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두꺼비가 고니고기를 먹으려 하는군(癞蛤蟆想吃天鹅肉)”이란 말이 있습니다. 중국의 최고명작 “홍루몽(紅樓夢)” 제11회의 마지막쯤에 나오는 말입니다. 가서가 왕희봉(王熙凤)을 탐낸다는 말을 들은 평아(平兒)가 분해서 이런 말을 하면서 가서가 그런 생각을 품다간 꼭 제명에 죽지 못할 것이라고 욕을 합니다. “두꺼비가 고니고기를 먹으려 하는군”이란 말은 자신의 분수(分數)도 모르고 손에 넣기 불가능한 물건을 탐(貪)내는 사람을 비웃는 말입니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똑똑히 알고 덤비라는 뜻이 됩니다. 못생긴 두꺼비주제에 아름다운 고니고기를 먹으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일깨워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주로 못생긴 남자가 아름다운 여인을 탐낼 때 그 남자를 조롱(嘲弄)하여 비웃는 말입니다. 여기서 두꺼비는 못나고 가진 게 없는 남자를 말합니다. “못나다”의 뜻을 국어사전(國語辭典)에서 찾아보면 “얼굴이 잘나거나 예쁘지 않다 또는 능력이 모자라거나 어리석다”고 해석(解釋)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두꺼비는 못생기거나 능력(能力)이 모자라고 어리석은 남자를 비유(比喩)하는 말입니다. 또 가진 게 없는 남자도 두꺼비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못생긴 남자, 능력이 모자라고 어리석은 남자, 가진 게 없는 남자는 아름다운 여인을 탐내지 말라는 경고(警告)가 됩니다. 그럼 두꺼비는 정말로 고니고기를 먹을 수 없을까요? 우리 주변에는 못생긴 남자가 아름다운 여인을 얻는 사례(事例)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두꺼비도 고니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못생긴 남자가 아름다운 여인을 “집사람”이라고 소개(紹介)하는 자리에서 누군가 낮은 소리로 “두꺼비도 고니고기를 먹을 수 있군”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못생긴 남자”는 두꺼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능력이 있고 가진 게 있는 남자였습니다. 원래는 “두꺼비(癞蛤蟆)”였지만 “용(龍)”으로 탈바꿈했던 것입니다. 외모는 천성적(天性的)으로 타고납니다. 아무리 성형(成形)이 발달한 시대라고 해도 태어날 때 못나게 태어났으면 죽을 때까지 못난 대로 살수밖에 없는 것이 대다수 “못난이”들의 운명(運命)입니다. 하지만 “두꺼비”로 태어났다고 누구나 다 한평생(限平生) “두꺼비”로 살아가는 건 아닙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노력(努力)으로 “호랑”이나 “용”으로 탈바꿈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니고기도 먹을 수 있는 겁니다. 반면에 태어날 때부터 잘 생긴 얼굴로 태어나거나 금수저(金箸匙)를 물고 “용”으로 태어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생오라비처럼 얼굴이 잘 생겼다고 해도 아름다운 여자 앞에 두꺼비로 보이는 남자들도 있습니다. 재물(財物)을 많이 가졌거나 높은 권세(權勢)를 자랑하는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용”같아 보일수도 있지만 능력(能力)이 없다면 허수아비용, 못생긴 “두꺼비”에 불과할 뿐입니다.
결국 상술한 견해(見解)를 분석해보면 외모지상주의를 고취(鼓吹)한 것 같아 좀 짓꿎다고 할까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런 경향이 범람(氾濫)하는 것은 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래에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현실적 진상(眞相)을 적나라하게 파헤쳐보려고 합니다. 즉 외모지상주의(外貌至上主義)란 사람을 비롯한 생명체의 외모가 본래 상관하지 않는 영역(領域)까지 영향을 미쳐 대상을 차별(差別)하는 것입니다.
