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岳岩漢字屋

甲辰年 새해 하시는 일들이 日就月將하시고 乘勝長驅.하시고 萬事亨通 하세요!!!

반응형

문혁(文革)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괴로움과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유명한 문화계 10명의 여성


중국의 10년 '문혁'에 참혹한 사건이 무수히 많다. 비정상사망한 수도 천만에 이른다. 그중 적지 않은 유명한 여성들도 문혁때 해를 입었다. 그녀들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괴로움과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했다.

1. 주매복(朱梅馥)
대륙의 번역가 부뢰(傅雷)의 처이다. 1966년 9월 3일 새벽, 홍위병에 의해 집안이 쑥대밭이 되고 3박4일간 무릎을 꿇고 비투를 받는 굴욕을 받은 후 부뢰와 함께 집안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2. 이취정(李翠貞)
상해 교외의 남회현 사람. 피아니스트. 상해음악학원 피아노학과 주임. '문혁'때 크게 모욕을 받는다. 홍위병은 그녀로 하여금 땅바닥에 엎드려서 땅위에서 의자위로 기어올라오도록 강요했으며, 먹으로 그녀의 얼굴을 검게 칠하기도 했다. 그녀는 굴욕을 견디지 못하고, 1966년 9월 8일, 가장 예쁜 옷을 입고, 정성들여 화장을 한 다음 가스를 틀어 자살한다. 그녀의 유언은 이러했다: "나는 아주 피곤하다. 푹 자게 해달라."

3. 언혜주(言慧珠)
1919년생. 북경사람. 몽골족. 경극(京劇), 곤극(昆劇)배우 언국명(言菊明)의 딸이며, 매란방(梅蘭芳)의 제자이다. 일찌기 상해시희곡학교 부교장을 지냈다. 문혁때 비투와 구타를 당하여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는다. 1966년 9월 10일 저녁 세 통의 절명서를 쓰고 자살한다.

4. 고성영(顧聖嬰)
1937년생. 강소 무석 사람. 피아니스트 '피아노시인'이라는 칭호가 있다. 문혁때 일가족이 박해를 받는다. 1967년 1월 31일, 모든 것을 포기한 그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귀가한다. 모친과 남동생 고악기(顧握奇)에게 울면서 그날의 광경을 얘기한다. 모자 3명은 함께 그날 저녁 가스를 틀어 자살한다.

5. 진련(陳璉)
1919년생. 저장 자계현 사람. 장개석의 고급막료이며 '문담(文膽)'으로 불리웠던 진포뢰(陳布雷)의 딸. 문혁이 시작된 후, 조반파는 그녀를 반도, 특무라고 모욕한다. 1967년 11월 19일, 48세의 진련은 11층에서 투신자살한다.

6. 조혜심(趙慧深)
1914년생. 사천 의빈 사람. 공연예술가. 문혁때 그녀가 출연한 영화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는 이야기>가 '삼반분자'로 규정되어 비투를 당한다. 그리고 <마로천사>에서 기녀 소운(小雲)을 연기한 것으로 인하여 조반파의 조롱과 모욕을 당한다. 그리하여 1967년 12월 4일 한을 품고 자살한다.

7. 소백옥상(小白玉霜)
본명은 이재문(李再雯). 아명은 복자(福子). 조적은 산동이다. 5살때 부친을 따라 천진에서 북경으로 간다. 부모는 그녀를 기를 수가 없어 그녀를 평극(評劇)배우이며 백파(白派)의 창시자인 백옥상(白玉霜)에게 팔아, 그의 양녀가 된다. 문혁때 심한 구타를 당하고 1967년 12월 21일 수면제를 먹고 자살한다. 나이 겨우 45살이었다. 죽기 전에 그녀는 손바닥에 이렇게 써놓았다: "나는 문화가 없다. 너희는 그런데도 나를 괴롭히느냐?"

8. 양필(楊必)
1922년생. 강소 무석 사람. 전종서(錢鍾書)이 부인 양강(楊絳)의 여동생. 복단대학 외국어문학과 부교수. <Vanity Fair(허영의 시장 중국번역본의 이름은 名利場)>의 번역자이며 일찌기 ILO에서 일했다. 1968년 '계급대오정리운동'때 박해를 당해서 치욕을 견디지 못하고 1968년 3월 3일 대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한다.

9. 엄봉영(嚴鳳英)
1930년생. 안휘 동성 사람. 공연예술가. '문혁때' '문예흑선인물(文藝黑線人物)', '봉건주의,자본주의,수정주의를 선전하는 미녀서(美女蛇)'로 낙인 찍히고, 국민당 특무로 무고당한다. 1968년 4월 7일 밤 대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한다. '군대표'는 그녀의 시신에서 옷을 모두 벗기고 그녀의 배를 가른다. 삼킨 '죄증'을 찾겠다면서.

