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명 前 주베트남 북한 서기관 [한진명의 평양랩소디] 김일성김정일기금은 북한의 아킬레스건, 교착 빠진 남북 관계 바꿀 히든카드 될 수도
일본에 유화적인 북한, 해외 친선기부 명목 제재 피해 외화 조달 다카이치, 납북자·기금 지렛대 삼아 북·미·일 관계 개선 주도 피력 북한과 일본의 관계를 보면, 세 개 매듭이 하나의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첫째, 일본인 납북자 문제, 둘째, 북한의 비핵화(한반도 비핵화) 교섭, 셋째, 일본의 대북 제재 강화다. 납북문제는 일본의 대북 압박 카드이고, 비핵화는 미국의 안보 카드이며, 제재는 양국(미·일) 모두의 대북 협상 수단이다. 다카이치 총리가 납북자 가족과 함께 등장한 것은, 북·미 대화의 숨통 역시 ‘김일성김정일기금’을 통해 트일 것임을 암시한 것이다. 겉으로는 대중 견제, 즉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에 동참하면서, 뒤로는 방대한 대북 네트워크와 정보를 토대로 북·미 회담을 성사시키는데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2025년 10월 28일 일본 도쿄 아카사카 영빈관에서 일본인 납북자 가족을 만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2002년 9월, 평양 순안공항에 내린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일생일대의 ‘도박’을 감행했다. 당시 북·일 관계가 얼어붙은 가운데 그는 과감히 김정일과 직접 만나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매듭짓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그 만남의 결과 북한은 처음으로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했고, 13명 중 5명을 일본으로 돌려보냈다. 당시만 해도 일본에서는 나머지 8명 역시 귀환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나머지 8명에 대해 “사망했다”는 일방적인 입장만 내놨다. 이후 북·일 관계는 얼어붙었다. 사실 북·일 관계는 납북 문제뿐 아니라 북한의 핵실험과 그로 인한 대북제재로 오랫동안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북·일은 남북과 달리 수면 아래에서는 꾸준히 대화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24년 3월 김여정이 내놓은 담화다. 김여정은 지난해 3월 기시다 후미오 당시 일본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을 제안해 왔다고 깜짝 공개한 바 있다. 북·일 정상회담은 끝내 무산됐지만, 평양과 도쿄 사이 소통 창구가 열려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제재 속에서 일본과 손잡는 북한의 현실주의 북·일 관계가 남북 관계보다 원활해 보이니, 한국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난 트럼프 1기 당시 어렵게 성사된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을 가장 강하게 견제(반대)한 것도 일본(기시다 총리)이었다. 일본은 유엔의 대북 제재는 물론, 독자 대북 제재도 가한다. 그럼에도 북한이 유난히 일본에 ‘유화 제스처’를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북·일, 남북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혹자는 한국에 진보 정부가 들어서면, 북한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은 꼭 그렇지도 않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당시 야당(자유한국당)으로부터 ‘친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단 한 차례도 대북 제재를 위반한 적은 없다. 오히려 철저히 제재를 이행했다. 북한이 생각하는 ‘남조선’의 진보정부에 대한 속마음은 2024년 초 김여정의 담화에서 읽힌다. 김여정은 2024년 1월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영특하고 교활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며 “문재인의 평화 의지에 발목이 잡혀 우리가 전력 강화를 위해 해야 할 일도 못 하고 적지 않은 시간을 허비한 것은 큰 손실”이라고 평가했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섰다고 김정은이 남북 정상회담에 순순히 응할 것이라는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김정은 입장에선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모두 큰 차이 없다. 반면, 일본은 다르다. 역대 일본 총리들은 모두 겉으로는 ‘대북 제재’를 주장하면서도, 이면에서는 북한을 ‘측면 지원’했다. 북한이 오늘날 한층 정교한 해외 자금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진보 정권 덕분이 아니라, 중국·러시아와 일본 덕분이다. 그 핵심은 바로 ‘김일성김정일기금’이다. 표면적으로는 ‘위대한 수령의 업적을 기리는 국제기금’이지만, 실제로는 외화 조달 창구다. 평양에서는 제재의 틈새를 파고든 ‘비공식 외교경제 채널’로 기능하고 있다. 북한은 이처럼 철저한 실리주의 노선을 걷는다. 일본 정부가 공식 인정한 납북 피해자는 17명에 불과하지만, 일본 내 시민단체들은 “최소 40명 이상이 실종 당시 납치 정황과 유사하다”고 주장해 왔다. 이들 중 상당수는 북한 노동당의 작전부와 대외연락부 소속 기관에서 일본어·외국어 교사로 일한 경험이 있으며, 이른바 ‘전투원(공작원) 양성소’에서 언어교육을 맡았다는 증언도 있다. 북한의 초대소(招待所) 시스템은 철저한 폐쇄와 감시 속에서 운영됐다. 이동 시 우산과 검은 안경 착용은 의무였고, 금요일마다 노동당 차량으로 일반 사회와 격리된 숙소로 이동했다. 서로의 신분을 몰랐고, 주어진 역할 외에는 일체 대화가 금지됐다. 일부 일본 여성들은 북한인들과 결혼을 강요받았다. 남북 못지않게 북·일 간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납북자)가 많은 셈이다.