외모는 유교 사회에서도 중요한 덕목(德目)이었습니다. 이미 “한서(漢書)” 세계의 “시” 해설서 “한시외전(漢詩外傳)”에서는 미모를 권력·부·용기·지혜와 동급의 속성(屬性)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모(美貌)는 조정을 통솔(統率)하고 백성을 돌보는 데 쓸 수 있다고 했을 정도. 당나라 시기부터 관리 채용에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기준을 두었는데 여기서 신(身)은 단순히 몸 상태가 아니라 '신수(身手)', 즉 용모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언행과 글과 판단력(判斷力)보다 더 중요한 자격이었던 것입니다. 송(宋)나라 대에 들어가면서 당(唐)나라 때보다는 나아지긴 했지만 신언서판의 순서(順序)가 바뀌거나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엄격한 유교 국가를 표방(標榜)한 조선에서는 이를 배격(排擊)했던 듯 관리들 초상화 보면 별의별 얼굴이 다 나오긴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진선미(眞善美)'라는 말에 담겨져 있는 것처럼 진실 됨을 제일 중요시했기 때문에 초상화를 사실주의에 입각(立脚)해 표현했습니다. 오히려 좀 더 예쁘고 잘생겨 보이게 하려고 초상화(肖像畵)를 손질하거나 조작하여 남길 경우 명예(名譽)가 떨어지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워낙 아름답다는 것은 건강(健康)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듯한 얼굴과 몸매는 그 사람의 건강과 생식상태(生殖狀態)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이처럼 외모를 숭상(崇尙)하는 풍조 자체는 특정한 국가, 민족, 시대, 성별, 나이, 교육수준(敎育水準), 종교에 국한되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인류 공통, 심지어 인류를 넘어서 지각이 발달한 고등동물(高等動物)에서는 본능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예로부터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추한 것을 싫어하는 것은 기준이나 취향의 차이가 있을 뿐 인간의 사상을 이루는 근간(根幹)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이성적인 동물이며 외모의 우열이 능력의 우열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왜 이렇게 외모를 말 그대로 '지상(至上)'으로 삼고 외모를 모든 우열(優劣)의 기준으로 적용하는지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그 정도가 이토록 극심해지는지의 원인(原因)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진화심리학적으로는 호모 사피엔스 이후에는 인류의 문화 발전이 상당히 급격히 진행되어 두뇌의 발달이 충분히 적응(適應)하지 못했음을 지적합니다. 원시시대(原始時代)의 습성이 그대로 남아 남자는 아직도 재생산본능(再生産本能)의 잔재로 임신, 양육의 안전함을 위해 얼굴과 몸매가 예쁜 여자를 탐하는 경향(傾向)이 있으며 여자는 채집본능(採集本能)과 우두머리 남성을 좋아하던 잔재로 많은 자산과 물건, 사냥에 적합(適合)한 신체를 가진 남성을 탐하는 경향이 남아 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문화의 발달로 성격과 취향(趣向) 등의 차이가 있지만 이런 근본적인 부분에선 아직 변함이 없습니다.
현대사회에서 경쟁(競爭)이 워낙 심해지면서 옛날과는 달리 웬만한 사람들의 스펙은 더 이상 변별력(辨別力)을 갖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좀 더 분명하고 알기 쉬운 차별의 요소를 찾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외모입니다. 아무리 성형수술(成形手術)을 해도 원판 불변의 법칙(法則)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닌 만큼 타고난 외모는 그야말로 타고난 경쟁력이 되는 것입니다. 외모지상주의의 폐해(弊害)의 핵심이며 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입니다. 외모지상주의를 긍정하는 측도구직(測度求職)에서의 과도한 외모지상주의만큼은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설득 방법 중 '결과물전화(結果物轉化)' 외에는 "잘생기고 예쁜 사람"과 "못생긴 사람" 사이에 설득력(說得力)에 큰 차이가 납니다. 심지어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 대면해서 클레임 받으면 절반 이하로 줄어듭니다. 돈을 벌려면 설득(說得)을 꼭 해야 하는데 설득을 하려면 외모가 막대(莫大)한 영향을 미칩니다, 단순히 고객(顧客)만 설득하면 끝나는 게 아니라 회사 내부의 다른 부서, 거래처, 금융기관, 공공기관, 시민단체, 언론, 지역주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理解關係者)를 설득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서비스업, 구매, 영업, 연예인 분야 정도에서 끝나는 게 아니고 사무직 전반에서 전부 외모를 따지게 됩니다. 거기에 더 나아가서 구직자(求職者) 쪽에서도 회사에서 굳이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성형수술을 함으로써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하고자 하는 경우도 일반적입니다.
