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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아시아의 영토·해양 분쟁(2) -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과 해양경계 획정 문제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주: 위의 지도에 있는 JDZ(Joint Development Zone, 공동개발구역)가 한국의 5광구 일부와 7광구를 포함하고 있음.
 
 
김두영 (전 국제해양법재판소 사무차장)

한국과 일본은 1974년 제주도와 일본 규슈 사이에 위치한 대륙붕의 공동 개발협정에 서명하였다. 이 협정은 대륙붕 범위에 관하여 양국이 상이한 입장을 타협함으로써 공동개발이라는 형식으로 합의점을 찾은 결과물이다. 1978년 협정 발효 후 2000년대 초까지 양국은 협정 이행을 위해 공동으로 탐사를 진행하였으나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 후 2020년 들어 한국은 협정을 가동하기 위한 협의를 외교 채널을 통해 추진하였으나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공동개발 협정은 2028년 6월에 종료될 예정이며 일본은 2025년 6월에 협정 종료를 통보할 걸로 예상된다. 따라서 차기 정부는 대륙붕 공동개발 협정의 종료 문제를 대일 외교의 최우선 과제로 격상하여 다루는 방안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2028년 예상되는 공동개발 협정 종료

한국과 일본은 1974년 1월 30일 서울에서 “대한민국과 일본 국 간의 양국에 인접한 대륙붕 남부구역 공동개발에 관한 협정”(이하 ‘협정’ 또는 ‘공동개발 협정’)에 서명하였다. 이 협정은 연안국에 귀속되는 대륙붕의 범위를 정함에 있어서, 1958년 제네바 대륙붕협약에 따라 중간선 원칙을 견지한 일본의 입장과 1969년 국제사법재판소가 발표한 자연 연장(natural prolongation)론에 입각하여 제주도와 일본 규슈 사이 해저가 한반도의 연장이라는 관점에서 광구를 설정하였던 한국의 입장이 공동개발이라는 형식으로 타협점을 찾음으로써 체결될 수 있었다.


중간선을 기준으로 할 때 대부분 일본에 귀속되는 해역에 대해 새로이 등장한 자연 연장 개념을 바탕으로 광구를 설정하였던 한국은 서명 4개월 후인 1974년 6월에 신속히 협정을 비준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앞바다를 내주었다고 생각한 일본은 제3차 유엔해양법회의(1973~ 1982)의 진행 경과를 지켜보며 미루다가, 근 4년 반의 기간이 경과한 1978년 6월 22일 마침내 협정을 비준하였다. 이로써 협정은 2028년 6월 22일까지 50년 존속 기간으로 발효하였다. 협정상 가장 빨리 종료를 통보할 수 있는 날짜는 지금으로부터 3년 4개월 후인 2025년 6월 22일이며, 이 날짜에 일방이 타방에게 종료를 통보하면 그로부터 3년 후인 2028년 6월 22일 협정은 종료한다.

<그림> 대한민국 광구 현황과 공동개발구역(JDZ)

공동개발 협정 발효 4년 후인 1982년에 채택된 유엔해양법협약은 대륙붕에 관한 정의에 새로이 거리 기준(distance criterion)을 도입하였다. 이에 따라 해양법협약 채택 후 지금까지 지난 40년간 제기된 해양 경계 획정 분쟁에서 국제재판소(국제사법재판소, 국제해양법재판소, 협약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 등)는 일관되게 거리 기준을 적용하여 연안으로부터 200해리 내 대륙붕 경계를 획정하여 왔다. 그 결과 자연 연장론은 퇴조하였으며 거리 기준이 200해리 안 대륙붕 경계 획정에서 굳건한 대세가 되었다. 이처럼 현격히 변화된 국제법적 환경에 비추어 볼 때 일본은 가장 빠른 날인 2025년 6월 22일 한국측에 공동개발 협정의 종료를 통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동개발 협정의 기원

공동개발 협정의 기원은 196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도 남방에 위치한 동중국해 해저에 석유 자원이 매장되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1960년대 중반에 발표된 일부 보고서에 최초로 언급되었다. 이에 맞추어 유엔 아시아 극동경제위원회(ECAFE, Economic Commission for Asia and the Far East)는 1966년 산하에 “아시아 해저광물자원 공동탐사조정위원회(CCOP: Committee for Coordination of Joint Prospecting for Mineral Resources in Asian Offshore Areas)”를 설치하였다. 이 위원회는 1968년 말 지질탐사를 수행한 후, 이듬해인 1969년에 대만과 일본 사이에 걸쳐 있는 동중국해 대륙붕이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석유 자원이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구역 중 하나일 수 있으며, 두 번째로 황해의 해저도 석유와 천연가스 부존 가능성이 높은 해역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수입 석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동중국해 연안국들에게 이 보고서는 지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해저 석유 자원 탐사에 대한 경쟁을 촉발하였다.


