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色)이 곧 공(空)이라는 《반야심경(般若心經)》의 한 구절. 색은 물질적 존재를 말하며 공은 실체가 없다고 하는 연기(緣起)의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곧 물질적 존재인 색은 연기의 이치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므로 실체가 없는 것(空)과 같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즉(卽)은 앞에서 이중부정인 불이(不異)를 통하여 다르지 않음을 말한 것을 이어 받아서 같음, 동일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 구절은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전체적인 문장에서 떼어놓고 해석하기 어렵다.
이 부분의 싼스끄리뜨 원문은 “물질적 현상(色)은 실체가 없는 것(空)이며, 실체가 없는 것이 물질적 현상이다. 물질적 현상은 실체가 없는 것과 다르지 않고, 실체가 없는 것은 물질적 현상과 다르지 않다. 무릇 물질적 현상이란 (모두) 실체가 없는 것이요 무릇 실체가 없는 것이란 물질적 현상이다.”라고 하면서 한역본(漢譯本)과 동일하게 “수상행식(受想行識)도 또한 마찬가지다.”라고 하고 있다. 싼스끄리뜨 원문은 한역본의 문장 앞에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에 해당하는 구절이 한 번 더 들어가 있는 형식이다.
이에 대해 번역자인 현장은 첫 번째 부분과 세 번째 부분의 형식이 유사하여 한문으로는 미묘한 차이를 옮길 수 없었던 듯, 첫 번째 부분을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반야경( 般若經)》 계통의 경전과 원문을 미루어 볼 때 첫 번째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에 해당하는 구절은 완전히 동일하다는 것에 대한 절대적인 선언적 명제이며, 두 번째의 ‘색불이공 공불이색(色不異空 空不異色)’은 양자의 차이가 전혀 없음을 강조하는 명제이고, 세 번째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거듭 첫 번째 명제(命題)를 강조하면서도 공이라는 추상적(抽象的)인 관념이 적용할 수 있는 모든 색이라는 구체적인 현상과 일치(一致)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명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원전의 흐름으로 볼 때 한역본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은 첫 번째의 절대적인 선언적 명제와 세 번째의 실제로 증명 가능한 것이라고 하는 주장이 함께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색-공에서 공-색으로 어순을 바꿔서 거듭 언급하는 것은, 첫 번째 색-공의 구조에서는 현상세계의 생멸 변화하는 물질적 현상의 실상은 실체가 없다는 것을, 두 번째 공-색의 구조에서는 진리(眞理)를 깨달은 세계의 시점에서는 실체가 없다고 하는 이법(理法)이 물질적 현상에 담겨 있음을 말하기 위한 까닭이다.
따라서 상즉(相卽)의 논리를 사용하여 ‘색즉시공’은 물질적 현상은 생멸 변화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실체가 없다고 하는 실상과 같다는 것을 선언하면서 동시에 그러한 이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공즉시색’은 실상은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물질적 현상의 생멸 변화로 나타나므로 같은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마찬가지로 동시에 그러한 이치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색과 공의 관계를 범부 중생과 부처, 미혹과 깨달음, 현상과 실상(=진리)의 차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곧 범부 중생(衆生)의 눈으로는 색이 실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부처의 눈으로 보면 실체(實體)가 없는 공이니, 현상세계의 색이 영원히 존재(存在)하는 실체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미혹(迷惑)에서 벗어나서 그 실상을 보고 집착(執着)을 버려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가르침의 압축(壓縮)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