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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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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양산박 두령 천만성(天滿星) 미염공(美髥公) 주동(朱仝) 

[圖片信息  천만성(天滿星) 미염공(美髥公) 주동(朱仝)] 


천만성(天滿星) 미염공(美髥公) 주동(朱仝)은 수호전의 등장인물 가운데 하나이다. 팔표기(八驃騎)의 1인이며 키가 크고 얼굴이 붉으며 긴 수염 덕분에 옛 군신 관우와 닮아 미염공이란 별칭이 붙은 인물이다. 어릴 적부터 무예를 익혀 실력이 뛰어났고 의기가 높고 호걸(豪傑)을 두루 사귀었다. 원래 제주 운성현의 마병도두(馬兵都頭) 로 있었으나 뇌횡(雷橫)을 귀양길에 호송(護送)하다 놓아준 것을 벌 받아 귀양살이 중 오용(吳用)의 계책에 빠져 양산박에 합류한다. 

주동(朱仝)은 제주 운성현(雲城縣) 마병도두(馬兵都頭) 출신으로 얼굴이 붉고 멋들어진 수염이 있어 미염공(美髥公)이라 한다. 의기(意氣)가 두텁고 인망이 두터웠으며 한 자루 박도(朴刀)를 잘 쓴다. 

조개(晁蓋)가 생신강(生辰綱)을 강탈하자 의기로 그를 놓아주었고 송강(宋江)이 염파석(閻婆惜)을 죽이고 집안에 숨어있을 때도 소선풍(小旋風) 시진(柴進)의 장원을 추천하였다. 단짝인 뇌횡(雷橫)이 가희(歌姬)인 백수영(白秀英)을 죽이고 귀향 갔을 때도 호송을 자처해 그를 놓아 주었다. 이에 주동은 파면당하고 창주(滄州)로 귀항 보내져 지부(知府)의 아이를 돌보는 집사가 된다. 

원소절(元宵節)날 아이를 안고 달구경을 하던 주동(朱仝)은 목마른 아이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다. 두어 마장 떨어진 계곡(溪谷)에서 물을 가져온 주동은 있어야 할 아이가 없자 온 산을 헤맨다. 그때 이규(李逵)가 나타나 주동을 유인하기 시작했다. 그를 추격(追擊)하던 도중 한 나무 아래 지부의 아이가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분노가 폭발한 주동은 이규(朱仝)와 수십 합을 넘게 싸왔지만 승부(勝負)가 나지 않았다. 결국 이규(李逵)를 쫒아 시진(柴進)의 장원에 들어오게 되고 양산박(梁山泊)에 들어가게 된다. 이 일로 이규는 시진의 장원에 남게 되었고 은천석(殷天錫)을 때려죽이는 원인이 된다. 

양산박에서 기병군 팔표기(八驃騎) 겸 선봉사 중 한명이 되었다. 방납토벌(方臘討伐) 이후 보정부(保定府) 도통제가 되어 큰 공을 세우고 태평군(太平軍)의 절도사(節度使)까지 지내게 된다. 

대도(大刀) 관승(關勝)이 관우(關羽)의 후손이라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것에 비하여 천만성(天滿星) 미염공(美髥公) 주동(朱仝)은 그 수염이 아름답고 볼만하니 관우의 수염과 같다하여 관우의 별명이기도 했던 미염공이란 별명을 얻게 된다. 

수호지에 흔히 등장하는 박도(朴刀)라는 칼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칼집의 주둥이가 작은 게 뽑을 수 없는 형태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박도는 칼집 없이 대충 들고 다니는 대중적인 무기로 주동(朱仝)은 관우나 관승처럼 청룡언월도와 같은 대도가 아니라는 건 박도의 명수로 그려지고 있어 관우의 이미지를 차용(借用)한 것은 오로지 수염뿐으로 생각된다. 