당시나 지금이나 동중국해나 황해에는 역사적, 정치적 상황에 기원한 복합적 요인으로 인해 해양 경계가 획정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해양 경계가 획정되지 않은 해역에서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석유 자원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관련 연안국들 간에 외교적 협상이 선행되어 적어도 해양경계 획정 이전 단계에서 가능한 잠정 체제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1960년대 말 동중국해와 황해의 연안국인 한국, 일본, 대만, 중국 중 어느 국가도 그러한 시도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연안국들은 국내적으로 석유 확보 필요성과 해외 석유 자본과의 계약 가능성에 고무되어 석유 부존 가능성이 높은 해역에 대한 주권적 권리를 경쟁적으로 주장하고, 광구를 일방적으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자신들의 권리 주장이 국제법에 합치한다는 검증되지 않은 확신을 바탕으로 외교적 협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설정한 연안국들의 광구는 필연적으로 상당한 범위의 해역에서 중첩 문제를 발생시켰다. 예를 들어 1969년 일본의 4개 석유회사들은 일본 정부가 남해와 동중국해에 설정한 4개의 광구에 대한 석유 탐사, 시추를 신청했는데, 일본 제 3광구의 대부분은 한국 제 7광구와 중첩되어 있었다.


1970년 1월 한국은 해저광물자원개발법을 제정하고 5월 말에는 대통령령으로 7개 광구를 설정하였다. 한국이 설정한 7개 광구 중 제주도와 일본 규슈 사이에 설정된 제7광구의 경우, 중간선을 기준으로 할 때 일본측 해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제주도 남단으로부터 250해리 이원(beyond, 또는 이남)의 오키나와 해구까지 뻗어 나가 있었다. 당초 한국 정부는 중간선 밖 일본측 해역에 위치한 해저를 자신의 광구로 설정하는데 신중하였으나, 이러한 입장은 국제사법재판소가 1969년 2월 20일 발표한 북해 대륙붕 사건의 판결을 접한 후 극적으로 변화하였다. 국제사법재판소는 대륙붕 경계 획정 시 등거리 방식이 반드시 적용되지 않아도 되며, 형평의 원칙에 따라 합의로 획정하되, 육지영토의 자연 연장인 대륙붕의 가능한 넓은 구역이 해당 국가에 배분되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이 판결에 따라 등거리선 방식에 더 이상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한국은 지질학적 요인을 고려하여 중간선 밖 일본측 해역의 해저에 제7광구를 설정하였다. 한국은 이 구역이 지질학적으로 한반도의 자연 연장이며, 이 연장은 오키나와 해구에까지 미친다고 판단하였다.


한국이 설정한 제7광구와 제5광구의 일부에 대해 중간선 원칙에 입각하여, 자신의 해역으로 간주하고 있던 일본에게 한국의 광구 설정은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일본은 한국의 조치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공식 협의를 제의하였다. 일본의 제의에 한국은 당초 소극적이었으나 결국 협의에 응하기로 하였다. 양국은 1970년 11월, 1971년 9월 및 1972년 2월에 실무 협의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3회에 걸친 실무회의는 상호 간 입장 차이로 진전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실망한 일본은 실무회의 종결을 선언하고 한국측에 제3국에 의한 조정을 제안하였으며, 조정을 통한 해결이 불가능할 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한편 3차 실무회의도 무위로 끝난 후 한국 외무부는 해외 특별연구생으로 1971년 2월부터 1년간 미 콜롬비아 대학에서 해양법을 연구한 박수길 신임 조약과장(주유엔대사 역임)을 통해 당대 국제법 대가였던 콜롬비아 대학의 볼프강 프리드만 교수와 올리버 리씨진 교수 그리고 시라큐스 대학의 골디 교수 등 3인에게 전문가 의견을 구하도록 하였다. 3인의 전문가에게는 1972년 7월 15일부터 9월 30일까지 2개월 반이라는 검토 기간이 주어졌다. 다만 박수길 과장은 서신으로 이들에게 최종보고서 제출 기한은 9월 30일이지만, 결론 요약본을 제6차 한일각료회의가 열리는 9월 초 이전까지 제출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3인 전문가 요약본 의견은 제6차 한일 각료회의 개최 2주일 전인 8월 22일 주뉴욕총영사관에서 외무부 본부로 전달되었다. 이 의견에서 골디 교수는 한국의 법률적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하였다. 그러나 프리드만 교수와 리씨진 교수는 여러 불확실성을 고려하였을 때 공동개발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표명하였다.


