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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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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석두기라 불리는 홍루몽 작자는 누구이며 홍루몽은 왜 겨우 80회뿐인가?

图片信息 《红楼梦》里林黛玉的"作"才是古往今来的最高境界


홍루몽(紅樓夢)의 작자는 누구인가? 2,3백 년 동안 여러 가지 설이 많이 나와서 하나로 모여지지 못했다.

청나라 때의 유서(裕瑞)는 ‘조창한필(棗窓閑筆)’에서 이렇게 말했다. 듣기로 ‘풍월보감(風月寶鑑)’이라는 책은 ‘석두기(石頭記)’라고도 하는데 "누가 썼는지 모른다." 조설근이 그것을 삭제하고 고치고 윤색(潤色)했으며 그의 숙부인 지연재(脂硯齋)가 비주(批注)를 달았으며 이름을 ‘홍루몽’으로 고쳤다. 그는 초본(抄本)을 본 바 있다.

정위원(程偉元)은 소주 사람으로 출판상(出版商)이다. 일찌기 세 번 ‘홍루몽’을 인쇄 출판한다. 그가 출판한 ‘홍루몽’ 정갑본(程甲本), 정을본(程乙本)의 각본의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홍루몽(紅樓夢)’소설의 본명은 ‘석두기’이다. 작자는 서로 다르게 전해진다. 알아보았지만 누가 썼는지 알지 못했다. 단지 책안에 조설근선생(曹雪芹先生)이 여러 번 삭제하고 고쳤다고 되어 있다." 보기에 그도 조설근이 작자인지 아닌지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지평본(脂評本)의 겉면에는 단지 지연재중평석두기(脂硯齋重評石頭記)라고만 되어 있고 조설근의 이름은 없다. 그리고 또 문제가 있다. 지연재(脂硯齋)의 비주는 서로 간에 모순(矛盾)이 많다. 지연재 비주(批注)는 아마도 날조(捏造)된 것일 것이다.

호적(胡適)은 이렇게 생각했다. ‘홍루몽’의 작자는 조설근(曹雪芹)이다. 그는 1921년에 ‘홍루몽고증(紅樓夢考證)’을 발표한다. 그리고 ‘홍루몽’ 전80회는 조설근이 쓴 것이고 후 40회는 고악(高鄂)이 이어서 쓴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 견해는 이미 보편적(普遍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계속하여 의문이 있어왔고 오늘날까지도 의문(疑問)의 목소리는 끊긴 적이 없다.

이 글을 쓴 필자의 시나웨이보(新浪·微博)상의 친구인 시인이자 학자가 있다. 그도 홍학(紅學)을 연구하는데 홍루몽의 작자는 조설근(曹雪芹)이 아니라 명말청초의 대시인 전겸익(錢謙益)이라고 했다. 그의 논문(論文)을 볼 필요도 없이 시가애호가(詩歌愛好家)로서 ‘홍루몽’의 작자가 시인이라는 견해에는 찬동(贊同)한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으면 책안에 그렇게 많은 아름다운 시가를 담았고 시가이론(詩歌理論)을 적은 것도 아주 적절하여 작자의 시재에 감탄(感歎)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홍루몽의 작자를 판단(判斷)하는 첫 번째 조건(條件)은 반드시 뛰어난 시인이어야 한다고 본다. 둘째는 반드시 고관(高官)이거나 혹은 고관가정출신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제왕(帝王) 같은 생활광경을 구체적으로 쓰려면 그 속에서 생활하지 않고서 상상만으로 써내기는 아주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홍학연구자들은 일반적으로 문본(文本)과 판본비주(版本批注)와 가타 이 책을 언급(言及)한 자료를 보고  진짜 작자를 판단하고 추적(追跡)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설(定說)은 없다. 그래서 아직은 하나의 수수께끼라 할 수 있다.

인터넷을 검색(檢索)해보면 홍루몽의 작자가 조설근(曹雪芹)이 아니라고 주장(主張)하는 견해는 최소한 수십 가지이다. 아래에 55가지 조설근이외의 작가 목록(目錄)을 소개한다.

