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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甲辰年 새해 하시는 일들이 日就月將하시고 乘勝長驅.하시고 萬事亨通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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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간 블로그에 누구를 위해 글 썼는지를 성찰해보는 시간 

블로그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10여년이 돼갑니다. 살같이 흘러가는 세월에 몸담고 익혔던 지식과 학문은 이제 별로 쓸모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한때 그토록 피타는 노력으로 번역일에 정진했던 시간을 할애(割愛)한 데 대한 중요한 의사결정을 이제는 결단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럴 때면 마음에 새겼던 좌우명(座右銘)이 있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을 해낼 수 있는 용기와 할 수 있는 것을 하게끔 하는 힘을 지녀라.” 

사물은 구별하는 능력은 관찰에 몰입(沒入)하는 안목을 키워줍니다. 따라서 새로운 지식을 주입하여 관념적인 인식을 고치거나 변하게 만듭니다. 맹목적인 통찰력은 때론 과분한 행동을 충동질하여 언사가 과격해 질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들뜬 기분은 좋은 편은 아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의 균형(均衡)을 잃을 수 있습니다.

나는 여태껏 누구한테서 정보를 제공해달라는 부탁이나 제안(提案)을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논문이나 이론이나 평론 같은 것은 전혀 써보지 않았던지라 아무래도 글쓰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이때 좌우명을 생각하며 용기를 얻었습니다. 고민하던 중 몇 달 전 한 방문자가 보낸 문자가 문득 생각났습니다. “블로그에서 선생님의 한자에 관련된 글을 가끔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문장이 하도 딱딱해서 끝까지 안 읽었습니다. 과분한 청탁(請託)이지만 이제 좀 필법을 바꾸어 글을 좀 알기 쉽게 써주십시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서 글을 쉽게 쓰는 데 도전해보기로 작심했습니다.

한자를 풀이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한문번역(漢文飜譯)이란 원체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인지라 초안은 자꾸 내 주장과는 달리 딱딱한 논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논문형식(論文形式)으로 흘러갑니다. 논문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쓰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수정을 하고 나면 도로 논문이 되곤 하는 과정의 반복이었습니다.

한자 글감을 찾으며 오래전부터 익혀온 번역을 하면서 나름대로 공력을 들였습니다. 그러나 남들이 알아주거나 보지도 않은 글에 심혈을 몰 붓는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이 모두가 고귀(高貴)한 것이고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이지만 한자와 한문에 관련된 글도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에서 알아야 할 필수적인 교육목적입니다. 교육의 목적은 사람을 고치거나 변하게 만듭니다. 교육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지식을 주입(注入)시키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번역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목적입니다. 젊었을 때는 이 말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공부를 하고 경력(經歷)을 쌓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고 시간은 내게 여유를 주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삶을 유지하는 데만 온 힘을 쏟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성공한 인생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글도 생업(生業)을 유지하는 전공(專攻)에 관한 글만 써왔습니다. 진정 중요한 인생의 목적(目的)이 무엇인지는 내 마음속에 설 자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지난 세월의 많은 경쟁에서 승패(勝敗)는 제한된 시간을 얼마나 잘 사용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합니다. 늦었지만 삶의 유지와 삶의 목적인 이 둘을 조화롭게 균형(均衡)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집니다. 전반보다는 짧게 남아있는 후반엔 그간 잊고 지낸 삶의 의미(意味)를 찾아 인생의 문을 활짝 열어 보고 싶습니다. 

여기서 잠간 번역에 관해 알아봅니다. 번역은 크게 직역(直譯) 즉 축자역(逐字譯)과 의역(意譯) 두 가지로 나뉩니다. 원어 문장의 독특한 구조(構造)와 표현을 살려주려는 태도로 옮기는 것이 직역으로, 번역문으로서는 어색해도 원문에 충실(忠實)한 면이 있습니다. 반면,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문장을 만드는 태도로 옮기는 것을 의역이라 합니다. 의역이나 직역 중 하나가 옳고 그르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글의 종류나 독자층(讀者層)에 따라 의역이 어울릴 때가 있고 직역이 어울릴 때가 있습니다.

따라서 원문 손상이 축약정도에 따라 발췌역(拔萃譯) 즉 초역(抄譯)과 완역(完譯)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원문 손상이 있는 축약이라면 원문을 크게 훼손하여 줄거리만 남긴 경개역(梗槪譯)과 원문을 상당히 축소한 축역(縮譯)과 전혀 손대지 않은 전역(全譯)으로 나눕니다. 완역과 전역은 거의 같은 말입니다. 근래에 이르에 신문의 짧은 번역은 대부분 경개역이었습니다.

출발어(出發語)에서 도착어(到着語)로 바로 옮기는 것을 직역(直譯), 번역된 언어에서 다시 도착어로 바꾸는 것을 중역(重譯)이라 부릅니다. 외국어 해독능력자(解讀能力者)가 없던 한국 근대시기의 번역은 대부분 일본어 중역이거나 중국어 중역이었습니다. 

한마디 더 첨부하면 유능한 번역가는 다음과 같은 재능을 가져야 합니다. ⓵ 해당 언어에 대한 뛰어난 지식과 회화(會話)와 작문이 가능해야 출발어로부터 번역이 가능합니다. ⓶ 훌륭한 언어적 지식을 바탕으로 도착어로 문장을 써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⓷ 번역될 문장이나 주제에 대한 친숙함 내지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⓸ 어원과 관용구, 사용 언어 간의 관련성에 대한 깊은 이해도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의역을 할 것인지 직역을 할 것인지에 대한 적절한 판단능력이 요구됩니다. 이는 겉핥기식의 번역이 아닌 내용을 출발어에서 도착어로 그대로 옮기기 위한 감각적인 측면에 해당하는 조정능력(調整能力)으로 볼 수 있습니다.

번역가들 사이에서 보통은 최고의 번역이란 외국어를 모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고 봅니다. 누군가가 외국어를 구사(構思)하는 데 있어서 완벽하게 구사하는 데 있어 모국어를 하는 사람만큼 뛰어난 경우는 드문 탓입니다. 

번역은 걸출한 작가들을 위한 작문 수업으로 역할하기도 합니다. 동아시아의 도승(道僧)들의 번역 작업과 성경을 번역해야 했던 유럽의 번역가들은 오랜 시간동안 출발어를 공부하면서 수행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문화의 지식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사상과 함께 그들은 출발어를 그들의 언어로 받아들이면서 차용(借用)해왔고 문어나 문장 구조, 관용구와 어휘 등을 자국어로 흡수(吸收)되게 했습니다.

저는 전문 번역가도 아니고 또 번역 관련 직업의 종사자(從仕者)도 아닙니다. 다만 번역이 좋아서 독학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저의 블로그의 대부분은 글들은 한자와 한문에 관련된 글입니다. 저도 딱딱하고 따분한 글을 읽기는 싫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일이 저의 일생의 과업이라 생각하고 계속 한자 관련 글을 작성할 것입니다. 조회 확률(確率)이 낮아도 괜찮습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후회(後悔)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하렵니다. “너의 재능에 따라 너의 내일을 선택(選擇)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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