정부 최고위 레벨에서 대륙붕 문제에 관한 협의는 한국의 제7광구 선포 후 하나무라 니히치로 부회장을 단장으로 하는 일본 경제단체연합회 대표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박대통령에게 한국이 대륙붕 문제에 관한 일본의 협의 요청에 응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반면 박대통령은 종합제철소 건설에 필요한 2억 달러 지원을 일본측에 강력히 요청하였다. 당시 한국은 중화학공업 육성의 일환으로 포항에 종합제철소 건설 사업을 추진하였으며, 청구권 자금 중 2억 달러를 이 사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일본 정부에 협조를 요청하였으나 진전이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한국측이 대륙붕 문제에 관한 협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조건으로 일본은 한국의 종합제철소 건설 지원을 약속하였다. 이 점에 관해 1970년 당시 외무부 조약 과장이었던 조광제 대사(주 스페인대사 역임)는 2016년 4월호 『신동아』 인터뷰에서 “우리가 1970년 1월 1일 일본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8만 4000km2에 대한 관할권을 선포하지 않았더라면 종합제철소 건설이 미뤄져 경제 및 공업발전 속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회고하였다.


제7광구와 제5광구 일부에 대한 공동개발을 향한 직접적인 움직임은 1972년 7월에 열린 한일협력위원회 제8차 상임위원회를 계기로 김종필 총리주최 리셉션에서 기시 노부스케 전 수상과 야쓰기 가즈오 한일협력위원회 상임이사와 김총리 간 대화에서 비롯되었다. 기시와 야쓰기 증언에 따르면, 김총리가 일본측이 제안한 공동개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일본측에 외교루트에 올려 주도록 요청하였다고 한다. 그 후 공동개발 문제는 9월 5일과 6일 서울에서 개최된 제6차 한일 각료회의에서 공식적으로 거론되었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김정렴의 회고록에 따르면, 이 회의에서 일본측 수석대표인 오히라 마사요시 외상과 김종필 총리 간에 공동개발 문제가 논의되었다. 회의 마지막 날인 6일 오전 보고를 받은 박대통령이 한일 공동개발안을 결심하고, 이날 오후 오히라 마사요시외상과 나카소네 야스히로 통산상이 박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대륙붕 공동개발안이 정식으로 합의되었다고 한다.

 

공동개발 협정의 이행 경과 및 전망

공동개발 합의 후 양국은 협상을 통해 대륙붕 공동개발 협정을 타결하였다. 이 협정에서 한국이 설정한 제7광구와 제5광구의 일부는 공동개발 구역(Joint Development Zone, JDZ)으로 설정되었으며, 양국은 이 구역의 탐사 및 채취를 공동으로 수행하기로 합의하였다. 이 합의에 따라 1980년대에 공동개발 구역에 대한 탐사가 이루어졌으나 상업성을 가진 탐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 일부 구역에 대한 탄성파 탐사가 이루어졌으며, 2010년대에 들어서는 그간 탐사에 대한 한일 양국 전문가들의 평가가 독립적으로 수행되었다. 양국 전문가들의 탐사 결과에 대한 평가는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한국측 전문가들은 한일어업협정상 제주도 남부 중간수역(제5광구 남동단) 해저에 석유 자원의 부존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에 일본측 전문가들은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공동개발 협정의 실질적 가동을 위한 정부 차원의 공식적 노력은 오랜 공백 기간을 거친 후 2020년에 들어와 재차 시도되었다. 협정의 실질적 이행을 위해 한국은 외교채널을 통해 오랜 기간 중단된 한일 공동위원회의 재가동과 조광권자 지정을 일본측에 요청하였다고 한다. 일본 측이 어느 정도 적극적이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미온적이었을 걸로 추정된다.


