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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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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vs 쩡칭홍: 내부투쟁의 최근 3가지 사건

글: 왕우군(王友群)
중공20대전의 고위층 내부투쟁은 주로 시진핑을 우두머리로 하는 시진핑파와 장쩌민, 쩡칭홍을 우두머리로 하는 장쩌민파의 사이에서 전개되고 있다. 장쩌민은 이미 95세로 거의 활동능력이 없기 때문에 시진핑파와 장쩌민파의 내부투쟁은 실제로 시진핑과 쩡칭홍의 내부투쟁이라 할 수 있다.
금년 1월 시진핑이 빠른 속도로 쩡칭홍의 심복이자 전 화룽집단 동사장 라이샤오민(賴小民)을 사형시킨 후, 내부투쟁은 훨씬 치열하고 날카로워졌다.
쩡칭홍이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은 국내와 국외의 두 방면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국내방면에서, 2002년 중공16대이후 지금까지, 중공의 선전기관은 장쩌민파의 3명의 중공정치국상위인 리창춘(李長春), 류윈산(劉雲山), 왕후닝(王滬寧)의 손에 장악되어 있었고, 중공의 정법계통은 장쩌민파의 4명의 중앙정법위서기 뤄간(羅幹), 저우용캉(周永康), 멍젠주(孟建柱), 궈셩쿤(郭聲琨)의 손에 장악되어 있었다. 시진핑이 비록 이 두 계통에 대하여 여러번에 걸쳐 숙청했지만, 여전히 이 두 계통을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했다. 쩡칭홍은 여전히 일부 역량을 동원하여 시진핑에 대항할 수 있다; 중공의 군대계통은 옛날 장쩌민, 궈보슝(郭伯雄), 쉬차이허우(徐才厚)가 발탁 중용한 장군들이 수두룩하게 남아 있다. 쩡칭홍은 이들 일부역량도 동원하여 시진핑에 대적할 수 있다.
국외방면에서, 외교계통과 국안계통은 오랫동안 장쩌민, 쩡칭홍의 심복들이 주도했다. 시진핑은 이 양대계통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숙청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 두 계통에서 쩡칭홍이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은 더욱 많다.
10월 11일 중공19기 6중전회가 끝난 후, 시진핑과 쩡칭홍의 내부투쟁은 이미 공개화되었다. 최근 들어 두드러진 것은 세가지이다.

첫째, 시진핑옹호 vs 시진핑무시
최근 들어 중국 당매체에 올라오는 글은 두 가지 경향을 지니고 있다: 시진핑옹호와 시진핑무시. 시진핑옹호글이 다수이지만, 시진핑무시의 글이 더욱 주목을 받는다.
시진핑옹호글로는 12월 28일 중앙판공청 상무부주임 멍샹펑(孟祥鋒)이 <인민일보>에 발표한 글이 있다. 중공건정이래 72년동안 5명의 지도자인 모택동, 등소평,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에 대하여 멍샹펑은 시진핑은 20번, 모택동은 1번 언급했고, 등소평, 장쩌민, 후진타오는 아예 언급조차 없었다.  
12월 24일, 중앙기율검사위 부서기 샤오페이(肖培)가 <인민일보>에 글을 발표하는데 시진핑은 12번, 모택동은 1번 언급되고, 등소평, 장쩌민, 후진타오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12월 13일,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장진췐(江金權)이 <인민일보>에 글을 실었는데, 시진핑은 6번, 모택동은 2번 언급되고, 등소평, 장쩌민, 후진타오는 언급되지 않았다.
12월 8일 중앙선전부 부부장 션하이슝(愼海雄)이 <학습시보>에 글을 실었는데, 시진핑이 18대이래 '만광란어기도(挽狂瀾於旣倒), 부대하지장경(扶大廈之將傾)(미친 듯이 밀려오는 파도를 막아내고, 무너지려는 건물을 붙잡아놓다)라고 칭송했다. 이 글은 시진핑옹호의 수준이 매우 높다.
11월 30일, 중앙군사위부주석 장여우샤(張又俠)는 <인민일보>에 글을 실었다. 시진핑은 18대이후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 궈보슝, 쉬차이허우, 전 중앙군사위 정치공작주 주임 장양, 전 중앙군사위 연합참모부 참모장 팡펑후이를 조사처벌하고, 그 여독과 영향을 숙청하여, 군대를 구해냈다. 이 말의 무게는 상당히 무겁다.
