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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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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중앙군사위 총후근부 부부장 구쥔산(谷俊山)은 군중제일탐(軍中第一貪)이자 중공군대 부패사건의 가장 전형적인 사례중 하나이다

글: 왕우군(王友軍)
얼마 전에 폐막된 중공19기 6중전회는 중공사상 제3차 역사결의를 통과시켜, 중공의 소위 '중대성취'를 크게 자랑했다. 중공이 일부러 숨긴 하나의 '중대성취'가 있다. 그것은 바로 중국군대의 부패가 세계제일이라는 것이다. 전 중앙군사위 총후근부 부부장 구쥔산의 부정부패사건은 중공군대 부패사건의 가장 전형적인 사례중 하나이다.
2015년 8월 10일, 신화시점의 공식웨이보에서 중국 군사법원이 구쥔산의 부정부패죄, 뇌물수수죄, 공금유용죄, 뇌물제공죄, 직권남용죄를 인정하고 사형을 판결하면서 2년간 집행을 유예했고, 중장계급을 박탈했다고 보도했다.
구쥔산은 백년중공역사상 조사처벌받은 두번째 중장계급의 부패분자이다.
구쥔산은 1956년 10월 허난성 푸양시(濮陽市) 멍커향(孟軻鄕) 동바이창촌(東白倉村)에서 출생한다. 1993년 3월 푸양군구 후근부장(부단급)이 된다. 1995년, 지난군구 생산판공실 부주임(정단급)으로 옮겨가고 나중에 지난군구 육군지휘학원 부원장(부사급)으로 승진한다.
2001년 7월, 구쥔산을 베이징으로 옮겨가서 전후로 총후근부 기건영방부 판공실주임, 영방토지관리국장, 기건영방부 부부장, 부장, 전군방개판공실 주임등을 맡는다. 2009년, 총후근부 부부장으로 승진한다. 짧은 8년동안 5단계나 승진하여, 계급이 대교(大校)에서 중장(中將)이 된다.
구쥔산의 재직기간동안 마침 군대에서 각급 군인의 주택기준을 제고하고, 전군의 주택임차료기준도 조정하며, 대규모로 군영을 건섷하고, 전면적으로 군용토지의 공개입찰방식매각의 개혁을 진행한다. 전군의 주택, 군영, 설비등이 전면적으로 업그레이드되던 시기였다.
구쥔산은 군대토지출양의 심사허가, 부동산개발, 부동산임대, 영방건설, 수선, 개조등의 과정에서 권력, 금전, 여색거래를 통해 뇌물을 받고, 뇌물을 요구하고, 뇌물을 제공하며, 관직을 사고, 관직을 팔고, 남녀관계가 문란하여, 수중의 권력을 극도로 활용했다.
물극필반(物極必反)인 법이다. 2012년 1월 27일, 음력 정월 초닷새. 구쥔산의 좋은 시절이 끝난다. 이날 구쥔산은 엄중한 부정부패로 체포된다.

