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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甲辰年 새해 하시는 일들이 日就月將하시고 乘勝長驅.하시고 萬事亨通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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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 짓는 동기와 글 쓰는 목적은 오로지 자신과 겨루기 위해서입니다

어려서부터 나는 글쓰기를 좋아했습니다.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에 제가 쓴 작문이 반급에서 제일 우수(優秀)하다는 담임 선생님의 칭찬을 들은 후부터였을 겁니다. 그때 담임 선생님의 하신 말씀이 문장 짓기에 재미를 붙이는 원동력(原動力)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줄곧 글쓰기를 견지(堅持)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변변한 글 한 편을 발표한 적 없지만... 

배우기를 즐기는 나는 장차 좋은 그릇이 되기 위해서라도 글을 잘 써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글짓기는 자신과의 겨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글공부에 도전장(挑戰狀)을 던졌습니다. 글 실력이 점점 늘어가는 데 재미를 붙인 나는 글공부에 더욱 진력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을 다잡고 글공부를 시작하였으나 후에 와서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바라고 탐내는 욕망에 이끌리어 차츰 동요(動搖)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즉 금전과 명예, 향락과 행복 이 네 가지 가운데서 어느 것이 내 마음에 들까 하고 밤낮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책을 읽는 가운데서 점차 훌륭한 글쟁이는 인간 연구에 몰두(沒頭)하고 훗날의 행복을 바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귀중한 홍보석(紅寶石)을 주고 값없는 조약돌을 바꾸는 장사꾼처럼 되지 말고 글공부에 힘써 훗날의 행복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간혹 돈 많고 이름 높은 사람이 부러운 생각이 날 때마다 나는 스스로 자신을 책궁(責躬)하였습니다. 

“명예나 지위는 해로운 점은 많으나 이로운 점은 아주 적다. 또 힘없는 나 같은 사람이 얻기가 여간 어렵거니와 설사 얻었다가 잃었을 때는 더더욱 고통스럽다. 하필 그런 것을 얻으려고 애쓸 필요가 무엇인가? 그래 이만한 이해타산(利害打算)도 할 줄 모른단 말인가? 하잘 것 없는 욕망으로 하여 훗날의 행복마저 잊어서야 될 말인가? 일시적인 환락에 도취(陶醉)되어 시종일관 꿈꾸어 온 목표를 버려서는 안 된다.” 

이처럼 인식이 바뀐 계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내 삶을 소란(騷亂) 시키는 여러 가지 어지러운 생각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견해가 다르고 기호가 다름으로 하여 사람들 간에 서로 회의하고 반목(反目)하고 헐뜯게 됩니다. 이런 내막을 알게 된 후로부터 나는 명예나 이득을 위해 아득바득하는 사람들과 거래(去來)하기 싫어졌습니다. 전에 사귄 벗들과는 어울리기 싫었고 새로 사귄 벗에게는 경솔히 마음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낯선 사람을 경솔(輕率)히 믿고 남의 말을 무턱대고 믿었다가 속아 넘어가기 십상입니다. 누구 말마따나 한생 속고 산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너무 믿다가 속아 넘어 갈까봐 두문불출(杜門不出)하고 글쓰기에 마음을 붙였습니다. 사람들이 늘 내가 제출한 문제들에 대하여 만족스러운 대답을 주지 못하였고 나도 그들의 말을 아무리 들어보아야 의문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믿을만한 신조(信條)를 찾을 수 없는 바에야 글짓기에 정진(精進)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지병으로 집구석을 지키고 있는 나를 일부러 찾아와서 속일 사람은 없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무망중에 자신의 뜻을 위반하게 될까봐 두려워 나는 무엇보다 먼저 악념(惡念)을 금하였고 특히는 공연한 분노와 기만, 거짓말과 남의 뒤 공론을 삼갔습니다. 특히 남을 기시하지 말아야 하고 이생에 공덕(功德)을 쌓으면 후세에 복을 받고 이생에 악한 일을 하면 후세에 벌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면서 늘 자신을 단속(團束)하였습니다. 나는 악한 사람들이 내 마음에 끼친 검은 그림자를 없애버리고 책속의 훌륭한 사람들과 사귀기 위하여 힘썼습니다.  

