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岳岩漢字屋

甲辰年 새해 하시는 일들이 日就月將하시고 乘勝長驅.하시고 萬事亨通 하세요!!!

반응형

홍루몽의 작가인 조설근이 바로 지연재(脂硯齋)라는 수수께끼의 비밀

图片信息 脂砚斋评石头记


홍루몽(紅樓夢)은 청나라 건륭제 시기의 작가인 조설근(曹雪芹)이 쓴 고전소설이다. 등장인물만 700명에 달하며 등장인물(登場人物)들의 세밀한 묘사로 청나라 시대의 대표적인 걸작소설(傑作小說)로 칭송받고 있으며 100여 차례 간행되었고 30여 종의 후속편들이 나왔을 만큼 중국에서 크게 인기를 끈 국민적인 고전(古典)이 되었다. 

많은 중국학자들도 홍루몽(紅樓夢)에 대해 연구해 "홍학(紅學; 홍루몽학)"이란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홍루몽은 문학적 가치(價値),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중국 고전소설(古典小說)의 정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홍루몽(金甁梅)을 제외시킨 '사대명저(四大名著)'의 하나로 친다.

'지연재중평석두기(脂硯齋重評石頭記 홍루몽의 또 다른 판본)'에는 대량의 지비(脂批, 지연재가 남긴 비평글)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지비(脂批)에서는 지연재와 조설근(曹雪芹), 지연재(脂硯齋)와 홍루몽의 인물, 사건 간의 관계정보를 알 수 있고 이들 정보는 홍루몽(紅樓夢)을 연구함에 있어서 많은 수수께끼를 푸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지연재가 누구인지에 대하여는 역대이래로 여러 가지 설이 분분(紛紛)하다.

어떤 사람은 지연재(脂硯齋)가 바로 조설근(曹雪芹) 자신이라고 말한다. 그가 스스로 자문자답(自問自答)을 한 것이라는 것이다. 책에서 이런 예를 든다. "'後'자는 왜 직접 '西'자를 쓰지 않았는가?" "선생이 눈물을 흘릴까 걱정되어 감히 '西'자를 쓰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일문일답(一問一答)은 마치 1인극의 문자유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주장이 맞는가? 그러나 근거(根據)가 약하다. 왜냐하면 대량의 비어(批語)는 아주 분명하게 작가가 아닌 사람의 어투이지 작가의 어투가 아니다. 그리고 자주 작자의 견해(見解)에 대하여 자기의 견해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고 작가의 일부 주장(主張)에 대하여 평론(評論)을 하거나 그 사건의 배후에 있는 실제사건을 언급(言及)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하나의 주장은 이 지연재(脂硯齋)가 조설근(曹雪芹)의 형제라는 것이다. 이 주장에도 어느 정도 문제(問題)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는 비어(批語) 중에는 많은 내용이 과거를 회상(回想)하는 내용이고 말만 꺼내면 20년 전, 30년 전, 손가락을 꼽아보니 35년이라는 것과 같은 말이 나온다. 이는 확실히 조설근(曹雪芹)보다는 연령이 많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일부 비어에는 조설근(曹雪芹)을 아랫사람으로 대하는 말투가 나온다. 이런 점에서 그의 형제(兄弟)라고 보기는 부족하다. 특히 조설근(曹雪芹)이 어떤 일들은 직접 겪거나 직접 본건이 아닐 수도 있다. 혹은 직접 겪거나 보았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기억이 또렷하지 않을 수 있다. 하물며 그의 동생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책안에는 이런 '비어'도 있다. "설근은 옛날에 '풍월보감(風月寶鑑)'이라는 책이 있었다" "거기에 동생 당촌(棠村)이 서문을 썼다". 서문을 썼으면 비어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전체적인 비어(批語)로 보면 동생의 어투는 전혀 아니다.

