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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외세와 결탁한 정착민 식민주의의 희생양들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라시드 할리디 지음, 유강은 옮김, 열린책들 펴냄 ⓒ열린책들
 
글 : 김재명
[프레시안 books]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이른바 ‘중동 전문가’로 일컬어지는 서구의 학자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진실과는 거리가 먼 저술들을 내놓는다. 이스라엘의 강력한 동맹국인 미국의 자칭 타칭 중동 전문가들이 특히 그러하다. 유대인이든 아니든 친이스라엘 성향을 지닌 책들을 읽는 일반 독자는 이스라엘이 ‘선’이고 팔레스타인은 ‘악’이라 여기게 된다. 이들 편향성 강한 전문가들은 미국의 중동정책이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 이스라엘의 이익을 대변하기 일쑤다.

한국에도 여러 권의 중동 관련 책이 번역된 버나드 루이스(Bernard Lewis, 전 프린스턴대 교수)가 편향성을 지닌 대표적인 인물이다. 영국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나중에 미국 시민권자가 된 루이스는 여러 경로를 통해 2003년 조지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을 부추겼다. 사담 후세인이 제거됨으로써 이스라엘의 안보 부담은 확 줄어들었다. 독재자 후세인을 좋게 말하기 어렵지만,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전쟁에 관한 국제법을 무시한 침략행위다. 루이스는 이스라엘의 이익을 위해 미국의 중동정책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고, 결과적으로 중동의 반미 정서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 

유대인 출신 학자들 가운데 ‘진실’을 말하는 이들도 물론 없지 않다. 여기엔 학자적 양심을 넘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적 억압 통치와 인권 침해의 문제점, 나아가 미국의 잘못된 중동정책을 비판한다면 견제와 불이익이 따르는 탓이다. 노먼 핀켈슈타인(Norman Finkelstein, 전 드폴대 교수) 같은 이가 대표적인 보기다. 

유대인이자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아들임에도 핀켈슈타인은 이스라엘 정부가 입국을 거부할 정도로 미운털이 박혔다. 2007년 가톨릭계 명문인 드폴대에서 쫓겨난 뒤로 미국 대학에서 강의를 못하고 있다. 유대인 주류사회에서 사실상 퇴출당한 셈이다. 미국 안의 유대인 파워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다. 

미국내 유대인 강경파들은 핀켈슈타인 같은 양심적인 유대인 지식인을 가리켜 ‘자기혐오에 빠진 유대인’이라 낙인찍곤 한다. 미 역사학자 라시드 할리디(Rashid Khalidi, 컬럼비아대 교수)에겐 핀켈슈타인을 옥죄는 ‘자기혐오에 빠진 유대인’이라는 올가미가 통하지 않는다. 태생이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계 미국 지식인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로는 2003년에 작고한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전 콜롬비아대 교수)를 꼽을 수 있다. 사이드는 중동 이슬람권을 왜곡과 편견으로 바라보는 서구 백인들의 잘못된 시각과 이스라엘의 잔혹한 점령정책을 비판해왔다. 

사이드와 마찬가지로 태생적 모국인 팔레스타인에 무한한 애정을 지닌 할리디가 쓴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은 오늘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이 왜 생겨났고, 어떤 문제점을 지녔는가를 비판적으로 다룬 책이다. 지난 100년 동안에 걸쳐 주변 강대국들의 입김이 어떻게 팔레스타인의 불행을 낳고 갈수록 그 불행을 확대 재생산했는가를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제국주의 열강의 지원이 없었다면...

53쪽에 이르는 미주를 포함, 440쪽 분량의 이 책에서 할리디가 일관되게 비판하는 대목은 ‘정착민 식민주의’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이주한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원주민, 그리고 그 양쪽의 후손들이 동등한 조건 아래서 정당한 생존경쟁을 벌인 게 아니고, 유대인과 외세의 유착이 낳은 결과라고 분석한다.

오랫동안 서구 사회에서 살아왔던 유대인들이 강대국(20세기 전반부엔 영국, 20세기 후반부와 21세기엔 미국)의 강력한 지원 아래 팔레스타인 원주민과 그 후손들의 땅을 차지하고 그 지역에 대한 배타적인 지배권을 확보하려고 100년 동안의 긴 전쟁을 벌인 것이 오늘날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기본 성격이라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시온주의(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유대민족주의-필자 주)의 뿌리가 식민주의 정착민 기획이라는 사고에 내재한 모순이라는 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또한 그들은 영국과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열강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이 기획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pp.23-33). 