시진핑을 무시한 글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중앙당사및문헌연구원 원장 취칭산(曲靑山)이 12월 9일 <인민일보>에 발표한 글 <개혁개방은 당의 위대한 각성이다>이다. 거기에서 등소평을 9번 언급하고, 장쩌민, 후진타오는 각각 1번씩 언급된다. 다만 시진핑은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6중전회에서 통과된 제3차 역사결의에서는 "10개견지"를 내놓았지만, "개혁개방견지"는 포함되지 않았다. 6중전회이후, 취칭산의 글은 등소평의 개혁개방을 대거 칭송하는 것으로 범상치 않다. 더욱 중요한 것은 1992년 봄, 등소평의 '남순'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개혁개방을 하지 않으면 물러나야 한다" 
등소평은 1989년 "6.4"천안문사태이후 정치체제개혁의 대문을 걸어잠궜다. 정치체제개혁없이 나머지 개혁은 진행이 잘 되지 않는다. 개방도 할 수가 없다. 특별히 과거 수십년간 누적된 갈등이 시진핑의 취임이후 집중적으로 전면적으로 폭발했다. 장쩌민, 쩡칭홍을 우두머리로 하는 세력은 온갖 방법을 써서 시진핑을 끌어내리고, 욕하고, 반대하고, 무너뜨리고자 한다. 정변의 소문이 끊임없이 나온다. 시진핑은 부득이 권력과 목숨을 유지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위치에 두어야만 했다.
취칭산의 글에는 "등소평을 빌어 시진핑을 때린다"는 의미가 있다. 은근히 "시진핑을 하야시켜야 한다"는 뜻도 담고 있다.
최근 "시진핑무시"글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2월 24일 <학습시보>의 글 <경제공작을 영도할 때 왜 3가지 경외를 가져야 하는가> 12월 19일 <해방군보>의 글 <육재(育才)에서 먼저 해야할 것은 육심(育心)이다>. 12월 15일 <해방군보>의 글 <용감하게 이를 악문 간부가 되자>등이 있다.
비록 시진핑무시글은 소수이지만, 시진핑당국이 반복적으로 '시핵심을 옹호하자'고 강조하는 상황하에서, 공개적으로 시진핑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절대로 간단한 일이 아니다. 배후에는 분명 반시진핑파가 받쳐주고 있는 것이다.
당금 장쩌민파의 실제 장문인으로서, 쩡칭홍은 국내외 반시진핑세력의 최고막후총두목이다. 위의 중공당매체가 공개적으로 시진핑을 무시하는 글을 싣는 것은 분명 쩡칭홍이 막후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둘째, 장가오리 성스캔들을 둘러싼 힘겨루기
장가오리는 장쩌민, 쩡칭홍이 발탁 중용한 장쩌민파의 요원이다. 관직은 중공정치국상위, 국무원부총리에 이르렀다. 제18기 정치국상위에서 7명의 가장 권세있는 인물중 하나였다.
11월 2일, 중국의 저명한 여자테니스선수 펑솨이가 시나웨이보에 글을 올려, "비록 계란으로 바위치기이고, 나방이 불에 뛰어들어, 스스로 죽는 길이더라도" 전세계에 장가오리의 추악한 모습을 공개하겠다고 하였다.
전세계에 잘 알려진 테니스선수인 펑솨이가 공개적으로 글을 올려 중공전정치국상위, 국무원부총리 장가오리를 공격하는 것은 큰 리스크를 안은 행동이다.
장가오리에 있어서 이는 명예문제일 뿐아니라, 당기에 위반하는 문제이다. 중공의 기율처분조례 제135조에 따르면, "다른 사람과 부정당한 성관계가 발생하여 불량한 영향을 조성하면, 경고 혹은 엄중경고처분을 내린다; 정상이 비교적 중하면 당내의 직무를 취소시키고 유당관찰처분을 내린다; 정상이 엄중하면 출당처분을 내린다." 이 조항에는 특별히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직권, 교양관계, 종속관계 혹은 기타 유사한 관계를 이용하여 타인과 성관계를 맺으면 무겁게 처분한다."
만일 펑솨이가 고발한 것이 거짓이라면, 장가오리는 당연히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명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고혐의로 펑솨이의 책임을 추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까지 장가오리는 공개적으로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고 있다. 펑솨이는 글을 발표한 직후 바로 나서서 그 글을 자신이 쓴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고, 장가오리가 그를 성폭행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으면서 16일간 실족되어 있었다.  