쉬차이허우, 궈보슝등에 뇌물을 제공하다.
구쥔산의 전우가 <봉황주간>의 기자에게 토로한 바에 따르면, "구쥔산의 인생철학은 돈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길을 뚫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구쥔산과 잘 아는 한 푸양출신의 노간부가 <재신망>에 토로한 바에 따르면, 구쥔산의 가장 큰 재능은 상사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상사의 집에 한번 가면 바로 그 집에서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낸다. 이 방법으로 아무리 강경한 상사라도 그에 의해 부패할 수밖에 없었다."
구쥔산의 배후인물은 누구일까? 지금 널리 알려진 바로는 전 중공정치국위원, 중앙군사위부주석인 쉬차이허우와 궈보슝이다.
2015년 6월 홍콩의 <명보월간>에 실린 <쉬차이허우전>에서는 이렇게 적어놓았다: 구쥔산은 쉬차이허우에게 잘보이기 위해 아부할 때 미인계를 썼다. 먼저 요염한 안마소녀를 보내고, 이어서 '탕찬(湯燦)등 여배우를 쉬하이허우에게 보낸다. 마지막에는 겨우 20살된 친딸까지 보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쉬차이허우와 그의 딸이 방안에서 운우지정을 나눌 때, 그는 밖에 앉아 있었고, 안색은 평상시와 다름없었다고 한다. 소식통에 다르면 구쥔산은 짐승이라고 욕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그를 짐승이라고 욕하는 것은 짐승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한다.
2015년 1월 22일 대륙의 <염정요망>은 이렇게 보도한다: "구쥔산이 정식으로 조사받는다고 선포되기 전에, 비록 자신은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여전히 마지막 발버둥을 쳤다. 여러번 쉬차이허우에게 뇌물을 보냈는데, 금액이 4천만위안에 달한다."
<봉황주간>은 보도에서 이렇게 말했다: "구쥔산은 뇌물로 얻은 금괴로 3개의 수십킬로그램에 이르는 황금불상을 만들고, 그중 2개는 이미 보냈다" 쉬차이허우와 궈보슝에게 보낸 것인지에 대하여는 보도에서 명확히 말하지 않았다.
보도에서는 또한 한 소식통에 따르면, 구쥔산이 뇌물을 보내는 방식은 이렇다고 한다: "12기통짜리 벤츠600을 1대 준비하고, 그 안에 100킬로그램이 넘는 금괴를 놓아둔다. 그리고 차열쇠를 직접 상대방에게 전달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추측한다. 이런 방식으로 선물을 보낸 대상은 쉬차이허우라고. "구쥔산은 그의 주요뒷배경인 X가 자기 딸을 아주 아끼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는 한꺼번에 그의 딸에게 호화주택 몇 채를 선물했다." 여기의 X는 분명 쉬차이허우일 것이다.
2014년 4월 8일, 어떤 사람이 "총정기관 몇몇 간부"의 명의로 해외에 <전군지휘관에게 보내는 제2차 공개서신>을 발표한다. 거기에는 귀쥔산이 궈보슝에게 뇌물을 가져다준 흑막이 기재되어 있다: "후기로 갈수록 구쥔산은 궈보슝에게 잘보이느라 더욱 애를 썼다. 그가 총후근부 영방부초대소에 궈보슝가족을 위한 특공점(特供點)을 설치한다. 그리고 궈보슝의 친척이나 친구가 베이징으로 오면 거기에서 접대했고, 산해진비가 언제든지 제공되었다. 궈보슝의 딸이 샤하이(下海, 관직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다)할 때, 궈보슝은 구쥔산에게 말한다. 그녀가 잘 시작할 수 있게 네가 도와주어라. 구쥔산은 금방 현금 300만위안을 보내고, 그녀의 계좌에 2000만위안을 송금해주었다."
구쥔산에게는 또 한명의 상사가 있었다. 그는 전중공정치국위원, 중앙군사위부주석 장완녠(張萬年)이다.
홍콩 <경제일보>는 장완녠을 '구쥔산의 은사(恩師)'로 표현했다. 구쥔산은 자신을 '홍색후대'로 포장하기 위하여, 아무런 근거없이 자신의 부친 구얜셩(谷彦生)을 '우화대열사(雨花臺烈士)'로 날조했다. 그리고 사람을 찾아 <생사기억: 저우하오(周鎬)와 구얜셩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다. 그리고 장완녠에게 서문을 부탁한다. 장완녠은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생사기억>이라는 책을 읽고는 오랫동안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책에 적힌 이야기의 곡절은 진실로 감동적이다.
재신망의 보도에 따르면, 구얜셩은 1990년에 사망했고, 동바이창촌에 묻혔다. 동바이창촌의 촌민은 구얜셩이 우화대열사라는 말을 듣자, 모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장완녠이 왜 이 가짜열사를 위해 서문을 써주었을까? 그 배후에는 분명 다른 이야기가 숨어있을 것이다.
중국군대의 '허난방(河南幇)'의 방주는 전 중앙군사위주석 장쩌민의 비서실장 자팅안(賈廷安)이다. 중국관료사회의 상식으로 판단하면, 자팅안은 분명 구쥔산이 접근하고, 뇌물을 주고, 잘보이려 했던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부정부패금액이 300여억위안이다
<봉황주간>의 기자가 독점취재한 바에 따르면, 구쥔산의 최종적인 사건금액은 300여억위안이라고 한다. 구쥔산이 뇌물로 받은 금액은 6억여위안에 달한다고 한다.
2013년 1월 12일 심야, 군사검찰원의 수사관이 구쥔산 고향의 '장군부'를 압수수색했다. 거기에서 압수한 재물은 트럭 4대를 가득 채웠다. 거기에는 400킬로그램의 황금, 1800여상자의 마오타이원분주(原份酒), 11장의 동백호랑이 호피가죽, 수십개의 아프리카상아, 1척의 '일범풍순(一帆風順) 금선(金船), 1개의 '금옥만분(金玉滿盆)'의 금세수대야, 그리고 순금 모택동상등이 있었다고 한다.
2014년 1월 20일 해외에서 발표된 <구쥔산사건을 심도있게 조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전군지휘관에 보내는 공개서신>에 따르면, "구쥔산의 허난고향에서 수천만의 현금이 나왔다"고 하였다.
<봉황주간>의 보도에 따르면, 핵심정보원에 가까운 한 고위장교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위의) 공개서신을 제공한 사람은 절대로 보통사람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구쥔산사건의 구체적인 내용도 있고, 최근 1월 군대부패의 구체적인 인물과 사건도 있기 때문이다. 군대내의 인사가 아니라면 이렇게 상세하게 알 수가 없다. 가장 관건적인 것은 서신의 내용의 대부분이 관련기관이 중앙군사위에 보고한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원문의 문구를 그대로 옮겨적기도 했다." 즉, 위의 공개서신은 신뢰도가 아주 높다는 것이다.

