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기(十八技) '18가지 무예'를 지칭하는 말로 '십팔반무예(十八般武藝)'라고도 한다. 1759년(영조 34) 소조(小朝; 사도세자)가 만든 "무예신보(武藝新譜)"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이 책은 오늘날 전하지 않는다. 그 이전에 간행된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도 '십팔반무예(十八般武藝)'가 언급되어 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후 선조 25년 왜구를 물리쳤던 중국 장수 척계광(戚繼光)의 "기효신서(紀效新書)"를 기반으로 한 6가지의 무예들을 병사들에게 훈련시키고 이 6가지를 "무예제보(武藝諸譜)"라는 책으로 정리하였다. 후일 사도세자(思悼世子)가 12가지의 무예를 추가하여 "무예신보(武藝新譜)"를 만들었다고 한다.
1790년(정조 14) "무예신보(武藝新譜)"의 18기에 마상 무예 6기를 더하여 24기를 수록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가 간행되었다. 이 책에 따르면 18기는 장창(長槍)·당파(鐺鈀)·낭선(狼筅)·쌍수도(雙手刀)·등패(藤牌)·곤봉(棍棒),죽장창(竹長槍)·기창(旗槍)·예도(銳刀)·왜검(倭劍)·교전(交戰)·권법(拳法)·편곤(鞭棍)·월도(月刀)·협도(挾刀)·쌍검(雙劍)·제독검(提督劍)·본국검(本國劍) 등이다.
"수호지(水滸志)"에는, “모(矛)ㆍ퇴(鎚)ㆍ궁(弓)ㆍ노(弩)ㆍ총(銃)ㆍ부(斧)ㆍ월(鉞)ㆍ와(戈)ㆍ극(戟)ㆍ편(鞭)ㆍ간(簡)ㆍ검(劍)ㆍ연(鏈)ㆍ와(撾)ㆍ패(牌)ㆍ봉(棒)ㆍ창(鎗)ㆍ팔(扒) 따위를 십팔반(十八般)이라 한다.” 했는데 차(叉)ㆍ투색(套索)ㆍ백타(白打)는 빼버리고 퇴(鎚)ㆍ총(銃)ㆍ연(鏈)이란 세 가지를 넣었다.
소위 패(牌)라는 것은 순(盾)이고 봉(棒)이란 것은 수(殳)이며 팔(扒)이란 것은 파(把)인데 이는 옛날과 지금에 부르는 명칭(名稱)이 달라서 그렇게 된 것인 듯하다.
간(簡)이란 것은 철간(鐵簡)이고 과(撾)란 것은 본디 북을 두들기는 기구(機構)이다. 그 머리를 참외처럼 둥글고 크게 만든 것인데 당(唐) 나라 무후(武后)가 “철편(鐵鞭)으로 쳐도 항복(降伏)을 않으면 철과(鐵撾)로 그 머리를 친다.”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차(叉)라는 것은 반드시 나뭇가지처럼 두 귀가 나게 만드는 것이고 파(把)라는 것은 몽둥이(棒) 끝에 가로 댄 나무이다. 이는 이(齒)가 있게도 이가 없게도 만든 것인데 모두 명칭을 파(筢)라 한다. "소설(小說)"에 또 “정파(挺筢)란 것이 있다. 이는 가로 댄 나무는 없고 이만 있게 만들었는데 역시 이름을 파라고 한다.” 하였다.
면승(綿繩)ㆍ투색(套索)이란 것은 노와 새끼로 사람을 얽어 묶는 기구(機構)이다.
"남사(南史)"에 “이광필(李光弼)의 아버지 해락(楷洛)은 탑색(䌈索)을 잘 이용하여 당(唐) 나라 장수 장현우(張玄遇)와 마인절(麻仁節)을 모두 얽어 묶었다.”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백타(白打)라는 것은 아무 연장도 없이 맨손으로 서로 갈기는 것이다. 이는 시속에서 이른바 권법퇴(拳法鎚)라는 것인데, 바로 유성퇴(流星鎚)란 따위로서 던져서 사람을 맞치는 기예(技藝)이다.
"남사"에 “소마가(蕭摩訶)는 선현(銑鋧)을 던져서 서역(西域) 호액응수(胡額應手)를 자빠지도록 했다.”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선현(銑鋧)이란 것은 작은 끌(鑿)인데 역시 퇴(鎚) 따위다.
