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岳岩漢字屋

甲辰年 새해 하시는 일들이 日就月將하시고 乘勝長驅.하시고 萬事亨通 하세요!!!

반응형

중국과 북한의 국경선획정 비화: 백두산과 압록강

图片来源 长白山天池

작자: 일명(佚名)
백두산(장백산)은 지금까지 만주족이 기원한 '용맥(龍脈)'으로 여겨져 왔다. 장백산에 들어가서 산삼을 캐거나, 사냥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청나라조정은 이런 활동이 용맥을 끊을 수 있다는 우려를 해서, 동북지방에 대하여 200여년에 걸친 봉금정책(封禁政策)을 실시하여, 장백산(백두산)지구, 압록강, 토문강등 중국-조선변경지역을 '봉금'의 핵심지구로 삼아 진입을 엄금했다. 나중에 오랫동안의 봉금정책으로 동북변방지역은 사는 사람이 드물어져서 국경방어가 느슨해진다. 그리하여 심각한 국방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특히 청나라 도광이후 제정러시아등 열강의 침략확장으로 이 위기는 갈수록 심각해진다. 그리하여 조선의 변방주민들이 불법월경하는 사례가 늘어나게 된다.
나중에 1860년부터 1870년까지, 조선의 북부지역은 여러해동안의 자연재해로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게 된다. 많은 조선인들은 생계를 위하여, 불법적으로 압록강, 도문강을 건너 월경하고, 건너편의 중국 봉천, 길림등의 황무지를 개간한다. 사람수가 점점 많아지게 되고, 개간토지도 갈수록 늘어난다. 이는 청나라에 여러가지 정치, 사회문제를 야기했다. 나중에 청나라조정은 1867년 이민실변정책(移民實邊政策)을 실시하여, 한인들이 동북으로 이주하는 것을 허용한다. 나중에 조선에서의 이민에 대한 정책도 완화되어 그들이 "역복치발(易服雉髮)"하게 하고, 허가서를 받아 세금을 납부하며, 청나라의 국적을 취득한다는 전제하에서 동북에 남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이 문서를 조선조정에 통보한다. 1882년 팔월, 조선국왕은 청나라정부에 중국에서 불법개간하여 거주하는 조선인들은 송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고, 청나라조정은 조선조정의 이런 요청을 허락한다.
다만 나중에 조선조정은 변방의 월경주민을 송환해가지 않았을 뿐아니라, 오히려 목극등(穆克登)의 비를 근거로 하여, 1883년 칠월 토문(土門), 두만(豆滿)은 "일강지명(一江之名)" 즉 같은 강의 두 이름이 아니라, "이위양강(而爲兩江)" 두 개의 서로 다른 강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중국연변지역의 해란강을 토문강이라고 주장하게 된다. 이렇게 주장함에 따라 원래 불법월경했다는 주민들을 송환할 필요가 없게 될 뿐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조선의 월경주민들이 나타나게 만들었다. 이 조치는 나중의 '간도'문제의 발단이 된다. 1885년 육월, 조선은 청나라조정에 글을 보내 다시 한번 토문, 두만은 서로 다른 두 강이라고 주장하면서 해란강의 남쪽인 연변지구는 원래 조선의 땅이라고 주장하며, 쌍방의 국경선을 명확히 하자고 주장하게 된다. 1885년 9월 30일부터 11월 29일까지, 청나라와 조선의 양국은 사신을 파견하여 공동으로 국경선을 획정하는 협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쌍방의 의견차이가 너무나 컸다. 첫째, 강의 이름에 관하여, 중국은 토문(土門), 두만, 토문(土們)은 모두 하나의 강의 서로 다른 한자표기라고 주장하고, 조선은 토문과 두만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강이라고 주장한다. 둘째, 정원(正源)에 관하여 중국측은 홍단수(紅丹水)를 토문강의 정원이라고 주장하며 이 강을 가지고 국경선을 획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조선측에서는 홍토산수(紅土山水)를 토문강의 정원이라고 주장하며 이 강을 가지고 국경선을 획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후 1950년대후반, 중국에 대기근이 발생하며 국가의 재정능력이 부족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북한에 대한 원조도 줄어들었다. 