토지와 인프라건설로 큰돈을 벌다.
홍콩 <동향> 잡지의 보도에 따르면, 2009년 7월부터 2011년 1월까지, 구쥔산은 베이징, 지난, 항저우, 상하이, 푸저우, 우한등 58개 도시의 황금지역의 군대토지를 출양하는 과정에서 수백억의 거액재산을 취득했다.
2014년 1월 20일 발표된 공개서신에서는 이런 말도 했다: "총후근부에서 조사하여 확인한 부동산개발상들 중에 천쯔쥔(陳子君)이 있다. 그는 베이징의 서교공항에서 100무짜리 토지를 출양받고, 상하이의 강만공항에서도 적지 않은 토지를 출양받았다. 구쥔산은 한꺼번에 그에게 7,500만위안을 내라고 요구했고, 그리고 또 한번은 천쯔쥔이 2억여위안을 구쥔산에게 보냈다. 구쥔산사건이 터지자 모 군사위의 고위직이 사람을 시켜 천쯔쥔에게 알렸고, 천쯔쥔은 캐나다로 도망쳤다."
<재신망> 보도에 따르면, 구쥔산이 손을 댄 베이징2환로의 황금지역주변의 군대부동산은 수십개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수십채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채당 면적은 170평방미터가량이라고 한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구쥔산은 이들 부동산을 원래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하려고 했는데, 사건발생시까지 주지 못하고 있던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상하이의 한 군대부동산은 20여억위안의 고가에 매각했는데, 그중 약 6%를 구쥔산이 리베이트로 받았다.
<봉황주간>의 보도에 따르면, 모 군대가무단은 총후근부에 가무단의 연습실과 연습건물을 짓도록 요청했는데, 예산이 8천만위안이었다. 구쥔산은 1.9억위안을 내려보내고, 동시에 가무단의 책임자로부터 500만위안과 5킬로그램의 황금을 받는다.

수백채의 부동산과 '장군부'
2014년 11월 22일 <중국기검감찰보>는 이렇게 보도한다: "구쥔산사건등 성장장관급(혹은 이상) 고위관료는 걸핏하면 수백채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 구쥔산의 남북 '장군부'는 CCTV에서 보도한 바도 있다.
남'장군부'는 허난의 고향 푸양 동바이창촌에 위치하고 있다. 고궁설계원의 엔지니어가 설계했다. 메인건물은 2층이고, 부속건물은 2층이다. 문앞에 회랑이 있고, 실내에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이 된 기둥과 그림이 있다. 모두 고궁의 화가들이 그린 것이다. 메인건물의 계단앞에는 두 마리의 한백옥으로 만든 코끼리상이 있다. 편방의 앞에는 금원보 모형의 분수연못이 있다. 후원에는 정자, 화원이 있으며 회랑이 길고 구불구불하게 그 사이로 지어져 있다. 남쪽 담장쪽에 붙은 건물은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거처하는 곳이다. 이 호화주택은 2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북'장군부'는 베이징 우커송부근의 총후근부설계원내에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원래 부지는 가산화원(假山花園)이었다.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않기 위해, 설계자는 구쥔산의 거처로 통하는 외부와 좁은 길의 양측에 굵은 대나무를 심는다. 따스하고 습기있는 것을 좋아하는 대나무는 북방의 기후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설계자는 일부러 대나무숲의 아래에 스팀파이프를 부설하여, 대나무가 잘 자랄 수 있게 해주었다. 큰 대나무풍이 구쥔산의 집을 완전히 가리고 있어,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밖에서는 거기에 주택이 있다고 생각할 수가 없다." 대나무숲 깊은 곳의 호화주택 옆에는 성당모양의 클럽하우스가 있다.
2014년 1월 20일의 공개서신에서는 이렇게 토로했다: 구쥔산은 사적으로 부동산을 점거해서, 고대, 현대가 혼합된 건축을 짓는다. 베이징 자죽원공원 부근에 있으며 시가로 환산하면 수억위안은 호가한다. 구쥔산은 안에서 먹고 마시고 놀았다. 총후근부의 지도간부는 먼저 봉존(封存)하고 나중에 사건이 종결되면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군대 기율검사위의 간부는 그러겠다고 대답하고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중에 구쥔산은 거기에서 적지 않은 나쁜 짓을 벌일 수 있었다.

