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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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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양산박 두령 천위성(天威星) 쌍편(雙鞭) 호연작(呼延灼)

[圖片信息  천위성(天威星) 쌍편(雙鞭) 호연작(呼延灼)] 


호연작(呼延灼)은 북송 사람으로 “수호전(水滸傳)”의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이다. 시내암(施耐庵)이 쓴 중국 4대기서 중 하나인 수호지에 등장하는 108 호걸 가운데 한명으로 36 천강성(天罡星) 가운데 천위성(天威星)이다. 호연작은 여녕군(汝寧郡) 도통제(道統制) 출신으로 송나라 개국공신(開國功臣) 호연찬(呼延贊)의 직계자손으로 두 개의 쇠채찍을 잘 썼다고 한다. 

고당주(高唐州)가 함락되고 태수 고렴(高廉)이 죽자 고구(高俅)는 크게 분노하여 황제에게 양산박 토벌을 건의 하면서 호연작(呼延灼)을 천거한다. 호연작은 진주의 한도(韓滔)와 영주의 팽기(彭玘)를 부장으로 삼고 기병 3천, 보병 5천을 이끌고 양산박(梁山泊)으로 출격하였다.  

양산박군과 대치한 호연작(呼延灼)은 자신의 장기인 연환갑마(連環甲馬)를 거느리고 출격하였다. 연환갑마는 말과 사람에게 모두 갑옷을 입히고 30기를 한 조로 쇠사슬로 연결한 진법(陣法)이다. 중무장한 군대의 공격으로 양산박군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배를 타고 산채 안으로 후퇴한다. 

이 와중에 호삼랑(扈三娘)에 의해 팽기(彭玘)가 사로잡히자 호연작(呼延灼)은 대포의 명인인 능진(凌振)으로 하여금 양산박에 포격을 가하게 했다. 양산박에 강력한 위협(威脅)이 되는 능진을 사로잡기 위해 오용(吳用)은 수군으로 하여금 능진을 유인해 잡도록 하였다. 사로잡힌 능진은 송강(宋江)의 인덕에 감화되어 동료가 되었다. 

팽기(彭玘), 능진(凌振)이 양산박에 합류하였으나 연환갑마(連環甲馬)의 위력은 아직도 건재하였다. 오용(吳用)에 의해 무기 기술자 탕륭(湯隆)과 그의 이종사촌이자 서령(徐寧)을 추천한다. 계략으로 서령이 양산박에 합류하자 연환갑마는 서령의 장기인 구겸창(鉤鎌槍)에 의해 무너졌고 호연작(呼延灼)은 달아났으며 한도(韓滔)는 사로잡혔다. 

청주(靑州)로 달아난 호연작(呼延灼)은 황제에게 하사받은 척설오추마(蹠雪烏騅馬)를 도화산 도적들에게 도둑맞자 청주지부(靑州知府) 모용언달(慕容彦達)의 도움으로 도적정벌에 나섰다. 이룡산(二龍山)의 노지심(魯智深), 도화산(桃花山)의 이충(李忠), 백호산(白虎山)의 공명(孔明) 패거리가 힘을 합쳐 호연작과 겨루었으나 승부가 나지 않자 양산박군의 도움으로 호연작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호연작(呼延灼)은 송강(宋江)과 대면한 후 그의 인품에 반하여 동료가 되었고 청주는 함락(陷落)되었다. 후에 양산박 기병 오호장(五虎將) 중 한명이 되어 한도(韓滔), 팽기(彭玘)를 부장으로 두고 전국에서 활약하였다. 

방납(方臘)의 난 이후 어영병마지휘사(御營兵馬指揮使)로 황제의 호위를 맞게 되었다. 금나라가 침입(侵入)하자 금 황제의 아들 올출의 대군을 격파하였으나 화서에서 싸우던 중 전사하였다. 진침(陳忱)이 지은 “후수호지(後水滸志)”에는 그의 아들 호연옥(呼延鈺)이 등장하여 이준과 함께 섬라국(暹羅國)에 들어간다. 

어쨌든 그 황개는 이걸 한 개만 들고 전장을 누볐는데 호연작은 각각 13근, 12근짜리를 두 개씩 들고 다녔다고 하니 그 포스가 만만치 않았으리란 생각을 해본다. 