이러한 비판의식 아래 할리디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의 주요 전환점을 6차례에 걸친 ‘선전 포고’로 풀어내고 있다. 첫 번째 선전포고로 할리디는 1917년의 밸푸어 선언을 꼽는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외무장관이던 아서 밸푸어는 유대인 금융재벌 로스 차일드 가문의 전쟁비용 지원을 보상해줄 요량으로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를 약속해 주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선 대영제국의 힘을 빌려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함으로써 정착민 식민주의 첫 삽을 뗀 셈이다. 유대인들이 몰려오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1930년대에 대규모 무장봉기를 일으켰지만, 이들을 진압한 것은 대영제국의 군대였다. 

할리디가 말하는 두 번째 선전포고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바로 뒤이은 이스라엘-아랍 간의 전쟁(제1차 중동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유대인들이 승리함으로써 당시 팔레스타인 인구 130만명 가운데 87만 명(UN 통계)이 하루아침에 난민의 처지가 됐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지금도 그 때의 악몽을 ‘나크바’(Nakba, 대재앙)이라 부른다. 1948년의 나크바 이후로 팔레스타인의 고난은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이스라엘의 군사적 강공책, 억압 통치와 인권 침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티파다(intifada, 저항 또는 봉기)……이런 표현은 몇 십 년 동안 중동의 상황을 나타내는 기본 용어로 굳어졌다.

세 번째 선전포고는 1967년 제3차 중동전쟁과 그에 따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242호다. 이스라엘의 기습으로 6일 만에 끝났다 해서 ‘6일 전쟁’이라고도 일컬어지는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영토를 4배나 불렸다. 그 무렵 유엔안보리에서 결의안을 통해 이스라엘의 철군을 촉구했지만, 이스라엘은 들은 척도 안 했다. 그리고 실리를 챙겼다. 여기서 ‘실리’란 1948년 전쟁에서 차지했던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지배권을 사실상 추인 받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아울러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마구잡이로 밀어붙일 수 있게 됐다.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할리디는 네 번째 선전포고로 꼽는다.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끌던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을 분쇄하려고 벌인 그 전쟁에서 레바논 베이루트 외곽의 샤브론-샤틸라 난민촌 집단학살 등 많은 잔혹행위들이 벌어졌다. (2006년 여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취재 때 필자가 사브라-샤틸라 난민촌에 갔더니, 그곳 노인들은 24년 전의 악몽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라파트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지도부가 중동 각국으로 망명하는 것으로 1982년 전쟁은 막을 내렸고 이스라엘은 외견상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할리디의 시각은 다르다. PLO가 튀니지 등 중동 각지에 흩어지자 팔레스타인 본토가 민족해방운동의 중심이 됐고, 그런 바탕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티파다(저항)가 1987년부터 6년 동안에 걸쳐 이어지게 됐다고 풀이한다. 

다섯 번째 선전포고는 ‘오슬로 평화협정’으로 알려진 일련의 정치적 타협 국면이다. 서구 언론과 그를 받아쓰는 데 익숙한 국내 보수언론의 논조에 익숙한 독자라면, 할리디가 오슬로 평화협정을 부정적으로 서술하는 대목에서 갸우뚱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슬로 평화협정’의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면 해석이 달라진다. 정식 명칭 ‘팔레스타인 자치에 관한 잠정협정’이 말해주듯이, 오슬로 평화협정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결코 만족스럽지 못했다. 독립도 아니고 자치라니, 그것도 ‘잠정’이라니...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불만을 품게 됐다. 협정 뒤 일상생활은 더욱 나빠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오슬로 협정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 협정 때문에 팔레스타인 식민화가 빠른 속도로 계속되었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창설을 전혀 허용할 생각이 없다는 깨달음이 분명해졌다. ...검문소, 장벽, 울타리 등이 미로처럼 얽힌 시스템이 만들어지자 사람들은 이동이나 물품 운송을 위한 허가를 거부당했다. 이스라엘의 의도적인 분리정책 속에서 가자지구는 서안지구와 단절되었고, 서안지구는 다시 예루살렘과 단절되었다. (pp.299-300)

마지막 여섯 번째 선전포고는 2000년부터 2014년 사이에 벌어졌던 일련의 이스라엘 강공책들을 가리킨다. 이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제2차 인티파다를 벌이며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지중해에 맞닿은 가자지구는 걸핏하면 이스라엘의 군사적 강공책으로 마을들이 초토화됐다. 서안지구의 유대인 정착민 숫자는 급속히 늘어났고, 이름뿐인 자치정부 아래서 팔레스타인 독립의 길은 멀어졌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유착 관계에 팔레스타인이 농락당하고 있다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눈에 분명하게 들어왔다. 팔레스타인 강경 저항세력이자 미국-이스라엘이 ‘테러 집단’이라 낙인 찍어온 하마스(Hamas)에 대한 팔레스타인 민중의 지지가 만만찮은 까닭은 이런 현실을 반영해서일 것이다. 

