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충형 냉전 후반기인 1980년대 미국의 적은 소련, 또 하나 일본이었다. 두 나라가 미국에 위협을 주는 방식은 달랐다. 소련은 미국과 군사적으로 대립했다. 경제적으론 미국이 주도하는 서구 자본주의에 맞서 동구권 공산국가들과 사회주의 경제 블록을 형성했다. 자원의 이동, 상품 생산과 소비가 블록 안에서 이뤄졌다. 일본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미국의 경쟁자로 부상했다. 양국의 활발한 무역 속에서 커져가는 적자 폭은 미국의 안보 위협이 됐다. 소련이 체제 밖 적이었다면 일본은 체제 안의 적이었다.
현재 미국이 최대 위협으로 꼽는 중국은 어떤 성격의 적수일까. 2020년 5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쌍순환(雙循環)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기했다. 이 개념은 그해 가을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021~2025년 중국 경제를 이끌 핵심 발전전략으로 채택됐다. 쌍순환은 국내 시장이라는 내순환과 국제 시장이라는 외순환을 뜻한다. 대외적으로 개혁개방과 수출 경제를 유지하면서 내수를 활성화해 중국 경제성장의 두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시진핑의 경제 책사로 불리는 류허(劉鶴) 부총리는 지난해 12월 “쌍순환이 서로 촉진하는 새로운 발전 구조를 세우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재확인했다. 이 시점에 쌍순환이란 개념이 등장한 데는 국내적 맥락과 국제적 맥락이 있다. 국내적으로 40년이 넘는 개혁개방 기간 동안 중국 경제성장을 이끈 엔진은 수출이었다. 외국 기업이 생산한 부품과 중간재를 수입,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해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였다. 그 결과 국부는 미국 다음으로 커졌지만 인민의 생활수준은 그만큼 나아지지 않았고 소비도 미약했다. 2017년 5월 22일 중국 광둥(廣東)성 선전시 옌톈(鹽田)항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첫 중국-유럽 화물열차가 정차하고 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거치며 중국 정부는 수출 의존도를 줄이고 내수 시장을 키우기 시작했다. 방식은 대규모 인프라 건설과 부동산 개발이었다. 그 결과 국유기업과 지방정부의 과잉채무, 과잉설비를 초래했다. 지방 곳곳에 입주민 없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유령도시가 생겨났다. 이를 수정하려는 ‘공급측 개혁’은 경제성장 위축을 불러왔다. 소비 증가를 통한 내수 시장 성장전략 즉 ‘수요측 개혁’이 필요했다. 대외적으론 미국 중심의 국제경제 체제와의 마찰이 원인이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떠올랐고 국제 분업 체계의 한 축을 담당했다. 미국은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도우며 중국이 국제 시장질서에 편입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덩치가 커진 중국이 나아간 방향은 수출 보조금 지급 등 국가 주도의 성장이었다.
미중무역전쟁 이에 정면으로 부딪친 것이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시작한 무역전쟁이었다. 중국산 수입품에 고액 관세를 부여했다. 5G, 인공지능(AI), 로봇, 항공우주 등 첨단산업 부문의 기술 교류를 제한하고 중국을 배제했다. 국제경제 체제에서 중국을 분리시키겠다는 이른바 디커플링(decoupling)이다. 디커플링이 없는 상황과 완전한 디커플링이 이뤄진 상황을 비교할 때 2030년 중국 경제성장률은 4.5%에서 3.5%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중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자유주의 국제경제 체제와 완전히 분리되는 상황이 도래하더라도 자족적인 국내 경제를 완성해야 할 것이다. 국내에서 완전한 생산과 소비가 이뤄지는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을 구축해야 한다. 이것이 쌍순환이 탄생한 또 하나의 배경이다. 2021년 6월 3일 톈진 메이장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7회 중국(톈진) 국제 장비제조업 박람회'에 전시된 기계설비를 살펴보고 있다 쌍순환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우선 서비스업 육성과 가계 가처분 소득 증가를 통한 소비 활성화다. 둘째 5G·AI 등 신형 인프라와 도시화를 우선순위에 두고, 전통적 인프라와 녹색경제 투자를 병행한다. 셋째 기술 고도화를 통해 고부가가치 산업구조로 업 그레이드한다. 넷째 제조업 핵심 장비·부품의 자급자족 실현이다. 마지막으로 금융시장 개방을 통한 해외 자금 유입 활성화와 디지털 화폐를 통한 위안화 국제화다. 한마디로 소비를 활성화해 국내 내수시장을 키우고, 독자적이고 고부가가치의 국내 산업 공급망을 구축하며, 수출 일변도이던 대외 경제에서 금융 부문을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소비 진작을 위해선 중국 정부가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있다. 중국은 GDP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40% 수준으로 G20 국가들 중 낮은 편이다. 그만큼 경제 자원이 가계 보다 기업에 편중돼왔다. 사회보장 제도가 충분치 않아 가계 저축률이 높다. 빈부격차도 중저소득층의 소비를 위축시킨다. 시진핑이 공부론(共富論·공동부유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에도 이런 문제의식이 담겨있다. 앞서 옛 소련과 일본의 사례를 살펴봤다. 중국은 소련처럼 미국·서방과 경제적으로 단절하려 하지도, 일본처럼 미국 중심 국제질서에 완전히 동화되려 하지도 않고 있다. 두 방향 모두를 병행하면서 자급자족 경제라는 소련의 특성과 국제경제 틀 속에서 성장을 유지하려는 일본의 특성을 모두 취하려 한다. 쌍순환론에서 이런 중국의 전략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