세 번 째 주장은 지연재(脂硯齋)는 여자이고 남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아마도 조설근(曹雪芹)의 후처일 것이라고 한다. 그들 부부(夫婦)는 한 명은 책을 쓰고 한 명은 비어를 쓰면서 서로 그림자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조설근(曹雪芹)이 죽은 이후에도 비서인(批書人) 즉 미망인은 계속 비어를 썼다. 다만 우리가 보는 비어 중 대부분은 남자의 어투이지 여성의 어투는 아니다. 예는 너무나 많으므로 여기서 하나하나 열거(列擧)하지는 않는다.

또 하나의 주장은 조설근(曹雪芹)의 윗사람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어느 주장이 가장 사실에 접근(接近)할 것일까. 유서(裕瑞)라는 사람이 있다. 바로 "조창한필(棗窓閑筆)"의 작가이다. 유서는 조설근(曹雪芹)과 직접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외삼촌이 조설근의 가까운 친구였고 조설근과 잘 알았다. 그는 그의 외삼촌으로부터 여러 가지 조설근에 대한 말을 듣고 홍루몽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지연재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그의 말대로라면 "전대인척(前代姻戚)"으로부터 말을 들었다는 것인데 바로 외삼촌(外三寸)을 얘기한다. 그렇다면 그의 외삼촌은 누구인가? 그의 외삼촌은 모두 부찰씨(富察氏)의 몇몇 형제들이다. 부찰명의(富察明義), 부찰명림(富察明琳), 명인(明仁), 명서(明瑞)등등이다. 이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조설근의 가까운 친구들이었다. 이들중 '명의'는 가장 먼저 홍루몽(紅樓夢) 전권을 본 사람이다. 즉 80회 이후를 잃어버리기 전의 판본(板本)을 읽어본 사람이다. 

'명림(明臨)'같은 경우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한번은 '돈민(敦敏)'이 그를 찾아갔다. 돈민은 조설근의 가까운 친구이다. 명림의 양석헌으로 찾아갔는데 갑자기 건너편에서 어떤 사람이 고담준론(高談峻論)을 벌이는 것을 들었고 목소리를 들으니 조설근(曹雪芹)이었다. 그는 그때 조설근을 1년가량 만나지 못했으므로 아주 놀라면서도 기뻤다. 바로 건너가서 보니 과연 조설근(曹雪芹)이었다. 이 이야기에서 최소한 명림, 명의들이 조설근과 관계가 아주 좋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책 한권을 쓰려면 막 탈고(脫稿)했을 때 이 책이 아직 외부로 전파(傳播)되지 않았을 때 책을 보는 사람들은 아주 좁은 범위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잘 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유서의 외삼촌들은 조설근(曹雪芹)과 관계가 아주 밀접했었고 유서가 얻은 소식은 아주 사실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뭐라고 말했는가? 조설근은 성격이 소탈하고 활달(豁達)했다고 한다. 조설근의 성격은 그의 다른 친구들이 남긴 글에서도 확인(確認)할 수 있다. 

조설근(曹雪芹)의 모습에 대하여 조설근이 고담준론을 시작하면 하루 종일 피곤한 줄을 모른다고 적었다. 그리고 조설근은 홍루몽(紅樓夢)을 쓰면서 쓰면 쓸수록 기이했고 그는 초기의 '석두기(石頭記)'를 보았다고 한다. 그의 말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본 책에는 페이지마다 "기숙지연(其叔脂硯)"의 "비어(批語)"가 있다고 적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가 한 말 그대로이다. "기숙지연"이라는 것은 "그의 숙부 지연"이라는 말이 아닌가? 

