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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길(李元吉)은 왜 이세민(李世民)의 편이 아닌 이건성(李建成)의 편에 섰을까?

 
 

图片来源 李元吉为何比李建成还想杀掉李世民三个原因一个比一个现实

 

글: 역사전록(歷史典錄)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당)

 

당고조(唐高祖) 이연(李淵)에게는 아들 넷이 있었다. 장남 이건성, 차남 이세민, 삼남 이현패(李玄覇, 요절), 사남 이원길.

 

이연이 진양(晋陽)에서 거병했을 때, 이원길은 겨우 15살이어서, 무리를 따라 관중으로 가지 않고, 진양에 남아 있으면서 후방을 지켰다. 이연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가 대당정권을 건립한다. 이원길은 제왕(齊王)에 봉해지고, 병주총관(幷州總管)에 임명된다. 

 

다만, 이원길은 형편없었다. 군벌 유무주(劉武周)가 공격해 들어오자 놀라서 성을 버리고 도망쳤다. 그후 그는 둘째형 이세민을 따라서 왕세충(王世充)을 포위공격하고, 두건덕(竇建德)과 싸우며, 유흑달(劉黑闥)을 소탕해쏙, 서원랑(徐圓朗)을 격퇴시키면서 적지 않은 전공을 세우고, 자신의 세력을 배양했다.

 

천하가 어느 정도 안정된 후, 태자 이건성과 진왕(秦王) 이세민은 점차 양대세력을 구축한다. 그들은 황위를 둘러싸고 점점 더 치열하게 경쟁한다. 큰형과 둘째형의 각축을 보면서, 넷째인 이원길은 누구의 편에 서야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그는 고민끝에 최종적으로 태자 이건성을 선택한다. 그리고 이건성을 위하여 적지 않은 계책을 내면서 이건성집단의 핵심역량이 된다. 

 

그렇다면 제왕 이원길은 왜 이건성의 편에 섰을까? 이세민을 선택하지 않고. 필자의 생각에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감정적으로 보아 이원길은 이건성과 가깝다.

 

이원길은 어려서부터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다. 두황후는 그의 용모가 추하다고 여겨 그를 버리려 했다. 다행히 유모가 그를 몰래 안아서 돌아온다. 이연은 세 아들 중에서 이세민을 가장 편애했다. 진양거병저에, 이연은 이세민을 자신의 곁에 남겨두었고, 이건성, 이원길은 배다른 동생인 이지운(李智雲)과 함께 하동(河東)에 남겨진다. 거병후, 이건성은 이원길을 데리고 진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지운은 하동에 남겨두었고, 결국 그는 피살당한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다. 하나, 이연은 이세민을 좋아하고, 이원길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감정적으로 큰형 이건성과 가까웠다. 둘, 이건성은 넷째동생인 이원길에게 잘 대해주었고, 중요한 순간에 그를 데리고 진양으로 돌아간다.

 

둘째, 이세민은 공을 많이 세웠고, 세력이 방대했다. 만일 이세민과 함께 태자 이건성을 물리치더라도 황위는 이원길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없었다.

 

이원길은 비록 형편없었지만, 가슴에 큰 뜻을 품고 있었다. 왕세충을 평정하는 전투에서 이세민은 3천5백의 정예기병을 지휘하여 호뢰관으로 가 두건덕의 지원군을 막아낸다. 그때 동도 낙양을 포위공격하는 중임을 이원길에게 넘긴다. 그리고 이원길은 몇번 왕세충이 포위망을 뚫고 나오려는 것을 막아낸다. 상당히 괜찮은 전공을 세운 것이다. 유흑달과 서원랑을 토벌하는 전투에서 그는 성을 점령하고 진격하는데 전공을 세운다.

 

그래서, 이원길은 어느 정도 군사적 자질도 있고, 정치적 두뇌도 있다고 할 수 있다. 큰형과 둘째형의 황위다툼을 보면서 자신도 야심을 가진다. 스스로 황위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원길은 이세민을 따라 관동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이세민이 세력을 키워나가고, 인재를 거두며, 전투를 하나하나 승리해나가는 것을 보았다. 조정의 관직만으로는 그의 전공을 치하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이연은 '천책상장(天策上將)'이라는 명호를 이세민에게 내린다. 이런 공적과 명망은 이원길이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다. 발끝에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는 스스로 둘째형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둘째형의 편에 선다면, 황위는 영원히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 터였다.

 

셋째, 이건성이 편에 서면, 이세민을 제거한 후, 이원길은 자신이 큰형 이건성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건성의 편에 선 후, 이원길은 여러번 이세민 암살을 시도한다. 어떤 때는 이건성에게 제지당하고, 어떤 때는 실패했다. 그러나 이원길은 적극적이었다. 이건성의 이세민에 대한 공격수단은 후궁에게 뇌물을 주는 것이라든지, 이세민을 모함한다든지, 이세민의 심복을 제거하여 이세민을 고립시킨다든지, 마지막으로 이세민을 속여서 군영으로 불러들여 해결하는 방안이라든지 모두 이원길이 주요 기획자였다.

 

이건성은 일찌기 이원길에게 황위에 오르면, 이원길을 황태제(皇太弟)에 앉혀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원길의 부하도 이원길에게 "원길(元吉)" 두 글자를 합치면 마침 "당(唐)"자가 된다는 말까지 한다. 이원길은 그 말을 듣고 득의양양하여, "진왕을 제거한 후, 동궁(태자 이건성을 가리킴)을 취하는 것은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쉽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이렇게 단정할 수 있다. 일단 이세민을 제거한 후, 이원길은 반드시 창끝을 돌려 이건성을 공격했을 것이라고.

