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무대를 시발점으로 마라톤달리기를 하다가 중도에서 포기(抛棄)하지 않으면 마침내는 종착점에 다다르게 된다.
학교 때 글쓰기에 뜻을 두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 당시 국어 영어 수학은 필수과목이었다. 그리고 예비로 과학과 사회, 예능(藝能)을 아우르는 여러 과목이 있었다. 시험 때마다 국어는 거의 만점을 맞았었다. 그리고 역사와 지리 등 사회 과목에서도 별로 다른 애들에게 뒤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국어와 사회 관련 과목을 제외한 다른 과목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영어와 수학 그리고 과학에서도 얼마든지 상위권(上位圈)을 유지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 과목은 내주는 숙제나 대충대충 건성으로 했다. 그 분야보다는 문학작품 탐독(耽讀)에 더 몰입했기 때문이었다. 문학이 곧 ‘청운의 꿈’이었다.
학생 때에는 ‘청운의 꿈’이 숫제 지독한 ‘전염병(傳染病)’으로 전이됐다. 하루라도 문학작품을 읽지 않으면 허전하고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일종의 중독 증세였다. 특히 얻기 힘든 명작을 읽을 기회가 생기면 온밤을 꼬박 새웠다. 여러 곳에 작품을 응모(應募)했지만 번마다 퇴짜를 맞았다. 하면 된다는 일념(一念)으로 어디에 작품 응모가 있으면 그 어떤 것도 마다하고 하지 않고 응모했다. 물론 번번이 코를 떼고 말았다.
학교 졸업 후 우선 당장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다. 가난이 원수였다. 그해 초여름 무작정 상경 이후에는 더욱 처절한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살인적인 중노동보다 더 힘든 것은 객지의 냉대로 인한 모멸감(侮蔑感)이었다. 고향에서는 유년 시절부터 ‘신동’이니 ‘수재’니 ‘천재’란 칭찬만 들었다. 재학 중에는 지각이나 조퇴 한 번 하지 않은 모범생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이 ‘천국(天國)‘에 들어와 소위 이렇다 할 끗발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바보’ ‘천치’ 취급을 당할 때에는 천불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비참하고 서러웠다. 한창 감수성 예민했던 그때 실의(失意)와 좌절의 문턱에서 고뇌하고 또 번민했다. 죽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청운의 꿈이 있었다. 문학은 내 삶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자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일러주는 구원의 이정표(里程標)였다. 그 험악한 밑바닥을 헤매면서도 인생 역전의 장쾌(壯快)한 드라마를 꿈꾸며 해마다 각종 문예작품 현상 공모에 도전했다. 번번이 ‘낙동강 오리알’이었다. 그래도 최종심까지 올라 당선작과 자웅(雌雄)을 겨루며 심사평에 잘 언급됐다는 사실만으로 작은 위안을 삼았다.
그러다가 2000년 블로그를 시작하여 산문, 잡문 형식의 많은 글을 올렸다. 가끔 단편소설도 올려 보았다. 그리고 학생시절의 작가의 꿈을 버리지 못해 가끔 현상모집에 작품을 응모(應募)했다. 그러나 20년의 지난 오늘까지 문단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그래도 문학을 위해 문인의 길을 걸으려는 “청운(靑雲)의 꿈”을 아직도 버리지 못했다. 결국 ‘꿈’이 ‘병’을 더 위독하게 할 뿐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또 신 같은 완성의 경지(境地)에 도달할 확률은 더욱 없다. 그렇다고 차츰차츰 그 경지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함을 게을리 하여서는 절대 안 된다. 글을 짓는 것은 기시덤불에 온몸이 찢기는 고생스러운 길이다. 한 발자국씩 나아갈 때마다 고뇌(苦惱)에 부딪치지만 곧 맺어질 열매를 생각하고 스스로 행복해지며 위안 받게 되는 길이기도 하다.
인간의 이기주의는 교만, 욕심, 관능의 만족, 분노, 불화 같은 백해무익(百害無益)한 것을 유발하는 근원이 된다. 그러나 그 중심에 존재하는 인간의 감정은 자기 부정, 친절, 희생, 정신적 평화를 낳는다. 그리고 꾸준한 노력과 끈질긴 열정이 미래의 행복을 전화(轉化)하는 희망의 끈이 된다.
대저 문학이란 것은 물리적 현상을 지혜와 희생으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성립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신성한 싸움에서 고배(苦杯)를 마시지 않기 위해서 마음을 더욱 단단히 하고 용기를 굳게 지켜야 한다. 성공은 승리의 날에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즉 문학을 하면서 희망은 각 개인이 저마다 잡으려고 하는 행복이 아니다. 노력과 분투가 따르며 각각의 존재가 다른 모든 존재의 희망을 위해 행복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거기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想起)시키고 싶다.
그렇다면 한 인간의 시발점과 종착점은 과연 어디일까? 한마디로 나 자신이 지금 어디로 향해 가는지를 알아야 한다. 또 그 나갈 길이 희망을 향해, 행복을 향해 나가기 위해 높은 완성도를 자각(自覺)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실(眞實)한 문학의 길은 좁다. 소수의 사람만이 그 길을 찾아 발견하고 걸어간다. 왜냐하면 그 길은 그 사람의 내면세계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지름길을 발견하지 못할망정 그 길을 찾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개는 딴 길을 찾았으므로 진실한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문학에 주어진 사명(使命)은 동일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진실한 사명이 부여한 이 길을 걸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슬프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왜냐 하면 남들은 성공한 사례만 피력(披瀝)하는 데 나는 자기의 실패한 허물만 끄집어내니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