주동(朱仝)은 양산박에 든 이후 기병 팔표기(八驃騎)로 활약하는데 마상에서도 이 박도(朴刀)로 적을 상대했다. 주동은 원래 송강(宋江)이나 조개(晁蓋)가 살고 있던 제주의 기병도두 출신으로 보병도두(步兵都頭)인 삽시호(揷翅虎) 뇌횡(雷橫) 같이 등장한다. 수염이 볼만하여 앞서 말한 대로 미염공이란 별명으로 불리우고 있었고 인품이 그다지 돋보이지 못하는 뇌횡과는 달리 의협심이 높고 인정이 있어 주변 사람들에게 인망(人望)을 얻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조개(晁蓋)가 양산박으로 도망칠 때 일부러 그를 놓아주었으며 뇌횡(雷橫)이 살인죄로 귀양 갈 때 호송을 자처해 뇌횡이 노모(老母)와 함께 도망칠 수 있도록 해주고 죄를 자신이 뒤집어쓰고 귀양을 가게 된다. 

주동(朱仝)을 끌어들이려고 계책을 쓰던 양산박의 일원인 흑선풍(黑旋風) 이규(李逵)에게 머리가 쪼개져서 죽고만 가련한 등장인물이다. 흑선풍 이규를 잡아 죽이려고 쫓아들어 간 곳이 바로 소선풍(小旋風) 시진(柴進)의 장원으로 주동은 시진에게 설득을 당해 양산박(梁山泊)으로 향하게 된다. 흑선풍 이규를 죽이기 전에는 갈수 없다 하여 이규는 시진의 곁에 남게 되고 이로 인해 은천석(殷天錫)을 때려죽이는 사건이 또 벌어지게 되니 과연 사고를 몰고 다니는 사나이는 바로 이규라 하겠다. 주동은 구궁팔괘진(九宮八卦陣)의 중군에 위치하여 64개의 횡행기(橫行旗)를 지키는 자리에 있으며 이 자리에는 삽시호(揷翅虎) 뇌횡(雷橫)도 함께 있다. 

운성현(雲城縣) 부호였다가 마병도두(馬兵都頭)를 맡았으며 관리인 송강(宋江), 보병도두(步兵都頭)인 뇌횡(雷橫)과 같은 근무지에서 근무하는 사이이다. 의협심(義俠心)이 있어 조개(晁蓋)의 생신강(生辰綱) 강탈 사건(强奪事件)을 일으킨 후 양산박으로 도망칠 때 그를 놓아준 적도 있고 동료 뇌횡이 노모를 욕한 백수영(白秀英)이란 가희를 때려죽였을 때도 그의 호송을 맡은 뒤 노모를 보살펴야하는 뇌횡과 달리 자신은 먹여 살릴 식솔이 아내 말고는 없으므로 그를 놓아준다. 그 죄로 주동(朱仝)은 창주(滄州)로 귀양을 가게 된다. 창주로 귀양 와서 사정을 알게 된 지부의 배려로 편안한 유배 생활을 한다. 

또한 창주지부의 어린 아들이 그의 수염을 마음에 들어 해 주동(朱仝)을 따랐고 주동도 인자한 성격이어서 지부의 아들과 즐겁게 놀아주었다. 지부(知府)도 자상한 주동을 마음에 들어 해 주동에게 보모 겸 호위 비슷하게 아들을 맡겼는데 악의 소굴 양산박이 주동을 가만 놔두질 않았던 것이다. 그를 포섭하기 위해 오용(吳用)이 지독한 계책을 꾸몄는데 지부의 아들을 죽여 주동을 궁지에 빠뜨린 것이다. 결국 주동이 아이 곁에 없는 사이 이규(李逵)가 도끼로 어린 아이의 목을 친 뒤 그 목을 주동에게 보여준다. 주동은 격노하여 이규를 죽이려고 하나 이때 이규가 하는 말은 참으로 가관이다. 