신분의 다섯가지 조작
공개서신에 따르면, 구쥔산의 인사자료에는 5가지 조작이 있다: 첫째, 나이를 조작했다. 그의 출생연도는 3개이다. 1952년, 1954년, 1956년. 둘째, 공을 세우고 상을 받은 것을 조작했다. 1993년 그의 인사기록표에는 1992년 1번 3등공을 받았다고 되어 있는데, 1995년의 인사기록표에는 1988, 1989, 1990, 1991, 1992년 연속 5번이나 3등공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셋째, 학력조작이다. 먼저 공군제2기술학교를 졸업했다고 썼다가 나중에는 허난 푸양교육학원졸업이라고 적었다 .그후에는 다시 중전(中專), 대전(大專), 대학원생이라고 적었다.
넷째, 자녀를 조작했다. 그의 인사자료에는 딸 하나만 적혀 있다. 그러나 총후근부 간부부서의 컴퓨터자료에는 아들 하나가 더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섯째, 부친의 신분을 조작했다. 그의 부친은 보통농민이다. 나중에 그는 난징 우화대에서 희생된 열사로 포장된다. 그는 푸양에 부친을 위해 '열사묘'를 짓고, 전기까지 써서 출판했다.

가족부패
재신망의 보도에 따르면, 구쥔산의 고향 푸양에는 구씨집안의 주택단지와 장군부 이외에 구씨가족이 개발한 상업무역성이 분포되어 있고, 각종 부동산은 이미 매각되거나 매각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도시중심의 '열사능원'과 두 곳의 '병기공장'도 있다. 구쥔산의 셋째동생인 구셴쥔(谷獻軍)은 구산(谷三)이라고 불리는데, 그의 사업은 군수생산, 토지, 부동산개발및 건설건축등 분야에 걸쳐 있다.
구산은 동바이촌의 지부서기를 10년간 지냈고, 촌의 3천여무에 달하는 땅을 모조리 팔아치웠다. 소식통에 따르면, 구산과 구씨가족은 푸양에 거액의 재산을 가지고 있다. 먼저 집체토지를 매각하여 직접 혹은 간접으로 차지한다. 개발상을 도와 토지를 수용하게 도와주고 리베이트를 받아챙겼다. 그리고 암중으로 개발상과 결탁하여 명목상으로는 개발상이 소유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구산과 구씨가족이 실질적인 소유자이다.
구쥔산이 낙마한 후, 구씨 5형제자매중에서 이미 3명이 구속되었고, 구쥔산의 처남인 장타오(張濤)도 체포되었다.

결론
구쥔산 사건이 발생한 후, 어떤 사람은 구쥔산을 '군중제일탐'이라고 불렀다. 중앙군사위 부주석 쉬차이허우, 궈보슝사건이 발생하자 사람들은 비로소 쉬차이허우와 궈보슝이야말로 '군중제일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다만, 쉬차이허우와 궈보슝은 모두 전 중앙군사위 주석 장쩌민이 발탁중용한 사람들이다. 장쩌민의 비호, 종용, 지지가 없었다면, 쉬차이허우, 궈보슝, 구쥔산은 이렇게 대담하게 부정부패를 저지를 수 없었을 것이다.
장쩌민은 중공당정군의 가장 심각한 부패문자들의 총뒷배경이다. 아마도 진정한 '군중제일탐'일 것이다.


“军中第一贪”谷俊山包养23名情妇


文: 老钱庄财经
“军中第一贪”谷俊山包养23名情妇 谷俊山与情人汤灿照片曝光(组图)
  凤凰网的知名节目主持人梁文道的一段话被网友翻出,再次疯传网络:实话原军方总后勤副部长谷俊山贪污68亿开三家美容院,有79套房产包养23名情妇,家属已移民德国。谷部长经典名言:中国的女星我都玩腻了,用钱搞定她们
  前总后副部长(中将军衔)谷俊山被捕。谷涉案金额200多亿,房产300余处。住7000多平米小楼,护工60余人管理房院。有5情人,一个歌星、两个影视小星、一个主持人、一个高级白领。一张谷俊山在京奢华将军府照片也广泛流传于网络。涉案200多亿、房产300余处、住7000多平米小楼、60余护工、5个情人,这一组巨大数字非但强烈冲击读者眼球,军队高官竟如此腐败,让人惊愕不已!据称谷俊山案是在查处某大军区级营房局长案件过程中被牵扯出来的。只是官媒一直没有证实,公方彬在线交流算是官方首次披露谷案。
  解放军总后勤部有军交运输部、军需部、基建营房部等9个二级部,谷俊山分管军产土地、营房基建等热门领域肥缺岗位。解放军经历数次精减整编,空出相当数量营房、场地。仅海南省与地方无争议土地24万亩,空闲营房45万平米,全国所涉军队可处置资产自是巨大数字了,这是一笔具有巨大开发潜力财富。军队一切由一把手拍脑门说了算,这自然容易造成权力监督巨大“黑洞”。显然,军队财产处置让谷俊山捞得腰满肠肥,这一切是否告诉人们受社会大环境污染,军队高官腐败非常严重。与地方政府相比,是不是有过之而无不及?