지난번 관승 편에서 기마오호장에 대해 소개를 하면서 호연작(呼延灼)이 오호장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 이유가 바로 이 연환갑마(連環甲馬) 때문인데 쉽게 이해하자면 고구려의 철기병(鐵騎兵)을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하여튼 양산박을 토벌하라는 명과 함께 명마 척설오추마(踢雪烏騅馬)를 하사받은 호연작(呼延灼)은 팽기(彭玘), 능진(凌振), 한도(韓滔)와 함께 양산박으로 쳐들어가는데 이 연환갑마(連環甲馬)로 양산박은 패전을 반복한다. 특히나 연환갑마에 돌격해들어 갔던 임충(林冲)이 화살을 맞고 퇴각했던 장면은 상당히 충격이었다. 계속되는 패전에 양산박(梁山泊)은 결국 자력으로 이 연환갑마를 격파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연환갑마의 천적인 구겸창의 달인 금창수(金槍手) 서령(徐寧)을 아군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하였다. 구겸창(鉤鎌槍) 부대로 연환갑마를 격파하는데 성공한다. 
  
비록 격파되긴 했지만 관군으로써 이만큼이나 양산박을 휘몰아친 이는 호연작(呼延灼)이 유일하다 할만하다. 관승(關勝) 또한 관군으로 양산박 토벌을 위해 출전 했을 당시에 상당한 활약을 보여주긴 하지만 어쨌든 양산박이 자력으로 관승을 격파(擊破)해내지만 호연작은 자력으로 격파해내지 못하고 새 두령인 서령(徐寧)을 끌어들이게 되니 말이다. 결국 호연작 덕분에 양산박은 구겸창(鉤鎌槍)의 달인 서령을 동료로 맞이하게 된 것인데 사실 호연작 덕분에 늘어난 두령은 서령 하나가 아니라는 게 또 흥미로운 점이다. 

구겸창(鉤鎌槍)에 완전 호되게 당한 호연작(呼延灼)은 퇴각하여 청주의 모용지부(慕容知府)로 퇴각하는데 여기서 주통(周通)이란 녀석이 황제에게 하사받은 척설오추마(踢雪烏騅馬)를 도둑질하는 갑작스러운 일이 발생한다. 결국 이로 인해 호연작은 산적을 토벌(討伐)하여 양산박 토벌 실패의 과오도 씻고 척설오추마도 되찾을 작정으로 도화산(桃花山)으로 움직이게 된다. 

당시 도화산(桃花山)에는 이충(李忠)과 주통(周通)이 있었는데 도저히 자신들의 힘으로는 호연작(呼延灼)을 감당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이룡산의 노지심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이 때 이룡산(二龍山)의 산적은 노지심(魯智深)을 필두로 하여 양지(楊志), 무송(武松), 시은(施恩), 초정(焦挺), 장청(張淸), 손이랑(孫二娘)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 제 아무리 호연작이라도 연환갑마(連環甲馬) 없이 노지심, 양지, 무송 같이 내노라하는 호걸들을 상대로 손쉬운 승리를 가져오지 못한 채 고전(苦戰)하게 된다. 이런 양산박(梁山泊)도 아닌 이런 한적 나부랭이조차 토벌하지 못할 정도로 내 채찍질이 녹슬었단 말인가. 무슨 산적 놈들이 하나같이 이렇게 강력하단 말이냐! 

이때 마침 호연작(呼延灼)은 모용지부에서 백호산(白虎山의 산적이 빈집털이를 들어왔으니 후딱 돌아오라는 전갈을 받게 되고 좌절에 빠져있던 호연작은 '바로 이 때다!' 라고 쾌재를 부르며 퇴각(退却)해서 빈집털이를 하고 있던 백호산의 산적들을 탈탈 털어버린다. 애초에 이룡산(二龍山), 도화산(桃花山), 백호산(白虎山)을 모두 아울러도 호연작과 겨룰만한 인물이 노지심(魯智深), 양지(楊志), 무송(武松) 정도이니 백호산 산적은 호연작에게 탈탈탈탈탈 털리고 공명은 사로잡히는 처지가 되고 만다. 백호산(白虎山)의 산적은 공명(孔明), 공량(孔亮) 형제가 두령으로 있었다. 

소식을 들은 이룡산(二龍山)의 산적들은 도화산(桃花山)과 연합하여 청주(靑州)를 치고 공명(孔明)을 구출하고자 했으나 여기서 청면수(靑面獸) 양지(楊志)가 양산박의 도움을 받을 것을 제시하니 양산박(梁山泊), 이룡산(二龍山), 도화산(桃花山), 백호산(白虎山) 연합이 결성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활약이 무색하게도 너무 간단한 유인책(誘引策)에 걸려서 호연작(呼延灼)은 사로잡히고 만다. 송강(宋江)의 "부디 저를 대신해 산채의 두령(頭領)이 되어주십시오."라는 사탕발림에 넘어가 양산박과 한 팀이 된다. 거기에다 한 편이 된 기념으로 모용지부를 공격하여 수많은 재물과 식량을 양산박에게 챙겨주었으니 말이다. 

