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미상 중국은 수천년동안 부부간의 칭호도 적지 않게 바뀌어왔다. 그중 변화가 가장 크고 가장 비애로운 것은 남편의 칭호이다. 칭호의 변화는 하나의 무정한 사실을 증명한다: 중국에서 남자의 지위는 계속 하락해왔다.
양인(良人) 가장 먼저 처가 자신의 남편을 부르는 칭호는 "양인"이다. 듣기 좋지 않은가? 여기에서 우리는 고대 남편들의 빛나고 높은 이미지를 엿볼 수 있다. 고시(古詩)에 이런 문구가 있다: "첩가고루연원기(妾家高樓連苑起), 양인지극명광리(良人持戟明光裏)" "양인"이라는 말 자체는 남녀의 성별을 구분하지 않았다. 처가 남편을 칭할 때도 '양인'이라고 했고, 남편이 처를 칭할 때도 '양인'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당시 남녀의 지위가 대체로 대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부부간을 구분하지 않는 칭호는 여러가지 불편함을 가져오기도 했다.
랑(郞) 그리하여, 나중에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양(良)"에서 구분을 위해서 남편은 우변에 '阝'를 붙여서 "랑(郞)"으로, 아내는 계집녀(女)를 좌변에 붙여서 "낭(娘)"으로 부르게 된다. '랑'은 남편을 표시한다. 이백(李白)의 시에 "낭기죽마래(郞騎竹馬來), 요상농청매(繞床弄靑梅)"라는 내용이 있고, 의산(義山)의 시에는 "유랑이한봉산원(劉郞已恨蓬山遠), 우격봉산일만총(又隔蓬山一萬叢)"이 있고, 화간사(花間詞)에는 "문랑화호농안호(問郞花好儂顔好)"가 있다. '랑'은 얼마나 다정한 칭호인가?
낭군(郞君) 고대인들은 단음절의 글자는 너무 낯간지럽다고 여겼다. 당시에 개략 다른 사람들 예를 들어 정수(鄭袖), 구익(鉤弋)같은 여자를 제외하면 여러 양가집 부녀들은 사람들 앞에서 '랑'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그리하여 그녀들은 '랑'의 뒤에 '군(君)'자를 붙여서 '낭군(郞君)'이라 부른다. 그리고 '낭(娘)'에도 '자(子)'를 붙여서 '낭자(娘子)'라고 부르게 된다. 그리하여 친근함을 표시하는 '낭군' '낭자'라는 말이 생긴다(여기서 주의할 것은 '낭자'라는 단어는 원래 묘령의 소녀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개략 당나라에 이르러 처의 칭호로 쓰이게 된다). 처는 남편을 '낭군'이라는 아칭(雅稱)으로 부르고, 남편을 처를 '낭자'라는 애칭(愛稱)으로 부른다.
관인(官人) 송나라에 이르러, 남북간의 문화교류가 빈번해진다. 부부간의 칭호에 있어서, 당시의 궁중에서는 '관가(官家)'라는 말이 나타난다. 그리하여 평민백성들 사이에서는 '관인(官人)'이라는 칭호가 나타나게 된다. 어떤 처는 자신의 남편을 '관인'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민간에서는 여전히 신혼부부를 놀려서 '신랑군(新郞君)' '신낭자(新娘子)'라 부른다. 이 칭호에서 우리는 송나라때 이학(理學)의 흥성을 엿볼 수 있다. 남자들의 가정에서의 지위가 다시 한단계 올라간 것이다. 관인(官人)은 즉 '관인(管人)' 관리하는 사람이다. 집안에서는 당연히 처를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외자(外子) 외자는 송나라때 처가 자신의 남편을 '외인(外人)'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조금 더 우아한 말로 부를 때는 '외자'라고 불렀다. 남편은 자신의 아내를 '낭자'라고 부르는 외에 '내인(內人)'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처에 대한 겸칭으로는 '천내(賤內)'가 있다. 이것은 모두 당시 선비들이 가장 즐겨 부르던 칭호이다.
상공(相公) 경극(京劇), 월극(越劇), 황매희(黃梅戱)를 보면, 거기에서 목소리를 길게 뽑으면서 "상(相).....공(公)...."이라고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를 보면 이 칭호는 옛날에 유행했던 것같다. 이것은 '관인'보다 한단계 진전된 말이다. 그리고 이미 단순한 '관(官)'이 아니라, 관리중 최고인 재상의 '상(相)'까지 올라간 것이다. 남자의 가정에서의 지위는 이때가 최전성기이다. 그러나 태극비래(泰極否來)하는 법이다. 근대이래 부녀해방운동이 갈수록 활발해지면서 남자의 지위는 계속 내려간다. 남편에 대한 칭호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선생(先生) 근대이래, 남편을 '선생'이라고도 불렀다. 어떤 때는 다른 사람에 대한 경칭으로도 쓰였다. 이 칭호는 특정한 신분을 나타내는 외에 예를 들어 남편등 대상이외에 직업을 의미하기도 하고, 나이측면의 요소를 가지기도 한다. 바꾸어 말하면, 소위 선생은 주로 학식이 있고 나이가 비교적 많은 사람을 가리킨다. 선생으로 남편을 부르는 것은 문아(文雅)하면서도 앙모하고 존중하는 뜻이 담겨 있다. 거기에서 남자의 존엄을 엿볼 수 있다. 지금도 해외의 중국계나 홍콩 타이완에서는 널리 사용되고 있다.
애인(愛人) "애인"이라는 칭호가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신문학작품에서이다. 1920년대초 곽말약의 시극(詩劇) <상루(相累)>에는 "구의산의 흰구름은 뭉쳤다가 흩어진다. 동정호의 흐르는 물은 밀려오고 밀려간다. 나의 애인아 너는 언제 돌아오느냐?"라는 내용이 있다. 소설에서, 연애편지에서는 더욱 많이 보인다. 다만 그때는 처나 남편에 대한 칭호로 광범위하게 쓰이지는 않았다. 1930년대말 혹은 1940년대초, 일부 신문화운동의 훈도를 받은 지식인들이 '애인'이라는 칭호를 쓰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애인'은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다만 해외중국계는 '애인'이라는 칭호를 쓰는 것을 거부했다. 한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영국에 유학갔을 때, 매번 자신의 처를 가리킬 때마다 대륙에서 쓰던 칭호인 '애인'을 썼는데, 상대방은 이를 '정인(情人, 혼외녀)'이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어에서도 '애인'은 '정인'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은 사용하는 사람이 줄어들었고, 젊은이들은 이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노공(老公) 원래 노공은 태감(환관)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가장 현재 가장 유행하는 칭호이다. 환관의 고대 관명은 "시인(寺人), 황문(黃門), 초당(貂瑭)이 있다. 존칭하여 부를 때는 내관(內官), 내신(內臣), 중관(中官), 중귀(中貴)라고 불렀고, 비하하여 부를 때는 내수(內竪), 엄환(閹宦), 태감(太監), 엄인(閹人)이라고 불렀다. 민간에서 남편을 노공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보면 여자들이 남편을 노공이라고 부를 때, 뼛속의 잠재의식으로 이 눈앞의 남자는 태감같이 보인다는 뜻을 담고 있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