김일성김정일기금총회가 지난 10월 12일 평양에서 이사회를 새로 구성하고, 기금규약과 회원규정 일부를 수정·보충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3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평양의 비밀 금고, ´김일성김정일기금위원회’ 북·일을 이어주는 김일성김정일기금은 글로벌 기부 네트워크와도 같다. 2012년 5월 출범한 김일성김정일기금의 위원회(=김일성김정일기금위원회)는 공식적으로는 “김일성·김정일의 위대성을 선전하고, 금수산기념궁전 운영을 국제 기부로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설립됐지만, 설립 경위는 그보다 복잡하다. 위원회는 2007년 설립된 ´국제김일성기금’의 후신으로, 초기에는 외무성 산하 기관에 불과했다. 이후 김정일 사망(2011년) 직후, 당시 외무성 7국이 기금의 성격을 “성(省)급 중앙기관”으로 격상시켰다. 당시 최명숙이라는 여성이 배후에서 큰 역할을 했다. 최명숙은 김일성의 항일투사 양녀로, 어린 시절 평양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한 이후 김일성 전담 통역으로 발탁된 인물이다. 1990년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통역을 맡기도 했다. 이후 남편 김철호의 주선으로 영국 사업가와 연이 닿아 북한 금광 개발권 일부를 제공하는 대가로 자금 협력망을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기금위원회는 외화 조달 창구로 변모했다. 기금위원회의 대외협력 창구는 일본에 있다. 북한 주체사상전국위원회의 국제사무국장 오구마 게니치(小熊健一)가 실질적 협조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평양을 방문에서는 부총리급 예우를 받는 인물이다. 평양을 방문하면 특별히 삼석초대소(三石招待所)에서 숙식을 제공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철호와 오구마의 관계는 “자금-사상-기부”로 얽혀 있다. 기금위원회의 대외자본 대부분은 엔화로 유통되며, 실무는 오구마가 총괄한다. 북한은 이처럼 대북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일본 루트’를 활용한다. 이 경로를 통해 기금 명의로 송금과 외환교환을 하며, 각종 ‘해외 친선기부’ 자금을 조달한다. 이처럼 기금위원회는 표면상 친선·기부조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본 내 친북 인맥과 외화벌이망이 결합된 핵심 결제망이다.