북한은 여러번 중국에 사람을 보내어 압록강을 중국과 북한이 동시에 보유하는 경계선인 강으로 하자고 주장한다. 이유는 북한의 북부변경지역도 발전시켜야 하며, 전력보장이 없으면 안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압록강의 수력발전을 발전시키고자 했다(이때 중국은 이미 압록강 상류의 집안(集安)에 운봉발전소(雲峰發電站)를 만들고 있었다. 당시 중국과 북한의 우의와 강을 가로지르는 댐의 한쪽 끝은 북한의 국토와 맞닿아 있게 되므로, 중국은 이 발전소에서 나오는 발전량의 절반을 북한에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었다). 당시 중국정부와 북한의 김씨정권은 '밀월기'였다. 그리하여, '동음일강수(同飮一江水)' 같은 강의 물을 마시는 관계인 압록강을 중국북한 양국의 국경선으로 하자는 요구에 중국이 반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과는 북한이 득촌진척(得寸進尺)하게 된다. 압록강의 발원지가 백두산 천지라는 것을 이유로 1960년대 초기, 다시 중국정부에 백두산을 둘로 나누어, 중국과 북한의 쌍방이 각각 절반씩 점유하자고 요구하게 된다. 중국정부를 설득하기 위하여, 북한은 양국이 모두 사회주의진영의 형제국가라는 것을 이유로 들며 백두산은 일찌기 북한의 위대한 지도자 김일성장국의 혁명사업발원지라는 것도 내세웠다. 당시 김일성은 중국의 항일연군에 가입하면서 목숨을 내걸고 중국인민을 위해 일본군과 싸웠다는 것을 강조했다. 지금 김일성은 북한의 수상이고, 그가 백두산에 남긴 '혁명성지'는 북한인민들이 대대로 숭상하는 곳이다. 그래서 중국정부와 인민이 북한정부와 인민의 자신의 지도자에 대한 심후한 무산계급감정을 이해해주면 좋겠다는 등등의 말까지 했다.
그리하여, 1962년 모택동은 주은래로 하여금 북한을 방문하게 한다. 그리고 김일성과 <중조변계조약(中條邊界條約)>을 체결한다. 이 조약은 모두 5개 조문인데, 제1조는 주로 양국국경선을 나누는 기준이고, 제2조는 경계선인 강의 섬과 사주(沙洲)의 귀속은 모두 수면의 너비를 기준으로 한다는 것이고, 제3조는 경계인 강물의 수역은 양국이 공동관리, 공동사용하며, 여기에는 항행, 어렵(漁獵)과 강물사용등을 포함한다. 압록강입구밖의 수역획정원칙도 규정했다. 제4조는 주로 조약체결후에 양국의 국경선공동검증위원회를 성립하여 공동검증한다는 것이고, 제5조는 문서교환방식이다.
비록 조약에서 백두산의 경계구분 비율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는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압록강의 원두(源頭)인 백두산 천지는 본 조약의 "경계선인 강의 수역은 양국이 공동관리한다"는 획정원칙의 범위내에 들어갔다. 그후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이 <중조변계조약>의 서명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백두산천지는 둘로 나뉘어진다. 중국이 48%를 점유하고, 북한이 52%를 점유하는 것으로(일설에는 북한이 53%라고도 한다). 동시에 압록강의 원두인 천지의 분수령의 동쪽의 3개 봉우리도 북한에 귀속된다. 백두산 천지는 백두산의 정상에 있다.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9개의 봉우리가 둘러싸고 있는데, 가장 높은 봉우리는 백두봉(병사봉)이다. 이 백두봉은 북한이 귀속된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장군을 기리는 의미에서 백두봉을 장군봉으로 개칭한다.
압록강에는 크고 작은 백개이상의 섬이 있다. 어떤 것은 중국쪽으로 치우쳐 있어, 물이 적을 때는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양빈(楊斌)이 개발하려고 계획했던 위화도(威化島)와 압록강입구의 최대의 섬인 신도(薪島)는 현재 북한에 귀속되어 있다. 현재 북한에 속하는 그 섬들은 이전에 중국에 속했었다. 신도는 썰물때는 완전히 중국의 해안선과 연결된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1950년대에 북한에 넘겨주었다. 신도를 북한에 넘겨준 것은 주항도(主航道)와 출해구(出海口)를 북한에 넘겨준 셈이 되었다. 양국 관계가 나쁠 때 북한이 봉쇄하면 중국은 아주 곤란해지게 된 것이다. 손실이 가장 큰 쪽은 당연히 단둥시와 랴오닝성이다.