"X물에 튀길 놈 같으니라구! 조개(晁蓋)와 송강(宋江) 두 형님이 시켜서 한 일인데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궁지에 몰린 주동(朱仝)은 어쩔 수 없이 양산박에 합류하게 된다. 이 후 주동과 이규는 견원지간이 된다. 죽이란다고 무고한 어린 아이를 죽이고 큰 소리 치는 이규는 물론 미친놈이지만 사실 더 나쁜 놈은 비열(鄙劣)한 계책을 쓴 오용, 그 계책을 승인한 송강, 이규와 함께 실행에 옮긴 뇌횡(雷橫)일지도 세 사람 모두 주동 덕분에 목숨을 구한 적이 있으니 은혜 한 번 제대로 갚았다. 

양산박(梁山泊)에서 마군 팔호기 중 한 명으로 활약하며 방납(方臘)과의 전투까지 살아남아 보정군 도통제로 근무하고 후에는 금나라와 전쟁에서 공을 세워 태평군 절도사(節度使)까지 승진했다고 한다. 

수호후전에서는 호연작(呼延灼)과 함께 금나라군과 싸우다가 왕표의 배신으로 호연작과 같이 빠져나왔고 이후 음마천(飮馬川)의 옛 동료들과 다시 만났게 되었지만 뇌횡(雷橫)의 어머니를 모신다고 금나라가 점령한 뇌두현에 잠입해 뇌횡의 어미니를 등운산(騰雲山)으로 가려고하나 주동(朱仝)의 친척이 돈에 탐내 금나라에게 신고해 주동을 붙잡는다. 주동은 송청(宋淸), 황보단(皇甫端)이 있는 증세웅의 성에 갇혀 있다가 음마천 호걸들이 등운산에 갈 때 증세웅을 죽이고 주동을 구출한다. 주동은 배신한 친척을 죽이고 섬라국(暹羅國)에 가서 여루천을 토벌하고 백작 작위에 오른다. 

주동(朱仝)은 키가 팔척이요, 얼굴이 대추빛 같이 붉은데다가 한자 다섯 치나 되는 긴 수염을 드리워 그 형상이 꼭 옛날의 관운장(關雲長)과 같았으므로 남들이 그를 아름다운 수염의 임자라 해서 부르기를 미염공(美苒公)이라 했다. 그는 본시 이곳의 이름난 부호(富豪)로서 자리를 중하게 여기고 재물을 가볍게 여기어 천하에 호걸(豪傑) 사귀기를 좋아할 뿐 아니라 자신도 무예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한편 보병도두인 뇌횡(雷橫)은 칠척 반이 넘는 키에 다 얼굴엔 다박수염이 가득이나 있는데 힘이 어떻게나 세고 날랬던지 두서너 간이 넘는 도랑도 어려움 없이 뛰어 건너므로 사람들은 그를 부르기를 삽시호(揷翅虎)라 했다. 

보직을 기준으로 정렬하다 보니 서열(序列)이 제멋대로지만 주동(朱仝)은 12위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의 페어인 뇌횡(雷橫)과 함께 제주의 도두로 있었다. 뇌횡의 병과는 보병(步兵)이었고 주동의 병과는 기병(騎兵)이었다. 구궁팔괘진에선 두 사람이 함께 중군의 횡행기를 지키는 위치를 맡는다. 

성격이 인자하여 인기가 많고 관우(關羽)를 닮은 수염 덕에 미염공(美髥公)이란 별호도 얻었다. 양산박 입당 이후로는 기병을 이끌고 독립중대처럼 독자 임무를 수행하거나 뇌횡(雷橫)과 페어를 이뤄 기보(騎步) 혼성 부대를 이끄는 식의 조합(組合)으로 공을 세운다. 가끔 말에서 내려와 보병 노릇도 하곤 한다. 

방납 토벌(方臘討伐) 후에 보정부 도통제에 임명되었으며 후에 유광세 휘하에서 금군(禁軍)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평화군의 절도사(節度使)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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