즉 구직자는 자신이 취업하려고 생각한 곳에서 외모가 아닌 지식과 인성 등을 평가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닌 외모에 대한 편견(偏見)으로 채용을 거부당하면 구직자는 사회생활에 절망하고 이것이 외모에 대한 집착(執着)으로 이어지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또 취업하고 나서도 외모에 의한 차별은 계속됩니다. 예쁘거나 잘생긴 외모를 가진 사람이 업무 시간에 딴 짓을 하더라도 상사가 눈감아주거나 똑같이 실수(失手)하더라도 못생긴 사람은 더 심하게 혼나는 등 은근한 차별은 계속 존재합니다.
요즘 언론(言論)에서 지나치게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긴다는 비판(批判)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못생긴 사람은 개그맨 말고는 진출(進出)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개그맨, 개그우먼들도 얼굴이 반반한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드라마에서도 남녀 주인공이 못생긴 경우 시청자가 우수수 떨어져 나가므로 함부로 못생긴 주인공(主人公)을 쓸 수가 없습니다. 주인공이 예쁘고 잘생긴 건 매체나 시청자들 모두가 상식인 양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성향(女性向) 드라마에서 못생긴 남성은 잘생긴 남성을 죽었다 깨어나도 이기지 못합니다. 이른바 외모 보정(補正)으로 주로 막내가 막내 보정과 겹쳐 받습니다. 반면 드라마의 장남들은 외모 역보정이 나와 막내는 잘생긴 반면 장남은 그렇지 못합니다. 드라마에서 잘생긴 사람과는 달리 못생긴 남성은 각종 능력, 지능, 신체능력, 간지, 카리스마, 재능, 인성, 작품 내 대우, 평판, 취급까지 전부 다 잘생긴 남성을 이기지 못합니다.
같은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외모에 따라 평판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어디서나 흔히 보는 토종 한국인스러운 외모의 연예인이 외국식 예명과 외래어를 쓰거나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면 자발적으로 창씨 개명한 매국노라도 되는 양 비난하다가도 잘생긴 외모의 연예인이 그런 스타일로 활동하면 그런 비난(非難)이 쑥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어르신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이중 잣대로 사실 이것은 과거 못 살던 시절 있었던 자국민 비하 정서(卑下情緖)라 할 수 있습니다. 교포 가수가 드물던 수십 년 전에도 서양식 예명을 쓰는 한국인 가수가 있었을 정도로 서구를 동경(憧憬)하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조선 놈은 안 된다는 생각이 팽배(澎湃)했던 시절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이 서양인(西洋人)이 될 수는 없기에 일종의 동족 혐오(同族嫌惡)가 저런 식으로 표출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외모에 따라서 평판(評判)이 엇갈리는 문제는 10~20대 혹은 30대들도 마찬가지이고 2020년대 들어서도 여전한 관계로 젊은 사람들도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근래의 이성혐오(異性嫌惡), 장애인 혐오, 저소득층 혐오, 인종 및 지역 차별과 성 소수자 혐오 정서에서도 온, 오프라인에서의 피해는 외모가 못생긴 사람에게 집중됩니다. 따라서 동물보호도 외모지상주의를 적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쁘고 귀엽게 생긴 동물의 보호에는 관심을 기울이지만 그렇지 않은 동물에는 무관심하거나 동물보호 우선순위에서 후순위로 밀려나기도 합니다. 가장 좋은 예시가 하프물범입니다. 멸종위기(滅種危機)는커녕 개체 수 조절을 위해 사냥이 공식적으로 허가된 동물임에도 귀여운 외모 때문에 죽이면 안 된다고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동물 보호를 논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동물이 비교적 인간과 가깝고 귀엽다고 생각되는 개와 고양이인 것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사람뿐이 아니라 과일이나 채소(菜蔬)도 못생기면 값이 팍 내려갑니다. '이것도 외모지상주의'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외형(外形)을 좋게 하기 위해 안 좋게 키우는 경우를 무시 못 합니다. 이런 과일이나 채소는 동물원에서 주로 사 가는데 사육사(飼育士)들이 겉은 못생겨도 맛 좋은 과일을 맛보기로 조금씩 먹고 동물에게 주기 위해 고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시장에서 볼 수 있는 과일과 채소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생산량(生産量)의 상당 부분은 못생긴 것들이 차지하는데 상품가치(商品價値)가 없어 농가에서 소비하거나 위에처럼 동물원에 팔지만 대다수는 폐기 처분이 되는 실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버려지는 채소와 과일을 재활용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뭐 과즙재료(果汁材料)로 쓰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게 엄청 비중이 큰 것도 아니니깐 하는 말입니다.