中國和朝鮮的國境劃線祕聞:白頭山和鴨綠江


作者:又名(名字)
白頭山一直被認爲是滿族起源的"龍脈"。 進入長白山挖山參或打獵的人越來越多,清朝廷擔心這種活動會斷絕龍脈,對東北地區實施了長達200多年的封禁政策,將長白山地區、鴨綠江、土門江等中國-朝鮮邊境地區作爲"封禁"的核心地區嚴禁進入。 後來由於長期的奉金政策,東北邊防地區生活的人變得稀少,國境防禦變得鬆散。 因此導致嚴重的國防危機。 特別是清朝道光之後,沙皇、俄羅斯等列強的侵略擴張使這一危機變得越來越嚴重。 因此,朝鮮邊防居民非法越境的事例增多。
後來從1860年到1870年,朝鮮北部地區因多年自然災害百姓陷入水深火熱之中。 許多朝鮮人爲了生計,非法越過鴨綠江、桃文江越境,開墾對面的中國奉天、吉林等荒地。 人越來越多,開墾土地也越來越多。 這給清朝帶來了各種政治、社會問題。 後來清朝朝廷於1867年實施移民實邊政策,允許韓國人移居東北。 後來朝鮮對移民的政策也得到緩解,讓他們"易服致發",獲得許可後繳納稅金,在取得清朝國籍的前提下留在東北。 然後將該文件通報給朝鮮朝廷。 1882年8月,朝鮮國王要求清朝政府遣返在中國非法開墾居住的朝鮮人,清朝允許朝鮮朝廷提出這樣的要求。
只是後來朝鮮朝廷不僅沒有遣返邊防越境居民,反而以穆克登的碑爲依據,主張1883年7月土門、豆滿不是"一江之名"即同一江的兩個名字,而是"而爲兩江"兩個不同的江河,主張中國沿邊地區的海蘭江。 隨着這樣的主張,不僅沒有必要遣返原來非法越境的居民,反而出現了更多的朝鮮越境居民。 這一措施是後來"間道"問題的開端。 1885年6月,朝鮮向清朝朝廷發文,再次主張土門、圖們是兩條不同的江河,主張海蘭江南側的延邊地區本來就是朝鮮的土地,主張明確雙方的國境線。 1885年9月30日至11月29日,清朝和朝鮮的兩國將派遣使臣共同劃定國境線。 但是,雙方的意見分歧太大了。 第一,關於江的名字,中國主張土門、圖們、土門都是一條江不同的漢字標記,朝鮮主張土門和圖們是兩條不同的江。 第二,關於正源,中方主張紅丹水是土門江的庭院,主張用這條江劃定國境線;朝鮮方面主張紅土山水是土門江的庭院,主張用這條江劃定國境線。
此後,在20世紀50年代後期,中國出現大饑荒,國家財政能力不足。 這樣一來,對朝鮮的援助也減少了。 朝鮮多次派人前往中國,主張將鴨綠江作爲中國和朝鮮同時擁有的警戒線。 理由是應該發展朝鮮的北部邊境地區,沒有電力保障是不行的。 因此,中國已經在鴨綠江上游集安建起了雲峯發電站。 當時,中國和北韓的友誼和橫跨江河的大壩的一端與北韓的國土相連,因此,中國曾承諾向北韓無償提供該發電站發電量的一半。 當時中國政府和朝鮮的金氏政權處於"蜜月期"。 因此,中國沒有反對將鴨綠江作爲"同飲一江水"等飲用江水的關係,即鴨綠江作爲中國和朝鮮兩國的國境線。
結果是朝鮮得寸進尺。 鴨綠江的發源地是白頭山天地,因此在上世紀60年代初期,中國政府再次要求將白頭山分爲兩部分,中國和北韓雙方各佔有一半。 爲了說服中國政府,朝鮮以兩國都是社會主義陣營的兄弟國家爲由,早就提出白頭山是朝鮮偉大領導人金日成的革命事業發源地。 當時金日成強調,加入中國抗日聯軍時,冒着生命危險爲中國人民與日軍作戰。 現在金日成是朝鮮的首相,他在白頭山留下的"革命聖地"是朝鮮人民世代崇尚的地方。 所以希望中國政府和人民能夠理解朝鮮政府和人民對自己領導人的深厚的無產階級感情等。
1962年毛澤東讓周恩來訪問朝鮮。 然後與金日成簽訂《中朝邊界條約》。 該條約共有5條條款,第1條主要以兩國國境線爲標準,第2條以警戒線江島和沙洲的歸屬爲水面寬度爲標準,第3條爲警戒的江水域由兩國共同管理、共同使用,其中包括航行、漁撈和江水使用等。 同時還規定了鴨綠江入口外的水域劃定原則。 第四條 主要是指簽訂條約後成立兩國國境線共同驗證委員會進行共同驗證,第五條是文件交換方式。
雖然條約中沒有提及白頭山的邊界劃分比率,但鴨綠江的源頭白頭山天地進入了本條約"警戒線江水域由兩國共同管理"的劃分原則範圍內。 據傳, 此《中朝邊界條約》簽署後不久, 白頭山天地被分爲兩部分。 中國佔有48%的份額,朝鮮佔有52%的份額(俗話說朝鮮佔53%)。 同時,鴨綠江的原豆——天地的分水嶺東側的3座山峯也將歸朝鮮所有。 白頭山 天地在白頭山的頂峯。 由火山爆發形成的9座山峯環繞,最高峯是白頭峯(兵士峯)。 這個白頭峯歸朝鮮所有。 朝鮮爲了紀念金日成將軍,將白頭峯更名爲將軍峯。
鴨綠江上有大大小小的百個以上島嶼。 有的偏中國,水少時可以步行進去。 楊斌計劃開發的威化島和鴨綠江入口最大的島嶼--新島現在都歸朝鮮所有。 現在屬於朝鮮的那些島嶼以前屬於中國。 新道在退潮時完全與中國的海岸線相連。 但是他們都是在20世紀50年代交給朝鮮的。 把信徒交給北韓相當於把主航道和出海口交給北韓。 在兩國關係不好的時候,如果朝鮮封鎖,中國將變得非常困難。 損失最大的當然是丹東市和遼寧省。 