어쩌다 고귀한 언어를 희롱해봅니다. 청렴개결(淸廉介潔)한 사람은 비할 바 없이 고상하고 선한 일을 하도록 남을 이끌며 성실한 태도로 남을 대합니다. 청렴개결한 사람은 영생불멸(永生不滅)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악을 두려워하지 않고 물과 불도 겁내지 않으며 악한의 야수성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놀기 좋아하고 눈앞의 소소한 이익을 탐내어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말로(末路)는 비참할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나는 오직 글을 쓰는 일만이 훗날을 위하여 성과를 쌓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인품이 고결(高潔)하고 마음이 즐거우며 속세를 벗어나 잡념을 버리고 올바른 길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마음이 결백하여 남을 질투(嫉妬)하지 않고 언제나 남을 사랑하게 됩니다.  

나는 갈수록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걱정되는 바가 없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인간세상의 향락에 미련(未練)을 가지지 않고 끝까지 글을 쓸 수 있는가가 스스로 걱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훗날의 호화로운 생활이 생각나서 지금의 청빈(淸貧)한 생활을 계속해나갈 수 있겠는가도 걱정되었습니다.  

그러나 한편 또 생각해보면 바로 이 향락(享樂) 때문에 서로 다툼이 생기고 고통이 생깁니다. 목이 마르다고 소금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더 목이 마르는 것과 같이 향락에 대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그것은 또 마치 밑굽에 독약(毒藥)이 든 꿀단지의 단 꿀에 맛을 들여 그냥 먹다가 나중에는 독약을 먹고 죽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것은 또 마치 단꿈을 꾸다가 깨어나서야 그것이 꿈인 줄을 아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여러 가지 근심을 버리고 글을 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한편 종잡을 수 없는 번거로운 생각이 갈마듦을 느꼈습니다. 

글을 쓰자면 이러저러한 어려움을 겪게 되겠지만 후세의 영구한 낙에 비기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이세의 향락(享樂)을 탐내어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이생에 몇 날만 고통을 참고 견디면 저세상에 가서는 영원히 쾌락(快樂)을 누릴 수 있는데 세속사람들은 왜 이것을 고통이라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이 세상은 인간에게 고통을 주려고 생긴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한생을 고통 속에서 모대기는 우리네 인생을 뒤돌아보면 답이 나옵니다. 사람은 나자부터 고통을 겪기 마련입니다. 갓난애는 배가 고파도 저절로 먹을 것을 찾지 못하니 고생이요, 아파도 아픈 곳을 말 못하니 고생이요, 너무 오래 누워있어 몸이 불편(不便)해도 몸을 뒤치지 못하니 고생입니다. 또 젖 먹는 시절에도 말 못할 여러 가지 고통을 겪게 됩니다. 좀 더 커서 학교에 다니게 되면 선생님의 꾸지람을 듣게 되고 어렵고 힘든 과목을 배우자니 고생입니다. 게다가 또 시시로 병마의 시달림을 받아야 하니 이 역시 고생입니다. 성년(成年)이 되면 여러 가지 욕망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 가운데서 돈과 재물을 모으기 위하여 갖은 애들 다 써야 하고 자식들을 위하여 밤낮 바삐 돌아쳐야 하니 욕망(慾望)의 바다 속에 빠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질병이 사람을 괴롭히고 재난이 사람을 엄습(掩襲)함을 겪어야 하고 자연재해의 위협을 받아야 하며 비바람과 더위를 겪어야 합니다. 이러구러 사람이 늙으면 쇠잔(衰殘)하고 노태가 나고 주접이 드니 또한 고생입니다. 간혹 어떤 사람은 이런 고생을 다 면하고 무사태평(無事泰平)하게 일생을 보내면서 평소에는 이런 역경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이고 꼭 죽음이 닥쳐 부모처자와 벗들과 이별하게 되고 평생에 자기가 사랑하던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숨 막히는 죽음의 세계로 들어갈 생각을 하면 공포(恐怖)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이런 생각마저 하지 못한다면 그는 무지한 인간이라고 사람들에게 조롱받게 되고 만매(謾罵)를 듣게 될 것입니다. 

물정을 살필 줄 아는 사람은 혜안(慧眼)이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지식을 응용할 줄 아는 사람은 박식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학문은 있으나 그 지식을 응용할 줄 모르는 사람은 무용지물(無用之物)입니다. 또 위험한 길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기어이 그 길로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한사코 그 사람을 말리는 것이 현자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위기를 모면할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해주는 것이 애국지사(愛國志士)가 해야 할 일입니다. 