 

“미국의 배타적 통제를 거부해야” 

할리디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지도부를 불신의 눈길을 바라본다. 그의 눈에 비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미국의 눈치를 살피고 이스라엘에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초라한 존재다. 불신을 받는 지도자들이 그저 작은 합의에 만족하다면, 대중의 저항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무엇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인가. 할리디는 팔레스타인 지도부가 앞으로 오슬로 협정의 잠정 공식을 거부하고 완전히 다른 토대 위에서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협상 과정에서 친이스라엘 일방주의에 기울어온 미국의 배타적 통제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할리디가 명시하진 않았지만, 그 동안의 중동평화 협상 테이블에서 하마스를 테러단체라며 배제해온 미국에 대한 비판의식을 엿볼 수 있다. 

팔레스타인 상황이 갈수록 어렵지만, 할리디는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여기엔 세계적 힘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는 판단도 한 몫 한다. 그는 지난날 영국이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손을 뗐듯이, 미국도 언젠가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독점적 지위를 누리지는 못할 것으로 본다. 이미 우리는 지난해 여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탈레반 정권에게 내주고 허겁지겁 철수하는 모습을 보았다. 

특히 할리디가 강조하는 대목 가운데 하나는 유대인의 배타적 민족주의인 시온주의에 도사린 체계적인 불평등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에 중대한 역사적 차이가 있긴 하지만, ‘민족적 권리를 포함한 모든 권리를 완전히 평등하게 보장’하는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 모두에게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저지르는 인권 침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높아지는 관심과 비판의식은 팔레스타인에겐 희망적이다. 할리디가 이 책에서 짧게 서술했듯이, 이스라엘을 겨냥한 ‘보이콧 투자철회 제재’(Boycott, Divestment, Sanctions, 약칭 BDS) 움직임은 긍정적인 흐름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BDS 운동은 2005년 7월 팔레스타인 비정부기구(NGO)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비폭력적 제재 조치’를 국제사회에 호소함으로써 시작됐고, 삽시간에 아랍연맹 회원국들로 퍼져나갔다. 네델란드의 대형 투자기금 PGGM이 이스라엘 은행에서 투자금을 회수하는 등 서구사회에서도 호응이 커졌다. 2017년 숙박 공유 사이트인 에어비앤비(airbnb)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정착촌을 에어비앤비의 숙박 서비스 제공 목록에서 없애겠다”고 선언하자, 이스라엘 정부조차 놀라고 당황해서 신경질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BDS로 비롯된 경제적 손실보다 이스라엘은 더 심각하게 여겨야 할 사항은 ‘이스라엘은 깡패국가’라는 이미지가 굳어진다는 점이다. 셈에 빠른 유대인들이 BDS를 금전적 손실로만 따지려 들고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지구촌 사람들의 싸늘한 눈길을 못 본 척 고개를 돌린다면, 상황은 더 어렵게 꼬여갈 것이 틀림없다. 

 

할리디의 꿈, 언제 이뤄질까 

결론 부분에서 할리디는 “유대인 내부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스라엘 유권자들 가운데는 2개의 국가해법을 통해 팔레스타인에게 필요한 땅을 돌려주고,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공존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소수의 온건파(이스라엘 국내지형으로는 이른바 ‘좌파’)들이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점령정책을 펴면서 저지르는 인권 침해가 잘못됐다고 여긴다. 따라서 할리디는 “더 많은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을 계속 억압하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이 존재한다는 것을 점을 설득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할리디의 꿈은 언젠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평등과 정의에 바탕을 둔 관계를 맺는 것이다. 결국은 다시 2개의 국가 해법으로 돌아간다. 문제는 현시점에서 이스라엘의 정치권은 물론이고, 이스라엘을 감싸며 해마다 30억 달러 넘게 무상 군사원조를 주는 미국의 정치권이 팔레스타인의 독립 국가 건설, 나아가 유엔 회원국 가입을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제 식민통치로부터 우리 한민족이 겪어야 했던 지난날의 고난과 지금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로부터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고난, 이 둘은 시공간의 차이를 뛰어넘어 본질에서는 같다. 한국의 독자들이 할리디의 책을 관심 있게 읽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위의 글은 월간 <기독교사상> 최신호에 실린 필자의 서평을 옮겨온 것이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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