지연은 바로 지연재(脂硯齋)이다. 그가 유일하면서도 아주 명백하게 지연재가 그의 숙부(叔父)라는 점을 밝혀준 것이다. 그리고 '석두기(石頭記)'의 위에 비어(批語)를 썼다는 것도 말해준다. 그가 잘못 말했을 가능성(可能性)은 없을까? 물론 있기는 하다. 왜냐하면 말로 전해지다 보면 아마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모든 주장에는 이 정도(程度)의 증거도 없고 모두 그저 추측(推測)이거나 그럴지도 모른다는 것일 뿐이다. 직접적인 기록(記錄)이라면 이것 하나뿐이다. 나중에 여러 가지 말들이 나오지만 이것들은 모두 유서보다도 훨씬 멀리 떨어진 사람들의 말이다. 그러므로 다른 자료(資料)가 발견되기 전에는 우리는 유서의 말을 믿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비어(批語)의 내용을 살펴보자. 그리고 비어의 말투를 보자. 비서인의 신분을 보자. 느낌으로는 대략 조설근(曹雪芹)의 윗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연히 어떤 사람은 반드시 그의 숙부(叔父)가 아니라 그의 외삼촌(外三寸)일 수도 있다고 본다. 외삼촌도 윗사람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조설근의 외삼촌은 누구인가? 조설근의 외삼촌은 이씨(李氏) 집안이다. 이씨 중 그의 외할아버지는 이후(李煦)이며 소주직조(蘇州織造)를 지낸 인물이다. 

소주직조(蘇州織造) 이후에게는 아들 둘이 있었다. 하나는 이내(李鼐)이고 하나는 이정(李鼎)이다. 어떤 사람은 이정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연령상으로나 다재다능(多才多能)하다는 점에서 특히 희곡(戱曲)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모두 지연재로 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한다. 다만 증거가 있는가? 없다. 모두 추측일 뿐이다. 그리하여 그를 조설근의 형제라고 하기도 하고 처라고 하기도 하고 외삼촌이라고 하기도 하고 본인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 그저 "기숙지연(其叔脂硯)"이라는 문구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지연재(脂硯齋)는 조설근의 숙부일 가능성이 가장 클 것이다. 

당연히 만일 새로운 자료가 나타난다면 유서의 말은 뒤집힐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자료가 나타나기 전에는 억측(臆測)을 얘기할 수는 없다. 추측(推測)은 추측일 뿐이다. 결론(結論)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정설(正說)이라고 말할 수는 더욱 없다.

따라서 청대 조설근(曹雪芹)의 "홍루몽(紅樓夢)"은 길게 얘기할 필요 없이 '서유기(西遊記)' '삼국지(三國志)' '수호전(水滸傳)'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국 최고의 고전소설(古典小說)이다. 4대 명작소설(名作小說) 중 시기상 가장 후대에 창작되어 널리 읽힌 '홍루몽'은 전쟁이나 민란(民亂), 기협(氣俠)의 세계가 아니라 일상생활 속 인간의 드라마틱한 삶을 담아냄으로써 한 세대 늦은 프랑스의 오노레 드 발자크가 '인간희극(人間喜劇)' 창작을 통해 세상물정을 문학적으로 비춰준 것과 같은 역할을 동양(東洋)에서 해냈다. 

당연하게도 온갖 인간군상(人間群像)이 등장하는 '홍루몽(紅樓夢)'은 가히 중국 고전소설의 완결판(完結版)이라고 할 수 있다. 방대한 스케일에 독특한 서사구도(敍事構圖)와 세련된 묘사 그에 더해 기존의 사상을 전복(顚覆)시킬 만한 새로운 발상(發想)과 참신한 인물군의 출현이라는 점에서 '홍루몽(紅樓夢)'은 과연 여타의 소설을 압도(壓倒)한다. 단순한 전통의 종합이 아니라 그것을 통째로 뛰어넘은 거대한 ‘문학적 성채(城寨)’다.

그래서 '홍루몽(紅樓夢)'은 수많은 연구의 대상이 되어왔으며 ‘홍학(紅學)’이라는 하나의 학문 분야를 형성(形成)하면서 100년이 넘도록 이어가고 있다. 지식인이든 지식인이 아니든 얕게든 깊게든 넓게든 좁게든 누구나 홍루이야기 한 자락 걸치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程度)이니 ‘홍학’의 세계 또한 광대무변(廣大無邊)의 세계임은 짐작(斟酌)하기 어렵지 않다.

반응형
반응형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