이런 문제들이 많음에도 말로만 외모지상주의를 배격하고 실제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은 분명히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문화풍토(文化風土)를 바꾸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애초에 잘생기고 능력 있는 연예인, 아이돌, 게임, 웹툰 캐릭터를 선망하는 내제의식(內在意識) 중 하나가 외모에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외모지상주의의 비판에서 주장하는, 못생겼지만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잘생기고 예쁘고 능력 있는 엄친아, 엄친 딸에 비해 찬양(讚揚)받는 수에 비해 압도적으로 차이가 있으며 평등하게 보자는 풍토가 제대로 자리 잡지도 않았습니다. 당장 평범하다고 묘사되는 남자나 여자에 미남미녀(美男美女)를 쓰는 걸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피해의식(被害意識)에 의거한 논증이 있습니다. 얼굴 자체가 못생긴 사람도 돈을 모아서 옷을 갖춰 입거나 머리를 다듬어서 충분히 시각적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번화가(繁華街)만 가도 못생긴 얼굴을 다른 것으로 멋지게 커버한 사례는 흔하게 보입니다. 당장 유튜브에서 운동이나 외모 가꾸기를 통해 사람 역변(逆變)하는 영상만 봐도 매우 긍정적인 변화(變化)가 태반입니다. 더욱이 성형하지 않고도 연애 잘하며 외형을 가꾸면서 자신감(自信感)을 얻은 사례도 상당히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외모와 옷, 청결 등의 코디를 꾸준히 가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판(原版) 때문에 차별을 받는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한 차별까지는 해결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꾸밈을 완전히 포기하고 막 나가는 사람이 아닌 이상 별로 예뻐 보이지도, 옷이 잘 어울리지도, 피부가 말끔해 보이지도 않아 보이는 그 모습이 당사자는 돈과 시간 들여서 열심히 관리했는데도 그 정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이런 케이스도 적어도 안 씻고 옷 관리 안하고 외모관리(外貌管理) 안하는 것 보다는 매력적(魅力的)이기 때문에 이런 노력 자체가 아예 허무맹랑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실제로 원판이 못남에도 불구하고 관리를 해서 매력을 키워 이성과 교제(交際)하는 사례는 차고 넘칩니다. 각종 번화가를 유심히 둘러보면 원판이 연예인 수준이거나 반반한 애들만 연애(戀愛)를 하는 건 절대 아니며 선남선녀(善男善女)가 아닌 사례도 차고 넘칩니다.