재일본조선인축하단(김철 단장)이 김정일 탄생일(2월 16일)을 경축하기 위해 15일 평양에 도착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6일 보도했다. [연합뉴스=조선중앙통신]
납북자와 제재의 교차점…북·일·미의 숨은 셈법 오늘날 북한과 일본의 관계를 보면, 세 개 매듭이 하나의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첫째, 일본인 납북자 문제, 둘째, 북한의 비핵화(한반도 비핵화) 교섭, 셋째, 일본의 대북 제재 강화다. 납북문제는 일본의 대북 압박 카드이고, 비핵화는 미국의 안보 카드이며, 제재는 양국(미·일) 모두의 대북 협상 수단이다. 그런데 이 세 축이 동시에 움직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북한은 납북 문제와 비핵화 압박, 대북제재를 모두 해결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이 세 가지를 모두 달성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김일성김정일기금이다. 이 조직은 세 축의 ‘교차점’이다. 납북문제를 둘러싼 일본의 압박이 강화될수록, 북한은 해외 자금망을 우회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우회의 중심에 기금이 있다. 이 조직이 일본 내 자금흐름을 흡수하고 동시에 국제사회의 제재망을 피해간다는 점에서, 미·일 입장에선 협상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 북한 입장에서도 기금위원회의 일부 활동을 ‘투명화’하거나 ‘합법적 국제기금’으로 전환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미국에게 제재 완화를 요청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이목을 끄는 모습이 보였다. 최근 다카이치 일본 총리가 취임 직후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일본 내 납북피해자 가족들과의 면담을 가진 것이다. 이를 두고 국내 언론과 전문가들은 다카이치 총리가 강성이기 때문에 북·일 관계가 얼어붙을 것이란 해석을 내놨다. 필자는 정반대로 해석한다. 다카이치는 오히려 북·일 대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을 잘 아는 다카이치가 취임 직후 북·일 관계를 악화할 필요는 없다. 미·일 두 정상이 지난 10월 28일 납북자 가족을 청와대 격인 아카사카궁(赤坂御所)에서 만난 것은 납북자와 김일성김정일기금이 북·일, 미·일 외교의 중심으로 부상했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대한민국은 과하게 정직하고 교과서적인 ‘대북 정책’을 펼치는 것일 수도 있다. 한국의 진보 정권은 김정은을 향해 “남북은 과거 하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며, 손에 쥔 돌(핵탄두)을 내려놓으라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한국의 진보 정권은 대북 제재를 완화해주는 것도 아니다. 대북 제재를 완화하는데 목소리를 내겠다고 약속하는 게 전부다. 당장 배고픈 북한 입장에서 남북 역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당장 우리도 형제간에 재산 싸움이 일어나면 평생 얼굴도 안 보고 사는 마당에, 80년 전 핏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못된 짓을 수없이 많이 했더라도, 당장 먹을 것을 주는 이웃집(일본)이 고맙지 않겠는가?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이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당시 도보다리를 친교 산책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날 배석자 없이 예정했던 10분을 넘겨 30분 넘게 대화를 나눴다. [연합뉴스]
삼중 교착의 해법, ‘기금 외교’에 달렸다 이처럼 일본인 납북 문제, 비핵화 협상, 대북 제재는 개별 사안으로 존재하지 않고 상호 얽힌 하나의 거대한 외교·안보·금융 고리다. 궁극적으로 남북 회담 개최를 희망하는 이재명 정부는 일본이 이 조직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북한이 ‘두 국가론’을 꺼내 든 이후에도 과거의 추억을 토대로 개성공단이나 물물교환을 현 단계에서 거론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2005년과 2025년의 대한민국도 달라지지 않았는가? 왜 북한만 그대로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다카이치 총리가 납북자 가족과 함께 등장한 것은, 북·미 대화의 숨통 역시 ‘김일성김정일기금’을 통해 트일 것임을 암시한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은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사실상 중단됐다. 그 역할을 일본이 조용히 이어받겠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대중 견제, 즉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에 동참하면서, 뒤로는 방대한 대북 네트워크와 정보를 토대로 북·미 회담을 성사시키는 데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필자는, 애국심에 타올라 외친다. “절대로, 북·미 회담 페이스 메이커 자리를 일본에 빼앗기면 안 된다”고. 