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총선 결과 극우 정당과 손잡은 베냐민 네타냐후(73) 전 총리가 다시금 총리직에 오를 것이 유력시된다. 네타냐후 전 총리도 강경 우파로 불리지만 팔레스타인에 대한 극단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극우가 집권 연정에 포함될 것으로 전망되며 우려가 커진다.
이스라엘 영문 매체 <예루살렘포스트>는 선거관리위원회 자료를 토대로 2일(현지시각) 밤까지 전날 치러진 총선 개표가 87.6% 완료된 상황에서 네타냐후 전 총리 주도의 우파 연합이 전체 120석인 크세네트(의회) 의석 중 과반인 65석을 차지하는 데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6월 실각한 네타냐후 전 총리는 1년 반만에 다시 총리직에 오를 전망이다. 네타냐후 전 총리는 1996~1999년, 2009~2021년 두 차례에 걸쳐 집권하며 이스라엘 역대 최장수 총리직을 수행했다. 야이르 라피드 총리가 이끄는 '반 네타냐후' 연합 의석수는 50석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선거는 지난해 중도 성향 야이르 라피드 총리 주도 아래 꾸려진 '무지개 연정'의 붕괴 뒤 치러졌다. 정치적 불안정 속에 2019년 이후 4년 간 다섯 번의 총선을 치른 이스라엘은 지난해 우파부터 좌파에 이르기까지 반 네타냐후 기치 아래 모여 연정을 꾸렸지만 요르단강 서안에 관한 의견 대립 등 정치적 불화 끝에 지난 6월 출범 1년 여만에 해산됐다.
지난해 반네타냐후 연정에 밀려 총리직을 잃은 네타냐후 전 총리는 이번 선거에서 극우 정당과 손을 잡으며 복귀를 시도했다. 지난달 극우 정당 연합체인 독실한 시오니즘당은 부패 혐의로 재판 중인 네타냐후 전 총리에 대한 사법 절차를 취소할 수 있는 사법 개혁안을 내 놓기도 했다.
독실한 시오니즘당은 우파 연합 내에서 네타냐후가 이끄는 우파 리쿠드당(31석)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의석(14석)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정당을 놓고 봐도 극우 정당은 리쿠드, 야이르 라피드 총리가 이끄는 중도 예시 아티드(24석)에 이어 의회에서 세 번째로 많은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네타냐후 전 총리 자신이 팔레스타인 공습을 단행하고 국제 사회가 불법으로 여기는 요르단강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촌 인구를 크게 늘리는 등 강경 우파로 분류되지만 극우의 연정 참여 가능성은 새로운 우려를 더한다. <뉴욕타임스>를 보면 극단적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극우 독실한 시오니즘당을 이끄는 이타마르 벤그비르(46)는 극단주의 성향과 극우 활동 중 벌인 위법행위 탓에 이스라엘 군복무까지 거절됐던 인물이다.
그는 아랍계 이스라엘인의 시민권 박탈을 주장하고 공개적으로 아랍인을 "개"로 칭했던 극단주의 랍비 카하네가 창당한 카흐(Kach)에서 활동했고 그를 "영웅"으로 묘사한 바 있다. 1995년엔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인정한 오슬로 협정 반대 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오슬로 협정을 주도한 이츠하크 라빈 전 총리의 차량에서 떼 낸 엠블럼을 들고 "우리는 이 엠블럼에 접근한 것과 마찬가지로 라빈에게 도달할 것"이라며 위협적 발언을 하기도 했다.
벤그비르는 최근까지 자택에 1994년 서안지구에서 29명의 팔레스타인을 살해한 바루치 골드스타인의 초상을 걸어 두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벤그비르는 연정에 참여할 경우 경찰력을 통제하는 치안 장관직을 원하고 있다. 이 당의 다른 지도자인 베잘렐 스모트리치는 자신을 "자랑스러운 동성애 혐오자"로 칭하며 유대인들이 아랍인에게 집을 팔아선 안 되며 유대인 산모와 아랍인 산모를 산부인과 병동에서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서 극우가 득세한 배경엔 최근 격화한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P> 통신을 보면 지난 달 말 토르 베네스랜드 유엔(UN) 중동 특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올해가 2005년 유엔이 사망자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팔레스타인에 가장 치명적인 해가 될 것이라고 보고했다.
분쟁이 격화된 지난달에만 여섯 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32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죽고 311명이 다쳤다. 같은 기간 이스라엘 쪽에서는 2명의 군인이 사망하고 25명의 시민이 다쳤다.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서 이뤄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에서 올해만 125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목숨을 잃었다.
극우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수십 년에 걸친 억압이 낳은 "자연스러운" 산물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무함마드 쉬타예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리는 2일 이스라엘에서 극우의 부상은 "이스라엘 사회에서의 차별과 극단주의가 확산한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 언론 <하레츠> 칼럼니스트인 오데 비샤라트를 인용해 이스라엘의 서안지구에 대한 점령이 극우가 믿는 것들을 서서히 정상화시켰다며 "벤그비르는 난데없이 나타난 것이 아니다. 그는 압제·토지 수탈·선동 등 폭력적 현실의 적자"라고 보도했다.
우파 연합엔 극우 정당과 더불어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 샤스(11석 예상), 보수 유대정치 연합 토라유대주의연합(UTJ·8석 예상)도 속해 있어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정부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종교적이고 우파적인 정부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