연(鏈)이란 것은 "삼재도회(三才圖會)'에, “단병(短柄)ㆍ철련(鐵鏈)ㆍ골타(骨朶)라는 따위인데 철련ㆍ협봉(夾棒)이란 것은 만든 모양이 농가(農家)에서 보리타작하는 연가(連耞)와 흡사(恰似)하다.”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속명 회편(回鞭)이라고 하는데 철가편(鐵耞鞭)에 네 모가 있는 것은 옛날에는 없었다.
협봉(夾棒)이란 것은 지금 군중(軍中)에서 쓰는 기구인데 창(鎗)과 검(劍)보다 낫다는 것이다.
옛날 이주영(爾朱榮)은 갈영(葛榮)과 싸울 때에 다만 막대기(梃)만 갖고도 승리(勝利)를 거두었다 한다. 이런 막대기를 갖고도 오히려 승리를 거두었거든 하물며 이 날카로운 협봉(夾棒)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북쪽 지방 사냥꾼들도 역시 이 협봉(夾棒)만을 사용하는데 나는 새와 닫는 짐승을 보기만 하면 모조리 놓치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다. 삼국 시대 오(吳) 나라 장수 하제(賀齊)는 백부(白棓)를 갖고 적을 공격(攻擊)하였다 하니 백부란 것도 역시 수(殳) 따위다.
수호지(水滸志)와 조선세법(朝鮮勢法)의 십팔기종목(十八技種目)
장창(長槍) 예로부터 창은 무예의 으뜸이라 불리었다. 장창(長槍)은 길이 1장 5척의 창으로 검날 모양의 창날이 달려 있다. 창날에는 혈조(血漕)가 파져 있으며 날과 자루가 연결(連結)되는 부위에는 석반(石盤)이 달려 있어 상대의 병기(兵器)를 감아 채거나 걸어 젖히는데 도움이 되고 또 창날이 너무 깊이 들어가 빠지지 않는 폐단(弊端)을 막아 준다. 장창과 같이 긴 무기는 긴 것의 이점(利點)을 잘 이용하고 짧게도 사용하는 법을 익혀 장단(長短)의 묘를 살리면 훌륭한 무사(武士)가 된다. 이를 장병 단용(長兵短用)이라 한다.
죽장창(竹長槍) 길이 20척의 대나무에 4촌 길이의 날을 댄 창으로 십팔기(十八技) 가운데 가장 긴 병장기(兵仗器)를 운용하는 무예이다. 대나무 창은 통대나무를 이용한 창과 여러 조각의 대나무를 아교(阿膠)로 붙이고 심줄로 엮어 만든 창이 있는데 후자가 더욱 강하고 견고(堅固)하다. 적의 기병(騎兵) 또는 성 위의 적을 공격(攻擊)하거나 먼 거리에서 적을 제압(制壓)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길이가 길기 때문에 기법(技法)은 비교적 단순하다.
기창(旗槍) 창에 깃발을 달아 사용하는 창으로 장창(長槍)에 비해 길이 짧아 단창(短槍)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의전(儀典)이나 호위용(護衛用)으로 사용되는 창이지만 짧은 길이의 이점을 이용해 근접전(近接戰)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그 기법이 활달하며 변화무쌍(變化無雙)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위용(威容)을 느끼게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조선의 십팔기(十八技)에만 그 운용법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독창적(獨創的)인 무예 종목이다.
당파(鏜鈀) 창끝이 세 갈래로 갈라져 있어 삼지창(三枝槍)으로 불려 지기도 하는 조선군의 대표적인 병장기(兵仗器)이다. 가운데 날이 양쪽 두 갈래 날보다 길어 적을 찌르고 두 갈래 날은 상대의 병장기를 걸어 젖히거나 내려치기에도 용이하다. 또한 당파(鏜鈀)는 전투 초기에 화전(火箭)을 걸어 쏘는 화기(火器)로도 사용되었는데 화전으로 원거리에서 공격(攻擊)하고 이어서 근접전에서 당파를 사용(使用)하였다.