결국 호연작(呼延灼)은 노지심(魯智深), 양지(楊志), 무송(武松), 시은(施恩), 초정(焦挺), 장청(張淸), 손이랑(孫二娘), 이충(李忠), 주통(周通), 공명(孔明), 공량(孔亮), 능진(凌振), 팽기(彭玘), 한도(韓滔)를 양산박의 두령으로 만든 일등공신(一等功臣)이 되는 셈이다. 이만하면 서열 8위를 할 법도 하다. 

관승(關勝)이 관우(關羽)의 후손인 것인 것처럼 북송시대 명장 호연찬(呼延贊)의 후손으로 설정된 실제 존재했던 장수를 등장해서 후손으로 만들어진 인물이다. 그 조상이 되는 호연찬은 북송시대(北宋時代) 건국에 이바지한 인물로 수호지에서 호연작(呼延灼)의 주무기인 쌍편의 달인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쌍편'이란 별호는 주무기(主武器)가 동편 한쌍인 데서 유래했다. 여기서 편이란 채찍을 말하는데 흔히 경마용 조련사가 쓰는 것을 연상하기 쉽고 본문의 옛 그림에도 쇠사슬 형태로 그려져 있지만 사실은 경마 기수가 드는 스틱 형태로 만든 무기(鐵鞭)를 가리킨다. 이문열 수호지(水滸志)를 포함한 몇몇 번역본에서 이를 부연설명 없이 채찍이라 번역하고 있어 혼동(混同)을 유발한다. 

캐릭터 모델은 북송 초기 실존인물인 호연찬(呼延贊)으로 편의 명수로 유명하며 각처에서 뛰어난 전공(戰功)을 세웠다. 작중 호연작(呼延灼)은 호연찬의 후손이란 설정이다. 또한 황제께 친히 하사받은 오추마(烏騅馬)를 애마로 사용하는데 척설오추마(踢雪烏騅馬)라고 하여 발밑이 희고 다른 부분들은 까만 털을 지닌 흑마라고 묘사된다. 

작품 중반에 등장하며 원래는 양산박 토벌군의 총대장이었다. 고구의 파견으로 양산박(梁山泊)을 공략하러 와서는 초전에서 능진(凌振)을 앞세워 포격을 가하는 한편 3천 연환마(連環馬)을 이끌고 송강의 군대에 승리를 거두었다. 이에 맞서 미리 부장 팽기(彭玘)를 붙잡아 회유시켜 두었던 양산박에선 서령(徐寧)을 끌어들여 구겸창법(鉤鎌槍法)과 역시 회유한 능진의 대포로 연환마갑(連環馬甲)을 격파하고 한도를 붙잡아 회유시켰다. 

패전 후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가 주막에 머물다가 황제가 하사한 척설오추마(踢雪烏騅馬)를 이충(李忠)의 도화산(桃花山) 패거리에게 도둑맞아 모용언달(慕容彦達)에 찾아가서 도화산 패거리를 토벌을 하지만 이룡산(二龍山)의 노지심(魯智深), 양지(楊志), 무송(武松)이 도화산을 구원하러 오자 또 패퇴하게 되었다. 그러나 공량(孔亮), 공명형제(孔明兄弟)가 숙부인 공빈을 구출하러 청주를 공격하자 공량을 직접 사로잡아 모용언달의 신뢰를 받았다. 공량이 양산박에 찾아가 송강(宋江)에게 부탁해 송강과 오용(吳用)은 청주로 원정을 떠나고 결국 호연작(呼延灼)은 그들이 꾸민 함정에 빠져 포로가 된다. 송강이 간곡히 설득하자 양산박의 동지가 되어 모용언달을 죽이고(죽인 사람은 진명이었지만) 공량을 구출한다. 이후 관우(關羽)의 후손인 대도 관승이 토벌군을 이끌고 왔을 때 거짓으로 투항하는 계책을 써서 관승(關勝)을 사로잡는데 기여했다. 