만약 공동개발 구역에서 탐사가 진행되어 8년간 유효한 탐사권이 설정되고 이 기간 안에 상업성이 있는 유전이나 가스전을 찾게 되어 채취권이 설정되면 협정은 2028년 6월 22일 종료 예정일과 관계없이 채취권 설정일로부터 30년간 존속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유의미한 탐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탐사에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해 볼 때 일본의 종료 통보가 예상되는 2025년 6월 22일 이전에 일본의 입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수준의 탐사 결과를 내놓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처럼 시간은 절대적으로 일본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일본은 협정 이행에 미온적인데, 이를 바꿀 수 있는 한국측의 수단은 안타깝게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 이러한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2025년 6월 22일에 일본이 한국측에 공동개발 협정 종료를 통보하고, 그 결과 3년 후인 2028년 6월 22일에 협정은 종료할 걸로 예상하고 대처방안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일본이 협정 이행에 적극적이지 않은 주요한 법적 이유는 유엔해양법협약에 새로이 도입된 대륙붕에 관한 거리 기준이라고 판단된다. 1973년 12월에 시작된 제3차 유엔해양법회의에서 국제사회는 국제사법재판소가 제시한 자연 연장 대신에 연안으로부터 200해리까지 해저를 대륙붕으로 인정해 주는 거리 기준을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이 거리 기준은 유엔해양법협약의 제76조 문안에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이미 해양법협약 발효(1994년 11월 16일) 이전인 1985년 발표된 “리비아·몰타 대륙붕 사건” 판결에서 거리 기준을 처음으로 적용하였다. 그 후 나온 판례 등을 통해 해안 기선으로부터 200해리 이내 해저는 지질학적 특성과 무관하게 거리 기준에 따라 연안국의 대륙붕으로 인정됨으로써 거리 기준은 이제 보편적 규범으로 확립되었다. 이 거리 기준을 한일 간 대륙붕 공동개발 구역에 적용하면 대부분의 공동개발 구역은 일본의 대륙붕으로 전환될 것이다. 다만, 신 한일어업협정 상 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 중첩수역으로 지정된 제주도 남부 중간수역은 공동개발 협정 종료 시 대륙붕 중첩수역으로 여전히 남게 될 것이다.

 

