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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 岳岩

乙巳年 새해 하시는 일들이 日就月將하시고 乘勝長驅.하시고 萬事亨通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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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이주배경 아동과 청소년들이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 체류권 보장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어 2025년 3월31일 종료되는 ‘한시적 구제대책’의 상시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피스 메이커(가명) | 중앙대 학생

나는 어릴 적부터 ‘외국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아니, 두려웠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를 그냥 나 자체로 바라봐 주었으면 했다. 오죽하면 초등학교 수업 시간에 외국인에 관한 내용을 배울 때 예시로 날 들까 봐 벌벌 떨었을까. 친구들과 놀러 다닐 때 외국인이 보이면 나와 엮이지 않게 필사적으로 모르는 척했다. 너는 어느 나라에서 왔냐며 영어로 물어보는 사람들을 싫어했고, 이주아동 신분으로 외국인이라서 생기는 한계들도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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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를 고민할 때 한국에 오래 살기 위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보다 비자를 연장할 수 있는 직업군을 고민해야 했고, 내게는 어린아이의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에디슨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하였지만 나에게 실패는 추방의 지름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외국인보단 흑인을 싫어했다. 그리고 흑인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싫어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외국인’이라고 불리는 것보다 ‘흑인’이라고 불리는 것이 훨씬 싫었다. ‘피부색은 피부색일 뿐’이라는 말이 형식적으로 통용되는 문화인 것처럼 느껴져서 싫었으며, 머리결이 달라서 오는 스트레스가 싫었고, 흰 피부를 선망하는 문화와 시선이 싫었다. 무엇보다 흑인에 관해서 무언가 잘못 말하면 싸늘해지는 분위기가 싫다. 난 그냥 나로 받아들여지고 싶은데 흑인도 외국인도 아닌 나 자신 말이다.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가 싫고, 한국이 싫고, 어떻게 하면 그들의 생각을, 관점을 바꿀 수 있을지 항상 고민했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남들의 시선이 아니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잣대로 이미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난 사람들이 피부색에 대한 편견을 가지는 것이 싫었던 게 아니라 그저 그러한 편견의 무대에 내가 서 있다는 자체가 싫었던 것 같다. ‘날 저 사람들이랑 똑같이 보지 마’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주 배경을 가진 내가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었으나 누구보다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최근에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 구제 대책 연장’에 대한 인터뷰를 하면서 나 자신에게 위화감을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무언가 좋은 말을 많이 하였지만 모두 형식적이고 당연한 소리들이었다. 진심으로 이 구제 대책이 연장되고 사회가 변화하기 위해 어떠한 말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못하였다. 많은 인터뷰를 마치고 생각해보았다.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 구제 대책이 진정으로 나에게 무슨 의미였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구제 대책은 나를 덜 싫어하게 만들어주는 도구였으며, 내 세상 또한 좁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기회였다. 세상을 살다 보면 남의 시선 말고도 나 자신의 편협한 사고로 인해 나를 싫어하게 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나는 앞서 말한 이유들로 나를 싫어했고 나와 닮은 사람들을 싫어했다. 나처럼 흑인이거나 외국인이 아니더라도 이것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또한 내가 싫어하는 시선으로만 나를 바라보았지 새로운 관점으로 나와 주변인을 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것은 경기도 외국인 주민 명예 대사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아주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형태로 한국에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가 형식적으로 배우는 ‘다양한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라는 문장이 ‘이 세상은 이렇게 다채롭고 아름답다’라는 문장으로 탈바꿈되는 시간이었다. 내가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세상은 다양하고 내가 그만큼 경험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 경험을 계기로 나는 세상을 좀 더 솔직하게 장벽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는 내가 그럴 여유와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 구제 대책의 기능은 이것이 아닐까. 여러 고난과 어려움을 겪는 이주 배경의 아이들이 그 어려움을, 그 상처를 인생을 살아가는 원동력으로 바꾸는 시간을 벌어주고 기다려주는 것. 이는 앞으로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밝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외국인이 아니다. 우리는 한국의 사생아 같은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제도의 영향을 받는 그리고 영향을 끼칠 대한민국 국민이다. 서류상 국적이 어떻게 되어 있든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국민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렇게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외국인이 싫어서 [6411의 목소리]

 

외국인이 싫어서 [6411의 목소리]

피스 메이커(가명) | 중앙대 학생 나는 어릴 적부터 ‘외국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아니, 두려웠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를 그냥 나 자체로 바라봐 주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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