호연작(呼延灼)은 어떻게 보면 양산박 인재진(人才陣)을 크게 강화시킨 인물이다. 그의 공격 때문에 주변 산채의 이룡산(노지심, 양지, 무송)과 도화산, 백호산 나중이긴 하나 소화산, 망탕산(芒砀山) 세력이 양산박에 들게 되었고 본인은 물론 창법에 능한 금창수(金槍手) 서령(徐寧), 우수한 화포기술자인 굉천뢰(轟天雷) 능진(凌振)도 양산박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후로도 기마오호장(騎兵五虎將)으로 용맹을 떨치며 여러 전투에서 활약했다. 

“수호전(水滸傳)”에 따르면 호연작(呼延灼)은 송나라의 개국공신인 호연찬(呼延贊) 장군의 후손으로 한도(韓滔)와 팽기(彭玘)를 이끌고 양산박의 통령 조개(晁蓋)와 부통령 송강(宋江) 그리고 양산박의 산채를 공격하러 가서 초반에는 싸움에서 승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호연작과 그 군 중 연환마군(連環馬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연환마군은 말의 갑옷을 이어 만든 특수한 군으로 한꺼번에 공격하여 쓰러뜨릴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연환마군의 단점은 넘어지면 다시 잘 일어나지 못하고 화공(火攻)을 당하게 되면 매우 전세가 불리해진다는 것이다. 그 전에 양산박(梁山泊)에 들어온 금전표자(金錢豹子)라는 호를 가진 탕륭(湯隆)이라는 대장장이의 사촌이 연환마군을 걸어 넘어뜨릴 수 있는 갈고랑이 낫창이라는 창을 만들고 사용하는 비법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금군 금창반 사범인 금창수(金槍手) 서령(徐寧)을 포섭한 수호는 호연작(呼延灼)을 이기고 한도(韓滔)와 팽기(彭玘) 그리고 호연작이 고구(高俅)에게 부탁하여 이 싸움에 참여하게 된 포수 능진능진(凌振)을 생포하게 된다. 

호연작(呼延灼)이 패한 후에 청주(靑州)의 부윤(府尹)인 모용씨(慕容氏)를 찾아가 의탁하다가 천자인 휘종이 하사한 명마 척설오추(踢雪烏騅)를 도둑맞는다. 이에 분노한 호연작은 범인으로 추정되는 도화산(桃花山)의 산적들인 타호장(打虎將) 이충(李忠), 소패왕(小覇王) 주통(周通)을 토벌하러 도화산으로 가게 된다. 도화산의 산적(山賊)들은 위기를 느끼게 되고 이룡산의 산적들인 화화상(花和尙) 노지심(魯智深), 청면수(靑面獸) 양지(楊志) 등에게 도움을 청하고 호연작이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안 이룡산과 도화산의 산적들 그리고 예전에 송강(宋江)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공명(孔明)과 공량 형제(孔亮兄弟)는 양산박에 도움을 청하였다. 양산박에서는 호연작을 적진 안쪽으로 끌어들여 생포(生捕)하였고 호연작은 한도(韓滔), 팽기(彭玘)가 설득하여 양산박의 한 일원이 된다. 

방납 토벌전(方臘討伐戰)을 기준으로 토벌전에서 사망한 두령(頭領)들이 있고 살아남았으나 사고나 음모(陰謀)로 죽은 이들이 있고 살아남아서 오래오래 잘 먹고 잘 살다 죽은 이들이 있다. 하지만 호연작(呼延灼)은 어느 경우에도 포함되지 않는 실례로 살아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장(戰場)에서 전사한 인물이 설정되었다. 

방랍 토벌 후에 그 공을 인정받아 어영병마 지휘사로써 황제의 행차를 호위하던 호연작(呼延灼)은 이후 금나라의 태조 아골타의 넷째아들 올출(兀朮)의 대군을 격파하여 대승을 거둔 후 화서로 나아가 다시 싸움에 임하였으나 그 싸움터에서 전사하고 마니 실로 마지막까지 무인(武人)으로써 살다가 떠난 진정한 무인이라 할법한 사내의 생이었다. 

호연작(呼延灼)은 양산박의 일원으로써 요나라의 침략 때와 전호(田虎)의 반란, 왕경(王慶)의 반란, 방납(方臘)의 반란 등에서 많은 공을 세웠고 조정에서 공을 인정받아 어영병마 지휘사가 되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어영병마 지휘사(御營兵馬指揮使)로 황제의 행차를 호위하던 호연작은 이후 금나라에 대항하여 싸워 아골타의 넷째 아들이 지휘하는 대군을 격파하여 대승을 거두었고 화서로 나아가 다시 싸움에 임하였으나 그 싸움터에서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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