  谷俊山曾是老家河南濮阳军分区后勤部物资供应正营级副主任,上世纪80年代末,中国军队大干“三产”,谷负责跟中原油田合作油品贸易。谷打着军分区旗号,以支援当地军队建设名义倒卖油气捞了不少钱,从而打通升迁路子。由正师到副军再到正军,进而谋得总后副部长大区副职高位,8年间这样升迁速度,在解放军高级军官中也不多见。谷在济南军区后勤部生产部时,就以敢拿、敢要出名,奇怪的是这样的人却两年一个台阶,一路顺风提拔。谷俊山没有过人之处,没有特别军事造诣,更没有特别官场背景,却何以能在军中进入快速上升通道?只能是以钱打通升迁之路,这是否意味谷俊山是一路花钱买官上升为中将。谷俊山是边腐边升,一个上升为中将的总后副部长竟是花钱买的官,真不知又是哪些军队高官收受谷俊山贿赂?军队一切腐败都不可等闲视之?
  谷前任原海军中将副司令王守业,在其担任总后副部长兼基建营房部长期间,贪挪1.6亿元,包养五名情妇,2006年5月王被判死缓。王守业是军方公布涉及赃款数额最大、职务最高者,获“军中第一贪”称号。显然,解放军总后勤部分管领域所涉经济资产太多,成为军队最容易滋生腐败区域。谷俊山涉案数额完全可能刷新其河南老乡王守业记录。

谷俊山
      谷俊山 (1956年10月-),河南濮阳人,中国人民解放军将领,中将军衔,2009年12月至2012年任解放军总后勤部副部长。曾任解放军总后勤部基建营房部办公室主任、营房土地管理局局长,总后勤部基建营房部副部长。2007年6月任总后勤部基建营房部部长,全军绿化委员会办公室主任、全军房改办公室主任等职。2003年7月晋陞为少将军衔。2011年晋陞为中将军衔。2012年因涉贪被查。就谷俊山涉嫌贪污、受贿、挪用公款、滥用职权犯罪一案,中国人民解放军军事检察院于2014年3月31日向中国人民解放军军事法院提起公诉。

主要经历
      官方公开资料显示谷俊山是1956年10月出生,但亦有媒体表示其为1954年10月出生。他是河南省濮阳市孟轲乡东白仓村人。谷小时候就读东白仓小学,初中在南里乡中学就读,初中毕业后不久,17岁的谷俊山入伍参军。
      他于渖阳军区航空兵16师48团机务大队二中队服役。最初谷俊山是仪錶员,1974年前后提升至排长级的特设师,分管飞机仪錶、电器。据军中同事称他热衷于与上级打好关係。后来他认识了时任团副政委张龙海的女儿张素燕,展开爱情攻势。二人的关係曾遭到张龙海反对,甚至将谷俊山调往16师位于吉林海龙县(现梅河口市)山城镇机务教导队当新兵训练教员,但张素燕很快也跟着过去。最终二人的关係得到张龙海肯定而成婚。
      1985年6月中共中央军委实行「百万大裁军」,为避开裁军,张龙海通过其在济南军区的朋友将谷俊山调动到其河南老家濮阳陆军军分区,张素燕进入濮阳市公安局。谷俊山因不懂业务被分区安排搞第三产业。中原油田经营办与濮阳军分区联合兴办了联营厂和橡胶厂,当时是少校军衔的谷俊山担任副主任。1993年3月他被提拔为濮阳军分区后勤部长,副团级职务。1994年济南军区有首长来濮阳军分区检查工作,谷俊山负责后勤接待,首长对他的能力表示认可,1995年他被调到济南军区生产办公室任副主任,正团级职务。后来他升任济南陆军指挥学院副院长,副师级职务,并得到国防大学进修的机会。
      2001年7月谷俊山调动到北京,担任解放军总后勤部基建营房部副部长,两年后晋陞为少将军衔。2007年6月谷俊山任解放军总后勤部基建营房部部长,全军房改办公室主任。两年后任解放军总后勤部副部长。2011年「八一」建军节前夕,谷俊山晋陞中将。在其任职于总后勤部期间,中国军队大幅提高各职级军人住房标准,调整全军住房租金标准,进行大规模军营建设,全面推开土地竞价转让方式改革,转让土地累计获益300多亿元。