10. 상관운주(上官雲珠)
1920년 3월 2일생. 본명은 위균락(韋均犖)이며 위아군(韋亞君)이라고도 한다. 대륙의 영화배우. 문혁이 발발한 후, 조반파는 그녀의 혼인부터 그녀가 주연한 영화까지 맹렬하게 인신공격을 한다. 1968년 11월 22일, 그녀는 다시 전안조에 끌려가 조사를 받는다. 23일 새벽 3시, 심신이 극도로 피로해지고 모든 것을 포기한 그녀는 4층의 건물에서 창문으로 뛰어내려 자살한다.


文革時期,精神上承受不住肉體上的痛苦和侮辱而自殺的10名著名文化界女性。


中國10年"文革"中殘酷的事件不勝枚舉。 非正常死亡的人數也達到千萬。 其中不少著名女性也在文革時期受害。 她們精神上受不了肉體上的折磨和侮辱而選擇了自殺。

1.朱梅馥
這是大陸翻譯家傅雷的妻子。 1966年9月3日凌晨,因紅衛兵,家裏一片狼藉,跪地4天3夜,遭受非斗的屈辱後,與父雷一起在家中自殺身亡。

2. 李翠貞
滬郊南懷縣人 鋼琴家。上海音樂學院鋼琴系主任。 "文革"時期深受侮辱。 紅衛兵強迫她趴在地上從地上爬到椅子上,用墨把她的臉塗黑 她受不了屈辱,1966年9月8日,穿着最漂亮的衣服,精心化妝後打開煤氣自殺。 她的遺言是這樣的 : " 我很累。 讓我睡個好覺吧。"

3.言慧珠
1919年出生的北京人。 蒙古族,是京劇、崑劇演員言菊明的女兒,也是梅蘭芳的弟子。 曾任上海市戲曲學校副校長 文革時受到BTO和毆打,身體上和精神上受到很大的傷害。 1966年9月10日晚,他寫了三封絕命書自殺。

4.顧聖嬰
1937年出生,江蘇無錫人。 有鋼琴家"鋼琴詩人"的稱號。 文革時一家人受到迫害。 1967年1月31日,放棄一切的她拖着疲憊的身體回家。 他一邊哭一邊向母親和弟弟顧嶽奇講述當天的情景 母子三人當晚一起開煤氣自殺。

5.陳璉
1919年出生,浙江慈溪縣人。 是蔣介石的高級幕僚、被稱爲"文膽"的陳布雷的女兒,文革開始後,趙半派侮辱她爲半島的特務。 1967年11月19日,48歲的陳蓮從11樓跳樓自殺。

6.趙慧深
1914年出生。四川的窮人。 表演藝術家。文革時期她出演的電影《不怕鬼的故事》被定性爲"三反分子"。 另外,因在《馬路天使》中扮演奇女小云而遭到曹班派的嘲弄和侮辱。 於1967年12月4日含恨自殺。

7. 小白玉霜
本名李再雯。 小名是福子。 祖籍山東 五歲時隨父親從天津去北京。 父母無法撫養她,將她賣給評劇演員、白派創始人白玉霜,成爲她的養女。 在文革時期遭到嚴重毆打,並於1967年12月21日服用安眠藥自殺。 年僅45歲。 死前她在手掌上這樣寫道 : " 我沒有文化。 你們還欺負我嗎?"

8. 楊必
1922年出生,江蘇無錫人。 錢鍾書是夫人楊崗的妹妹。 復旦大學外語文學系副教授。 他是《虛榮的市場中國翻譯本》的翻譯者,曾經在ILO工作。 1968年"整頓階級運動"時遭受迫害,不堪恥辱,1968年3月3日大量服用安眠藥自殺。

9. 嚴鳳英
1930年出生,安徽東城人。 被烙印爲"文革時期"、"文藝黑線人物"、"宣傳封建主義、資本主義、修正主義的美女蛇",被誣告爲國民黨特務。 1968年4月7日晚服用大量安眠藥自殺。 "軍隊代表"從她的屍體上剝光衣服,剖開她的肚子。 不是說要找到吞噬的"罪證"嗎?

10.上官雲珠
1920年3月2日生。 本名魏均洛,亦稱魏亞君。 大陸電影演員。 文革爆發後,趙反派從她的婚姻到她主演的電影,都猛烈地發動人身攻擊。 1968年11月22日,她再次被押到專案組接受調查。 23日凌晨3點,身心極度疲勞,放棄一切的她從4層樓跳下窗戶自殺。

반응형
반응형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