물론 원판의 한계가 있을지라도 미의 기준이 주관적(主觀的)이기 때문에 호감을 살 행동을 하면 아예 포기하는 것보다는 분명 도움이 됩니다. 미남미녀는 아니지만 친근한 이미지로 인기를 얻는 방송인들이 그러한 예입니다. 그러고 앞서도 언급되었듯 이 외모의 기준이 잘생겼냐 못생겼냐만 있는 게 아니므로 못생겼더라도 호감형(好感形)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70년대에 나온 못난이 인형(人形)처럼 못생김이 모에 요소가 된 사례도 일찌기 있었고 심지어 애완동물 시장에서도 그렇습니다. 샤페이, 불도그, 스핑크스 고양이는 일반적인 기준(基準)에서는 결코 예쁜 애들이 아닌데 은근히 매니아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하는 짓이 미워서 얼굴이 미워 보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이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항간(巷間)에 떠도는 박사모상 얼굴이 그런 케이스인데 박사모 집회에 모이는 사람들의 얼굴은 잘생기고 못생기고를 떠나서 뭔가 풍기는 인상에 공통점(共通點)이 있다고 해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앞서도 언급되었듯이 외모에 대한 열등감(劣等感) 때문에 불평이 많은 꼬인 성격이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외모가 아름다울 경우 주변에서 기대하는 그 사람의 이미지 때문에 연예인(演藝人)처럼 이미지 관리를 하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주변의 기대치(期待値)가 낮기 때문에 공격성 표출을 생존전략(生存戰略)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예쁜 사람이 예쁜 사람을 질투하는 사례역시 많습니다. 어려서부터 예쁘다, 잘생겼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면 외모가 자신의 존재가치(存在價値)라고 착각하게 되므로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보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존재로 여기고 자신보다 외모가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무시(無視)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외모가 아름답지 않을 경우,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을 숭배하면서 환심(歡心)을 사는 전략을 취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는 자기 기준으로 봤을 때 평균 미만인 사람을 유난히 구박(驅迫)합니다.
따라서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와 같은 사고방식(思考方式)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여성을 혐오하는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예쁜 여성 유저가 인증하자 관심을 얻기 위해 달라붙는 사례도 많고 남성을 혐오(嫌惡)하는 여초 커뮤니티에서도 잘생긴 남자 연예인을 환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본인들은 이상적인 이성을 선망(羨望)하며 연애대상으로 삼고 싶지만 본인들은 평가해선 안 된다는 수준의 논리인 것입니다. 당장 외모지상주의를 비난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본인부터가 타인의 외모를 평가(評價)합니다.
요약하자면 외모지상주의의 문제를 비판(批判)할 순 있어도 외모지상주의 자체를 비판하는 행위는 현실의 선남선녀와 유명인, 연예인들을 포함해 가상 매체의 모든 미남 미녀 캐릭터를 전부 평범한 사람과 거지와 생긴 게 다를 바 없다고 말하면서 평등하게 좋아하는, 해탈자(解脫者)나 성인 수준이나 되어야 가능한 논리(論理)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행태를 비판하면서 상기의 사항을 잘 지키고 있는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성욕과 사회성을 포기(抛棄)한 성인이 아닌 이상 불가능합니다. 성인(聖人)들도 외면을 보지 말고 내면을 보라고 권장하고 스스로는 그런다고 하지만 외면은 매우 강력한 매력 에너지를 발산해서 정말 이쁘고 멋진 사람이 사회적으로 문제없고 평범한 성격만 되어도 이 말은 보란 듯이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됩니다. 이런 논리를 얼마나 인류가 신봉(信奉)했는지는 당장에 역사가 증명해줍니다.
결국 완전히 부정적 측면(側面)만 있는 것도 아니고 개선이 가능한 경우도 많기에 긍정적인 효과를 본 사람들 입장에선 편견과 게으름문제라는 생각이 지배적(支配的)인 것입니다. 또한 앞서도 언급했지만 인성도 외모에 일정 부분 영향(影響)을 끼칩니다. 자주 웃는 사람은 아무래도 얼굴 근육(筋肉)이 웃는 모양으로 발달하기 때문에 외모가 나아 보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결론만 말하자면 외모지상주의가 진짜로 사라지기는 매우 힘들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언젠가 사회사상(社會思想)과 도덕윤리(道德倫理)의 기준이 현재와는 많이 바뀌어서 자유보다 평등을 우선시하고 생명공학이 고도로 발달해서 모든 사람의 체격과 외모가 동일하도록 유전자조작(遺傳子操作)을 하는 게 의무화(義務化)되는 시대가 오면 모를까 말입니다. 그러니 고니고기를 먹고 싶다면 각고(刻苦)의 노력을 다하여 “호랑이”나 “용”으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이 말의 진의(眞意)가 무엇인지 인지(認知)하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