 

截图圣地长白山

“天吝瑶池琼浆水,寒风遣雪撵春归。誓破天门灌百草,愿栖凡尘终不回。”昨日,《剑网3》北天药宗内测开始,由于当时有一些事情果子没有申请,现在看的心里直痒痒(ㄒoㄒ)。天有不测风云,月有阴晴圆缺。虽然果子目前玩不了新门派,但是果子可以体会云玩家的快乐了。

现在,我来带大家一起看玩家们的精美截图吧!

首先,我们来看看微博名为“糯猪猪w”的玩家,她显卡截图出了问题直接云图截图,由于她在云图中加了滤镜,使图片产生了比较高的饱和。饱和度高并没有使她的图片不好看,反而有一种森林童话的感觉,图片里的小屋有一种霍比特人住的房子的感觉。

然后,我们来看看微博名为“白日烬_”的玩家,药宗不愧是新晋的5A级景区,她截图里的药宗真的很靓,感觉药宗任意一个角度都非常漂亮。

微博名为“殷风敌”的玩家非常喜欢药宗地图中的高山草甸,以及远处的茫茫雪山。他是入门做任务过程中陆陆续续截的图,即使这样图片也是非常漂亮的。

微博名为“秋霖落雪”的游戏玩家,她主要截了青石冰库,也是非常漂亮的,同样也安利了副本武氏别院,那是个雪景温泉,场景色调也很号,剧情需要的景也比较齐全,部分视野比较开阔,没有容易当镜头的东西,用来拍视频比较快乐。

长白山不愧是首批国家级自然保护区、首批国家5A级旅游景区、联合国“人与生物圈”自然保留地和国际A级自然保护区。即使被做成游戏,其美丽也不可遮挡。

看完这些玩家眼中的药宗,不知道你是否期待获得26号《剑网3》向玩家发放测试服的资格,果子挺希望有自己的。

반응형
반응형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