1. 길림성 토목열 교수는 작자가 명말청초의 극작가 홍성(洪晟)이라고 본다. 2. 북경임업대학 인문학원 주건군 교수는 명혜제 주윤문이라고 본다. 3. 온문은 숭정제로 본다. 4. 진현부는 방이지(1611-1671)로 본다. 5. 대만도민 왕이안은 모양(1611-1693)으로 본다. 6. 왕몽완은 순치제(1638-1661)로 본다. 7. 주강병은 이어(1611-1680)로 본다. 8. 풍작회는 임운명(1628-1697)으로 본다. 9. 곽려는 조용(1613-1685)으로 본다. 10. 왕교림은 고경성(1621-1687)으로 본다. 11. 이명조는 장대(1597-1679)으로 본다. 12. 무순의 부파, 종장산은 명말청초의 시인 오위업(1609-1672)으로 본다. 13. 손유중은 진홍수(1599-1652)로 본다. 14. 조영상은 주자랑(1629-1644)으로 본다. 15. 이명조는 사계좌(1601-1676)로 본다. 16. 하신은 납란성덕(1655-1685)으로 본다. 17. 위염춘은 오교(1611-1695)로 본다. 18. 마흥화는 주유련으로 본다. 19. 두홍헌은 만사동(1638-1702)으로 본다. 20. 미국인 철안은 엄승손(1623-1702)으로 본다. 21. 조국동은 정극상(1670-1717)으로 본다. 22. 정허문은 포송령(1640-1715)으로 본다. 23. 장지견은 조집신(1662-1744)으로 본다. 24. 포진은 홍승(1645-1704)으로 본다. 25. 카나다인 최호강, 손혜민은 조왈위(1671-1706)로 본다. 26. 종운소는 석도(1642-1707)로 본다. 27. 원등화는 조인(1658-1712)으로 본다. 28. 진림은 조부로 본다. 29. 유동순은 조옹(1689-1714)으로 본다
30. 이설비는 조석으로 본다. 31. 대불범은 조죽촌으로 본다. 32. 유윤위는 조연으로 본다. 33. 서내위는 조안으로 본다. 34. 장걸은 조기로 본다. 35. 장방은 묵향으로본다. 36. 제옥서, 이신전은 홍석(1694-1742)으로 본다. 37. 주전수는 홍효(1722-1778)로 본다. 38. 손화천은 홍교로 본다. 39. 장국진은 윤잉(1674-1725)으로 본다. 40. 울래우는 윤제(1688-1755)로 본다. 41. 왕성기는 옹정제(1678-1735)로 본다. 42. 진전곤은 영용(1743-1790)으로 본다. 43. 장우림, 정려평은 영침으로 본다. 44. 이홍기는 돈성(1734-1791)으로 본다. 45. 유종옥은 방포(1668-1749)로 본다. 46. 진지엽은 고점으로 본다. 47. 장등유는 이산으로 본다. 48. 마효랑은 마기로 본다. 49. 사지명은 사재조로 본다. 50. 왕희산은 설향옥으로 본다. 51. 호영영은 진옥으로 본다. 52. 진붕비는 조일사로 본다. 53. 곽국령은 유혜란으로 본다. 54. 동력군은 정일흥으로 본다. 55. 봉관은 고란서로 본다.

원작자 논란이 많은 홍루몽은 왜 겨우 80회뿐인가?
‘홍루몽’은 미완성(未完成)의 책이다. 좋은 작품이라면 완성되었건 아니건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음악가(音樂家)들이 남긴 가장 좋은 교향곡(交響曲)도 미완성인 경우가 많지 않은가? 많은 회화작품(繪畫作品)도 반드시 완성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도 완성하지 못하긴 했지만 기실 쓸 만큼 쓰고 떠날 때쯤에 떠난 것이다. 소설(小說)을 다 쓰지 않았으므로 시간(時間)도 다 흐르지 않았고 인생(人生)도 다 끝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인생에서 다음번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홍루몽의 속편을 쓰는 사람은 모두 ‘홍루몽(紅樓夢)’을 읽은 후에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후로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가보옥(賈寶玉)은 최후에 누구와 결혼(結婚)할까? 등등 의문점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고악(高鶚)과 정위원(程偉元)이 보완해서 쓴 후반 사십 회는 건륭(乾隆) 년간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받아들인 '결말본(結末本)'이 되었다.

