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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할아버지'가 겪은 전쟁, 아버지의 그림에 글 입힌 <할아버지의 양손>

 

▲<할아버지의 양손> 그림 윤중식, 글 윤대경 ⓒ상수리
 
 
 
박세열 기자
[프레시안 books] <할아버지의 양손>, 윤중식 그림·윤대경 글, 상수리
 

어찌된 일인지, 인간은 빛나는 이성의 문을 열어제쳤고, 만인의 인권을 신장시켜왔다고 자부하는데, 세계 곳곳에서 전쟁은 끊이질 않고 있다. 고대와 중세의 전쟁사를 보면서, 한 목소리로 '다시는 비극을 만들지 않겠다'고 수차례 다짐하는데, 역사의 첨단에 서 있는 우리는 어딘가 위태해 보인다.

73년 전의 한국전쟁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북한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 무기를 벼르고 있고, 한국은 끊임없이 전쟁 연습을 벌인다. 한반도 허리를 가로지른 철책은 아물지 않은 흉터 자국이다 .

 

<할아버지의 양손>(윤중식 그림·윤대경 글, 상수리)은 전쟁의 잔혹함과 피란민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하는 28장의 스케치를 담고 있다. 73년이 지났지만, 아직 생존해 있는 전쟁 세대들, 그리고 그 아들딸들이 바라보고 있는 '휴전선'이라는 아물지 않은 흉터의 자국들. 글을 쓴 윤대경 선생의 선친은 '석양의 화가'로 불린 윤중식 화백이다. 전쟁이 터지자, 가족들을 이끌고 피란길에 올라 본인과 다른 피란민들이 겪어야 했던 끔찍한 고통을 28장의 생생한 스케치로 남겼다.

 

곳곳에서 총탄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사람들, 추운 데다가 먹을 것조차 없어 죽 한 그릇을 놓고 애걸하는 사람들, 잠자리가 없어 좁은 헛간에서 칼잠을 자는 사람들, 종잡을 수 없이 떨어지는 포탄에 허둥대다 생이별을 해야 했던 가족들, 심지어는 피란 인파 속에서 소달구지에 치여 다치고 죽는 아이들. 73년 전의 모습을 담은 28장의 스케치는 안락하게 살고 있는 우리에게 기억을 놓지 말고 증언에 눈과 귀를 닫지 말라고 말을 건다. 

 

<할아버지의 양손>은 윤대경 선생이 직접 겪은 실화다. 유망한 화가였던 아버지와 함께 전쟁을 피해 피란길에 오른 윤 선생의 가족은 평양, 개성, 서울, 부산을 거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공습을 피해 도망치다 황망 중에 어머니, 누나와 헤어져야 했고,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어야 했던 젖먹이 동생을 지켜본다. 

 

네 살의 나이로 온갖 비극을 다 겪은 그는 이제 8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네 살배기' 코흘리개가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어 전쟁의 참상을 증언한다. 이 어린 할아버지의 소망은 단 하나, 같은 민족끼리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다.

 

한국전쟁은 아직도 수많은 이산가족에게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다. 저자의 부친인 윤중식 화백의 스케치는 이 전쟁을 잊지 말자는 다짐이다. 

 

윤중식 화백은 평양에서 태어나 중학교 재학 중 한국 최초의 미술전 <녹향회>에 출품해 입선했다. 피란을 오기 전 대동강 근처에서 살았던 윤대경 화백은 강변의 풍경과 석양, 황혼 등을 그리며 자연주의 화풍에 깊이 심취했다. 1935년, 일본으로 유학을 가 전문적으로 유화를 배우기 시작한 윤중식 화백은 한국인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백우회에 참여하며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일에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윤중식 화백의 그림 대부분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성북구립미술관에 기증되어 보관 및 전시되고 있다. 작가 윤대경 선생은 휴전협정 70주년을 맞아 부친의 유품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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