기창(騎槍) 예로부터 창은 보병(步兵) 뿐 아니라 기병(騎兵)도 함께 사용했다. 말 위에서 운용하는 기창(騎槍)은 조선 전기 북방 이민족(異民族)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매우 필수적인 무예(武藝)여서 조선 초기부터 무과 응시과목(應試科目)으로 채택되었을 만큼 매우 중시되었다. 장창(長槍)의 응용종목(應用種目)이지만 당파나 기창(旗槍)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낭선(狼筅) 낭선(狼先)은 긴 대나무를 사용하여 만드는데 끝에는 창날을 달고 가지에는 얇고 날카로운 철편(鐵片)을 달아 독을 발라 사용한다. 낭선은 무기가 크고 무거워 체격이 크고 힘이 좋은 병사들을 선발하여 훈련(訓練)시켰다. 원앙진에서 등패와 함께 최전방에 위치한 낭선(狼先)은 상대에게는 위압감(威壓感)을 주고 아군에게는 심리적인 안정감(安定感)을 주는 엄폐물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임란(壬亂) 때 왜군을 방어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무예(武藝)였다. 무겁고 크기 때문에 단순한 동작(動作)으로 짜여졌다.
쌍수도(雙手刀) 쌍수도(雙手刀)는 검이 길고 무거워서 두 손으로 사용하는 검법(劍法)으로 매우 위력적이었다. 본래 명칭은 장도(長刀)이며 용검(用劍) 혹은 평검(平劍)이라고도 불렸다. 이 검법은 왜구(倭寇)가 중국의 연안을 침범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왜구를 상대하기 위해서 도입(導入)하여 우리 실정에 맞게 새로이 개발하였다. 동작은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힘이 있어 파괴적(破壞的)이다.
예도(銳刀) 예도(銳刀)는 원래 ‘조선세법(朝鮮勢法)’이라고 불리던 우리나라의 고대 검법(古代劍法)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멸실(滅失)되어 전해지지 못하다가 중국 명나라 때 장수인 모원의(茅元儀)가 편찬한 “무비지(武備志)” 권86 ‘진련제(陣練制)’편에 소개되면서 본래의 검보(劍譜)를 되찾았다. 모원의는 조선의 검보를 구하여 실으면서 “이는 본디 조선세법(朝鮮勢法)”이라고 하여 조선에서 구한 것을 정확히 밝히고 있다. 모두 24가지 검법의 기본세법(基本勢法)으로 구성된 이 검보는 이후 모든 중국 검법의 이론적 근간(根幹)을 이룸은 물론 다른 무예의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원래 양날의 검으로 구사하는 검법이지만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는 ‘예도’라는 이름의 도법(刀法)으로 실려 있다. 또한 당시에 별도로 수련(修練)하던 속보로 ‘예도총보(銳刀總譜)’를 함께 싣고 있다. 동양3국을 통틀어 최고 수준의 검법으로 알려져 있다.
왜검(倭劒)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왜구들이 긴 칼을 휘두르면 막을 자가 없다고 할 정도로 왜검은 그 위력이 대단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숙종(肅宗) 때 김체건(金體乾)이 일본에 들어가 검보(劍譜)를 얻어 그 기예(技藝)를 전하였다고 한다. 왜검에는 토유류(土由流)·운광류(運光流)·천류류(千柳流)·유피류(柳彼流)의 네 종류가 전하고 있다. 이는 현재 일본에서도 그 모습을 찾기 힘든 고대의 검법으로 십팔기(十八技)에만 유일하게 남아 있다.
교전(交戰) 공격(攻擊)과 방어(防禦)를 연습하기 위해 짜여 진 칼의 교전법(交戰法)으로 왜검의 기법(技法)을 응용하여 온전히 우리 것으로 짜여졌다. 원래는 검으로 수련(修練)하였으나 후에 요도(腰刀)를 사용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정해진 약속대로 서로 부딪히며 검법(劍法)을 익히는데 연습 중에는 목검(木劍)을 사용한다.
제독검(提督劍)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조선을 도와 왜군을 물리쳐 공을 세운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 제독을 기려 이름이 붙여진 검법이다. 칼은 쪽 곧은 직도를 사용하였는데 벨 때는 도(刀)의 이점을 찌를 때는 검(劍)의 이점을 얻었다. 모두 14세로 짜여 졌는데 왜구(倭寇)의 긴 칼을 상대하기에 매우 효율적(效率的)이다. 나중에는 예도와 같이 요도를 사용하였다.