협정 종료 대안: 해양 경계 획정 추진

연안으로부터 200해리 이내 대륙붕에 대한 거리 기준이 국제적으로 확립되었고, 공동개발 구역에 대한 유의미한 탐사실적이 사실상 전무하고, 향후 2~3년 안에 탐사실적을 내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이미 언급하였듯이 2028년 6월 22일 공동개발 협정의 종료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2025년 6월 22일 일본이 공동개발 협정의 3년 후 종료를 한국에 통보하였을 때 국내적으로 상당한 반발과 후유증이 발생할 걸로 우려된다. 종료 통보를 받는 순간 한국도 당사국인 해양법협약 체제에서 이를 존중해야 하는 정부의 의무와 일반 국민들이 경험할 상실감 간의 간극은 매우 클 것이다. 따라서 차기 정부는 이 간극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금년 5월 출범과 함께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공동개발 협정의 종료 문제를 차기 정부의 대일 외교의 최우선 과제로 격상하는 걸 고려해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공동개발 협정 문제는 외교부와 산업자원부 등 정부 관련 부처 실무진들의 관심 사항으로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종료 통보가 3년여 앞으로 다가온 현 시점에서 국민적 중요 관심 사안인 공동개발 협정 문제를 실무진들에게만 맡겨 놓아서는 해법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제에 내포된 폭발성과 파장의 범위를 고려할 때 차기 정부는 초기에 양국의 최고위급에서 이를 논의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문제가 잉태된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유엔해양법협약 체제에 도입된 대륙붕에 관한 거리 기준이다. 국제사회가 확립한 이 기준은 한국의 국가적 의지와 노력으로 변경할 수 없으며, 1996년에 유엔해양법협약을 비준함으로써 한국도 이 기준을 국제법규범으로 받아들인 게 엄연한 현실이다. 따라서 앞으로 해결 방향은 이러한 국제법적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하여야 한다. 한일 간에 최고위급에서 유엔해양법협약의 틀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기로 하는 합의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이런 합의가 이루어지게 되면, 그 다음 실무적인 단계는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공동개발 협정은 일방의 통보에 따라 통보 시점 3년 후에 협정이 종료한다고 정하고 있다. 비록 협정에 그렇게 정해져 있으나 이런 종료 방식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중요한 조약이 한쪽 당사자의 일방적 통보로 종료될 때 그에 따른 후유증이 심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쌍방이 협의를 거쳐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공동으로 협정을 종료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상호 협의를 통한 공동 종료 방식을 취할 때 일방적 종료 통보에 따른 후유증의 상당 부분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협정 종료에 따라 미래의 기대 이익이 상실된다고 가정할 때, 이를 보전하는 방안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미결로 남아있는 제주도 남부 중간수역에 대한 해양 경계 획정을 추진하는 방안이 미래의 기대 이익 상실에 대해 상당 정도 보전이 되어줄 수 있다고 본다. 이 수역에 대한 해양 경계 획정 방안으로는 한일 양국이 특별협정을 체결하여 국제해양법재판소에 부탁하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 남부에 중간수역이 설정된 건 1990년대 말 신한일어업협정 협상 당시 일본이 무인도인 단조군도(남녀군도)와 도리시마(조도)에 대해 유인도와 동일한 수준의 완전한 효과(full effect)를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일본은 공동개발 협정 체결 이전부터 무인도가 대륙붕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였으며, 제3차 유엔해양법회의(1973~1982)에서도 무인도서와 같은 작은 섬도 다수의 주민이 독자적인 경제활동을 수행하며 거주하는 유인도서와 마찬가지로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에 대한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일본은 이러한 입장을 지금도 견지하고 있다고 추정된다. 따라서 양국이 제주도 남부 중간수역 해양 경계 문제를 합의로 국제재판에 회부할 경우 일본은 단조군도(남녀군도)와 도리시마(조도)에 완전한 효과를 부여해 경계를 획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 걸로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신 한일어업협정이 체결된 1990년대말 이후 국제사법재판소와 국제해양법재판소와 같은 상설국제재판소와 유엔해양법협약 제7부속서에 따라 설립된 국제중재재판소는 국가간 해양경계획정 분쟁을 다룬 사건에서 무인도에 대하여는 효과를 일관되게 부인해 왔다. 이에 비추어 볼 때 한국과 일본이 합의하여 제주도 남부 중간수역의 해양 경계를 획정해주도록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의뢰할 경우, 단조군도(남녀군도)와 도리시마(조도)와 같은 무인도에 완전한 효과를 부여해야 한다는 일본의 입장은 수용되기 어려우리라 본다. 일본의 입장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제주도 남부 중간수역의 대부분은 한국 수역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 남부 중간수역에서는 현재 한국과 일본의 관할권이 중첩되고 있다. 따라서 이 수역은 한일 양국이 집행관할권을 행사할 때 충돌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불안정한 수역이다. 신 한일 어업협정 체결 이후 이 수역에서는 양국 간에 집행관할권이 충돌하는 상황이 실제로 발생해 왔으며, 향후 발생하는 충돌을 양국이 적절히 관리하지 못할 경우 상당한 파장이 우려된다. 만약 국제재판을 통해 이 수역에서 한일 간에 해양 경계가 획정된다면 양국 간 집행관할권 충돌로 인해 야기되는 상황은 완전히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곧 이 해역에서 법적 안정성이 확보된다는 걸 의미한다.


한일 간 대륙붕 공동개발 협정의 종료 시 공동개발 구역의 대부분에 대한 한국의 기대 이익은 상실될 것이다. 그러나 해양 경계 획정 시 석유나 천연 가스 부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알려진 제주도 남부 중간수역의 대부분은 한국이 확보할 수 있을 걸로 전망된다. 또한 중첩 수역인 관계로 발생하는 양국 간 집행관할권 충돌 문제도 해소됨으로써 이 해역에서 법적 안정성도 확보될 걸로 보인다. 중국의 부상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동북아의 해양 안보 여건에 비추어 볼 때, 주변 해양의 안정이 한국에 가져다 줄 이익을 결코 과소 평가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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