 

李元吉为何比李建成,还想杀掉李世民?三个原因,一个比一个现实

 

来源: 丹青券  举报

李渊和窦夫人共生了四个儿子,长子(隐太子):李建成,次子:李世民,三子:李玄霸,也就是《隋唐演义》中,大名鼎鼎的李元霸的原型,和四子:李元吉。

论民间的名气,李世民排第一,李元霸第二,李建成第三,李元吉最后,以至于许多人都不知道,李世民还有李元吉这位弟弟。反而对民间演义中的李元霸,充满了各种八卦,比如力气大的骇人,还比如长相怎么那么丑?跟李世民一比,根本就不像亲兄弟。

李元霸长得丑,这是《隋唐演义》的说法,不过这个说法,也是有根据的,那就是李元吉,就长得非常丑。以至于连亲生母亲,窦夫人都想淹死他完事。幸好被一位叫陈善意的宫女给救下,养活了。

李元吉虽是李渊和窦夫人最小的孩子,却由于太丑,根本没享受到过宠爱。恐怕也正是因这一点,使得李元吉的心理发生了问题。在李元吉长大后,由于喜欢舞刀弄枪,且下令让手下人,真刀真枪的操练,经常发生事故,养娘陈善意劝阻他。

可李元吉竟然恩将仇报,杀掉了陈善意,继续这种疯狂的操练。为何李元吉敢跟尉迟恭叫板?这就是根由。他自认为,练得的“硬本事”,可没想到尉迟恭的本事更硬,跟他比武是,躲槊,夺槊,搞得李元吉非常狼狈。

当然,此刻的李元吉已经成年,跟大哥李建成的关系非常亲密,跟二哥李世民的关系,却令人吃惊的冷淡,以至于李元吉曾多次想杀掉李世民,亏得李建成阻拦才没有得逞。莫非是,因为李世民的爱将尉迟恭曾“戏弄”过他?不是,真正的理由其实有三个,且一个比一个现实。

一、嫉恨李世民,除之而后快

在李渊称帝后,曾任命李元吉为并州总管。可哪料李元吉却是不干正事,天天打猎。用他自己的话说就是:宁三日不食,不可一日不猎。

结果刘武周起兵,李元吉根本没有防范,很快并州大部分丢失。李元吉眼看事情不妙,带着妻妾和珍宝,丢下太原城跑回了长安。须知太原城是李渊的“龙兴之地”,根基所在,李元吉这一惨败,等于让李渊连龙椅都坐不稳了。

可想而知李渊会如何恼火。在大骂李元吉后,让李世民出征,终于收复了太原和并州,稳住了局面。

前面说过李元吉杀养娘时,就已经露出了恩将仇报,无情无义的本色。按着他这性子分析,如今他丢了并州和太原,丢了大脸,而李世民却因此大涨威风。李元吉能不恨李世民,不嫉妒他?有李世民在,他李元吉就总感觉自己活得丢人,自然杀掉李世民,就成了他的第一选项。

二、对自己身世不公的报复心理

李元吉由于太丑,差点被亲娘淹死。由此可以推断出,李渊和窦夫人对待他的态度,是好不了的,这其实就注定了他有过悲剧般的童年。所以从这个角度来言,李元吉可谓是苦命孩儿。

在这种环境中长大的人,心理极易扭曲,李元吉便是这样。杀养娘,是这种心态的最直接流露。对恩重如山的养娘,他都如此对待,对李渊呢?能好得了才怪。只不过面对李渊,他没法如杀养娘那般,实施快意的报复罢了。

而恰好,李建成和李世民,又发生了太子之争。李元吉对李世民嫉恨不已,除之而后快,自然就会选择李建成。所谓骨肉相残,对李元吉来言就成了一种“报复方式”,用来狠狠地对付李渊。

所以,这才有了李元吉,多次要杀掉李世民的事发生。若不是李建成心智健全,还念及骨肉亲情,李世民估计就真会被李元吉杀掉了。

三、对皇位存有奢望

李元吉就算再不被李渊和母亲喜欢,他也是嫡幼子。三哥李玄霸老早病逝,而大哥和二哥又为皇位争斗。这其实也就给了李元吉一丝希望,若是老大和老二,两败俱伤都死掉了呢?故而,《唐书》便记载了这样一段话:时秦王有功,而太子不为中外所属元吉喜乱,欲并图之。

一个“喜乱”,就暴露了李元吉跟李建成合作中的小心思,他就是要极大激化,李建成和李世民的矛盾,他好乱中取胜图取皇位。也正是因有这种心思,所以李元吉才劝李建成:赶紧杀了李世民吧,不然他早晚闹幺蛾子。

可李建成却不同意,故而李元吉就死死贴住李建成,他两次三番动手。以至于当李元吉的属官裴宣俨,被任免,去李世民府里任职时,李元吉担心裴宣俨透露自己的秘密,而毒死了裴宣俨。

所以,正是在这三个原因,互相作用下,造成了李元吉比李建成,还想杀李世民。且在玄武门之变时,李元吉真就差点得手,用弓勒住李世民的脖子,要不是尉迟恭及时赶来,李世民恐怕就真就交代了。最终,李元吉被“克星”尉迟恭杀掉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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