상식과 가장 기본적인 논리로 판단하면 첫째, 글은 펑솨이 본인이 쓴 것이다. 둘째, 펑솨이의 장가오리에 대한 고발은 믿을 만하다.
세심한 독자라면 펑솨이의 행간에서 이렇게 추단할 수 있다: 펑솨이는 임신했다. 다만 장가오리는 단지 그녀를 가지고 놀았을 뿐이고, 펑솨이가 아이를 낳지 못하게 했다. 그리하여 두 사람간에 다툼이 일어났다. 조급해진 펑솨이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글을 올려 호소한 것이다.
펑솨이가 실종된지 16일후, 전세계는 펑솨이의 안위에 관심을 가지고 그녀의 행방을 쫓고 있었는데, 장쩌민, 쩡칭홍의 심복이자 정치국상위인 왕후닝의 조종하에 중공당매체는 일련의 장가오리를 위해 변명해주는 행동을 개시한다.
중공의 거짓조작역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런 조작은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려는 것으로 전혀 믿을 것이 못된다는 것을.
이와 동시에, 국내외에는 시진핑 혹은 시진핑심복의 남녀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11월 15일, 장쩌민, 쩡칭홍계열이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진 해외개인미디어는 이렇게 폭로한다: 시진핑이 저장성 서기로 있을 때, 저장사람이며 국제체스선수권전 우승자출신인 추천(褚宸)이 사생아를 낳았는데 이름이 추양(褚陽)이며 이미 20여세이다. 저양은 먼저 저장에서 살다가 나중에 베이징으로 옮겼으며 일찌기 시진핑의 부친 시중쉰(習仲勳)의 장례식때 나타나기도 했다. 폭로에 따르면, "추양의 출생은 시진핑의 모친 치신(齊心) 노부인이 안배했고, 시중쉰도 참여했다" 
마찬가지로 세심한 독자라면 시진핑의 이력과 추천의 이력을 비교해보았을 것이다. 두 사람은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2000년 시진핑은 푸젠성 성장으로 있었고, 추천은 이 해에 이미 6년간 연애해온 카타르왕실의 인물인 무하마드와 결혼했다. 2년후, 2002년 5월 24일 시중쉰이 사망한다. 2002년 10월, 시진핑은 비로소 저장성 부성장, 대리성장이 된다. 11월에 저장성위서기가 되었다.
전 모택동비서 리위(李銳)에 따르면, 시진핑이 저장에 있을 때 매우 조용하고 조심했다고 한다. 그가 어찌 그의 사생아를 시중쉰의 장례식에 나타나게 해서 전세계에 자랑하겠는가? 그리고 추천의 이력과 그 20여세의 추양은 들어맞지 않는다.
확실히 이 폭로는 장쩌민, 쩡칭홍의 인물이 장가오리와 펑솨이의 성스캔들이 나온 후, 고의로 시진핑에게 먹칠하는 것이고, 동시에 시진핑의 부모까지 함께 먹칠하는 조작인 것이다.
최근 들어, 국내외매체는 돌연 대거 중앙선전부 부부장 션하이슝이 여배우 퉁리야(佟麗婭)의 스캔들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퉁리야는 할 수 없이 베이징경찰에 신고까지 하게 된다.
중공의 고위관료가 여배우, 여자아나운서와 결혼하는 일은 아주 많았다. 예를 들어, 쩡칭홍의 아들 쩡웨이(曾偉)는 CCTV아나운서 장메이(蔣梅)와 결혼했고, 쩡칭홍의 심복이자 전 신장당위서기인 장춘센(張春賢)은 CCTV 여자아나운서 리슈핑(李修平)과 결혼했으며, 역시 장쩌민, 쩡칭홍의 심복이자 전 최고검찰원장을 지낸 차오젠밍(曹建明)은 CCTV여자아나운서 왕샤오야(王小丫)와 결혼했다.