빼앗기는 순간, 코리아 패싱은 현실화될 것이다. 혹자는 미국이 ‘비핵화’를, 북한은 ‘제재 완화’를 요구하며 평행선을 달리는 만큼, 북·미 회담 가능성을 낮게 본다. 필자는 반대로 본다. 북·미 회담은 시간문제이지, 결국 열리게 되어 있다. 평양의 젊은이들은 스마트폰과 인공지능(AI)에 익숙해져 있다고 한다. 이들이 언제까지 제재를 당연하게 여길까? 김정은도 결국에는 제재를 풀어야 면이 선다. 그런 가운데 북한이 외화를 조달할 수 있는 창구는 제한적이다. 그중 가장 안정된 루트가 바로 일본을 경유한 김일성김정일기금이다. 만약 미국이 북·미 대화 재개의 조건으로 ‘비핵화’라는 비현실적 목표 대신 ‘해외 자금망 투명화’를 요구하면 북한은 응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본이 ‘납북자 문제 해결’을 병행한다면, 세 축은 한 지점에서 교차하게 될 것이다. 비핵화, 대북 제재, 납북 문제라는 삼중 교착에 실질적인 숨통이 트이는 것이다. 물론 장애물도 있다. 북한은 납북문제를 ‘종결된 사안’으로, 기금위원회를 ‘내정 문제’로 규정한다. 일본 역시 납북문제를 정치적 상징으로만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은 제재 강화에만 집중할 뿐, 북·일 간 인도적 통로 복원에는 미온적이다. 하지만 외교에서 ‘자금’은 언제나 현실정치를 바꿔왔다. 김일성김정일기금은 그런 의미에서 외교적 수사 뒤에 숨겨진 ‘실질적 카드’다. 이 조직을 해체하든, 투명화하든, 혹은 외교 테이블에 올리든, 그 어떤 선택이든 교착 상태에 빠진 대북 문제에 숨통을 불어넣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재 속 개방의 동반자와 ‘북한판 도이모이’ 이제 남은 질문은, 이 복잡한 삼각 교착 속에서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북핵 협상과 납북자 문제, 제재 완화 모두 결국 ‘경제’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의 말처럼, 한국은 피스 메이커 대신 페이스 메이커를 자처하는 게 현실적이다. 우리가 이럴수록 주목해야 하는 것은 베트남이 도이모이(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할 때 벤치마킹한 사례가 바로 한국의 새마을운동과 산업화 모델이었다는 것이다. 북한이 먼 훗날 ‘제재 속 개방’이라는 길을 걷게 된다면, 한국은 북한이 개혁개방을 이행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우선 한국은 핵 동결과 우라늄 농축 제한 등을 전제로 한 ‘조건부 경협’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북한이 체제 불안을 최소화한 채 경제 개방을 시도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지구, 동해선 철도망이 남북 간 재가동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북이 영원히 대화를 안 할 수는 없다. 우리(한국) 지방 정부와 금융기관이 결합해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북한에 진출하면 ‘북한판 도이모이’를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한국은 북한이 가장 필요로 하는 행정 역량 강화 부문에서 경험이 풍부하다. 이를 위해선, 우리가 ‘북한 체제를 존중하고, 체제 전복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발신해야 한다. 통일부는 독일과 연계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동독과 서독의 통일을 언급할수록 북한 입장에선 체제 전복에 대한 공포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북한도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 것이며, 향후 펼쳐질 북·미 협상에서 ‘코리아 패싱’을 일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북한판 도이모이’는 북한과 한국에 모두 중요한 카드다. 북한에게는 생존 전략이며, 우리에게는 코리아 패싱을 막을 핵심 카드다. 체제 안정과 생존을 위해 외화를 필요로 하는 김정은에게, 한국의 경험과 인프라는 먼 훗날의 ‘제재 완화 이후의 시나리오’를 그릴 수 있는 훌륭한 모범국가다. 필자가 ‘먼 훗날’을 강조하는 이유는, 김정은이 미국과 달리 한국 측과는 마주 앉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남북이 공통 이익의 선 위에서 협력할 때, 비핵화와 납북자 문제, 제재라는 오래된 매듭에도 마침내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한진명 김일성종합대학 불어과 졸업. 북한 외무성 6국(아프리카·중동·라틴아메리카 담당국)과 7국(주체사상 대외선전국), 주베트남 북한대사관 3등서기관으로 근무하다가 2015년 1월 외교 경로를 통해 한국으로 망명했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을 나와 공장 근로자로 생활하고 있다. 한진명 前 주베트남 북한 서기관 maisonnatale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