家族影响
      随谷俊山调入濮阳市公安局的谷俊山妻子张素燕,最初负责信访工作,后任高新公安分局局长,市公安局政委。2001年谷俊山到北京任职后,张素燕在保留濮阳市公安局政委的情况下前往北京,在濮阳驻京办负责信访接待和截访工作。曾拦截到北京信访谷献军的村民。
      谷家旗下开办的企业,名称中大多有个「容」字,寓意福禄护佑谷氏家族。谷俊山的弟弟谷献军,从部队复员后在濮阳市检察院当司机开车,后来回东白仓村的副支书,2001年任村支书直至2010年去职。他任职期间,未经村民允许倒卖公共用地三千多亩,把土地卖给开发商盖楼或给村干部盖房子出租或出售。他甚至佔用保障房或安置房用地,以及从开发商处获得土地建筑等。2007年,谷献军在濮阳成立房地产公司「容金建设投资有限公司」,大量建设住宅及厂房。它开发的融金国际花园楼盘,佔用了胡村乡胡村集的土地。2009年,谷献军以每亩六万多元价格从村民手中买下东白仓村的20亩责任田,建起马颊河别墅区。谷献军将家门前的那条路命名为容府大道。2006年谷献军佔用东白仓村十三四亩集体土地,建起「将军府」。由故宫设计院的工程师亲自设计,彷照故宫建筑建造。主楼三层,配楼两层,2009年动工直至2011年夏天初步竣工。
      在濮阳,谷氏家族开发有商贸城,已售和待售的各种楼盘,以及位于城市中心的家具厂及帆布厂生产物品专供军队后勤,这两个厂当地人俗称「兵工厂」。其中帆布厂专门生产绿色军用帆布帐篷,有上千平方米的车间,工人数百人,年产值三四千万。其家族的容现代办公机具有限公司,其佔用土地由濮阳高新开发区领导一次批给谷献军300亩,其中30亩被其倒卖。该厂生产铁皮柜、高架床、办公桌椅等,供军队使用。谷俊山受到调查后两家工厂关闭。
      谷俊山每次回濮阳多住在军分区的别墅,与当地政府官员交流。2010年左右,濮阳军分区修建新宾馆,曾为谷俊山预设豪华套房。谷曾提携其战友,甚至有战友在其父亲过世的时候到其父的灵位前下跪磕头。

涉贪被查
      2012年2月,谷涉贪被撤职。已经移交司法。2014年1月份,更多其涉贪细节被公布。
      2012年5月,谷俊山被正式停职接受调查。有关部门对谷俊山的调查事项多达十几条,其中三个方面的初步调查结论,出现在相关的通报中。对位于河南省濮阳市孟轲向东白仓村13排第3号院的谷俊山老家清查时,查出其地下室藏有大量军用专供茅台,有一艘寓意「一帆风顺」的大金船,一个寓意「金玉满盆」的金脸盆,以及一尊纯金毛泽东像。其涉嫌贪污的物品用了四辆卡车才装完。谷曾表示:「中国的女星我都玩腻了。」
      2013年1月16日,谷献军因涉嫌犯罪被网上追逃,姐夫张涛被警方通缉。张涛4月自首,谷献军于8月间被捕。分析人士指出谷俊山的后台是原中央军委主席江泽民办公室主任贾廷安,谷俊山倒台是对江泽民的军中残馀势力的进一步清算。
      2013年4月2日,解放军军事科学院军队建设研究部副主任公方彬大校在博客上披露了谷俊山案,指出时任中央军委主席胡锦涛得知谷俊山的违纪行为后下令严惩。到了中共十八大以后,习近平出任中共中央总书记和中共中央军委主席,习近平上任以后十分重视谷俊山的贪腐案,指示要一查到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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总后勤部副部长谷俊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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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军中第一贪”谷俊山包养23名情妇 谷俊山与情人汤灿照片曝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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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俊山与情妇汤灿照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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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俊山与情妇汤灿照片
谷俊山遭调查已两年 河南老家被抄出大金船
时政新闻  东莞时间网   王和岩   2014-01-14 16:20
副部长谷俊山被查已有两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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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多名身着便衣的武警,排成长长的两排,相对而立。一箱箱军用专供茅台,通过这条人手流水线,被传送到门前两辆绿色军用大卡车。
      此外,被查抄的还有一艘寓意“一帆风顺”的大金船,一个寓意“金玉满盆”的金脸盆,以及一尊纯金毛泽东像。
      这是2013年1月12日深夜,解放军总后勤部副部长谷俊山的老家被查抄。
      虽未正式公布,但谷俊山已确信被调查,且已有两年。
      2012年2月,谷俊山的名字从总后勤部领导名单中消失。国防部的官方网站上,也搜索不到谷俊山的名字。
      2013年8月1日,国防大学教授、解放军军事科学院军队建设研究部副主任、政治工作研究所副所长公方彬大校,做客人民网“强国论坛”时,透露了谷俊山涉及贪腐的问题。
      公方彬曾说,“谷俊山及其前任犯罪,连续两个军队高官出现犯罪,老百姓不满意。” 这是官方权威人士首次公开披露谷俊山的因贪腐被调查的消息。
      公方彬所言“其前任”,即原海军副司令王守业,被指贪污1.6亿元人民币及包养情妇,于2006年被军事法庭判处死缓。二人都曾任解放军总后勤部基建营房部部长。