만일 위험한 길이라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그 길로 나가는 사람이 있다는 그를 어리석은 인간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그 사람이 스스로 자기를 반성(反省)해본다면 자신을 자제하지 못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하였기 때문에 위험한 줄 모르고 그 길로 나아간 사람보다도 더 어리석었다는 것을 뉘우치게 될 것입니다.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만 하고 교훈을 섭취하지 않거나 남의 충고(忠告)를 듣지 않는 사람은 약이 될 만한 것을 먹지 않고 목숨이 경각(頃刻)에 달린 중환자와도 같습니다. 선악을 분별할 줄 알고 시비를 가릴 줄 아는 사람이 나쁜 짓을 하였을 때는 남의 동정과 양해(諒解)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눈이 먼 사람과 눈이 성한 사람이 같이 길을 가다가 함께 깊은 구렁텅이에 빠졌다면 눈이 성한 사람은 남의 동정(同情)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사람은 갖은 애를 다 써가며 돈을 버는 목적은 다른 사람에게 빈한(貧寒)한 사정을 구걸하지 않고 남의 존경을 받아가며 편안하게 잘 살고 일가친척들을 도와주고 자식들을 먹여 살리려는 데 있습니다. 돈을 헤프게 쓰면 백만장자(百萬長者)도 거지로 될 수 있습니다. 돈을 잘 쓰면 알뜰히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의 칭찬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을 잘못 쓰면 헤프기도 하려니와 나중에는 재산을 다 탕진하고 빈털터리로 남게 됩니다. 돈을 값있게 쓰자면 일가친척들을 비롯하여 구차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여기에 돈 가치(價値)의 매력이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글을 잘 지으려면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하고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추려면 다섯 가지 재간을 가져야 합니다. 세 가지 조건이란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다섯 가지 재간이란 넓게 배우며, 살펴 물으며, 삼가히 생각하며, 밝게 분변하며, 독실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즉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愼思), 명변(明辯), 독행(篤行)입니다. 한마디로 글쓰기는 보고 듣고 느낀 생각을 적어서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이 몇 가지 재간이 없이는 글을 제대로 짓기 어렵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글을 쓸 줄 모르니 글이 써지질 않을 것이요, 글을 짓기 못하니 글이 지어지지 않을 것이요, 글을 지을 줄 모르니 글 짓는 방법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럴 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면서 글을 쓴다 해도 나중엔 갈피를 잡을 수 없을뿐더러 가뜩이나 짧은 밑천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글을 쓰고 싶어도 글을 쓸 줄 몰라서 안 쓰게 됩니다. 글을 안 쓰다 보니 쓸데 안 쓸데를 모르며 또 글을 쓸 줄 모르다 보니 쓸데 안 쓰고 안 쓸데 쓰는 현상이 생깁니다. 만약 생각이 글에 흘러 들어가는데 글을 쓰지 못하다보니 생각이 막힌다면 나중에 그 생각이 차고 넘쳐서 머리를 무너뜨려 결국 생각을 몽땅 흘러버리고 마는 수포(水泡)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짧은 편폭에 많은 내용을 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글을 잘 짓는 사람일지라도 한계가 있고 또 능력제한으로 유감이 오롯이 묻어나는 글을 짓고는 자책감(自責感)에 빠지게 됩니다. 한마디로 글의 텍스트가 안고 있는 그 내용의 중요성, 주제의 독특성, 창작의 독창성, 예술의 감각성, 세부의 다양성, 묘사의 세밀성, 구성의 복합성과 그리고 뛰어난 언어구사력을 재치 있고 기교 있게 사용하면 비교적 완성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짧은 편폭 안에 현실생활을 광범위한 각도로 진실하고 심각하게 다 조명(照明)할 수는 없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종합적으로 분석해보면 글짓기에는 보아야 할 것이 많으니 넓게 보고, 들어야 할 것이 많으니 깊게 듣고, 생각할 것이 많으니 유심히 생각해야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글을 쓸 기회가 적어졌습니다. 기회가 적어졌다는 것은 지병으로 집구석에 처박혀 있다 보니 사회활동이 없어졌다는 말이 됩니다. 또 사회활동이 없으니 시야가 좁아지고 시야가 좁아지니 사유도 단절(斷切)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글까지 쓰지 않는다면 실타래처럼 헝클어진 생각을 도무지 정리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그냥 제 생각을 블로그에 칼럼형태로 써봅니다. 얼마나 자주 쓸지는 모르겠지만 꾸준히 제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특정 매체(媒體)에 기고하려고 쓴 글이 아님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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