본국검(本國劍) 예도와 마찬가지로 요도(腰刀)를 사용하며 일명 신검(新劍)이라고도 한다. 실학사상(實學思想)에 바탕하여 독창적(獨創的)인 우리 것으로 내세우던 무예로서 신라(新羅)의 화랑(花郞)에서 기원된 가장 오래된 고대 검법이다. ‘본국’이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무예의 종주국(宗主國)으로서 자주적이며 진취적(進取的)인 기상을 드러내고 있다. 본래는 양날의 검을 사용하는 검법이었으나 십팔기(十八技)로 정리되던 당시에는 이미 도법(刀法)으로 사용하였다. 전후좌우로 공격과 방어를 구사(構思)하도록 구성되어 있는 매우 활달한 검법(劍法)이다.
쌍검(雙劍) 두 자루의 칼을 양손에 쥐고 사용하는 검법으로 십팔기(十八技) 가운데 난이도(難易度)가 높아 상당히 숙련(熟練)된 자만이 구사할 수 있는 검법이다. 양손을 동시에 사용하여 공격과 방어를 변화무쌍(變化無雙)하게 구사하므로 매우 위력적(威力的)이다. 쌍검에 사용되는 칼은 암수를 한 쌍으로 하여 하나의 칼집에 꽂았다가 뽑아서 사용하지만 일반적으로 환도(還刀) 가운데 작은 칼을 골라 사용하였다.
마상쌍검(馬上雙劍) 쌍검(雙劍)을 말 위에서 운용하는 응용종목(應用種目)이다. 조선의 기병은 반드시 무예십팔기(武藝十八技)에 능숙한 군사들로서 어느 한 가지 기예(技藝)만을 다루지 않았다. 대개 활(弓), 장창(長槍), 편곤(鞭棍), 쌍검(雙劍) 등 여러 가지 무기를 휴대(携帶)하여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전투를 치렀다. 쌍검의 응용종목(應用種目)이다.
월도(月刀) 일명 대도(大刀)라 불리며 칼 중에서 가장 화려(華麗)하다. 월도(月刀)는 자루 길이 6척4촌이고 날 길이 2척8촌으로 폭이 넓고 큰 날이 옆으로 누운 달 모양과 같다고 하여 언월도(偃月刀)라고 부르기도 한다. 칼 중에 가장 큰 것으로 그 움직임이 크고 활달하여 위맹(威猛)스럽기 그지없어 보는 이의 간담(肝膽)을 서늘케 한다.
마상월도(馬上月刀) 말 위에서 사용하는 마상월도는 조선 후기 거기보(車騎步) 전법에서 기병(騎兵)이 사용하던 무예로 먼저 삼혈총(三穴銃)을 사용하여 원거리에서 공격을 하고 이어 월도(月刀)를 사용하여 공격을 하였다. 이때 기병이 사용하던 무예로는 월도 외에도 편곤(鞭棍),장도(長刀),구창(鉤槍)이 있다. 월도 대신 협도(挾刀)를 사용해도 무방하다. 월도의 응용종목(應用種目)이다.
협도(挾刀) 협도(挾刀)는 자루길이 7척의 봉에 날 길이 3척의 날을 끼워 칼을 더 멀리 힘차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장도(長刀) 혹은 날의 모양이 눈썹 끝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미첨도(眉尖刀)라고도 불린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모두 중시하여 병장무예(兵仗武藝)에서 널리 사용하였다. 사도세자(思悼世子)는 협도를 특히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이는 자루가 있어서 원거리와 근거리에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이점(利點)이 있기 때문이었다.
등패(藤牌) 손가락 굵기의 오래되고 거친 등나무와 등나무 껍질로 만든 방패(防牌)를 등패라고 한다. 등패(藤牌)는 요도(腰刀), 표창(鏢槍)과 함께 사용하는데 왼손에 등패를 잡고 손목 위에 요도를 얹은 다음 오른손에 표창을 지닌다. 상대와 대적할 때는 먼저 표창(鏢槍)을 던지고 곧이어 맹렬히 뛰어 들어가 칼을 휘둘러 공격한다. 등패는 원앙진(鴛鴦陣)을 구성할 때 최전방에서 상대와 맞서야 하기 때문에 몸이 날쌔며 가볍고 유연한 사람이 운용(運營)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등패 바로 뒤에는 낭선(狼筅)이 등패를 구원하도록 배치되어 있어 서로 짝을 이뤄 진퇴(進退)를 번갈아가면서 상대를 공격하고 방어한다.
