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몰라줄까 근심하지 말라
자기만이 홀로 아는 사람은 남이 몰라줄까 봐 항상 근심하고,
자기가 깨닫지 못한 사람은 남이 먼저 깨닫는 것을 싫어한다.
己所獨知者 常患人之不知 己所未悟者 惡人先覺
기소독지자 상환인지부지 기소미오자 오인선각
-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연암집(燕巖集)』 권3「공작관문고(孔雀館文稿)」 자서(自序)
▣해설: 윗글은 조선 후기 북학파(北學派)의 영수인 연암 박지원의 『연암집(燕巖集)』의 일부분이다. 북학 운동(北學運動)은 북벌론(北伐論)이 퇴색하고 청나라의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대의(大義)보다는 실리(實利)를, 고립(孤立)보다는 변화를 모색(摸索)하는 인식의 변화(變化)에서 비롯되었다. 그 선두에 서 있던 연암은 다양한 문물(文物)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과 조선의 허위의식(虛僞意識)에 일침(一針)을 가하는 비판정신(批判精神)을 가진, 요즘 유행하는 말로 ‘뇌섹남’이었다.
연암(燕巖)은 이 글에서 남들이 나를 몰라줄까 근심하는 태도와 다 아는데 혼자 깨닫지 못하는 아집(我執)을 비판한다. 이것을 이명이 있는 아이와 코 고는 소리가 큰 촌사람의 이야기로 재미있게 풀어낸다. 이명이 있는 아이는 제 귀에서 나는 소리를 신기(神奇)해 하지만, 이웃집 아이가 그 소리를 듣지 못하니, 그가 몰라주는 것을 한스럽게 여긴다. 자면서 심하게 코 고는 소리를 내는 촌사람은 사람들이 코 고는 소리가 크다고 일깨워 주자 그런 일 없다며 발끈 성을 낸다.
사람들은 내 행동의 본질(本質)보다는 남들의 평가에 마음을 더 많이 쓴다. 남들의 판단(判斷)이 정확한지 따지고 스스로 평가(評價)를 하기 보다는 작은 칭찬이나 비판에 우쭐대거나 상처받곤 한다. 사람은 인정욕구(人情慾求)를 가진 사회적 동물인지라 남들의 평가(評價)와 인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건강한 판단력(判斷力)과 자존감(自尊感)을 가진 사람은 남의 평가나 인정(認定)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는다. 남들이 내 능력(能力)이나 성과(成果)를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스스로 그 가치를 알고 있다면, 크게 연연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내가 가진 것, 성취(成就)한 것 이상으로 타인이 나를 높게 평가한다면 어떨까? 당장은 기분(氣分)이 좋을지 몰라도 헛된 명성만 높아가는 불안함 속에서 살지 않을까? 떳떳함과 당당함은 정당(正當)한 자기평가(自己評價)에서 나오는 것이다.
연암은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잘되고 못되고는 내게 달려 있고 비방(誹謗)과 칭찬(稱讚)은 남에게 달려있는 것(得失在我 毁譽在人)’이라고 말한다. 비단 글쓰기 뿐 만 아니라 모든 일은 나에게 달려있는 것이고, 그것의 진정한 가치(價値)는 스스로 정확하게 판단(判斷)할 수 있어야 한다. 남들은 비방을 할 수도, 칭찬을 할 수도 있으니 그것에 초연(超然)해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내 가치를 올리는 것, 내가 ‘진짜’가 도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보다 조금 더 좋은 평가(評價)를 받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첨삭(添削)해주는 세태다. 온갖 미사여구(美辭麗句)로 자신을 치장(治粧)하는 것보다는 당당하고 뚜렷한 자아(自我)를 만드는 것이 우선(優先)되어야 하지 않을까? 고전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