고통과 번뇌로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동경을 담고 있다.

이러한 동양 철학과 사상은 이백의 시에 깊이를 더해주며, 독자들에게 철학적인 고민과 함께 정서적인 공감과 위로를 제공한다.

이백 시의 현대적 해석과 영향력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의 시는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현대인들에게도 큰 영감과 감동을 주고 있다.

현대적 해석은 다양한데, 일부는 이백의 시를 자유와 해방의 메시지로 해석한다. 현실의 구속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하는 모습을 그린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내면의 성찰과 자아실현을 강조한다는 해석도 있다.

문학계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시는 수많은 시인과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중국 전통음악의 가사로도 많이 활용되었다. 회화나 조각 등에서도 이백의 시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이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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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이백의 '정야사' 는 단순한 자연 경관을 노래한 시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움 등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여운을 선사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연구되고 재해석 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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