抄家
      谷俊山在老家的房子,位于河南省濮阳市孟轲向东白仓村13排第3号院,与其二弟的两户独院连在一起,三户独院的地下室相通,足有30多米长。这些堆积如山的名酒就一箱箱码在里面。
      查抄从下午1点开始,连续两个晚上。各种财物装了整整四卡车,在茫茫夜色中驶向濮阳武警支队。前来执行任务的是来自中国人民解放军军事检察院的办案人员。现场有濮阳武警支队的人员配合。有目击者说,抄家的武警白天清查登记,夜里装车,“怕老百姓看见影响不好。”
      其实,多少年来,谷俊山早已不在此居住。或许,就连谷家的人也不记得地下室堆积如山的军用专供名酒,已经放了多久。
      同时被查抄的还有东白仓村的村支书、谷俊山的小弟谷献军(外号谷三)的家。专案组的人扑空了,谷献军已把东西转移,只抄出很多军队专供茅台酒的空箱子。
      据知情者称,早在约一年前的2012年春节前,来自北京的军方纪委、检察院人员,就进驻濮阳,住在濮阳军分区内部宾馆。很快,谷俊山被调查的消息就在濮阳流传。也是在2012年2月间,国防部官方网站显示,谷俊山从总后勤部的领导名单中消失。
      2012年春节期间,调查组仍未撤离。直到3、4月间,中纪委、最高检的人陆续加入,组成了十几人的军地联合专案组,调查才实质性进展。
      专案组调查了谷献军在濮阳开办的从事军用物资生产的企业;从濮阳中原路派出所户籍室调取了谷俊山的户籍资料,核实其年龄。调查组还要求濮阳市主要领导以及濮阳市高新区负责人,书面汇报与谷俊山的交往。
      2012年5月,谷俊山被正式停职接受调查。有关部门对谷俊山的调查事项多达十几条,其中三个方面的初步调查结论,出现在相关的通报中。
      谷俊山曾任总后勤部基建营房部办公室主任、营房土地管理局局长,基建营房部副部长、部长,全军绿化委员会办公室主任、全军房改办公室主任等职。
      谷俊山任职期间,军队住房标准大幅度提高。军营第四次大规模扩建及营具全面升级换代,谷俊山从中寻租。在不少位于城市黄金地段的军方土地出让中,谷俊山亦收受巨额回扣。
      在北京,谷俊山染指的二环黄金地段周边军队地产达数十块,拥有数十套房,每套面积都在170平米左右。
      多名消息源称,谷俊山交待,这些房子打算送人。奈何至案发,尚未出手。
      在上海,一块军产地卖了20多亿元的高价,其中大约有6%是谷俊山的回扣;在河南老家濮阳,谷氏家族攫取的土地和开发的楼盘远近闻名。
      谷俊山还与地产商商定,地产商从他手里拿地,中间差价利润的60%要归其所有。
      知情者透露,谷俊山一直希望在总后勤部副部长的位子上能更上层楼,为此大肆培植亲信。“他要那么多钱主要是下面还有好多人等着。”该知情者说,谷俊山自恃从军多年,部队根基稳固,毫不掩饰对权力的欲望。
      为了给自己增加“红色血统”,谷俊山还专门曾雇人为其父亲作传,夸大和虚构其革命经历,为其“落实”革命烈士身份。濮阳当地,甚至专门为其父建有“革命烈士陵园”。
      谷俊山案发后10个月左右,办案人员查抄其在濮阳的老家,在当地显赫一时的谷氏家族开始土崩瓦解。
      2013年1月16日,谷俊山的弟弟谷献军因涉嫌犯罪被网上追逃。警方的追逃信息显示,谷献军涉嫌一起贪污贿赂案。之后的3月26日,谷献军的“挑担”(方言,又叫“担挑儿”、“连襟”,指妻子的妹妹或姐姐的丈夫)张涛被警方通缉,他在最高检察院反贪总局正在侦查的一起职务犯罪案件中有重大犯罪嫌疑。而据财新记者获悉,张涛在此后的4月间向濮阳市公安机关投案自首,谷献军也于8月间落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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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俊山(1956年10月-),河南濮阳人,中国人民解放军总后勤部前副部长,中将军衔。2012年2月,谷俊山不再担任副部长。2014年1月12日,谷俊山老家被查抄。
  早年经历
  谷俊山,1956年10月出生于河南省濮阳市孟轲乡东白仓村。其父谷彦生,1924年农历正月初二出生,1990年去世。其母十六七岁左右从临近的孟村嫁到东白仓村,与谷彦生共育有六个孩子。
  谷俊山小学就读于东白仓小学,初中就读于孟轲乡中学。青少年时的谷俊山很调皮,学习成绩也不出众。
  参军入伍
  1971年1月,初中毕业即参军入伍。谷俊山被分到位于吉林省长白山区的柳河县,沈阳军区航空兵16师48团机务大队二中队服役。谷俊山任仪表员,1974年提干,任特设师(排职),分管飞机仪表、电器。工作能力和技术水平一般,爱走上层路线。在党员评议中,曾多次获得“差”评,遭到时任团副政委张龙海的公开批评。后与张龙海的大女儿张素燕结婚。
  调回老家
  1985年6月,中央军委大裁军,谷俊山的岳丈张龙海通过其在济南军区的战友,将谷俊山调到其河南老家濮阳陆军军分区,其妻张素燕进入濮阳市公安局。中原油田经营办与濮阳军分区联合兴办了联营厂和橡胶厂。濮阳军分区聘贾庆贤当经营办主任,并授上校军衔,副主任由少校谷俊山担任。谷俊山凭借地方支援部队建设的政策,从中原油田购进大量平价钢材、木材、原油,然后高价倒卖,获利颇丰。然后到处送礼,赢得了军分区领导的赏识。
  1993年3月,他被提拔为濮阳军分区后勤部长,副团级。
  二次转折
  1994年,谷俊山迎来人生的第二次转折。济南军区首长下来检查工作,谷俊山负责后勤接待。谷俊山搞经营的才能受到首长的赏识,1995年,他被调到济南军区生产办公室,任副主任,正团级。谷俊山后勤管理才干得到充分发挥,职位也迅速蹿升。很快升任济南陆军指挥学院副院长,副师级。期间,谷俊山被安排到国防大学进修。
  总后岁月
  2001年7月,谷俊山奉调进京,任解放军总后勤部基建营房部副部长。2003年,谷俊山晋升为少将军衔。
  2007年6月,谷俊山任解放军总后勤部基建营房部部长,全军房改办公室主任。2009年,任解放军总后勤部副部长。2011年“八一”建军节前夕,谷俊山晋升中将,直至2012年2月,解放军总后勤部进行人事调整,谷俊山不再担任副部长。