만일 여러분이 장애령(張愛玲)의 ‘홍루몽염(紅樓夢魘)’을 읽는다면 장애령이 고악에 대해 전혀 인정사정(人情事情)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홍루몽’을 읽다가 81회가 되니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확실히 80회이전과 80회이후의 쓰는 방식(方式)은 전혀 다르다.

가장 두드러진 예를 하나 들어보자. 80회 이전에 임대옥(林黛玉)이라는 이 중요한 여주인공에 대하여 그녀가 등장(登場)할 때면 그녀가 무엇을 입는지 무엇을 차고 있는지 전혀 묘사(描寫)하지 않았다. 임대옥(林黛玉)은 꿈처럼 돌연 왔다가 돌연 사라진다. 약간은 우리가 말하는 봄날이 꿈과도 같고 봄날의 아지랑이와도 같은 감각(感覺)이다.

80회 이후 임대옥(林黛玉)에 대하여 의복도 묘사(描寫)하고 얼굴의 오관도 묘사한다. 이것은 아주 큰 차이이다. 왕희봉(王熙鳳)은 등장하자마자 작자가 그녀가 입은 옷이 무엇인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현실 속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대옥은 하늘에서 내려와서 사람들과 한바탕 놀고는 다시 사라지는 여인(女人)이다.

그녀가 떠나고 나서 네가 그녀를 기억(記憶)하려고 하면 그녀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달빛과도 같이 아무런 흔적(痕迹)을 남기지 않는다. 배가 지나간 자리에 물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느낌과 같은 것이다.

임대옥(林黛玉)의 존재는 일종의 심령적인 존재(存在)이다. 물체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81회를 읽어보면 돌연 임대옥의 옷에 색깔이 있고 몸에 무엇을 차고 있는지를 얘기한다. 확실히 작자의 수준(水準)이 앞의 작자보다 많이 뒤쳐진다.

이는 장애령(張愛玲)이 후반에 보완(補完)한 부분을 이렇게 비판(批判)한 원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래도 고전소설에서 임대옥(林黛玉)을 죽게 하고 설보채(薛寶釵)는 가보옥(賈寶玉)과 결혼하게 하여 한편으로 혼례음악(婚禮音樂)이 흐르고 다른 한편에서는 원고를 불태우며 치정(癡情)을 끊은 임대옥이 죽는 이런 비극성과 희극성(喜劇性)을 대비시킨 것은 잘 썼다고 본다.

‘홍루몽(紅樓夢)’이 마지막 결말이 어떠했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마지막에 가보옥(賈寶玉)이 결혼하는 것은 사상운(史湘雲)일 것이라고 얘기한다. 왜냐하면 어느 회인가 제목에 "인기린복백수쌍성(因麒麟伏白首雙星)"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사상운(史湘雲)은 금기린(金麒麟)을 갖고 있다. 금옥양연(金玉良緣)은 가보옥(賈寶玉)이 입에 물고 있던 그 옥과 사상운이 몸에 지니고 있던 금기린이다. 그들이 마지막에 결혼(結婚)해서 금옥양연을 이룬다는 것이다.

"인기린복백수쌍성(因麒麟伏白首雙星)"의 '백수(白壽)'는 바로 부부가 백년해로(百年偕老)한다는 의미이다. 이것도 홍학(紅學)의 고증에 속하는 문제이다. 누구도 진정한 결말이 무엇일지는 알 수가 없다.

만일 작자가 쓰려는 것이 자신이 꿈속에 본 것이라면 변화(變化)도 원래는 한바탕 꿈이다. 그는 아마도 근본적으로 결말(結末)이 어떻게 될지를 신경 쓰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저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생명 가운데 권력(權力), 재부(財富), 애정(愛情)은 전부 헛된 것이라고.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헛된 것을 알면서도 집착(執着)을 한다. 아는 것은 아는 것이고, 집착은 집착이다. ‘홍루몽(紅樓夢)’이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이유(理由)는 바로 여기에 있다. 분명(分明)히 모든 것이 헛된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매순간 또 집착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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