권법(拳法) 맨손으로 공격과 방어를 하는 기술을 권법(拳法), 또는 권술(拳術)이라 하며 예로부터 수박(手搏), 각저(角抵) 등 여러 명칭으로 불리었다. 권법(拳法)만으로는 원칙적으로 무예(武藝)라 칭할 수는 없으나 모든 무예를 위한 기초 수련(修練)으로서 매우 중요시하였다. 권법(拳法)에는 손과 발을 사용해서 치고, 찌르고, 잡아채고, 꺾고, 차고, 걸어 넘기는 등의 기술들이 포함되어 있다. 십팔기(十八技)의 권법은 시중의 일반 호신술(護身術)과는 달리 여타 병장무예(兵仗武藝)를 익히기 위한 기초적인 공법(公法)과 원리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이를 먼저 익히게 되면 호신은 물론 이후 십팔기(十八技)의 어떤 무기를 들었을 경우에라도 그 무기의 특성에 따라 운용(運用)하여 익히기가 쉬워진다.
곤봉(棍奉) 긴 장봉에 오리 주둥이 모양의 날을 단 것으로 가장 기본적인 무기 가운데 하나이다. 권법(拳法)과 더불어 병장술(兵仗術)을 익히는 사람이면 제일 먼저 배우는 기초 과목이다. 때려치는 기술과 찌르는 기술을 주로 구사(構思)한다. 곤봉(棍奉)은 모든 무예의 어머니라고 불릴 정도로 중시되었으며 유가 경전인 “사서(四書)”에 비견되기도 했다. 곤봉(四書)을 익히게 되면 나머지 무예(六經)들은 자연스럽게 익혀지게 된다는 뜻이다. 곤봉은 협도곤(挾刀棍이)나 구창(九瘡)과 마찬가지로 북방의 기마민족(騎馬民族)과 대항해 싸울 때 매우 효과적이었다. 무장한 기병이 달려들 경우 장창은 너무 길어서 부러지기 쉽기 때문에 곤봉이나 협도곤(俠刀棍) 등으로 대체하여 사용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었다. “연병지남(練兵指南)”에는 살수대첩(薩水大捷)에서 장창(長槍) 대신 대봉(大棒)이나 도곤(刀棍)을 사용하는 법이 보인다.
편곤(鞭棍) 편곤(鞭棍)은 긴 봉에 짧은 봉(子鞭)을 쇠줄로 연결한 것으로 도리깨와 비슷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 긴 봉은 길이 8척9촌 짧은 봉은 길이 2척2촌5푼으로 휘둘러 치는데 매우 위협적(威脅的)인 무기이다. 곤봉(棍棒)과 함께 교전(交戰)하며 연습한다.
마상편곤(馬上鞭棍) 편곤(鞭棍)은 보병이 사용하는 보편곤(步鞭棍)과 마병이 사용하는 마상편곤(馬上鞭棍)이 있다. 둘 다 규격(規格)은 동일하나 마상편곤은 말의 기동력(機動力)이 휘둘러 치는 힘을 배가시키기 때문에 더욱 위력적(威力的)이다. 편곤의 응용종목(應用種目)이다.
격구(擊毬) 격구(擊毬)는 무예는 아니지만 예로부터 동서양(東西洋)을 막론하고 말을 타는 장수나 기병들이 즐겨 익혔던 운동경기(運動競技)의 일종이다. 오락성(娛樂性)이 강하지만 익혀 놓으면 무예 훈련(武藝訓練)에 도움이 된다하여 조선 왕조에서 자주 행하던 기예(騎藝)였다.
마상재(馬上才) 역시 무예(武藝)는 아니지만 말을 잘 다루는 것이 군사력(軍事力) 향상에 도움이 된다하여 즐기던 군사오락(軍事娛樂)이었다.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편찬할 때 격구(擊毬)와 더불어 부록하여 실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