将军府
      谷俊山被查,一时间各种内幕被媒体披露出来,首先自然是他如何腐败的消息。说抄家抄出一艘寓意“一帆风顺”的大金船、一个寓意“金玉满盆”的金脸盆,各种财物装满整整四卡车。
  媒体还说,谷俊山在老家河南濮阳市中心修了一座“将军府”,请故宫设计院设计,请故宫画工参与施工。这还没完,在濮阳市,谷俊山家人还建成一个占地约20亩地的别墅区。
  谷俊山是一个腐败分子,罪是他自己的,应当由他本人承担。但我们必须看到,谷俊山是一个特定时空的产物,可以说,谷俊山是“我们的”谷俊山。
  我们想像一下:谷俊山的“将军府”矗立在河南濮阳市中心,谷俊山腐败自然有他的轨迹,有他本人的“积极进取”;但一切皆非天定,谷俊山是被一歩歩提拔重用起来的,他的“将军府”、他兄弟的别墅区是合法的,得到有关部门层层审批。如果说谷俊山有问题,那么有问题的就不是谷俊山一个人。
现在谷俊山倒台了,他搜刮的金银财宝被曝光了,“将军府”、别墅区本来一直在那里,现在则成了一个问题,成了他超级腐败的证据。事情起变化,似乎要以 “倒台”为前提。不倒台,“将军府”、别墅区还是在那里,没人说三道四;一倒台,就开始群议汹汹,算是事情的性质起了变化。
  “将军府”、别墅区极尽奢侈,凡有眼睛的人一看便知,它们不符合有关法律,显然是一种腐败现象。想必不是没有人议论,报纸不说,但老百姓的嘴没人管得住。报纸不说,是他们不敢说,不被允许说,说出来不够“理性”、冷静,或者说是不够策略。
  所以谷俊山的“将军府”、他兄弟的别墅区矗立在那里,谷俊山的问题明摆在那里,人们都当没看见一样。大家都养成了一种视而不见的习惯、不过于认真的习惯,最后变成了容忍恶、腐败、违法犯罪的人格,并使这种人格成了我们的文化共性。

  这种人格特质当然不是我们先天具有的,而是经过了一个“启蒙”、涵养、巩固与“提高”的历史过程。据说明太祖严禁太监干政,还颁布祖训,刻成石碑,但严嵩、魏忠贤辈流毒不绝,这很难说是一代代太监天份加上“个人努力”的结果,太监的天份和个人努力也要给予承认的,但大太监都是时代、制度与环境的产儿。如果说明代的太监是一种病,那么出大太监则是有明一代的病。
  谷俊山作为一个腐败分子之所以能够“破壳而出”,“个人的努力”固不可少,但“壳”本身的软弱应当是主要原因。从生物学上说,蛋壳是为小鸡破壳而出打造的。如果上帝存心要困死小鸡,他肯定会对壳有一个新的设计,小鸡就真的出不来了。
  反腐败,要在对权力和官员进行有效监督与制约,近几年还提出要拓宽群众监督政府的渠道。谷俊山是一个罪人,但他显然不是一个懂得伪装、善于伪装、喜欢伪装的人,他在老家的宅子公开号称“将军府”,乡亲们则称之为“故宫”,他兄弟的别墅区占地20多亩,也可谓“公开透明”得很。对此人们看在眼里,麻木在心头,实际上很可能是,人们觉得无能无力、无他去吧。
  贪官倒台了,人们不再“为尊者讳”,各种议论“如黄河泛滥,一发不可收拾”。但以前他们到哪里去了?是媒体麻木不仁还是“壳”为小鸡着想的太多?打老虎很痛快,但不仅罪人有罪,我们也要好好反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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