이번 소문은 션하이슝에 대한 것이다. 주로 이는 시진핑에 타격을 가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션하이슝은 일찌감치 저장, 상하이에서 시진핑의 아래에서 일했고, 시가군의 성원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션하이슝은 여러번 당매체에 글을 올려, 시진핑을 옹호하는데 힘썼다. 특히 12월 8일의 글에서 '만광란어기도, 부대하지장경'이라는 문구는 직접 장쩌민, 쩡칭홍을 때리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장가오리를 위해 변명해주고, 고의로 시진핑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조작, 그리고 시진핑의 심복 션하이슝이 여배우와의 스캔들에 관한 세 가지를 보면, 그 막후의 총감독은 아마도 시진핑의 1호정적 쩡칭홍일 것이다. 

셋째, "신장문건"의 누설
12월 1일, 미국의소리는 보도를 통해, 독일의 신장문제연구학자인 Adrian Zenz가 최근 공개한 신장관련문건을 보면, 시진핑 및 전체 중공최고위층이 신장위구르무슬림 및 기타 소수민족이 쳬게적으로 박해받는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 문건은 북경이 고도로 민감하게 여기는 신장정책을 포함하고 있고, 거의 모든 문건은 기밀로 분류된 것이다. 최초에 '중국정계인사'가 뉴욕타임즈에 넘겨주고, 뉴욕타임즈는 2019년 11월 관련보도를 내놓았다. 금년 9월, 익명의 인사는 이 문건을 영국의 '위구르특별법정'에 제출했다. Adrian Zenz등은 이 문건과 뉴욕타임즈 보도를 자세히 비교해보았는데,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누가 이들 '신장문건'을 누설했을까? 시진핑은 신장문제로 인하여 국제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 일부 국가는 심지어 시진핑이 '인종말살죄'를 범했다고까지 지목한다. 이는 아주 심각한 내용이다. 중공 장쩌민파의 반시진핑세력의 최고막후총두목인 쩡칭홍이 이 점을 보고 이용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들 '신장문건'은 아마도 장쩌민, 쩡칭홍의 심복이 해외로 유출시켰을 것이다.
최근, 시진핑은 신장에서 중대한 조치를 취했다. 신장당위서기 천췐궐르 교체한 것이다. 10월 25일, 신장은 다른 지방보다 먼저 지방당위의 상위 신규선임이 완료되었다. 그리고 천췐궈는 신장당위서기에 유임되었다. 그런데 두달 수인 12월 25일, 천췐궈가 돌연 면직되고, 광둥성장 마싱뤼(馬興瑞)가 신장당위서기의 자리를 넘겨받았다.
천췐궈는 티벳이건 신장이건 명성이 아주 좋지 않았다. 12월 27일, 홍콩 <명보>의 보도에 따르면, 베이징의 소식통은 천췐궈가 중앙농촌공작영도소조의 부조장을 맡을 것이라고 했다. 만일 이 소식이 사실이라면, 시진핑은 아마도 천췐궈에게 한직을 주고 그를 주요직위에서 밀어내는 것일 것이다.
금년 62세인 마싱뤼는 오랫동안 엔지니어기술분야에서 일해왔다. 하르빈공업대학의 박사학위를 가지고, 하르빈공업대학의 가장 젊은 박사지도교수이기도 했다. 정계에 들어오기 전에 하르빈공업대학 부교장, 중국공간기술연구원 부원장, 중국항공과기집단 총경리를 지냈다. 그리고 2007년 국제우주항공과학원 원사에 당선되었다.
마싱뤼는 학자형의 관리이다. 마싱뤼가 신장을 다스리게 한 것은 아마도 시진핑이 어느 정도 신장의 철완정책, 강경정책을 수정하려는 것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어느 정도 유연성을 가지고 국제사회로부터의 거대한 압력을 완화시키고자 할 것이다. 동시에 외국에 신장문건을 공개한 측의 내외협공으로 시진핑을 공격하려는 효과를 상쉐시키려는 것이다.

결론
2021년, 시진핑 쩡칭홍이 싸우는 과정에서 시진핑은 계속 세게 공격했다. 쩡칭홍의 조카딸 쩡바오바오의 화양녠이 '지암시각'에 들어서게 만들었다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다. 다만, 위의 3건의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쩡칭홍이 아직도 마지막 저항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의 중앙기율검사위 부서기 샤오페이의 글에는 시진핑의 말이 하나 인용되어 있다: "중대한 리스크 강대한 적을 앞에 두고, 오직 적극적으로 응전하며 견결하게 투쟁하는 것만이 사는 길이고 출로이다. 회피하고 움츠리고 타협하고 양보하는 것은 죽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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